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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여름 성수기가 되면 좋은 캠핑장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들어졌다.
집 떠나서 여행중에 아무 때고 좀 편하게 쉬려고 찾아가면 언제든지 숲속에 오두막 한 채를 선뜻 내어주던 내가 알고 기억하는 자연휴양림은 지금 다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따뜻한 온수 나오지, 쾌적한 화장실 붙어있지, 주방 생활용품 다 제공되는 간이 주방에 텔레비전까지 구비되어 있으니 내집 사랑채나 다름 없었다, 하물며 겨울에는 따뜻한 온돌에다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까지 딸렸으니 흔히하는 요즘 시세 말로 풀빌라의 효시라고 할 수 있겠다. 거기다가 가성비 끝판왕이면서도 하나같이 그야말로 죽여주는 장소에 다들 떡하니 들어서 있다. 풍경이 되었던, 정취가 되었던 풍수지리가 어쨌든 간에 대한민국에서 기가 막히게 끝내주는 명당이라고 하면 어김없이 절(사찰)이 아니면 자연 휴양림이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더 살피고 따지고 여러사람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전혀 없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써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얼씨구?
‘대한민국에서 기도할 사람은 절(사찰)로 가고, 쉬고 싶은 사람은 무조건 자연휴양림으로 가면 된다,’는 풍문이 언제부터인가 나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무작정 찾아가는 것은 아예 어림도 없고, 지금 현실엔 자동 응답 전화기에서 ‘예약이 가득 찼습니다. 다음 기회에 이용해 주세요’나 ‘다음 달까지 예약이 매진되었습니다’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으니, 앞으로 나 같이 퇴역한 실버들은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정부 차원에서 실버들의 여가선용을 위해 최선의 시책 마련에 힘써주시고, 거기에 나를 참여시켜 주시면 정말로 좋겠다. 현장 중심의 제안들을 팍 팍 해나갈텐데 말이다.
‘예약을 위해서는 공립공원 예약 시스템을 이용하시던가, 산림청 홈페이지 숲나들-e를 통하시면 되겠습니다.’라는 메아리만 돌아오니, 구닥따리 아날로그 시스템도 버거운 실버 세대에겐 이제 자연휴양림 캠핑이 저만치 물 건너간 남의 이야기가 점차 되어가는 것 같다.
거기다가 요즘엔 캠퍼가 몰리는 주말이나 여름 성수기에는 아예 따로 특정 기간을 만들어 신청을 받고 컴퓨터로 추첨을 통해서 배정을한다니.........
아!!!! 옛날이여!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 먹을수록 저절로 입에서 (아!!! 옛날이여!)를 무슨 타령 부르듯이 터트리는 일이 잦아졌고 그 횟수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럴때마다 챠밍여사는 내 등짝을 후려치면서 ‘그런 소리 자꾸 하면 노땡(?) 갑질하는 것처럼 보여. 그렇게 노인네 티 내고 싶어? 옛날은 무슨 옛날? 옛날엔 뭐가 달랐어?’ 하며 다짜고짜 삿대질로 따지고 덤빌 기세다.
‘신세 타령하는 것 아니라니까? 노래하는 거여. 아련한 추억속의 이선희가 부른 <아. 옛날이여>를 부르는 게 무슨 죄라도 된단 말이여? 노래도 내 맘대로 못 불러?’
이젠 내 곁을 떠나간 아쉬운 그대이기에
마음속의 그대를 못잊어 그려본다
달빛 물든 속삭임 별빛 속의 그 밀어
안개처럼 밀려와 파도처럼 꺼져간다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아니야, 이제는 잊어야지
아름다운 사연들
구름 속에 묻으리
모두 다 꿈이라고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그날이여.
--- 이선희 노래<아. 옛날이여>
어쨌거나 옛말에 목 마른 놈이 먼저 샘을 판다고..........
허니 어쩔것이여?
이쁜 병아리 두 마리 몰고다니며 행복한 캠핑은 계속해야만 하겠는데 어찌하겠느냐고? 샘을 파야 한다면 아직도 할아버지는 너끈히 열 개라도 팔 여력이 남아있는데, 그깟 SNS 인터넷이 문제가 된다면 극복해내야지 어쩌겠는가? 그것은 극복해야 할 목표인 것이지 할아버지가 극복 못할 불가능은 결코 아니지 않겠는가. 병아리들아 걱정하지마. 할아버지는 아직 현역이야. 다 헤쳐나갈 수 있단다.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과 ‘할아버지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병아리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단단히 각오와 다짐을 해온 내가 아니었던가? 내가 누구? 태리. 세리 할아버지야!!!
이럴줄 알았으면 젊어서 더 열심히 노력해 부를 좀 넉넉히 쌓아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무렴 어때? 쌓아놓은 밑천이 없으면 늦게라도 더 열심히 극복을 해 볼 수밖에......... 아주 탁월한 조력자 할망구가 옆에 있으니 괜찮아.
그래서 사이트를 찾아다니면서 회원가입을 하고, 공지사항들을 열심히 메모하고, 사전에 우리의 일정을 꾸준히 노트해 가면서 기회에 부합된다면 무조건 달려들어서 인터넷 예약하기에 매달린다. 뭐 죽자사자 정도는 아니지만, 짬짬이 시간이 나면 슈퍼에 소주 사러 들리듯이 관련 사이트 써칭을 해 보는 편이다. 연휴나 병아리들 방학 시즌을 앞두면 연일 메모해두고 기억해야만 하는 정보의 량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속된말로 (극성수기)에 살아남으려면 남들 다하는 정도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젊어서 돈 버는데 이런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다면 지금 캠핑장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풀빌라나 럭셔리 리조트를 알아보았을 텐데.......... 그게 누구 책임이라고? 다 내책임이라니까? 그때 할망구 말만 잘 듣고 까불지 않았으면 아마도........ 세계 일주 중이었겟다.
태어나서 주식투자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업는 처지이면서 요즘 ‘단타’니 ‘치고 빠지기’를 거듭하고 있다.
가보고 싶은 캠핑장 서너 개를 메모해 놓고 나와 아내의 스케줄에 부합되면 서둘러 무조건 예약 절차를 밟는다. 곧바로 입금까지 해서 선도매를 해 놓고 나서 시간차를 두고 아들 가족의 스케줄을 알아본다. 모든 상황이 원만하면 병아리들만 빌려다가 캠핑을 떠나는 것이고, 스케줄이 겹치면 페널티를 먹기전에 서둘러 예약 취소를 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를 제공 내지는 선물을 한다.
그렇게 해서 직전 캠핑인 <소선암 오토 캠핑장>을 다녀왔었는데, 그때는 아직 수온이 차서 물놀이를 할 수 없다는 전제로 병아리들을 처음으로 떨쳐내고 할머니 할아버지만의 모처럼 오붓한 캠핑을 즐겼었다.
‘요렇게 우리끼리만 다니는 재미도 아주 솔솔하네. 이게 얼마만 이여?’라며 너스레를 떠는 할망구를 쳐다보면서 ‘이게 시방 좋은거여? 아니면 나쁜 조짐이여?’라는 의문을 가져보기도 했다.
(주말 예약 추첨제) (극성수기 예약 추첨제)에 또 응모를 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하루는 카톡에 이런 문자가 날라왔다.
‘고객께서 응모하신 예약 추첨제에서 신청하신 <삼봉 자연휴양림 야영장 206호>가 추첨 당선되었습니다. 공지사항을 잘 읽어보신 후에 나머지 예약절차를 이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5년 7월 11일에서 2박 3일간 6인실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무슨 숲속의 집이나 한옥지구가 당첨되었는지 알겠으나, 이것은 삼봉 자연휴양립 제2 야영장 206호 데크(3.6 x 7.2m) 사용이 2박 3일 동안 허가되었다는 뜻이다.
'아싸!!!!! 이제는 병아리들 몰러가는 일만 남았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여? 기다려라 예쁜 우리 병아리들아. 할아버지가 간다.'
