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2월이 되면 구세군 자선냄비가 매스컴에 등장한다. 나도 정읍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구세군 교회를 다녔다. 나만 다닌게 아니라 우리집 식구가 모두 구세군교회에 다녔다.아버지는 나중에 교회의 장로님의 직책에 해당하는 정교(오늘날의 상사 또는 원사에 해당하는 계급)가 되시기도 했다
구세군은 개신교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다른 특징이 있다.1) 군대식 조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교회라는 명칭보다는 군대 용어인 영문(병영의 개념)으로 부른다. 따라서 정읍 구세군 교회가 아니라 '구세군 정읍 영문'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명칭이다. 그리고 목사님이 아니라 담임 사관님이라고 부르며 군대의 장교에 해당하는 계급을 갖는데 우리나라에 구세군이 전래될 당시의 대한제국 군대의 계급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보통 교회의 목사님에 해당하는 담임사관은 계급이 부위 또는 정위(부위는 중위, 정위는 대위에 해당 규모가 작은 교회 또는 신임 사관은 부위이고 규모가 큰 교회거나 사관으로 오래 시무하신 사관은 정위의 계급을 갖는다. 신학교도 신학교 또는 신학대학으로 부르지 않고 사관학교로 부르며 특이한 점 중 하나가사관학교는 부부 동반으로 입교하교 일정한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발령을 받는데 부인과 같이 발령을 받아 부임하게 된다.이런 발령제도는 카톨릭 교회의 신부님을 교구청에서 발령하는 것과 같이 발령받은 임지에 부임해야 한다. 한번 발령 받은 임지는 거부할 수 없으며 . 각 교회의 윗 단계에 지방청이 있고 책임자를 '지방장관'으로 부르며 계급은 참령(소령에 해당). 지방청위에 한국 사령부가 있고 우리나라 구세군을 총책임지는 한국사령관이 있고 계급은 정령(대령에 해당)이다. 그아래 직책은 "전장 서기관"이 있는데 계급은 정령보 또는 부령이고 차기 사령관으로 지명을 받은 사람이 맡는다. 구세군의 발상지는 영국이고 당시 영국 사회는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고통 받는 하층민들이 많았는데 당시 기성교회에서도 하층민들에 대한 무관심함을 보고 윌리엄 뿌드라는 인물이 교회에 갈수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길가에 사람들을 모아 예배를 보기 시작한 것이 구세군의 시초 였다고 한다. 그리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 비누(SOAP)를 주어 씻게 하고 스프(SOUP)를 끓여 먹이고 구원(SAVATION)의 복음을 전파한다고 해서 구세군(THE SALVATION ARMY)로 부르고 가장 효율적인 조직인D군대식조직을 갖게하고 전투적인 선교활동을 했다. 그래서 악대를 동원해서 구세군 깃발(예수님이 흘린 피를 상징한 붉은 색기로 혈화기라고 부른다.) 앞세우고 악대가 찬송가(구세군에서는 찬송가라고 부르기 보다는 군가라고 부른다.) 시내를 행진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 후 거리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예배를 보기도 한다. 추운 겨울에 스프를 끓일 돈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길목에 스프를 끓이던 냄비를 걸고 "이냄비에 스프를 끓일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하고 호소하면서 모금을 한 것이 구세군 자선 냄비의 시작이엇고 지금도 연말이되면 세계 각지에서 자선냄비를 걸고 모금을 해서 불우 이웃을 돕는 행사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세군하면 제일 먼저 자선 냄비를 연상한다. 나도 고교 시절 교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자선냄비 모금활동에 참여한적이 꽤 여러번 있었다. 그런데 자선냄비 모금활동을 하는 시기가 1년 중 가잘 추울 때인 12월에 이루어지다 보니 날씨가 사람을 참 어렵게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날씨가 추우면 모금활동은 어렵지만 모금액수는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또 모금활동을 하는 장소 부근의 식당이나 가게에서 일부러 난로 를 뜨겁게 덥혀놓고 들어와 몸을 녹이도록 편의를 제공해준다. 엄동설한에 한데서 한시간 동안 오돌오돌 떨면서 모금활동을 하다가 교대한 다음 따듯한 난로가에서 몸을 녹이면 왜 그렇게 콧물은 나오던지 사방에서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끊임이 없이 들린다. 어떤 식당에서는 난로위에 손 안에 들어갈만한 크기의 돌을 언저 달군다음 헝겁으로 싸서 주머니에 넣어 손에 온기를 유지할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모금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바로 이런 분들이 자선냄비의 가장큰 부조를 하시는 분들이고 이 분들이 있어서 아직 세상은 따듯한게 아닌가 한다.
마지막으로 자선냄비와 관련된 우리 집안 일을 이야기하고 마칠까한다. 내가 1982년 11월 하순에 군에 입대를 했고 그해에도 우리 아버지가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에 참여하셔서 모금활동을 하셨는데 어느날 한전에서 감찰조사 비슷한 것을 받게 되셨다고 한다. 그 연유를 알아보니 누군가 투서를 했는데 한전 간부 직원이 길에서 구걸 행위를 한다는 내용이 그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한 위세를 떨치던 기관을 통해서 들어와 조사를 하는 것이고 신분상의 불이익이 있을 거라고 살며시 귀띰을 해주더라는 얘기를 들은 아버지가 구세군 정읍영문 담임 사관님에게 상의를 했고 이말을 들은 사관님이 전라 지방 장관을 경유해 한국 구세군 사령관에게까지 자선냄비 모금 봉사활동을 하던 신자가 구걸행위를 한다는 혐의를 받아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었다고 보고가 되었고 청와대 종교지도자 모임에서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한 기관의 대장 출신인 대통령에게 하소연을 했고 그말을 들은 대통령이 다시 자세히 알아보도록 지시를 내렸고 구세군 자선냄비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모금활동에 참여한 것을 알게되자 이번에는 불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포상을 받게 되어 그 포상으로 그 다음해인 1983년 6월에 서울로 전근을 오시게 되었다는 황당한 얘기가 실화로 아버지에게서 직접 들은 사실도 자선냄비와 관련된 후일담으로 남아있다. 모쪼록 우리 친구들은 자선냄비모금을 외면하지 말고 액수를 떠나 작은 성의를 표하는 따듯한 마음씨를 보여주시기를........이번 겨울들어 제일 추운날에 강원도에서
삼척동자 장무열이 두서없이 주저주절 개발 새발 한손 독수리 타법으로
올들어은
첫댓글 삼척동자 덕분에 구세군의 역사와 정보, 가족이 구세군에서 활동한 내력을 자세히 알게 되었네~!
무열친구 좋은 정보 감사. 올해엔 무열친구를 생각하며 자선냄비를 찿아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