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9일 목요일
진주시 미천면, 집현면, 명석면, 수곡면 등은 낯선 곳이다.
이 지역은 관광지가 아니다. 또한 관광지를 향하는 길목에 있는 곳도 아니다.
군북IC에서 내려 의령을 지나 월명암으로 간다. 월명암(미천면)은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이 있다.
도로에서 마을을 지나 임도로 2.4km 올라간다. 월명암에서 임도로 1km 가량은 비포장이며 산허리를 도는 길이다.
1km 가량 내려 오면 응석사(집현면)가 있다. 월명암과응석사를 품고 있는 산은 집현산이다.
1919년 지어진 용산사 대웅전(문화재자료)은 지금까지 보았던 건물 모양에서 벗어났다. 용산사 주지 만성과 여러 이야기를.
묘엄사지 삼층석탑(보물)과 한산사 석조비로나불좌상(유형문화재) 보기 위해 수곡면으로 가는 길에 대평면을 지난다.
대평면과 수곡면은 딸기로 유명한 곳이다. 진양호를 만난다. 진수대교에서 해넘이를 하였다.
집현산 응석사(集賢山凝石寺) / 전통사찰
- 경남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554년(신라 진흥왕 15) 연기조사께서 창건.
도선국사가 머물렀고, 그때 심은 모감주나무는 경남 기념물 제96호이다.
고려 때는 삼대화상(지공, 나옹, 무학)이 수행한 대가람, 임진왜란 때 승병 병참소 역할을 하였다.
왜란으로 절을 폐허, 조선 인조(仁祖, 재위 1623년∼1649년) 때 일조 진묵대사가 대웅전과 삼존불, 요사를 지었다.
1980년대까지는 주변 땅은 개인 소유, 진주 박진구 변호사의 시주와 도움으로 지금의 절터를 갖게 되었다.
(응석사 유래 - 응석사 안내판 내용을 정리함)
지금과 같은 가람은 1980년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응석사는 멀리서 보아도 안정감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고 누각을 지나서 만나는 나무 두 그루는 멋지다. 응석사 구석구석을 둘러 보았다.
일주문
누각, 현판이 없다.
누각 아래는 사천왕도가 그려져 있다.
내가 가진 사진기로 이 나무가 잡히질 않는다.
대웅전 / 경남 유형문화재 제141호
1643년(인조 21) 승려 경천, 극수, 일휘 등이 중창하였다.
1736년(영조 12)과 1899년(광무 3년. 고종) 때 중수, 1983년과 2003년 보수하였다.
1983년 보수 때 정면과 왼족은 겹처마, 뒷면과 오른쪽은 홑처마였다. 2003년 보수 때 모두 겹처마로 고쳤다.
배흘림 기둥이 이 건물의 특징, 건물 규모에 비해 지붕이 소박하고 마루선이 대체로 완만하여 안정감을 준다.
진주 응석사 목조 석가여래삼불좌상 / 보물 제1687호
삼불(석가, 아미타, 약사)은 1643년에 제작(복장 조성기)한 규모가 큰 불상이다.
관음전
관음전 뒤 모감주나무(?), 경남 기념물이며 도선국사가 심었다고 하지만 수령 250년 정도라고 한다.
종무소가 있는 요사
산신각
나한전
독성각
사진을 직고 있으니 어느 승려가 "용역 나왔냐?"고 묻는다. 용역으로 사진을 직을 것 같으면 허가를 받아야 한단다.
응석사를 마지막으로 진주지역 전통사찰은 모두 한 번은 둘러 보았다.
진주 월명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 보물 제1686호
- 경남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산, 월명암
1612년(광해군 4) 승려 현진이 주도하여 승려 조각가 네 명이 참여하여 만들었다.
시주자로 벽암 각성(1575~1660, 함양 벽송사)이 기록되어 있다.
현진(玄眞)은 17세기 전반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등에서 활동한 조각승이며 그의 작품 가운데 남아 있는 17점은 보물이다.