우리 집에는 요정이 산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씩이나 산다.
큰 요정인 태리 요정은 지금 사춘기(성장통)을 막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온 가족의 초미의 관심은 온통 태리 요정에게 쏠려있다.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인 성장통이라지만 슬기롭게 마음의 상처 없이 무사히 이 과정을 거치고 예쁜 숙녀로 성장해 나가기를 온 가족이 기도하고 있다. 특히 할머니의 지대한 관심과 사랑은 하나뿐인 아들을 키웠을 때를 훨씬 능가해 보인다. ‘아들은 남자애였고 태리는 여자애잖아. 그건 확실히 다른 차원인 거야.’라며 어떻게든 많은 시간을 함께 있고 싶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요즘 할머니가 살아가는 이유는 틀림없이 우리 소중한 요정들 때문이다. 그넘의 성장통 때문에 요즘 할아버지는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여성 특유의 뭔가를 다르게 겪는다는 그 요상한 성장통 때문에 할아버지는 조금 뒷전으로 물러나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그렇게 아주 특별하게 성별을 가려야 하는 경우에는 모든 것이 오로지 할머니 역할로만 대체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그냥 한동안 안들은 척, 못 본 척, 보고도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너무나 당연하기만 했던 우리 가족 특유의 넘치는 스킨쉽도 당분간은 생략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작은 요정인 우리 세리는 정말로 정말로 끼가 차고 넘치는 애물단지 요정이다. 강단이 있고, 싫고 좋은 게 너무나 분명하고 매사에 지기 싫은 승부욕이 언제나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하루가 다르게 이목구비가 선명해지는 정말로 예쁜 요정이다. 녀석이 태어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운동선수를 예견했었는데, 지금 지켜보는 녀석의 내면엔 정말로 운동선수 기질이 강하게 엿보인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타고난 에너자이저 세리 요정에게 할아버지가 슬쩍 지어준 별명이 있는데(특급 비밀) 그것은 바로 ‘잠들면 천사’라는 별명이다. 잠들었을 때만 한없이 예쁘고 귀여운 천사라는 이유에서 내가 붙였다. 오죽했으면 큰 손녀 태리의 자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으면서도, 여행 때마다 작은 손녀 세리의 잠든 모습을 매번 열심히 찍어대고 있을까? ‘깨어있으면 당돌한 요정’이지만 ‘잠들면 천사’이기 때문이다.
‘아싸.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의 천사를 만날 수 있을까?’
국립 삼봉자연휴양림(國立三峯自然休養林) 야영장.
하고많은 휴양림 중에서 이름 앞에 ‘국립(national)’이라는 어드벤티지가 아주 자연스레 따라붙는 삼봉자연휴양림(Sambong Natural Recreation Forest)을 드디어 다녀왔다.
캠핑에 중독되다시피 살았던 시절도 있었으니만큼 삼봉 휴양림은 익히 잘 알고 있었고, 곧 가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이제야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단번에 단정지어도 될....... 내가 가진 특유의 여행 스타일 때문이었으리라.
평소, 나는 바쁘게 많이 돌아다니는 여행 스타일을 추구하는 타입이다. 그러다보니 캠핑은 그저 여행의 중간 위치에 마련한 베이스 캠프(숙소)의 목적이 주로였던것이다.
예를 들자면, 주문진 솔향기 캠핑장에 싸이트를 구축하면 해변에서 물놀이나 하고 강릉 나들이 정도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라기보다, 멀리는 설악산 권금성에서 고성의 건봉사까지 다녀오고, 아래로는 동해시 무릉계곡까지 쏘다니는 아주 넓은 권역을 타겟으로 평소 스케줄을 짜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한곳에 다소곳이 머물며 차 마시고 책 읽으며 느긋한 여유를 찾는 여행은 비교적 최근에 나이 지긋이 들어서야 새롭게 힐링이라는 의미를 느껴가면서 점점 그것이 진정 매우 소중한 휴식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소금강과 오대산 월정사 정도는 강원도 여행에서 언제든 포함될 수 있는데, 부연동과 삼봉약수는 늘 그저 그런 어정쩡한 위치가 문제였다. 중간에 어떤 다른 문화유적이라도 있던가? 그곳 하나만으로 다른 연계가 원만한 스케줄도 없이 부러 거기까지 찾아가기가 늘 조금은 부담스러운 그런 좀 특이한 장소에 꼽히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늘 ‘다음 기회에’ 하면서 미루어놓다 보니 지금까지가 되고 말았다.
‘동생, 캠핑 좋아하는 것으로 아는데 자연휴양림도 자주 다녀?’
‘그럼요. 한적한 곳을 찾아 노지캠핑을 주로 다니는 편이었는데, 데크를 사용해 보니까 깔끔한 캠핑이 충분히 가능하다 싶어져서 이젠 가능하면 데크가 있는 캠핑을 하고 싶어지다 보니 저절로 자연휴양림을 찾게 되더라구요. 데크 크기만 조금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 빼면 숲속 별장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태풍이 들이닥치면 얼른 관리사무실 쫓아가서 숲속의 집 하나 내달라고도 해 본걸요. 최고예요.’
‘맞아. 나도 딱 그렇게 생각해. 그럼 어디 휴양림이 가장 인상적이었어?’
‘인상에 가장 남았던 곳은 여름 통고산 자연휴양림이었어요. 숲도 계곡도 여름 휴가를 보내기에 최고였고, 불영계곡도 당시에는 부분 트래킹이 가능해서 환상적이었어요. 훗날 다시 겨울에 갔더니 온통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황홀했던 드라이브 코스가 사라졌고, 겨울이라고 이용해 본 숲속의 집 전기온돌이 고장이 나서 완전 냉장고라 자다 말고 방을 옮겼던 악몽과 같은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지요.’
‘통고산은 나도 가 보았는데 참 좋았어. 그럼 동생이 나한테 한 번 소개 해주고 싶은 휴양림이라면 어디가 있을까?’
‘남해 편백 자연휴양림을 추천해 드릴래요. 안 가보셨다면요. 야영장은 작아서 데크가 몇 개 안 되어요. 그것도 다른 계곡 쪽으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럼에도 편백나무 숲 특유의 향취가 가득해요. 다들 피톤치트 피톤치트 하는데 방송 광고 때문인지 정말로 이렇게 건강해지는 숲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리는 놓였지만 외딴섬에 너무 멀어서 그런지 항상 텅 비어있는 편이라 저는 더 좋았어요. 새벽에 어둠을 헤치고 가면 남해 보리암의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어요. 정말 정말 환상적이지요. 두 번 다녀왔는데 또 가고 싶은 곳이예요. 추천 드릴께요.’
‘언젠가 꼭 가봐야겠구만? 그럼 동생은 삼봉 휴양림은 다녀왔겠지?’
‘아뇨. 맨날 진고개 넘어서 주문진으로 빠지던가, 한계령 길로 다녔지 그 안쪽 골짜기는 이상하게 한 번도 가보지를 못했어요. 인제 쪽으로 아침가리 계곡까지는 가보았는데 그 안쪽은 아직 못 가보았어요.’
‘그렇다면 나는 동생에게 삼봉 자연휴양림을 추천해줄게. 한 번 꼭 가보시게.’
‘멀다고 하던데요. 평창IC에서도 아주 한참을 꼬불꼬불 완전 강원도 산골짜기 길을 잘 찾아가야 한다고 들었어요. 어상천 김삿갓 산골짝 보다 한참 더 한데가 삼봉약수라고 하더라구요.’
‘맞는 말이야. 멀고 찾아가기는 힘들지만 충분히 그 보상을 제대로 해주는 진짜 멋진 휴양림이라 할 수 있지. 그동안 내가 가장 많이 찾아갔고 또 앞으로도 찾아다닐 최고의 자연휴양림이 바로 그곳이라고 나는 생각해.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주 깊은 산속 숲에 들어왔다고 저절로 몸과 마음으로 가득 느껴지는 그런 아주 좋은 야영장이라고 생각해. 언제고 한 번 꼭 가봐. 내가 특별히 추천할께.’
