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재미있게 쓰는 기법들
이동민
(*문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임으로, 용어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수필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 거의 통설로 되어 있다. 나름대로 수필을 재미있게 쓰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제일 먼저 ‘이야기 만들기’를 하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글쓰기의 여러 기법들 중에 재미를 잘 일으킬 수 있는 기법을 빌려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어쩌면 경건주의,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 수필이 기피해 왔던 것들이 아닌가 싶었다.
1. 이야기의 원형
옛날부터 전해오는 신화나 민담, 전설을 분석해보니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본 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천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없어지지 않고 앞선 사람에서 후대 사람으로 이어져 오는 이야기라면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신화나 민담의 이야기 구성 틀을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보았다. 또 원형이 재미를 일으키는 구성으로 보았다.
이야기의 원형론이 나온 배경에는 구스타프 융의 원형 심리학과 프레이져의 인류학이었다. 융은 우리의 내면에는 유전적인 관념의 성향이 있다고 보았다. 이런 관념들이 집단의 무의식을 만든다는 가설을 세웠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재미를 주는 것은 이처럼 유전적인 구성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수필에서 재미를 담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기본적인 구성 틀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2. 아이러니
우리말로는 반어(反語)라고 한다. 말의 뜻이 실제의 하는 말의 뜻과 반대일 때늘 말한다.다.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실제와 반대되는 의미로 하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방법을 반어법이라 한다.
아이러니의 어원은 위장 즉 숨긴다는 뜻의 그리스어 에이로네이아(eironeia)다. 상대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무지를 폭로하는 문답법의 하나로, ‘낱말을 표면(表面)의 뜻과 반대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수사학(修辭學) 용어로 활용됐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는 무식한 체하면서 사람들의 아는 체하는 가면을 폭로한 소크라테스 수사법이 뿌리이다. 간접적인 문어적(文語的) 표현을 취하므로 사람들의 자각을 촉구하는 부정(否定)의 힘이 강하며, 같은 간접적인 표현을 하면서도 유머의 긍정적인 평온성에 비하여 가시 돋친 준열성을 지닌다. 우리는 코메디 극에서 자주 본다. 아이러니는 그만큼 사람을 웃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례 구할 것)
3. 알레고리(寓意)
표면적인 이야기나 묘사 뒤에 어떤 정신적·도덕적 의미가 암시되어 있는 비유. 가령, 오웰(G. Orwell)의 `동물 농장'은 독재 정치에 대한 알레고리를 담은 소설이다.
우화는 하나의 명확한 교훈을 가진 짧은 알레고리로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은유가 단어나 문장에 사용되는 개념이라고 한다면 알레고리는 우화처럼 이야기 전체 등으로 훨씬 큰 범위를 지닌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의 경우는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문학적 표현 기법으로서 알레고리란 인물, 장소, 사건 등의 매개체를 바탕으로 비유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예술에 두루 적용되어왔다. 은유적 이야기인 플라톤의 동굴 우화나 이솝우화도 대표적인 알레고리이며 그리스·로마 신화 같은 여러 신화나 민담에서도 따올 수 있다.
알레고리는 상징과 구분된다. 상징은 표현의 관습이다. 보여주는 대상과 그 대상이 의미하는 내용이 일치한다. 예컨대 태극기를 찍어 애국심을 보여주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불태우는 사진을 찍어 독도 문제와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를 보여준다는 것은 상징의 수법이다.
어떤 사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에 의해서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이 표현방법에 의해서 창작된 문학 작품이나 조형예술작품을 일반적으로 알레고리라고 한다.
