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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소집 청와대 파견 나간 장교들 로비로 연기
‘9·11 테러’가 일어나던 2001년 9월11일 오전 8시30분. 로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펜타곤에서 조찬회동을 하고 있었다. 50여 일이 지난 12월5일 미국 CNN방송의 ‘래리 킹 쇼’에 출연한 럼스펠드는 “9월11일 조찬회동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었나”라는 래리 킹의 질문에 “나는 앞으로 1년 이내에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의원들에게 말했어요. 그런데 제 보좌관이 들어와서 급히 쪽지를 건넸어요. 여객기 한 대가 세계무역센터와 충돌했다는 내용이었죠. 우리는 조찬을 중단했고, 저는 CIA(미국 연방수사국)의 브리핑을 받기 위해 일어섰죠”라고 말했다. 이 말에 래리 킹이 “당신은 예언자였군요”라고 응수하자 럼스펠드는 “그렇죠”라고 답한다.
이는 ‘부시 정권 2인자’인 럼스펠드의 거짓말이었다. 2010년 비밀이 해제된 당시 펜타곤의 메모는 그날 실제 회동의 목적이 ‘미사일 방어’(MD·Missile Defense)에 관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럼스펠드는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며 “시급히 MD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2002년의 MD 연구·개발비는 달랑 83억 달러”라며 “이는 전체 국방비의 2.5%에 불과하고 2001년에 사용된 대테러 관련 예산 110억 달러보다도 훨씬 적다”고 말했다.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은 미사일인데 테러 방지 예산보다 MD에 적은 돈을 쓰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2001년 9월11일 테러범에 의해 납치된 민간 항공기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충돌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장관님, 이걸 씹으십시오”
9·11 테러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타전될 무렵인 밤 9시쯤, 한국의 김동신 국방부장관은 몹시 취해 있었다. 이날 오후의 국회 국정감사에서 4성 장군 출신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박세환 의원이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을 통과한 사건을 지목하며 김 장관을 거세게 몰아세웠다. 이에 격분한 김 장관이 “선배님 혼자 애국하는 것 아닙니다”라고 되받아치자, 이번에는 한나라당 국방위원 전체가 김 장관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몹시 속이 상했던지 국감이 끝나고 만찬에서 김 장관은 평소의 주량을 초과했다. 그런데 테러 소식을 접한 청와대가 이날 밤 10시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을 국방부로 통보해왔다.
이 난처한 상황에서 국방부 참모들이 장관 공관으로 내달렸다. 맨 먼저 달려온 장관 직속의 국방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조남진 소장이 김 장관을 흔들었지만 김 장관의 정신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누군가 “솔잎을 먹으면 술이 깬다”고 말해 공관 인근의 소나무를 찾아 비닐봉지에 한가득 솔잎을 따왔다. “장관님 이걸 씹으십시오”라며 생수와 함께 솔잎을 입에 물렸지만, 아무래도 청와대 회의 참석은 불가능했다. 뉴욕과 워싱턴에서 테러의 폭음(爆音)이 울릴 무렵에 한국에서는 국방부장관의 폭음(暴飮)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 문제는 국방부의 남다른 로비력으로 해결되었다. 밤 10시로 예정된 청와대 회의를 다음 날 아침으로 연기하기 위해 청와대에 파견 나간 군 장교들이 조직적인 로비를 했고, 그것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미 양국 두 국방장관의 혼돈 속에 세계 질서의 근본적인 변혁을 초래할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유토피아적인 세계 패권을 꿈꾸는 미국의 핵심 세력과 그런 미국을 일거에 붕괴시킬 수 있는 묵시록의 이미지를 전하는 음험한 반대편의 세력이 9월11일 정면충돌했다. 그러나 9·11 테러는 첫 번째 충격파에 불과했다. 미국의 네오콘(neocons·신보수주의자)은 9·11 테러를 자신의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로 활용했고, 반면 그 적대 세력은 미국에 더욱더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향후 50년 이상 지속될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 기조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네오콘은 그 상대로 이라크와 북한과 같은 ‘불량 국가’를 지목하고 있었다.
럼스펠드, 새로운 한반도 작전계획 내밀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진행되고, 이제 그 다음 차례가 북한이 될지, 아니면 이라크가 될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던 2002년 여름. 이남신 합참의장의 방에 리언 러포트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찾아왔다. 그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아 구상한 미국의 새로운 작전계획을 설명하겠다”며 “미국의 현대화된 항공력으로 북한의 장사정포 포탄이 서울에 단 한 발도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북한의 핵시설을 정밀하게 폭격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이게 그 유명한 ‘작전계획 5026’이라는 이른바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 계획이었다. 기존의 전면전 계획인 ‘작전계획 5027’과 달리 북한을 정밀 타격하는 또 하나의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이다. 더불어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한·미 연합군이 조속히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작전계획 5029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그 자리에 배석했던 합참의장 비서실장 한성주 준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항공력에 의한 북한 선제공격과 화력 제압 계획을 듣는 순간 공군 출신인 한 준장은 “천재적인 발상”이라고 느꼈다고 회고한다.