그랬다.
그런 일이 있었고 여전히 기억에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2002년 늦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성수동 건대역 인근의 호프집에서 나사(nasa)형과 나 사이에 오고 갔던 이야기다. 장소와 함께 마신 생맥주의 양이나 그날의 안주까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냐하면, 형과의 이런 시간이 아주 많았으며 성수동에서의 만남만도 꽤나 여러 번이었기 때문이다.
피플 475(people 475) 라는 인테넷 모임을 통해서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중에서 몇몇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고, 그중에서도 나사(nasa)형과는 유독 코드가 잘 통했다.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서초동의 커다란 건물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던 나사형은 한마디로 ‘대쪽같은’ 사람이다. 적당한 타협이나 막후 협상 같은 것을 모르는 전형적인 공무원이다. 평생 내가 만나 본 사람중에서 ‘올곧은 사람’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올릴 사람이다. 주어진 상황에 가치관과 소신에 다른 판단이 서면 죽어도 직진하는 사람이다.
지방에서 쫄딱 망해서 어떻게든 재기를 한 번 해보겠다고 서울 올라와 왕십리에 체류하고 있던 나를 참 많이 걱정해주고 아껴주고 챙겨준 고마운 형이다.
직장은 서초동 큰건물이고 집은 의정부인 형이 동생을 위해 선택해 준 최적의 만남 장소가 건대역이었다. 형이 서초동에서 퇴근한다고 문자를 보내오면 나는 왕십리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건대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건대역 인근 호프집 순례를 시작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들 방식의 성스러운 순례 발걸음은 항상 의정부행 마지막 전철 시간까지 맞춰 진행되었다. 이 성수동 순례에 초대된 게스트들만 해도 제법 많았다.
그 형이 나에게 적극 추천해 주었던 캠핑이 바로 '삼봉 자연휴양림 야영장' 이다.
(곧, 피플 475에 대한 추억들을 소환하는 글도 한 번 써봐야 할 때가 되었지 싶다.)
아!!! 옛날이여! 그날이여!
산과 숲 그리고 계곡이 어우러진 국립삼봉자연휴양림(國立三峯自然休養林,Sambong Natural Recreation Forest)은 강원 특별자치도 홍천군 내면 삼봉휴양길 276 번지에 위치해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삼봉 자연휴양림은 1992년 산림청에서 2140만m2의 넓은 임야에 1일 최대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삼봉은 오대산 국립공원 북서쪽의 가칠봉(1240m), 응복산(1155m), 사삼봉(1107m) 이렇게 3개의 봉우리를 가리킨다. 천연림이며 전나무, 주목, 분비나무 등의 침엽수와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등 활엽수가 조화를 이루었다. 삼봉약수터는 철분함유량이 높은 약수가 나오며 오색약수터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모두 (삼봉약수)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 지역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자면 삼봉약수(三峯藥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권전(權專)으로 위장병과 신경통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어서, 이후로 인근의 지역 사람들의 질병 치료에 크게 공헌하였다는 이야기가 <권대감 설화)>로 전해진다. 고을 전역에 마을 신령으로 ‘권전대감’ 혹은 ‘권대감’을 모시는 사당도 여럿 있다.
어쨌거나 여기 이 삼봉약수가 발견되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나름의 민간요법으로 질병치료에 사용된 것이 대략 15세기 중엽부터였다는 이야기가 성립되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권대감’은 한민족 역사서에 조선시대 단종의 외조부로 기록된 권전(權專)이다. 안동 권씨 가문이 안동에 정착하는 초기 과정에서 지대하게 공헌한 인물로 추존을 받고있는 인물이다. 아들 권자신(權自愼)의 딸이 동궁전의 궁녀로 들어갔다가 그만 세자빈 자리가 비워지게 되자, 문종의 성은을 입어 단종을 낳게 되어 훗날 문종의 비인 현덕왕후가 된다. 그 덕분에 왕후의 할아버지인 권전은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에 봉해진다. 하지만,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는 과정에서 단 하루 만에 사망하였으며, 넉 달 뒤에 단종의 외할아버지 권전도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여기까지는 뭐 그저 그런, 특별할 것이 거의 없는 사람 사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였다. 그냥 삼봉약수 이야기만 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중간에 단종(端宗)이 끼게되면 이야기는 항상 180도 돌변하여 거친 비극으로 치닫게 되고 마는 것이다.
단종이 폐위되고 그것으로 모자라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끝내는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유교 중심의 사회였던 조선시대였는지라 사화가 뒤따랐고,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가장 먼저 외가쪽의 피해는 익히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었으리라.
가장 먼저 단종 복위음모 사건에 원하던 원치않던 연계되어 권전의 아들이자 단종의 장인인 권자신과 장모인 아지(阿只)부인이 참혹하게 주살을 당했다. 삭탈관직에 가산을 몰수당하고 서인(庶民)으로 내몰린 권전의 후손과 일가는 거듭되는 화가 종중에까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안동으로 낙향하지 못하고 강원도 깊은 산골짝으로 은둔했다.
바로 이 시기에 삼봉약수(三峯藥水)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삼봉약수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권전(權專) 이라고들 하는데, 부친인 권백종(權伯宗)에서 시작해 권전과 아들 권자신까지의 평생 행적을 아무리 살피고 뒤져 보아도 이분들이 강원도 홍천군 광원리 실론골을 다녀갔다는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삼봉약수가 발견되었다는 향토기록 이전에 이미 권전은 노환으로 별세하였고, 권자신은 사형당했으니 적어도 그분들은 아니었음이 분명함에도, 설화에는 ‘권대감이 발견하였고 그가 바로 권전이다’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것이다. 권전은 아예 강원도 영월과도 인연이 없었던 사람이다. 권자신은 의당 청렴포로 귀향 가 있는 단종을 열심히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이런 추론이 가능해 진다.
몰락한 권전의 후손과 일가들이 세조 일당의 탄압을 피해 강원도의 깊고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며 연명을 하였는데, 그들이 정착한 곳이 홍천군 내면 일대로 일가중 누군가가 광원리 실론골에 터를 잡고 살았다는 가정이 충분해진다. 우연히 날개가 부러진 학이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상처를 씻어내고 목을 축이더니 치유되어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곤 떠서 마셔보니 정말로 영험한 약수이더라. 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서 위장병과 신경통과 피부병 치료에 사용하면서 처음에는 실론약수(實論藥水)라고 불렀다.
점차 입소문을 타고 멀리까지 알려지면서 누가 그 약수를 처음 발견했는지가 거론되기 시작하자, 실론골의 미천한 화전민이라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뿌리가 그래도 멸문지화를 당해 숨어사는 처지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근본이 있는 명문가의 후손임을 내세우기 위하여 선대의 인물 중에서 고르다 보니, 민간에서 절대적 신앙의 숭배 대상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 단종의 외할아버지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專)이 처음 발견한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필자는 최종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계유정난의 참화가 영월에서 발생했으나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 산골짝 깊은 오지에 이르기까지 그 참상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효험이 가득한 약수가 발견되었으며, 그 효험의 깊은 속에 단종의 애환과 권전 일가의 충정이 담겼으니 어찌 고맙고 소중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이제 민초들에게 있어서 세조의 치세는 적어도 정통성을 결여한 패악이었으니, 권신의 후예들로서도 더이상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삼봉약수(三峯藥水)다.
삼봉약수의 삼봉은 이 골짜기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가칠봉과 응복산과 사삼봉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약수터 안에는 세 개의 각기 다른 구멍에서 세 가지 각기 다른 맛의 약수가 솟아 나온다. 참 신기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가칠봉에서 물줄기 하나를 끌어 내리고, 응복산과 사삼봉에도 저마다 하나씩 다른 배관설비를 해서 약수터의 한 지점에서 각자 다른 수도꼭지에서 전혀 다른 약수를 하나씩 뿜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자판기에 한 꼭지에서는 콜라가, 다른 꼭지에서는 사이다가, 또 다른 하나에서는 환타가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맛이 다 다르다. 물론 그 차이는 아마도 철분 함유의 농도가 다른 데서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왼쪽의 가장 순한 맛이 정말로 약수처럼 느껴졌다. 오른쪽의 약수는 혀에 대는 순간 벌써 ‘이건 오색약수 맛인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 언덕길을 되돌아 내려와 오늘의 목적지 제2양영장으로 향했다.
