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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죽기,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본문: 로마서 6:1-14
어린이 말씀
여러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잘 모르는 사람이 와서 “얘, 차 타고 나랑 같이 가자! 맛있는 것 사 줄게!”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싫다고 하지요? 그런데도 자꾸 와서 팔을 잡아 끌면서 데리고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 그렇게 외치지요? 모르는 사람은 절대 따라가면 안 돼요.
여러분은 아빠 엄마의 아들 딸이에요. 아빠 엄마의 아들 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여러 방식들이 있는데요. 그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아빠 엄마의 말씀을 듣는다는 거에요. 이현이가 저의 딸이니까 교회에서 놀고 있다가도 아빠가 “이현아, 이제 그만 집에 가자!” 하면 네 하면서 따라오는 거에요. 그런데 만약에 하은이가 막 신나게 놀고 있는데 제가 하은이한테 “하은아, 이제 그만 집에 가야지!” 하면 하은이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싫은데요? 우리 아빠가 나중에 데리러 오기로 했어요. 계속 놀래요!” 하고 막 놀 거에요. 나는 하은이의 아빠가 아니니까 하은이는 제 말을 반드시 들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잖아요. 그 중요한 증거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라, 원수를 사랑해라” 말씀하시니까 우리도 그렇게 순종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참된 하나님의 아들딸이에요.
그런데 사탄이 몰래 와서 우리를 유혹해요. “예수님 없는 것 같지 않아? 하나님 믿는 것보다 너 마음대로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지 않아? 교회 가지 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 많이 벌어서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그 말씀 거짓말이죠? 근데 너무 달콤해요. 듣고싶고 따라가고 싶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이에요. 그럼 사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뭐죠? 사탄의 자식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 하나님 나라에서 살고 있어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에요. 죄와 싸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돼요. 사탄이 따라오라고 해도 그 말을 들으면 안 돼요. 그럼 사탄의 나라로 납치되어 가는 거에요. 근데 그게 쉽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와 싸워서 이기도록 도와주시려고 세 가지 선물을 주셨어요. 세례와 말씀과 기도에요. 세례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과 연결이 되고, 예수님처럼 살 수 있게 도와주시거든요. 좀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부모님한테 설명해 달라고 물어 보세요.
우리 어린이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만 듣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머리말. 어떻게 하면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모든 신자들은 죄의 문제로 인해 씨름하며 살아갑니다.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 과연 신자라고 할 수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도 변화가 별로 없고 제자리 걸음만 하는 것 같아서 자괴감이 느껴집니다. 또 다른 성도들의 훌륭한 모습을 보면 부끄러움이 느껴집니다. 나는 우리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내 모든 말과 행동이 가식적인 것 같아 보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하고 자신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을수록 이런 감정이 강하게 듭니다.
우리 모두는 잘못인 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범하는 죄의 습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에게 쉽게 화내거나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쇼츠나 각종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헛되이 쓸 때가 많습니다. 또 불필요하게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다니면서 물질에 대한 욕구를 키워가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반복적으로 음란물을 시청합니다.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신 것들에 감사하기보다는 남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교회를 섬기는 데는 소극적이지만 개인적인 여가를 즐길 때는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평소에 말씀과 기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자주 건너 뛰기도 합니다. 더욱 비참한 것은, 이런 죄악들이 삶 가운데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죄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점점 약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신자들의 죄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이 제시됩니다. 바로 세례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임하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이기시고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죄에서 자유케 되어 승리합니다. 오늘 이 시간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의를 행하기로 결심하는 복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습니다 (3-5절)
먼저 하나님께서 죄와 싸워 이기도록 우리에게 주신 첫 번째 선물은 바로 세례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습니다.
아마 여기 계신 성도님들 대부분은 유아세례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또 성인세례를 받으신 분도 계십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은 사건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다 알고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에는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이 함께 합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다 알 수 없는 신비가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세례에 대해 배워가야 합니다.