러포트 사령관은 이처럼 새로운 전략 개념이 그해 예정된 제34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양국 국방장관에 의해 합의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새로운 전쟁 개념이 계획되기 이전까지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반도 전쟁 계획인 작전계획 5027-98에 의한 한반도 전략의 기본 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럼스펠드 장관은 5단계(북한의 침공-방어-격퇴-반격-수복)로 작전 단계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5027이 현대 전장의 역동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역설했다. 현대 전쟁은 5단계가 순차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나타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단계를 건너뛰어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예컨대 북한군의 침공을 격퇴하면서 동시에 반격도 이루어질 수 있고, 아예 침공을 격퇴하는 단계 없이 곧바로 북한 지역에서 안정화 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다.
럼스펠드의 지시를 받은 러포트 사령관은 북한 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이 실패해 서울이 적의 공격 위협에 처했을 때 한·미 연합군은 북한의 핵, 화생무기를 사전에 무력화하고 선제공격을 통해 북한의 지휘·통신 체계를 신속하게 파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반도에서 ‘악의 축’이자 ‘불량 국가’인 북한을 향한 럼스펠드의 전쟁 의지는 분명한 실체를 갖고 있었고, 이것이 새로운 작전계획으로 예고되었다. 한국군 장교들은 전율했다. 안보를 책임지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한국군 장교단은 “이게 바로 전쟁이다”라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전쟁이란 단순히 나를 지키고 방어하는 소극적인 수준을 초월해 상대방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최종적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제법이나 정전협정과 같은 외교적 장치들은 현상을 유지하는 장치에 불과한 것이고, 전쟁에서 불변하는 목표는 승리하는 것, 즉 현상을 힘으로 타파하면서 진보의 길로 나아가는 데 있다. 그런 인식이 럼스펠드가 형형색색으로 펼쳐놓는 새로운 작전계획을 혁신적이며 천재적인 그 무엇이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2002년 12월5일 이준 국방부장관과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미 국방부에서 열린 제34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해교전에서 우리 군의 총체적 부실 드러나
국방부가 미국의 새로운 전쟁 교리를 추종하는 동안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김대중(DJ) 대통령의 청와대는 조지 부시 행정부를 거의 재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미국이 국무부가 아닌 국방부를 앞세워 대외 정책을 강압적으로 밀고 나가면서 한반도 비핵화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1994년의 제네바 합의가 거의 무력화되고 있었다.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북한의 핵을 동결시키기로 한 이 합의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굴욕적인 실패작’이라고 폄하하면서 판을 깨려는 태도를 보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을 MD 체제에 편입시켜 미국의 단일 군사 패권에 종속시키려는 입장도 드러냈다. 이는 한국이 노태우 대통령 이래 추진해왔던 북방정책의 성과를 한꺼번에 잠식해버리는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미국의 군사주의에 경도되면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악화됨은 물론이고, 남북 화해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정권 말기에 DJ는 국내 정치에서 극심한 지지율 하락과 레임덕을 겪고 있었다. 즉 이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거의 소진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2002년 6월29일 서해에서 남북 함정 간에 교전이 발생했다. 이날 상황은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자체가 의심스러울 만큼 기이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 4위전이 치러지던 그날 청와대 전 직원은 박지원 비서실장 주관으로 청와대 인근 삼계탕집인 토속촌에서 점심 회식을 했다. 이 회식 자리에서 서해교전 소식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이날 오전 10시 집무실에 있던 김동신 장관은 인터폰으로 서해교전 발생을 보고받고도 이상하게 국방회관으로 가서 장군 진급자 신고를 받고 같은 자리에서 오찬까지 참석했다. 여기에는 합참 상황실에 있어야 할 합참의장도 동석했다. 합참 작전본부 주요 관계자들은 첫 번째 교전 소식을 듣고 지휘통제실로 달려왔으나 “적함이 불타고 있다”는 정병칠 2함대사령관의 보고에 일방적으로 승리한 교전인 것으로 알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이날 합참의 고위 장교 중 일부는 그동안 밀린 골프를 치러 갔다. 같은 시각에 서해에서는 사망 6명을 포함해 아군 24명이 사상당하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있었다.