목조다리 건너로 내가 예약해 놓은 206번 데크 시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동고속도로 올라서서 얼마 달리지 않아 횡성구역에서 차가 정체가 아니라 완전히 멈춰 섰을 때부터 이미 내가 알아봤다.
‘참 이상하지? 왜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리지를 않는걸까?’
여름 휴가철이니, 여름 극성수기니 하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를 가리키는 것일까? 7월 11일이면 직장에서 끗발에서 밀리는 신입 에게나 해당하는 시간이고, 극성수기라고 하면 적어도 7월 마지막 주나 8월 첫 주에 해당하는 시간 아닌가? 내가 직장 생활을 했을 때, 내가 왕고참일 때는 분명 그랬는데........ 지금은 아닌가? 시도 때도 끗발도 없어?
벌써 고속도로가 막히면 어떻게 해? 오늘은 평일이잖아? 주말도 아니라고?
아니 다들 일 안하고 어딜 그렇게 열심히들 가는거야? 도대체 뭘해서 먹고 사는데?
고속도로는 죽어라 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데....... 평창 IC를 내려서니 막힘이 없이 뻥 뚫렸다. 길이 사뭇 좁고 꼬불꼬불하면 어때? 움직이기만 하면 맘이 편해지는 것을.
차라리 고속도로하고 지방도로하고 이름을 바꾸어야만 하는거 아냐?
헐!!!
멀다.
골이 끝없이 깊다.
강원도 꼴짜기라고 하더니 정말로 퍼펙트한 완전 상꼴촌이 아닌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그래도 주변 풍경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이래서 다들 강원도 강원도 하는구나. 어디서 이런 드라이브 코스를 찾을 수 있을까?
금강송이 쑥쑥 잘있는 숲이 정말로 황홀하다. 산자락 산등성이들이 저 멀리 골짜기 속으로 잔뜩 꼬인 실타래처럼 점점 꼬여만 간다. 고랭지 채소를 막 수확하고 난 어지럽힌 밭두렁이랑 아직 캐지 않은 너른 감자밭이 지천이다. 골을 타고 잘 가꾼 대파밭은 프로방스의 라벤더 농장처럼 멋들어지게 생겼다. 누가 저렇게 일사분란하게 풀 한 포기 없이 잘 가꾸어 놓으셨을까? 거기에 비하자면 봉평의 랜드마크인 메밀밭은 드문드문 보일 뿐인데 하나 같이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잡초밭처럼 보인다.
고속도로에선 에어컨을 켜고, 국도에서는 창문을 있는 대로 열고 달린다. 비록 스쳐 가는 바람에서 싱그러운 숲의 향기를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상상하기로 했다. 요즘 상상에서는 향기도 느껴진다. 언젠가 꿈을 칼라로 꾼다고 했다가 그건 꿈이 아니라고, 꿈은 흑백으로 꾸어진다는 어느 작자와 논쟁까지 벌인 적이 있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식의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닐까? 많은 경험을 충분히 했다면, 이젠 적어도 사상속에서도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가 헐!!!!!!! 세상에........ 이래도 되는 거야?
강원도 산골짝 지방도 옆으로 양수기를 이용해 봇도랑에서 물을 채소밭으로 퍼 올리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여기는 틀림없는 골이 아주 깊고 우거진 숲을 가지고 있는 강원도가 아닌가? 그리고 지금 시기는 장마철이란 말이다. ‘어쩌자고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법한 사태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지나온 너른 하천마다 물이 말라 작은 실개천이나 봇도랑으로 전락해 있었다. ‘대한민국이 심각한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을 절실하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경북 산간과 강원도 일부가 제한급수를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새삼 ‘난 고향 복 하나는 제대로 가지고 태어난 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뭄 없지, 태풍 없지, 지진 없지, 물난리도 없지, 대신 돈벼락 복이 적은 내 고향 충주에서 태어나 이제까지 잘 살아오고 있음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러 나온다.
어디 그뿐인줄 알아? 내가 차마 이야기 안하려고 꾹 참고 있었지만........
‘여기 자랑이 삼봉(삼봉 약수터) 이라고?’
‘그럼 단양의 도담 삼봉과 엇비슷하게 놀면 되겠다. 그치?’
‘그 정도로는 우리 고향 충주에는 한참 못 미치지. 우린 팔봉(수주팔봉)이 기본이여. 세 개 가지고 여덟 개한테 따지고 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암. 절대 아니고 말고.’
‘우리 충주사람들은 말야. 동서남북 어디로든 외지로 나가려 하면 반듯이 강을 건너야만 나갈 수 있어. 그야말로 완전한 호반의 도시라 할 수 있지. 그 강은 서울 사람들 홍수 난다고 장마 직전에 강제로 빼지 않으면 언제든 배를 띄울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지. 하지만 물에 갇혀 산다고는 안 해. 물과 자연과 더불어 산다고들 하지. 예향의 도시거든.’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다가 중간에 편의점에 들려서 점빵 아이스 커피까지 마시면서 모처럼의 호젓한 드라이브를 즐기다보니 삼봉 자연휴양림에 자연스레 당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덥다.
무지무지 덥다.
최신 블로그와 유튜브 영상을 검색해 보고 찾아온 길이 었는데, 봉평에 들어서면 벌써 도시와 기온차가 확실하게 나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흐리거나 물가에 내려가면 추워서 5분을 견디기 힘들다고 했는데........ 개뿔!!!!! 그제까지의 우리 작업현장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추워서 얼어 죽기는 무슨........... 한여름 뙤약볕 아래 양철지붕의 고양이 심정이다. 지금 당면한 현실이 말이다.
어쩐지 아침에 그렇게 망설여지더라니......... ‘슬픈 예감은 결코 배신한 적이 없다니까?’
할망구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지?
이번 여행을 어제 제대로 진행했더라면........ 어쩌면 난 벌써 맞아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삼봉 휴양림에 도착해서 체크 인하고 예약해둔 206번 싸이트 데크까지 무사히 오기는 왔는데......... 에고. 캠핑이고 뭐고 더워서 먼저 쓰러지겠다.
이건 캠핑이 아니야. 노역장에 강제로 끌려온 꼴이라고?
삼봉휴양림이 그렇게 조용하고 깨끗하고 숲이 우거지고 시원하고 한없이 좋다며?
나사(nasa)형. 이게 어떻게 된거예요?
‘가뭄에 찌들은 (국립 삼봉 자연휴양림 야영장)은 우리 고장 (월악산 국립공원 산하 5개의 야영장) 어디만도 못하다.’ 그곳들은 평소에 비해 수량은 비록 줄었지만, 여전히 헤엄을 치고 놀 수 있을 만큼 이날도 여전히 여름 휴양지의 기본 요건을 충족시켜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왜 (송계계곡) (억수계곡) (선암계곡) 하는지를 이곳에 와서 가뭄을 절실하게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 다음 캠핑은 송계계곡 (덕주 야영장)이다. 무조건 말이다.
어쨌거나 가볍게 드라이브 삼아 오긴 했지만, 일단 왔으니 데크에 텐트는 쳐봐야 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할망구 몰래 새로 구입한 텐트가 생겼으니 설치 연습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또 중고로 텐트 하나를 구입했다. 아직 약속대로 내다 팔지는 못했으면서 말이다. 두 개를 내다 팔고 하나를 사라고 했는데, 지금 하나도 내다 팔지는 못했으면서 하나는 구입을 마쳤고 또 하나를 흥정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 들통나면 곧바로 죽음인데........