문학에서는 어떤 한 주제 A를 말하기 위해 다른 주제 B를 사용하여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을 말한다. 은유법과 유사한 표현 기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은유법이 하나의 단어나 하나의 문장과 같은 작은 단위에서 구사되는 표현 기교인 반면,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법으로 관철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4. 패러독스(逆說)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하게 모순 또는 부조리하게 보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도록 기술하는 서사법이다. 본래는 수사법으로서 청중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법으로 사용했다. 처음에는 글을 읽고 비논리성에 거부하거나 당혹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철학에서는 일체의 역설적 요소를 제거하고, 논리적인 연속성을 추구한다. 문학은 설득의 방법으로 역설을 이용하기도 한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직선적 논리에 의존하지 않고 직관에 의하여 세상을 인식함으로 역설법을 많이 이용한다. (*직관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논리의 단절이 일어난다.)
(문학적 표현에 비꼬는 투의 말이라든지, 말의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꺼집어 내든지.
범죄가 많은 곳에 순사가 많다 등등.)
예문을 보면,
1. 무신론자만큼 신의 존재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사람은 없다.
2. 죄가 많은 곳에는 또한 하느님의 은혜가 많다.
3.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한용운)
4. 좋아서 죽겠다.(일상 언어)
5. 슬플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시어에서)
5. 일탈
일탈의 사전적인 뜻은 ‘빗나가다’, ‘벗어나다’의 뜻이지만 수필쓰기에서 말하는 일탈은 사회적인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을 일컫는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달아나려는 행위이다. 피천득 선생도 수필쓰기를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피천득 선생은 '파격의 미'라고 하였습니다.)
일상은 너무나 뻔한(익숙한) 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나를 글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 재미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내 자신이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른 관점에서 나를 바라본다. 나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기회가 된다. 이럴 때는 나와 다른 내가 보이기 때문에 흥미롭고, 재미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일상에서 벗어나보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일상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 일상이 답답하고 불만스러울 때는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일탈을 꿈꾼다. 막상 일탈을 하고 나면 꿈꾸었던 일탈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일탈을 꿈 꾸었을 때는 환상으로 나타나지만, 막상 일탈을 하고 나면 현실이 나타난다. 그래서 막상 일탈을 하고 나면 재미가 없다고 한다. 왜냐면 일탈이라는 말의 ‘이미지’가 신선하다거나 재미가 있거나, 다른 여러 건강한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께서는 일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까? 일상이 우리에게 하는 말도 아주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수필의 소재가 됩니다.)
일탈의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일상의 기쁨이 너무 커서 일탈을 꿈 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 소심한 게으름으로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귀찮아 하거나 두려워 하는 경우이다.
말하자면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심심한 사람과 소심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사람이다.
수필쓰기에서 소심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일상에 안주하는 사람은 재미있는 글쓰기가 그 만큼 더 어렵다.
6. 상상(Imagination)
상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것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하며, 상상력이란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귀나 다른 감각기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정신적인 이미지와 감각과 개념을 형성하는 능력이다.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허구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과정을 배룰 수 있다. 허구가 족쇄가 되어서 수필쓰기를 어렵게 한다. 수필에서 상상을 이용하는 것은 족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상이라고 하면 이성에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지금은 문학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한다. 철학에서 상상을 정식으로 다룬 학자는 칸트이지만, 우리는 복잡한 이론은 넘겨버리자. 그러나 시인 블레이크가 한 말 ‘상상은 영혼의 감각이다.’라고 한 말을 새겨듣자.
20세기에서는 인간의 심리학에서 다루기 시작하면서, 상상하는 것은 욕망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지금은 인간의 무의미하고 잡다한 체험을 하나의 형상으로 통일시키므로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따라서 심리적인 문제로 다루면서
요즘은 문학에서 상상력보다 심상(image)에 더 무게를 둔다. 이로서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의 경계가 점점 없어져간다.
신화시대부터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을 추적해보면 상상으로 만든 길이 현실의 길로 바뀌는 과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상상력은 허구이면서도 현실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세계이다. 우리 수필이 상상력을 허구 문제로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이성으로 구성된 지식의 세계에 상상력으로 충격을 가함으로 예술의 세계, 문학의 세계로 바뀐다. 상상 여행이 만들어낸 세계는 현실세계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세계이다.