월명암 불상은 불상은 현진이 만든 불상 가운데 이른 시기에 만든 것으로 다른 작품과 비교하여 흐름을 알 수는 귀한 작품이다.
월명암에서 본 경치, 의령/합천 방향이겠다.
진주 용산리 용산사 대웅전 / 경남 문화재자료 제532호
-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사
도로에서 30m이면 절이 보여야 한다. 300m 야산 중턱에 절이 있다.
유형문화재가 아니고 문화재자료이다.
한자 실력이 미천하니 이런 예서는 읽기 어렵다. 공덕비이다.
참봉 박헌경 공덕비, 이 절은 떠돌이 박헌경이 이곳으로 들어와 절, 재실, 정자 등을 지었다고 한다. / 주지 말씀
용산사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흐릿하다.
1921년에 용산리에 거주하던 참봉 박헌경이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대웅전의 구조는 맞배집 형태의 기본 구조에 좌우로 지붕을 달아내어 독특한 형태의 지붕구조를 갖고 있다. 눈썹지붕.
일반 대웅전과는 다르게 온돌시설에 누마루 형태의 기초를 갖추고 전퇴간을 두어 계자난간을 두른 형태를 하고 있다.
건립 연도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나 전통건축형태에서 변형을 하고 있어 변화한 건축기법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건축물 연구 자료로써 가치가 높다.
주지 말씀으로는 1919년 건립, 용산리엔 재실과 정자가 있다고 한다. 지나면서 봤다.
대웅전 현판 글씨가 부드럽다. '제봉'은 청남 오제봉 선생일까? 현판이 너무 깨끗하다.
주지 만성, 성은 나와 같지만 본은 해주라고 한다. 고향은 문경시로 점촌이라고 한다.
문경 원적암(작년 가을에 내가 가 보았던 절)으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나이는 내 또래 같았으나 서너 살 위이다.
밖에 서서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훈민정음 상주본을 가진 분과 만나서 이야기한 내용,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 환수하는 일 등을 한다고 한다.
가야사 이야기도 나누웠다. 다음에 또 놀러 오라고 한다.
삼성각
진주 묘엄사지(妙嚴寺址) 삼층석탑 / 보물 제379호
- 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
고려시대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2007년 발굴 조사 때 '묘엄사妙嚴寺'가 적힌 기와 조각을 발견하였다.
주변에 승탑과 불상 부재 여럿 발견하였다. 절의 규모가 상당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진주 고산암(高山庵)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 경남 유형문화재 제236호
- 경남 진주시 수곡면 원내리
예전 고산암이 있던 자리에 한산사가 들어와 있다.
큰 마을이 있거나 산이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조용한 사찰이다.
사적은 찾아보기를 하여도 나오지 않는다.
대선사 지원당(1945년 ~ 2020년년) 승탑이다.
한글은 '비로자나'이지만 한자는 '비로사나'이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 종목별 검색, 고산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편에도 오자가 있다.
여기도 한글은 '비로자나'이지만 '한자는 '비로사나'이다. 소재지도 '진주시 영곡면 원내리'로 '수곡면'을 틀리게 적었다.
내용을 설명하는 글에는 '비로바나'가 나온다. 이것도 틀리게 적은 것이다. 비로자나 또는 비로사나로 적어야 한다.
전체 글에서 비로자나 또는 비로사나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솟아 있다.
얼굴은 네모에 가까운 타원형이며, 입은 작지만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다.
신체는 당당한 어깨에 허리가 잘록하여 사실성이 강하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바나불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손모양이다.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으며 4각형의 하대에는 연꽃무늬가, 중대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9세기 말, 10세기 초의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발췌)
'비로바나불'은 잘못 쓴 글이다. '비로자나' 또는 '비로사나'로 적어야 한다.
내가 보기엔 대좌와 석불은 따로인 것 같다. 석탑 부재를 위에 석불을 얹은 것 같다.
절에 다니면 본 연화대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대좌는 석탑 부재인 것 같은 느낌이다.
수곡면을 지나 내동면으로 가는 길, 진수대교, 해넘이를 하였다. 진양호의 다른곳을 오늘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