텐트와 타프를 꺼내들고 다리를 건너 데크까지 갔는데....... 데크 모서리에 햇볕이 직접 내려 쬐고 있다. 짐을 내려놓고 일단 무조건 계곡으로 내려가 발을 물에 담가본다. 매우 시원하다. 하지만 등골까지 오싹할 정도의 차가움은 아니다. 계곡의 흘러내리는 수량이 지극히 미미하다 보니 수온도 평상시만큼 시원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흘러내리는 수량은 적고 그나마 어느정도 깊이가 있어보이는 웅덩이에는 지난해 떨어져 가라앉은 낙엽이 잔득 가라앉아 있다. 금년 들어 아직 큰 비가 내리지 않았었나 보다. 극성수기 휴가 시즌 전에는 적어도 큰 비가 한두 번은 내려서 계곡 청소도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흐르는 물에 세수를 하고 다시 올라와 타프 먼저 설치해 본다.
언제나처럼 할망구의 심뽀를 고대로 닮은 네이처 하이크 티케 타프를 말이다. 함께 오기를 그렇게 바랬는데......... 어쩌면 차라리 함께 오지 못한 것을 참으로 다행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이건 내가, 그리고 아내가, 우리가 바라는 그런 최소한의 소박한 여행에도 들지 못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리라.
‘다음에 계곡물이 넘쳐나는 늦가을 쯤에 다시 한번 같이 오면 그때는 좋으려나?’
‘오늘은 나 혼자 잠시만 머물다 돌아갈게. 드라이브 삼아 잠시 둘러보려고 온거라니까?’
티케 타프를 설치하고 나서 마침내 새로운 녀석을 맞이해 본다.
새로운 이 녀석의 이름은 <노르디스크 이든 5.5>다.
직전의 소선암 오토캠핑장 새벽 산책에서 챠밍여사 눈에 딱 띈 예쁜 텐트가 있었다. 좀체 보기 드문 상황이었는지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남아있다.
그 예쁜 텐트는 바로 <코오롱 오두막 5.5 텐트>였다. 일전에 그 텐트를 이미 본 기억이 있었고, 나 역시도 강한 인상을 받았기에 그 텐트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알아본 적이 있었다. 참 예쁘고 자주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하나쯤 저런 텐트를 가지고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수해야 하는 단점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우선 크기가 좀 작았다. 여름이나 초가을까지 타프를 설치해 외부에서 주로 캠핑 생활을 하고 잠만 텐트에서 잔다면 별 무리가 없겠지만, 타프 설치가 없다거나 비나 눈이 오거나 해서 어느 정도의 생활을 텐트 안에서 해야만 한다면 절대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강하게 다가오는 텐트이다. 물론 혼자 하는 캠핑이라면 또 어느 정도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텐트의 규격이 250 X 220 X 170 의 사이즈에 14kg 임에도 5인용 텐트라고 처음 광고를 했었다. 아마 생각하기로 성인 2명의 잠자는 목적으로나, 성인 1명에 어린이 2명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기다가 면텐트 라고는 하지만 초기 출시 가격이 1백만 원이 넘는 가격대였다. 잠시 지나 판매가 저조해지자 75%의 세일을 감행했지만 말이다.
나는 이 가성비 때문에 포기를 했다. 예쁜 것은 사실이지만 실용성을 따져보고 가격을 염두에 두었을 때, 결론은 ‘그건 아니지’라는 생각에 단념하고 말았다. 만약 첫 출시 가격이 현재의 75% 할인된 가격대였다면, 어쩌면 그때 구입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2020년에 처음 출시되었을 때 말이다.
까맣게 잊고 지내왔는데........ 이번 챠밍여사의 호감에 결국엔........ 결국엔 소선암 캠핑 이후로 계속 머릿속에 맴돌다가 결국, 인터넷에 써칭(searching)을 하게 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국내외의 다양한 새로운 텐트들에 대해서 공부하는 계기도 되었고, 좀 더 심도 있는 그동안 가졌던 의문이 해소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캠핑 지옥에 빠지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남들 캠핑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 될수록 나도 모르게 저절로 새로 나온 고가의 장비 구매욕에 사로잡히게 된다. 국내 해외를 막론하고 수많은 아웃도어용품 회사들이 수많은 연구를 거치고 거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연일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결과는 제품의 고급화 내지는 상상초월의 제품들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어느 날인가부터 캠핑은 그저 우리가 익히 알고 즐기는 정도를 넘어, 그야말로 빌라나 아파트 한 채가 바퀴를 달고 움직이는......... 그 정도의 돈을 들여서 왜 이렇게 보여주기식의 생고생을 하는 것은 왜 일까 궁금해지는 게 솔직한 지금의 심정이다.
거기다가 모든 장비들은 왜 하나같이 비슷하거나 똑 같은 것일까?
아웃도어용품 시장에서는 상표권은 있지만, 특허나 사용승인권이나 저작권에 대한 꼼꼼한 규정은 아예 없는 것일까?
A 회사에서 신형 텐트라고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은근슬쩍 시장의 반응을 살피다가, 평가가 좋다고 판단되면 즉시 비슷하다 못해 아예 빼다박은 듯 똑같은 제품을 즉시 시장에 신제품이라 내놓는다. 사각형 쪽창을 반달형이나 타원형으로 만들어 달았거나, 일체형 바닦을 탈부착으로 만들었거나, 위아래로 여는 출입문을 옆으로 열게 만들었거나, 크기가 20cm 차이가 난다거나 등등, 별반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중요성이라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정도만 겨우 다르게 만든, 디자인. 크기. 재질까지 아주 똑같은 텐트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색깔 좀 다르게 만들고, 저마다의 생산 회사가 가지고 있는 지명도에 따라 가격대가 천차만별로 시중에 나오게 된다.
혹자들은 말한다.
‘이건 여가선용 캠핑 문화가 아니다. 돈 지랄에 발광하는 것이지.’
‘캠핑문화는 변질되었고, 이제 도를 넘어섰다. 엄청난 폭망이 벌어질 것이다.’
‘고품격의 허세 캠핑 문화가 왕창 망해야 한동안 공백기를 거쳐 다시 본래의 캠핑이 되돌아온다. 다시 일어서려면 망할 때 제대로 폭망해야 한다.’
해서 다시 <오두막 5.5 텐트> 중고 거래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 이 텐트에는 내가 많이 꺼리는 구조적 맹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번 글에서 등장하는 모든 제품에 대한 평가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내 스스로의 생각과 판에 따른 설명과 표현일 뿐이지, 달리 사사로운 편견이나 누군가의 부탁에 의한 것이나 어떤 목적을 두고 하는 표현이 절대 아님을 분명하게 밝혀두고자 한다. 내 개인의 사사로운 소견의 표현일 뿐이다.)
평소 건축분야에서 먹고사는 처지로, <오두막 5.5>처럼 골조(골격)이 외부로 그대로 드러나는 구조물은 어딘가 미완성의 느낌이 들고, 폴대의 이미지가 강할수록 작고 약해 보이는 느낌을 나는 가졌다. 내가 만들어 가는 건물의 외부 마감이 더없이 중요하듯이, 오두막의 경우는 탈부착 플라이라도 있어서 적어도 골격이 어느 정도 은근한 정도만큼이라도 감추어 질 수 있다면 더 예뻤을 것 같다. 면텐트의 최고 약점은 무게다. 그 무게에 비라도 내리면 차라리 수직의 기둥은 버티겠지만, 비스듬히 서 있는 A 형태의 폴대는 수직보다는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경험담 중에서 우증 캠핑시 폴대의 휨을 불편사항으로 올린 글들을 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떠올린 것이 바로 <노르디스크 이든 5.5 텐트> 였다.
사실 이 텐트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나르시스 돔 ex+>를 구입할 때. 이 둘을 놓고 잠시 심각하게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던 바로 그 텐트다. 결국 나르시스 돔을 구입하고 말았는데, 지금 <오두막 5.5 텐트>를 알아보다 보니까 우연히 다시금 <이든 5.5>가 등장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또한 내 생각과 판단에 근거하는 것이지만......... <코오롱 오두막 5.5>가 등장하게된 이유이자 롤 모델은 바로 <노르디스크 이든 5.5>라는 나는 생각한다.