성경에는 세례의 의미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물로 씻어서 정결하게 된다는 의미도 있고,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특히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점이 아주 강조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머리에 물을 뿌리는 방식으로 세례를 행하지만, 초대 교회에서는 주로 침례를 자주 행하였습니다. 온 몸이 물에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것입니다. 물에 잠기는 것이 우리의 옛 사람이 완전히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새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머리에 물을 뿌려서 세례를 행할 때에도 그 의미는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이 세례를 통해 우리에게도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으로 그대로 재현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세례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일종의 공간적 이동의 이미지를 사용해서 가르쳐 줍니다. 4절을 원문으로 보면 전치사의 사용이 두드러집니다. 세례를 통하여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안으로 장사되고 죽음 밖으로 일으켜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도착하는 곳은 새로운 생명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망의 나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 큰 세례의 강물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가 건너편으로 나옵니다. 이게 마치 세례의 물 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 반대쪽에는 생명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사망의 나라에서 생명의 나라로 옮겨집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4절을 보면 이 동일한 이미지를 출애굽에 빗대어서 설명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과거 출애굽 할 때 모세와 함께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구름의 인도를 받아서 홍해를 건넌 것이 단체로 세례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바로가 지배하는 애굽의 나라에서 홍해를 건너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생명의 나라로 옮겨간 이 영적인 원리가 세례를 통해 우리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세보다 더욱 탁월한 중보자로서 우리를 앞장서시며 생명의 나라로 인도해 주십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런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기존의 모든 옷을 벗고 새롭게 준비된 흰 옷을 입도록 하였습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에서 흰 옷 입은 순결한 백성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유와 꿀을 조금씩 먹게 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아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이런 예식을 행하지는 않지만 그 정신은 오늘날의 세례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합하여 죽음의 나라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에 합하여 새 생명의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속한 곳, 우리의 시민권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지만 영적으로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속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는 일종의 여권입니다. 우리는 여권이 없이도 한국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여권을 통해서 우리의 국적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세례를 받고 입교했다는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천국 시민권자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우리의 시민권을 외적으로 표시하는 상징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실제로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우리를 더욱 확실하게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주시고, 우리의 천국 시민권을 더욱 강하게 해 주십니다. 실제로 우리가 죄에서 죽고 의로 살아가도록 변화시켜 주십니다.
죄 가운데 흔들리고 연약해질 때, 내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이 사실을 다시금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의 머리에 흘렀던 그 세례의 물은 다 말라 버렸지만, 세례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나의 몸과 영혼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죄와 죽음의 나라에서 의와 생명의 나라로 옮겨진 자들입니다. 죄로 낙심할 때에도 세례를 통해 이 천국 시민권을 확고히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죽고, 하나님께 살아 있습니다 (6-11절)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우리의 죄와의 싸움을 도우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와 싸우도록 주시는 두 번째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죽으셨고, 하나님께 살아 계십니다. 이 복음을 계속해서 듣고 기억하면서 우리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죽고 하나님께 살게 됩니다.
6-11절에서는 알고 믿는다는 사실이 아주 강조되고 있습니다. 6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8절에 우리가 믿노니, 9절에 이는 앎이로다, 11절에 이와 같이 여기라. 복음의 메시지를 가르쳐 주고, 이것을 알아야 한다, 믿어야 한다, 그렇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에서 우리가 알고 믿어야 할 복음의 메시지가 요약적으로 나옵니다.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했고, 또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죽으심에 연합한 것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의 공로에 연합하여 죄값을 치르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7절에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죽을 운명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모든 죄값을 다 치르고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죽으신 분은 예수님이지만 죄값을 치르는 혜택은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하는 또다른 측면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실제적으로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삶을 점점 살게 됩니다. 예수님과 똑같아질 수는 없겠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하고, 책임을 감당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작은 예수처럼 인생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위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한 것에도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새로운 생명 가운데 기쁨과 감사로 의를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누립니다.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인생의 가치와 목표를 바로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진취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주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며,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하는 또다른 측면은 미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장차 육체의 부활과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썩을 육체가 아니라 썩지 않을 완전한 육체를 얻고, 생명의 나라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하듯이, 장차 우리의 부활도 확실합니다.
