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침묵] 공상에서 묵상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도 어려서부터 공상을 즐겼다고 하지 않는가?"
멍하니 있으면 매를 부른다. 선생님들은 멍하니 있는 학생을 좋아하지 않았다. 슬그머니 다가와 뒤통수를 후려치곤 했다. “정신 차려 인마! 무슨 생각 했어?” 사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잠시 넋 놓고 창밖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상상의 나래를 펴고 달콤한 몽상의 나라로 막 날아오른 순간이었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불시착한 자리엔 아릿한 비애만 남았다.
지금은 멍하니 있어도 괜찮은 시대다. 오히려 멍하니 있기를 권장하고 예찬한다. ‘멍 때림’의 가치를 설득력 있게 파헤친 정신의학 전문의의 책도 나왔다. 자극적인 정보의 홍수로부터 뇌를 보호하라. 혹사당하는 두뇌에 잠시라도 휴식을 주자. 여기저기서 자칭 멍 때리기의 고수들이 저마다 비법을 뽐낸다. 며칠 전 서울 한강공원에서는 멍 때리기 실력을 겨루는 대회도 열렸다.
멍 때림은 아무 생각도 없어야 한다. 쉽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무상(無想)은 아무나 이를 수 없는 지고지순의 경지다. 잠시 멍 때림으로 비워놓은 마음엔 어느새 잡생각이 들어와 헤집고 다닌다. 생각은 끊임없이 솟아났다 사라진다. 그 진폭을 낮출 수는 있어도 온전히 잠재우기는 어렵다. 생각에 끌려다니면 공상이나 몽상이 된다. 멍 때리는 무상과는 다르다. 공상에 빠진 뇌는 여전히 쉬지 못한다.
공상도 나름의 효용은 있다. 흔히 예술가의 공상은 창작의 모태가 된다. 그들은 공상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물을 낚아 올린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도 어려서부터 공상을 즐겼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내공이 약한 사람에게 공상은 위험할 수도 있다. 환상이나 망상으로 흐르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부추긴다. 잠들어 있던 온갖 감정의 찌꺼기를 일깨워, 불안 분노 증오를 증폭시킨다. 우울증과 몹쓸 충동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멍 때림으로 무상에 닿으면 짧은 치유를 얻는다. 공상은 가끔 환상적인 구상을 길어 올린다. 신앙인의 목표는 좀 더 멀리 있다. 묵상을 통해 관상에 이르러야 한다. 관상은 신앙이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다. 고요한 바라봄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을 깊이 체험하는 것이다. 신비적 합일에서 오는 감미로운 침묵이며 은은한 기쁨이다.
세속에 사는 우리가 관상을 맛보기는 쉽지 않다. 평생을 기도로 살아온 수도자들도 늘 관상에 들어서지는 못한다. 애초에 관상이 인위적인 노력으로 다가설 수 있는 영역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도 있다. 오직 은총으로만 가능한 경지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 속에 탁월한 관상가들이 많다. 카르투시오수도회의 귀고 2세는 관상에 이르는 길을 네 단계로 설명한다. 독서 묵상 기도 관상이다. 독서는 마음을 다하여 말씀을 읽는 것이다. 묵상은 그 말씀을 반복해서 마음에 새기고 음미하는 과정이다. 기도는 영혼의 갈망을 간절히 청하는 것이며, 관상은 영혼이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 그 안에 머무는 단계라고 했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독서 없는 묵상은 오류에 빠지기 쉽고, 묵상 없는 독서는 메말라서 가슴에 스며들지 못한다. 독서와 묵상과 기도 없이 관상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시대는 멍 때림을 권하나 우리에겐 다른 길이 있다. 공상과 망상에 빠지지 말고, 묵상을 통해 관상으로 가야 한다. 거룩한 독서가 그 첫걸음이다.
김소일 세바스티아노( 평화신문 보도위원)
출처: 가톨릭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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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국에서 그 유명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이번에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는 뉴스룰 접하고는
정말 지금 우리나라가 어떤 면에서는 너무 암울한 시기인데 이처럼
기쁜 소식을 듣는 것은 정말 청량감이 넘치는 감탄할만한 경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