수필에서 재미라는 치장을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최대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재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문학작품을 백일몽이라고 했다.
7. 언어 유희,( 말장난)
다른 의미를 암시하기 위해 말이나 동음이역어를 해학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방법이다.
언어가 수행하는 다양한 기능 중에 의사소통이라는 본질적인 기능 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 중에 ‘사회적 기능’이 있다. 사회적 기능이란 당대의 사회상을 민감하게 반영하면서 상호소통이 일어나는 적극적인 형태의 표현이다. 문학 등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의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
우리의 고전 문학에 재담(才談)이라는 것이 있다. 재담이 추구하는 재치와 재미는 일상적인 언어 관습을 파괴하는데서 유발하는 경우이다. 일상 언어의 소통 체계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차고 들어가서 의미를 흔들어버린다. 보기로 정수동의 재담을 들면
“어느날 정수동이 안동 김씨 김대감 집앞을 지나는데, 어린 아이를 끌어안고 젊은 엄마가 울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하나 아이가 쇠전 한 잎을 삼켰다고 했다. 정수동이 말하기를 ‘이 집 대감은 수만 냥을 삼키고도 끄떡 없는데, 겨우 한잎으로, 괜찮습니다.”
뇌물을 받거나 공금을 횡령하는 것을 ‘꿀꺽 삼키다’라고 표현하는데서 차용했다.
최근에 가족구조를 두고 젊은 엄마가 1등 가족이고, 손자가 2등, 반려견이 3등, 가정부가 4등, 젊은 아빠(아들)가 5등, 시아버지는 6등 가족이라는 말이 떠도는 것을 응용하여, 아들집을 방문한 아버지가 떠나오면서 아들에게 하는 인사로 남긴 쪽지에, ‘5등아 잘 있거라, 6등은 간다.’라는 것도 시대상을 반영한 말장난이다.
수필에서 언어 유희는 단순히 개그 차원이 아니고 한 차원 높은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담겨야 성공할 수 있다. 그 시대에 유행하던 유행어를 패러디하거나, 살짝 비틀어서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8. 해학미
주요한은 한국미의 특질 중의 하나로 ‘해학미’를 꼽았다.
해학미는 익살스러움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다.
해학미에는 추(醜)의 요소도 가미되어 부조화, 불확실성, 왜곡 내지 저속함도 포함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삶을 영위하면서 즐거운 일과 슬픈 일을 겪기 마련이고, 그때의 우리 반응이 웃음(익살맞은 표정)과 울음(눈물)이다. 인간에게 웃음과 울음은 내적인 것(정신적인 것)이 육체에 나타나는 ‘인간존재의 거울이고, 계시라고 했다.(플레스너) 플레스너는 웃음과 울음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감정으로 다루었다. ’실컷 울고 난 뒤에는 마음이 후련해진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익살에 근접한 것으로는 풍자(무엇에 빗대어 재치있게 표현하는 것). 아이러니(비꼼)가 있다.
그러나 해학(일종의 익살)은 풍자나 비꼼처럼 빗나간 현상을 시정하기 위해 부정의 묘약을 처방하지 않고 차원 높은 곳으로 지양하는 면모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골계, 배해라는 말과 같은 뜻이나 현재에는 주로 ‘해학’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해학이 대표적인 예술로서는 김삿갓의 시와 고전수필류의 글, 그리고 판소리, 민화 등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의 고전수필에 나타나는 해학성은 우리가 앞으로 연구를 해야 할 과제이다.
9. 농담이론
프로이트는 농담에 대한 이론을 아주 길게, 한 권의 책으로 풀어서 남겼다. 농담은 인간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필쓰기에 활용하면 수필을 쓸 수 있는 범위가 아주 넓어진다. 이 부분은 따로 떼어서 공부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