8절에 “우리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는 미래형입니다. 11절에 “살아 있다”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부활의 생명은 현재와 미래에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늘에 계시고 죄의 권세가 더 이상 그분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지금도 계속해서 공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삽니다. 이 땅 가운데 하나님과의 동행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실제 육체의 부활과 영생으로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예수님의 승리입니다. 9절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의 죄의 비참한 현실을 얼마나 슬퍼하시고 가슴아파 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과, 또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보시면서 심령에 비통하게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으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소리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서 무덤 밖으로 걸어나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력을 지배하고 계시는 생명의 주인이심을 보여주는 놀라운 표적이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이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1장 53절을 보면 이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계기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시기하여서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사건이 나사로의 부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버리게 되는 위험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나사로에게 궁극적인 생명을 주시고, 뿐만 아니라 죄와 죽음으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모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모든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아버지의 영광으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다른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무고하게 목숨을 버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예수 부활의 생명을 함께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이미 듣고 믿은 복음 말씀이지만, 세속적인 세상 가운데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을 대면하고 살아가면서 자꾸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복음을 계속해서 다시 들어야 합니다. 현실의 모습으로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이 선포하는 내용에 따라서 우리의 영적인 지위가 무엇인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11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길지어다! 우리가 매일 계속해서 말씀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땅의 환경과, 나 자신의 실제 모습과 무관하게 나를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로 여기려면 복음을 계속해서 듣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비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운영되는 이 세상 가운데 우리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지금도 매일 한 장씩 성경 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 해설을 작성해서 드리고, 해설 동영상을 제작해서 매일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성경읽기에 참여하시는 분은 약 3-40분 정도 되시는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나머지 절반 정도 되시는 분들은 1주일에 한 번 교회 와서 예배 드리는 것이 복음 말씀을 듣는 전부입니다. 그것으로는 우리의 지식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정체성을 잃고 죄 가운데 휩쓸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이기는 강력한 힘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공급됩니다. 우리의 관점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루 한 장씩 성경 읽으시길 바랍니다. 또 새벽기도 영상도 들으시면서 말씀을 깨닫는 데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을 계속해서 알아가고 기억하면서 죄와 싸워 이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우리 몸을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립시다 (12-14절)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와 싸워 이기도록 세례와 복음을 선물로 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선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죄가 우리 몸을 다스리게 하지 말라!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천국에 속하였다. 우리에 대하여 아무런 권한이 없는 죄에 함부로 속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린이집에서 모르는 사람이 오면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 외치라고 교육합니다. 아이들이 이게 일종의 유행어가 되어서 가끔 부모가 자기 맘에 안 드는 일, 예를 들어서 돌아다니지 말고 밥 빨리 먹어라 하면 엄마아빠한테도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 외치는 부작용이 있기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의 탐욕이 생겨나고, 죄가 우리 마음과 행동 가운데서 역사하려고 할 때 우리도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 어린이들의 교육용 구호를 빗대서 재미있게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유혹의 순간에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의 핵심도 이와 같습니다. 죄에 대하여 싫어요, 안 돼요 하고 거부하면서, 하나님께는 도와주세요 하고 요청드립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와 분투하고 의를 행하고자 하는 의지적 노력 또한 함께 강조됩니다. 오직 은혜만을 얘기하면서 죄와 싸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의 탐욕에 굴복하지 마시고, 기도로 부르짖으면서 주님을 의지하며 계속해서 죄의 지배와 싸우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죄를 짓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는 우리가 누구의 지배권을 따르느냐와 관계된 문제입니다. 13절에 죄를 짓는 것은 자기 몸을 죄의 지배권에 맡겨주는 것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자기 몸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는 사탄의 도구가 되어서 이 땅 가운데 사탄의 뜻을 이루는 데 쓰임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에는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쓰임받게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왕들의 삶을 통해서 이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순종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의 침략과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안전히 지키고 보호했습니다.
구약에서 블레셋과의 전쟁은 단지 민족주의적인 영토확장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고 약자를 수탈하는 이방의 문화가 지배하는 곳으로 내버려둘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다윗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물리치고 여러 이방 나라들을 물리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백성들을 다스릴 때 이스라엘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배려받았습니다.
반면에 다윗이 죄에 빠져들 때 이스라엘 전체에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뒤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부하의 아내를 빼앗아서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그 사이에 암몬과의 전쟁은 장기화되고 백성들은 고통에 빠졌습니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비롯한 충성스러운 많은 부하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습니다. 왕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신하와 백성들이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각자가 작은 왕으로서의 사명을 이루어 나갑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영역을 다스리면서 죄와 싸우고 의를 이루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내게 맡겨진 가정과 직장과 학교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나에게 맡겨진 그 영역을 사탄의 세력에 넘겨주는 것입니다. 자원이 낭비되고, 사람들 사이에 다툼과 갈등이 일어나고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무가치한 일들에 힘쓰면서, 정작 가치있고 중요한 일들은 소홀해집니다.
이 땅 가운데 불의가 만연하는 데 힘을 보태는 죄의 도구, 사탄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합시다.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의의 도구, 하나님의 도구가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주고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가치있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가장 마지막 절은 축복의 말씀으로 끝납니다. 우리에게 죄에 굴복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주님께서는 바로 이어서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가 우리의 삶을 덮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도로 주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큰 죄를 저지른 다윗도 회개하면서 시편 51편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를 행할 새로운 마음을 허락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다윗을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금 사명을 행하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죄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가운데 육신의 연약함을 남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다시 주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죄용서와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다시금 누립시다. 죄와 싸우고 의를 행할 힘을 공급받읍시다.
맺음말.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죄에서 벗어나 의를 행합시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죄와 싸워 이기도록 주님께서 주신 선물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먼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계속해서 듣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적인 실제를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계속해서 죄와의 싸움을 해 나가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갑니다.
우리가 죄를 짓느냐, 의를 행하느냐는 이 땅 가운데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거대한 영적 전쟁의 일환입니다. 나의 힘과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죄와 사망의 거대한 영향력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세례와 말씀과 기도로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공급받아 싸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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