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부담(김혜영, 사비나,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아들 한빛(프란치스코)이 떠난 후 시간도 함께 멈췄습니다. 한빛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켜 함께 살아가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매일 무너집니다. 평범했던 한 가정에 닥친 파괴적 슬픔은 어떠한 것으로도 메꿔질 수 없었고,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신비스러웠습니다. 고마운 이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저를 일으켜주고 남은 삶을 살아내도록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운명’이란 말도 있지만 ‘운명에 맞서다’라는 말도 있다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예수회의 ‘하늘마음(상실의 아픔과 슬픔 극복을 위한 자녀 사별자 모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의 가족들을 만나 위안을 얻었고, 혼자만의 아픔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공감하면서 힘을 얻었고,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 견디어낼 수 있었습니다.
자살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가족, 친구들이 함께 치유하고 봉헌하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슬픔 속 희망 찾기’도 있습니다. 아들의 선택은 돌이킬 수도 없고, 이해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살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던 아들이 죽음의 흔적보다는 ‘희망의 언어’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엄마의 안간힘을 따듯하게 안아줍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홀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며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안전지대가 되어 줍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후원회원 ‘한빛의 친구’들도 저에게는 한 줄기 빛입니다. 그들은 한빛센터 후원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초대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라며 아들의 빈자리를 채워줍니다. 피디(PD)가 되어 편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카메라 뒤에도 사람이 있다”며 화려한 스크린 뒤 열악한 노동을 고민했고, 최소한 사람이 사람에게 가혹해서는 안 된다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고민했던 한빛에게 주님이 이어 준 인연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동안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다고 억지 썼는데, 주님은 토마스의 신앙 고백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처럼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끊임없이 저를 이끌어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이사 43,19) 이 말씀은 고통과 슬픔의 자리에 새 일이 완성될 것임을 희망하며 붙잡게 했습니다.
이 모든 은혜, ‘거룩한 부담’으로 기꺼이 받겠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실을 알고, 그것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그로 인해 무엇이 바뀌었는가를 주시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희망의 싹을 틔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남은 삶은 ‘한빛 엄마’로 살면서 하나하나 갚아 나가겠습니다. 한빛을 기억하며 한빛이 살아가고 싶어 했던 날들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과 함께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