롭부리는 15년 전에 아유타야를 가면서 한 나절 들렀던 도시다. 방콕에서 기차 타고 갔다가 원숭이 사원으로 유명한 프라쁘랑쌈욧과 작은 동물원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해바라기 밭을 보러 갔는데,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는) 12월 초부터 1월 중순이 절정이라는 정보는 부정확한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찾아간 롭부리의 많은 해바라기 밭들은 대부분 수확이 끝난 다음이었으며, 관광객을 위하여 남겨 놓은 (혹은 늦게 심은) 몇몇 밭에만 꽃이 피어 있었다.
#2019년 12월 24일
왠지 전보다 업그레이드된 느낌이 드는 호텔 조식을 먹고서 롭부리로 출발.
MRT를 타고 깜팽펫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모칫마이로 가는 길은 2년 전과 같았는데 막상 모칫마이에서 택시를 내려 롭부리행 버스를 알아보니, 롭부리행은 큰 버스가 없고 길 건너편 롯뚜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롯뚜=미니버스를 타야 한단다. 저쪽에서 택시를 내렸어야 했군. 육교를 건너 롯뚜 터미널로 가 보니 규모가 제법 크다. 터미널 건물이 ABCD 네 개 있는데 롭부리행은 B에서 출발한다. 요금은 110밧, 소요 시간은 2시간 정도.
롭부리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점찍어둔 숙소인 Hop Inn 앞에서 내렸다. 2년 전에 싸콘나콘에서 경험해 본 홉인은 (필리핀계 호텔 체인이라는데) 썩 좋은 숙소는 아니지만 기본은 갖춘 저렴한 숙소다. 2박에 1200밧.
길 건너 빅씨에 들어가서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즐기다가 블랙캐년이라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태국 음식도 있고 서양 음식도 있는 퓨전 체인인가 본데 똠양꿍과 팟팍루엄밋(모듬 채소 볶음)을 먹고 디저트로 빙수까지 맛있게 먹었다. 425밧 - 길거리 음식이나 쇼핑몰 푸드코트에 익숙한 우리에겐 약간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이다.
(육교 위에서)
#12월 25일
아침은 호텔에서 컵라면과 팟타이로 간단히 먹고 (홉인에는 식당이 없고 컵라면이나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판다.) 프런트 직원들에게 해바라기 밭에 우리를 데리고 갈 택시를 부탁했다. 이국주를 많이 닮은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뭔가 협상을 하는 눈치다. 우리에게 한 군데를 갈 거냐 두군데를 갈 거냐고 묻는데, 정확한 의미를 몰라서 우린 시간 많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얘기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더니 해바라기 밭과 빠싹댐을 가기로 했으며 비용은 1000밧이란다. 좋아요.
30분쯤 후에 자가용 승용차가 도착했고, 기사에게 일정과 비용을 확인했더니 해바리기 밭과 댐 외에 무슨 레스토랑인가를 간다고 했다. 어차피 점심을 먹어야 하니 알아서 데리다 주세요.
꽤 먼 길을 달려가서 도착한 해바라기 밭은 기대했던 장관은 아니었다. 우선 규모가 작았다. 넓은 벌판에 해바라기 꽃이 쫙 피어 있는 게 아니었어? 아쉬운대로 사진을 찍으며 잠시 놀다가
더 먼 길을 달려 빠싹댐에 도착했다. 마침 대형 트랙터가 끄는 열차가 출발하려는 참이길래 얼른 표를 끊고(30밧) 올라탔다. 수학여행(?)을 온 남녀 학생들이 많이 탔고 일반 관광객은 대여섯 명 정도. 호수의 남쪽 둑길을 따라 달리던 트랙터 열차는 큰 부처님이 앉아 있는 곳 근처에서 잠시 쉬었다가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정보에 의하면 이 근처에도 해바라기 꽃밭이 아름다워서, 그걸 보러 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겨울철 주말에만) 방콕에서 특별 관광열차가 운행된다고 하는데, 해바라기 꽃은 거의 안 보인다. 역시 철이 지나서 그런 걸까? 그래도 호수 구경하고 부처님 구경하고 학생들 노는 것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려고 학생들 뒤에 줄을 섰다.)
두 군데 구경했으니 끝난 건가? 차를 타고 돌아오다가 길 건너편 쪽에 크고 화려한 해바라기 밭이 보인다. 어라? 놀랄 새도 없이 기사는 자연스럽게 유턴을 해서 해바라기 밭으로 들어간다. 오호! 기사에게는 미리 계획이 있었나 보다. 갈 때는 일부러 조금 약한 곳을 보여주고 올 때 더 쎈 곳으로 데려간다는.
그래 최소 이 정도는 돼야지. 여기서 해바라기 꽃을 충분히 봤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롭부리 시내가 10킬로 쯤 남았을 때 다시 한 번 유턴을 했고 예상대로 그곳은 레스토랑이었다. 주차장이 없는지 큰길 가에 이미 주차된 차가 길게 늘어서 있다. 엄청 유명한 식당인가 보네? 생각하며 고풍의 까페 건물로 들어갔는데 (간판이 까파오&커피)
와우! 기사를 따라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늘의 주제였던 해바라기 밭보다 더 아름다운 꽃밭이 있다!!
꽃은 코스모스 종류라고 하는데(일본 코스모스? 우리가 흔히 보는 코스모스와는 많이 다르다) 해바라기와 달리 지금이 완전 제철인가 보다. 역시 계획이 다 있었구나, 레스토랑 얘기를 들을 때 그냥 밥 먹을 곳에 데려다 준다는 얘기겠지 하면서 흘려들었는데 그게 아니라 여기 온다는 얘기였네.
이 화려한 정원 입구에 있는 고풍의 목조 건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으려고 메뉴판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값이 비싸도 불평하지 않고 시키려고 했는데 이건 그냥 로컬 음식점 수준이잖아? 시그니처 메뉴인 팟까파오무쌉이 80밧이다. 뭔가 미안한 마음에(꽃밭 입장료로 20밧을 따로 냈음에도) 커피까지 시켰다. 맛도 괜찮았음.
호텔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다가
길거리 식당(지붕은 있지만 벽은 없는, 주방이 없이 길가에서 조리하는, 그러나 테이블이 수십 개나 되는, 그리고 메뉴도 수십 개가 넘는 이상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똠얌꿍 팍붕파이댕 팟쁘리여우완 얌운센 그리고 밥 두 공기까지 해서 210밧. 테이불 숫자와 메뉴는 노점 수준이 아니지만 가격만큼은 노점 식당 수준이다. 식당 이름은 카우똠뺏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