일단 두 텐트에 따라붙는 숫자 ‘5.5’가 그냥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텐트의 바닥 면적이 대략 (5.5 제곱미터)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을....... 짧게 <오두막 5.5>와 <이든 5.5>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세계적으로 널리 명성을 얻고 있는 아웃도어 회사 노르디스크(Nordisk)는 1901년 덴마크에서 설립된 덕다운 자켓 사업으로 시작된 기업이다. 시대가 변하여 레저산업이 붐을 일으키자 1991년부터 지금의 브랜드인 노르디스크(Nordisk)로 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분야를 개척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웃도어 시장에 진출하여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노르디스크라는 이름에서 노르웨이를 먼저 떠올리지만, 분명 덴마크 기업이 맞다. 그 이유로는 이 회사가 그들의 조상인 바이킹의 풍습과 생활문화 유산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데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르디스크가 내놓은 많은 제품의 내면에 바이킹 전사의 유산이 반영되고 스며들어 있다. 아이슬랜드에서 바다를 건너온 바이킹이 스칸나비아 반도의 노르웨이 핀란드에 주로 정착했으나, 일부가 대서양을 건너 덴마크 일대에 정착했고, 이 덴마크에 정착한 바이킹을 통해 노르웨이와 핀란드에 정착한 바이킹들과 유럽인들 사이에 물물교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털옷과 카약과 스키와 텐트와 화덕 칼이나 도끼 등의 노르디스크 제품 품질이 뛰어남은 그들의 선조인 바이킹의 경험에서부터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리라.
이 회사가 작정하고 만들어 내놓은 신제품 텐트가 바로 ‘노르디스크 이든 5.5(Nordisk Ydun 5.5)’으로, 2018년에 야심 차게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한동안 우리나라 캠퍼들을 목마르게 만들었던 ‘소이 밀크 색상의 면 텐트’가 마침내 등장을 한 것이다.
‘이든(Ydun)’은 북유럽 바이킹 신화에 등장하는 매우 아름다운 영원한 청춘의 여신 이던(idun)에서 따온 서구식 표현이다. 이 여신은 항상 먹으면 젊어지는 사과를 가지고 다닌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사과를 먹지 않아도 늘 젊은 청춘을 유지하는 청춘의 여신이다.
느르디스크는 그 아름다운 영원한 젊음의 여신 이미지를 텐트에 투영해 ‘이든 5.5’를 만들었다.
이든(Ydun 5.5) 텐트는 사각 능선 기둥 구조와 4명이 잘 수 있는 결코 좁지 않은 공간을 갖춘 고전적인 스카우트 텐트다. 설치가 매우 쉽고 통기성이 좋은 면 소재는 훌륭한 잠자리 환경을 보장해 준다. 양쪽에 이중 출입구가 있어 편하게 드나들 수 있으며, 동시에 환기가 잘되고 야외의 탁 트인 전망을 아주 훌륭하게 제공한다. 더하여 양쪽에 모기장과 커튼이 있는 조절 가능한 창문 2개와 양쪽 문에 모기장이 있어 환기가 쉽고 효과적이다. 이든(Ydun)의 초기 모델은 바닥을 탈부착해야 했지만 차기 버전에서는 일체형으로 만들어 실용성을 훨씬 높였다. 물론 이 텐트의 최고 장점은 예쁜 자태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선을 잘 살리기 위해 여러 개의 팩을 열심히 박아 줄의 팽팽함을 잘 조절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든(Ydun 5.5)는 13kg 무게의 4인용 텐트를 표방하는데, 260 x 210 x 150의 크기로 <오두막 5.5>에 비하여 10cm 정도씩 크지만, 높이에서는 20cm 정도 낮다. 서서 하는 실내활동을 추구하는 돔이나 쉘터 형태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실내활동 대신 잠자는 용도로서의 크기로는 오히려 아늑하고 편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소이밀크 색상의 면 텐트 이든(Ydun 5.5)의 열풍이 대단했다. 특히 일본과 유럽에서의 선풍은 실로 대단했다. 한국 여행자들이 유럽 렌터카 여행을 하면서 캠핑시에 필수 요건으로 이든 5.5 대여를 꼭 목록에 적어 넣었을 정도였다. 예쁜 유럽의 명소에서 예쁜 아이보리 텐트에서 찍는 사진은 하나같이 모두가 작품이었을 테니 말이다. 2018년 등장과 함께 이든 5.5 열풍이 세계적으로 거세게 불었다.
이를 지켜 본 대한민국 최고의 아웃도어 기업 코오롱이 <이든 5.5>를 능가할 자신감으로 야심 차게 신제품을 내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오두막 5.5>였다. 2020년에 첫 발매된 <오두막 5.5> 선풍을 일으키는 듯했으나, 그것은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대한민국에 캠핑 열기가 광풍처럼 불기는 했으나, 당시의 추세는 돔이나 쉘터 형태의 대형텐트를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가족캠핑의 시기였던 것이다. 높이가 180에서 이제는 200을 넘어야 했고, 길이도 6m를 넘어서 7m도 넘어서 또 하나의 텐트를 이어 붙이거나 결합하는 것을 추구하고 자랑하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 시대에 단 두 명이 잠만 잘 수 있는 면 텐트가 백만 원을 넘어섰으니 캠퍼들의 반응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위에 게재한 사진에서 충분하게 엿보인다.
비슷한 크기와 형태를 가진 두 개의 텐트 중에서, 하나는 A형 폴대를 외부로 그대로 돌출 시켰고, 하나는 속으로 은근하게 감추었다.
과연 어느 것이 더 예뻤을까? 그것은 당시 한국 캠퍼들의 취향이나 시대 흐름 영향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내 생각과 비슷한 디자인에서 오는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왜냐?
<오두막 5.5>를 만든 코오롱의 기술 개발진이 더 이상 폴대를 외부로 내보이는 디자인을 접고, <이든 5.5>를 따라잡으려는 시도를 하다못해 아주 그대로 베낀듯한 거의 똑같은 제품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이듬해에 코오롱 기업은 <오두막 5.5>를 만회할 야심작을 새로 내놓았는데 바로 <오두막 7.8>의 등장이다. 실내 면적을 ‘2.3 제곱미터’ 키웠다는 뜻이다. <오두막 7.8>은 300 x 260 x 196cm 로 나름은 5인용을 주장하겠지만 실제 사용자들은 그러기에는 여전히 협소함을 호소했다. 그나마 야심 차게 높이만은 그런대로 합격점이었지만, 대신 16kg이라는 무게의 증가는 여성 캠퍼들에겐 치명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 <오두막 7.8>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자?
굳이 찾아 볼 이유가 없다.
<오두막 7.8>은 <오두막 5.5>와 색깔을 빼면 거의 닮은 것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충분히 제대로 설치된 완성형 <오두막 7.8>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오두막 7.8>은 노르디스크가 만든 <이든 5.5>와 같은 틀에서 찍어낸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겼다. 닮았다가 아니라 그냥 빼다 박았다. 크기만 ‘2.3 제곱미터’ 키워 놓은 <이든 5.5>가 바로 <오두막 7.8>이다. 이는 결국 ‘5.5’의 디자인 구상 실수를 스스로 자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렇게 본다. 이든 텐트를 좀 가까이서 크게 보면 오두막 새로운 버전이다.
그랬음에도 판매 부진에다 역시나 75% 파격 할인을 단행하고 있다.
오두막 보다는 이든이 예쁜데........ 크기를 팍 키운 오두막 새 버전보다는........ 차라리 작은게 더 앙증맞게 이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결국 나는 <이든 5.5>를 판매자의 배려로 저렴하게 새로 구입을 하고 말았다.
챠밍여사는 아직 모른다. 이런 사실을.......
