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날릴 명성 선비의 기개 맑고 / 그 선비의 기개 맑고 맑아 만고에 빛나리니 / 만고에 빛나는 밝은 마음 모두가 학문 속에 있으니 / 그 모두가
배움을 행하는 데 있으므로 그 이름 영원하리라”
위는 매헌 윤봉길(尹奉吉, 1908.6.21-1932.12.19) 의사가 16살 때
지은 “옥련환시(玉連環詩)”입니다. 어제(4월 29일)는 그 윤봉길 의사가 1932년 상해 홍구(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 등을
죽이고 중상을 입힌 지 80돌이 된 날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1년 겨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뒤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축하연(천장절-天長節)과 상해 점령 전승 기념행사장 단상에 폭탄을 던짐으로써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조선인의
기개를 한껏 드높였습니다.
이날의 의거는 단상에 있던 상해 파견군총사령관과 일본거류민단장을 죽이고, 제3함대 사령관, 육군
제9사단장 등에게 중상을 입힌 엄청난 거사였지요. 당시 이 소식을 듣고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개석은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높이 평가했으며 이를 계기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윤봉길 의사에 대해 흔히 홍구공원 의거만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6살 때부터 <천자문>, <소학>,
<동몽선습>을 익혔으며 12살 때부터는 매곡 성주록 선생의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체계적으로 학문을 닦았고, 18살에는
<오추(嗚推)>, <옥수(玉睡)>, <임추(壬椎)> 같은 시집을 내기도 했지요. 윤의사가 남긴 시는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생략)’라는 거사 전날 두 아들에게 남긴 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를 합쳐 모두 500편에 이르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진 윤봉길 의사는 올곧은 기개를 지닌 선비의 삶이 무엇인가를
터득한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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