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이민정
굳이 그림을 그리라면
가을날 탱자나무가 맞는 배경을 뒤로 하겠소
綠陰 가로질러 삼복더위 군내 나는 채찍의 날들
수년을
비장한 가시 하나 키워
어머니 부엌 도마에 난 잔 칼자국처럼
나 또한 익숙해져
하
누가 알겠소만
바람의 방향 바뀔 테니까
그리하면 북서풍이 불어 줄 테니까
간혹 후두둑 떨어져
토닥토닥 쓸어줄 진한 향내라도 풍길지
하
그래야
쩡 하고 깨어질 엄동설한에
뒤도 안돌아보고
바람을 이고 가는 흰 새벽바람 될지도
그림을 그리라면
굳이 그리라면
삼짇날 돋친 가시로 바람을 깨우는
고운 흰백의 탱자나무 꽃
꼭 그리고 싶소
잔 칼자국이 돋아난 새살을
내 눈 안에 담을 것이요
시작노트
아직도 새벽의 시간을 즐긴다.
새벽을 열듯이 세상의 푸른 희망을 만나고 싶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은 무언가를 성숙시키고, 불협화음은 다시없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태생이 어눌함은 어쩔 수 없지만 진실함을 담아서 세상을 표현해야하는 당위성도 찾았다.
나에게 찾아 왔던 그 때처럼
복잡한 변화에도 퇴색되지 않는 시심을 알기 때문이다.
사방의 무선통신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틈새들이 있어 오늘이 좋다.
벅찬 Chat GPT 시대에도 이름 모를 유리병 편지 하나 걷어 올리는 친구가 필요하다.
이민정
1959년 전남 광주 출생. 20012년『시현실』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