작전은 대실패였다. 북한 도발 징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안이한 자세, 첩보 수집 활동의 제한, 함정 선체와 승무원의 방호력 미비, 두절된 통신과 부정확한 지휘 보고, 접적 수역에서 합동 작전 체계와 전력 운용의 미비점 등 우리 군에 내포된 각종 문제점이 일거에 드러났다.
당시 합참 정보작전과장이던 해군 출신 심동보 대령은 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7월 초, 이러한 문제점을 담은 합참의장 지휘서신을 작성해 이남신 의장에게 보고했다. 심 대령은 서신을 작성하면서 “이건 작전이 아니다”라는 생각까지 했다. 적의 기습에 제대로 응사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한 전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담겨 있는 지휘서신을 보고 이 의장은 탄식 조로 “이대로 하라”고 했다. 서해에서의 교전에 김대중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정권 말기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 그 여파로 김동신 장관이 경질되고 이준 장관이 새로 임명되었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잘못된 정책 때문에 의외로 간단히 붕괴될 수도 있다는 두 개의 끔찍한 경고가 있다. 하나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나톨 칼레츠키의 저서 <자본주의 4.0>이다. 이 책에는 세계 경제에 대해 가장 낙관적인 전망이 팽배하던 2006년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일어날 확률은 3조분의 1”이라며 배제했던 위기가 실제로 일어난 과정이 소개된다. 이 당시 위험이 다가오는 줄 몰랐고, 위기 발생 이후에는 엉뚱한 정책으로 대처하려 한 미국의 재무장관 헨리 폴슨에 대해 칼레츠키는 “스탈린과 모택동을 합친 것보다도 더 위험한 인물”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로버트 호메츠의 <자유의 대가>다. 이 책에도 미국의 국방장관 로널드 럼스펠드와 부장관 월포위츠 등 네오콘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대해 망상에 가까운 낙관론에 취해 있다가 몰락하게 된 핵심 이유들이 나와 있다. “이라크 전쟁은 역사상 최초로 전후 복구 비용이 수반되지 않는 가장 저렴한 전쟁”이라는 네오콘의 호언장담과 달리 이 전쟁은 끝을 알 수 없는 재앙 덩어리다. 이런 경고를 통해 초강대국 미국의 경제와 안보 시스템이 의외로 간단히 붕괴될 수 있는 가능성이 드러난다.
2010년 6월3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참수리-357호정 안보전시관’ 개관식에서 참석자들이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함정의 기습 공격으로 침몰한 고속정 ‘참수리-357호’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의 한반도 전쟁 계획은 무려 5개
이러한 비극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럼스펠드는 2002년 12월5일 이준 장관을 워싱턴으로 불러들여 국방장관 회담을 했다. 현대적인 군으로의 변환에 대한 럼스펠드의 갈증은 미래 한·미 동맹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는 데까지 나아갔다. 한·미 양국은 2년여 간의 전문가 논의를 거친 ‘미래 한·미 동맹 정책 구상에 대한 약정서(TOR)’도 체결했다. 이 보고서에는 훗날 주한미군의 대변환을 초래하게 될 핵심 기제인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담겨 있다. 이는 한국군이 한반도 방위를 전담하고 주한미군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로 변모하는 동시에 동북아 지역군으로서의 성격 변화, 즉 냉전형의 한반도 붙박이 군대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군대’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럼스펠드는 단순히 주한미군에 한해서만 동북아 분쟁 지역 어디라도 투입할 수 있는 신속대응군으로 변화하는 것을 고려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한·미 연합군’이 신속 대응 전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 전쟁 계획으로 기존의 작전계획 5027 외에도 우발 계획인 5026과 5028, 북한 급변사태 대비 계획인 5029, 태평양사령부가 수립한 5030이 탄생했다. 전 세계에서 미국이 한 지역에서 5개의 전쟁계획을 갖고 있는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다.
한국과 동맹 변환에 대해 원만한 협의를 이끌어낸 럼스펠드 장관은 크게 만족했다. 한반도 방위라는 협소한 목표를 넘어 중국 견제, 불량 국가 소탕, 테러 세력과의 전쟁 등을 위한 각종 글로벌 전략 수행을 위한 ‘지역 동맹’으로의 전환이 바로 그 방향이다. 새로운 동맹 변화의 대원칙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이준 장관과 함께 마치고 나오는 럼스펠드 장관의 얼굴은 시종 밝았다. 바로 그 럼스펠드의 미소 속에 새로운 전쟁이 준비되는, 한반도 전략 변화의 숨은 그림이 있었다.
출 처http://m.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