그래서 이 번 (삼봉 자연휴양림 캠핑)에서 <이든 5.5>가 얼마나 예쁜지를 보여주려고 했었는데........ 결국엔 나 혼자 설치하는 연습만 하고 말았다.
요 텐트는 아무래도 우리 작은 요정 세리에게 잘 어울리겠다. 해서 앞으로는 ‘세리요정 텐트’라고 불러야겠다. ‘잠들면 천사’인 세리가 제발 편하게 그리고 예쁘게 잠들기를 기원해 보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언제 세리를 이 텐트에서 재우지?
이든 5.5 텐트와 티케 타프 피칭을 끝내놓고 가만히 살펴보고 있노라니 기대했던 이상으로 나름 만족스럽다. 일단 무조건 우리 병아리들이 썩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고사리손들의 힘을 빌려서 함께 설치를 해 보아야 하겠다.
그러고 보니 애초의 계획대로였다면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 첫 이든 텐트 피칭을 같이 했어야만 하고, 이쯤에서 함께 계곡물에 풍덩 하고 뛰어들었을 시간이다.
지금 삼봉 자연휴양림 야영장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달랑 나 혼자다. 우리 요정 둘도 오지 못했고, 세리 할망구도 사정이 있어서 함께 오지 못했다. 그리고 추첨제에 응모하여 당첨 배정을 받아 예약한 첫날은 바로 어제였다. 그런데 정작 어제는 캠핑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오늘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그냥 처음인 장소라 드라이브 삼아 다녀온다는 기분으로 와서 겨우 기본 사이트만 구축해 본 것이다. 캠핑 장비에 대해서도 시험 삼아 설치를 해 볼 요량으로 텐트와 타프만을 가지고 온 상태이다.
삼봉 자연휴양림 추첨제 응모해서 배정을 받아놓고는 이번 캠핑에 대한 기대가 자못 컸었다. 소선암 캠핑에는 물이 차다는 이유로 물놀이를 할 수 없어서 병아리들을 데리고 가지 못했는데, 날씨가 갑자기 너무 더워진 이번 캠핑은 무조건 병아리들과 물놀이 한판이 될 것이라고 기대가 자못 컸다.
그런데 이번에도 코앞에 닥쳐 왔음에도 정작 할망구 입에서 병아리 동원에 대한 언질이 일절 없다. 이론? 아직도 물이 너무 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고......... 뭐지?
저녁에 한잔하면서 물어보려 했더니 촉이 9단인 할망구가 먼저 눈치를 채고 입을 연다.
‘이래저래 많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도 가야 한다면 우리끼리 가야할 까봐. 예정된 캠핑 다음 주에 교회 어린이 여름성경학교가 있고, 우리 병아리들이 참석할 것이거든. 우리 병아리들 데려와서 일주일 정도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그때도 여름성경학교 외에는 주로 물놀이를 할 예정인데, 이번 캠핑에 데리고 갔다가 여름성경학교 겸 몇 번의 물놀이를 또 하자면, 너무 자주 하는 것이 되고 왔다 갔다 하는 병아리들도 피곤할 것 같아. 방학이 길으니까 개학 전에 한 번쯤 또 캠핑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해서 이번 캠핑까지는 병아리들을 빼놓고 계획하는 것이 좋을것 같아. 다음주면 금방 올테니까 보고 싶어도 조금만 더 참아야지. 안 그래?’
칫!!!! 할머니가 그렇게 결정했으면 그만이지 묻기는 왜 물어봐? 할아버지 곤란하게?
그랬으면 의도하지 않았던 우리 둘만의 오붓한(?) 캠핑이 자연스레 시작되었어야 만 하겠는데............ 얼씨구?
예정된 삼봉 휴양림 캠핑을 며칠 앞두고 할망구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일전에 다쳤던 허리를 또 삐끗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름 잔뜩 신경을 쓰며 치료에 전념하였으나 상태가 그리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당일까지 어느정도 호전되지 않는다면 이번 캠핑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하고 말았다. 하지만 혹시나 몰라서 취소하지는 않고 내버려 두었다. 당일이 되었음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서 결국 깨끗이 포기하고 그냥 함께 집에서 쉬었다. 2박 3일 중에 하루가 날아갔고(?), 둘째 날 아침에 현장에 확인할 것이 있어서 외출했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과 내일까지도 그냥 집에서 가만히 쉬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추첨제 예약을 어렵게 딴 것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기대를 했던 삼봉 휴양림 야영장에 대한 궁금증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할망구에게 전화해서 슬쩍 운을 떼보니, 드라이브 삼아서 가보고 부담 갖지 말고 하루쯤 잘 보내고 오라고 한다.
잠시 망설여지기는 했으나 할망구가 기꺼이 허락도 했겠다....... ‘드라이브 삼아 삼봉에 가서 이든 텐트 첫 피칭이나 해보고 오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이어질 다음 전개가 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진 제법 분량이 되는 캠핑 장비는 평소 두 곳으로 나누어 보관되고 있다.
취침도구. 조명기구. 주방살림. 깔판인 러그 등은 대부분 아파트 다용도실에 보관되어 있고, 텐트. 타프. 의자. 난로 등의 부피가 있는 장비는 사무실 별도의 공간에 나뉘어 보관되고 있다. 모두 합치면 동시에 동계 캠핑을 예로 세 팀을 동시에 꾸려나갈 정도의 물품 정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지금처럼 갑자기 드라이브 삼아 캠핑장에 가서 상황에 따라 하루쯤 머물다 오려면 베스트 꾸밈은 아닐지라도 어쨌거나 대충이라고 못 꾸릴 캠핑 살림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사무실 창고에서 일단 이든 텐트와 티케 타프를 꺼내고, 작은 테이블에 의자 두 개만 꺼내 싣는다. 가스 버너도 있고 챙겨서 집에 가지고 가지 못한 조명기구도 있다. 방치해 두다시피한 코펠도 있고 침낭도 있고...... 얼추 필요한 것은 대충 챙길 수 있었다. 가다가 아무데고 하나로 마트만 들려서 간단하나마 술과 안주와 생수와 먹거리만 준비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가볍게 드라이브 삼아서 길을 찾아나선 삼봉 자연휴양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타프와 텐트 설치를 하고 나니....... 이제 뭘하지?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
날씨는 무덥지, 가뭄으로 계곡은 거의 말라 있지, 해거름에 집을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하루 자고 아침에 돌아가나? 이거 맥주나 막걸리를 마셔야 하나? 참아야 하나?
뭔가 왜 이래 찜찜하지?
애물단지 왕짜증이라도 할망구가 없으니 재미가 없다. 그냥 지금 당장 집에 갈까?
아무리 그렇기로 모처럼 허락받고 나왔는데........ 가볍게 한 잔하고 낮잡 한 번 자다가 해지고 밤길을 달려 천천히 집에 돌아가는 게 최고일 것 같은 데???????
어??????
느닷없이 허기가 몰려온다.
아!!!! 갈증에 술이 고프다. 우선 목을 축이고 보자.
시방 내가 가진 건? 언제나처럼 시간과 배짱뿐!
‘누가 말했나?’
삼봉휴양림 계곡에 일단 발을 들이게 되면 다른 지역과의 기온차가 4도에서 5도는 난다고들 했는데, 적어도 오늘은 밖에도 폭염이요 안에서도 폭염뿐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채 5분을 견디기 힘들 정도라고 했는데, 일단 풍덩 담글만한 수량이 절대 부족할뿐더러 실제로 담그고 보니 그저 살 만큼은 시원하다고 할 정도일 뿐이다. 숲이 주는 청량감과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계곡의 조금은 습한 기운이 뿜어내는 서늘함이 가뭄이 둥지를 틀고 있는지라 적어도 오늘 이 계곡에는 없다. 도시보다는 조금 덜하게 느껴질 뿐, 역시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갈증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고난의 정도 차이만 약간 있을 뿐이다.
땀에 흠뻑 젖었음에도 계속 또 흘러내린다. 206번 데크 위로 나무 그늘이 내려앉아 있음에도 대기의 열기가 온몸으로 그냥 느껴진다. 야속하게도 바람이 없다.
계곡에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쪼그라들고 골짜기로 불어 내려와야 하는 바람조차 없다면........ 계곡 캠핑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 결여되었다는 뜻이 된다.
‘혼자 드라이브 삼아 오길 잘했지, 마님 모시고 왔다면 어쨌을까? 혹시나 하고 부연동까지 자리를 옮겨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까짓, 더위는 더위고...... 짐 옮기랴 피칭하랴 나댔으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일단은 갈증을 해소하려고 캔 맥주를 하나 따니 절로 술술 넘어가 감쪽같이 없어진다. 하나를 더 따고는 가스버너에 미니 솥을 얹는다. 내가 좋아하는 비상식량인 소시지를 풍덩 넣고는 살짝 데친다. 마눌님을 떼어놓고 주방 살림이 전혀 없이 떠나온 길이라 케챱도 없고 마요네즈도 없고 소금도 없는 처리자 그냥 꺼내서 대충 잘라서 비상 새참이자 끝내주는 안주 삼아 캔맥주를 계속 따댄다.
심심하다. 마눌님이라도 옆에 있어서 잔소리를 해야 뭐가되었든 계속 꼼지락 거릴텐데....... 이거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닌가?
노트북을 꺼내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켜 놓고, 또 습관처럼 책을 꺼내 든다. 요즘 들어 다시금 가장 많이 펼쳐보는 책들로 로버트 w. 메리의 <모래의 제국>과 타밈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라는 책이다. 봄부터 다시 꺼내 보게 된 책으로 큰 감명을 받았었는데 중동 사태가 예측 불가로 번져가면서 다시 꺼내 보게 되었다. 굳이 새삼스러울 이유도 없겠지만......... 어차피 <미국여행>과 <이스라엘 성지순례>는 내 인생에서는 포기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이야기 못 할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뭐라드라? 비자 신청하려면 관련된 SNS 주소를 밝히라고? 적어도 트럼프라는 미국 원주민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에 올라 오리지널 미국을 부르짖는 지랄(?) 동안에는 미국 근처에 가기도 힘들겠구나! 솔직한 속마음으로는........ 쓰으버얼. 저도 원주민 인디언의 후손이 아닌 처지에 저는 합리적이고 남들은 불법이라고? 트럼프의 안간성 자체가 불법이라는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당장의 미국 근처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다. 혹 다음에 인간성이 좀 회복된 통치자가 등장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그리스 철학 인문학>이야 기독교 종교학보다도 더 심오한 진리가 아니겠는가?
감히 나는 이렇게 누구에게나 이야기 해 주고 싶다.
인간으로 한 평생을 사는 동안에 <성경>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사람 보다, <그리스 신화>를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기독교인을 폄하하고자 하는 말이 결코 아니라 적어도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이다. 기독교인으로 <성경>을 가슴에 새기고 살면서도 <그리스 신화>를 가까이하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헤브라이즘이 헬레니즘을 죽였다’는 말처럼 한쪽으로만 극에 치우친 (우상이니) (오로지 유일신이니) 하는 과도한 종교 성향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드리는 말씀일 뿐이다. 나는 우리 소중한 병아리들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한 권의 책을 골라 선물해야 한다면 언제나 <그리스 신화>를 선물하고 싶다. 어려서는 <어린이 그리스 신화>겠지만, 성인판 오리지널 <그리스 신화>를 꼭 읽어보면서 가슴에 담고 살았으면 하고 늘 바라고 있다. 그러면 삶이 보다 풍성해 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게 보내면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다시 냄비에 하나로마트에서 사온 밀키트 선지해장국에다가 라면을 함께 넣어서 끓인다. 그리고 여기 봉평의 시그니처 민속주인 (봉평 메밀 막걸리)를 더해 점심을 해결하는데........ 끝내준다. 그리고 곧 취기가...... 알딸딸 해진다.
취기도 극복해 낼겸해서 야영장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지금의 삼봉자연휴양림 야영장은 아주 단출하다고 하겠다. 제1 야영장과 제2 야영장으로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그냥 조금 떨어져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또한, 본래 전체 야영장 모두가 3.6m x 3.6m 크기의 데크로 만들어졌었는데 야영장 대형화의 추세에 따라 3.6m x 7.2m의 대형 테크로 개설하였다. 방법으로는 하나의 데크를 뜯어서 옆의 데크에 이어붙이는 방법을 택하다 보니, 전체 데크의 숫자가 딱 절반으로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어쨌거나 캠퍼 입장에서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갈채를 보내겠지만, 줄어든 데크 숫자만큼 사용자의 숫자도 줄어들어야 한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어쨌거나 과거에 비해본다면 더욱 호젓하고 넉넉해진 한층 좋아진 캠핑장이 되었다.
가뭄만 아니었다면 정말 좋은 캠핑을 즐길 수 있었을텐데 무척 아쉽다.
그런 때문인지 삼봉 야영장은 정말로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가칠봉 등산객 숫자가 훨씬 더 많아 보일 정도였다. 주말 예약이 꽉 찬 상태였음에도 상황이 변했음인지 캠퍼가 찾아오지 않은 빈 데크가 군데군데 보였다. 성수기 주말에 적어도 삼봉 휴양림이라면 좀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 틀림없어 보인다.
야영을 즐기면서 술을 한잔씩 하는 사람들이나, 무더위를 피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나 썩 그리 행복한 표정의 캠퍼들은 아닌것으로 보였다. 극심한 가뭄이 이 깊은 계곡까지 엄습한 때문이리라.
솔직히 지금의 풍경대로라면......... 월악산이나 소백산 인근의 계곡 수량이 풍부한 장소를 찾는 캠핑이 훨씬 탁월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여름에 계곡 캠핑을 선택하는 이유는 시원한 숲속 그늘과 차갑게 흘러내리는 풍부한 계곡물일 터인데....... 지금 계곡엔 물이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산책을 해 보았다. 이게 계곡 캠핑이라고?
제1 야영장이 어떻고 제2 야영장은 명당이 어디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화장실이 어떠니 샤워실 온수가 나오니 안 나오니 지금은 아무런 상관이 없게 생각된다. 과연 이런 자연환경 속에서 지금 캠핑을 해야만 하는지 아닌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시기일 뿐이다.
계곡에 다시 발을 담구어봐도 밍숭밍숭 재미도 없고 더위도 가시지 않는다.
샤워실에서 찬물에 샤워를 하고 텐트로 돌아와 책을 포개서 베고 좀체로 하지 않는 낮잠을 청해 본다. 평소 낮잠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봉평 메밀 막걸리 탓일까?
깜빡 잠이들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깜깜한 밤중이다.
헐!!!!!
부랴부랴 철수를 준비한다.
텐트와 타프를 걷고 다리를 건너 차에 싣는다. 그러고보니 낮술에 의한 취기도 말끔하다.
다시 샤워장에서 찬물을 뒤집어 쓰고 양치질을 하고 나서철수 준비를 끝낸 후에 집에 전화를 건다.
‘왜? 모처럼 혼자 여행인데 편하게 실컷 즐기다 와. 선녀 내려 오라고 해서 같이 한 잔하셔.’
‘아녀. 집 내버려 두고 마누라도 없이 어떻게 밖에서 외박을 하니? 지금 출발할겨.’
‘야간운전이잖아? 편히 자고 아침에 천천히 와.’
‘집에 간다니까? 집에가서 마누라랑 한 잔하고 싶어서 가야겠어. 안주 사갈까?’
‘정말 사람 귀찮게 하네? 그냥 와. 조심하고.’
그래서 한산해진 밤길을 달리고 달려서 집으로 간다.
훈제오리 무침에다가 오이 냉국이랑 옥수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개뿔!!!! 내 팔자에 가출은 무슨 가출을 해보겠다고.......
--- 오늘 여름방학 시작했다고 우리 병아리들이 와요. 그래서 이쯤에서 서둘러 마쳐야 겠네요. 곧 다시 만나요? 피안재.(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