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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곡 정제두 선생, 「본성을 깨달아 실천하는 글(定性文)」과 앎(知)
출처 : 『存言』, 第16-18條
2024년 10월 26일
한 달 전에 하정숙 선생님께 하곡 정제두 선생의 「정성문(定性文)」 3편을 해서체로 써서 족자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10월 31일 중국 절강성 소흥(紹興)에서 열리는 왕양명 선생 고거(故居) 낙성식에 함께 가서 주고 걸어놓으려고 부탁하였습니다. 하정숙 선생님은 하곡학 연구원에서 하곡학과 양명학을 15년 넘도록 공부하고 또 이광사 선생의 철학사상과 서예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정성문(定性文)」 3편은 2013년 9월 23일에 공부하였는데 당시에는 도교와 불교를 함께 이끌어와서 설명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정숙 선생님이 이때 공부한 「정성문」 3편을 행서체로 써서 2022년 6월 29일 서예전시회에서 전시하였고 이번에도 몇 번이나 읽고 또 해서체 글씨를 보름 동안 열심히 연습한 뒤에 써서 보내왔습니다. 족자를 보니 많은 정성을 들여 썼습니다.
저도 족자를 보고 3편 문장 길이와 말뜻이 뭔가 이상하기에 며칠 동안 몇 번이나 천천히 읽어보고 때때로 가만히 앉아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말뜻 맥락을 보니까 말뜻이 서로 엉키고 또 말뜻이 이어지지 않고 중간중간에 끊겼습니다. 제2편이 가장 엉망입니다. 그래서 「정성문」에서 굵은 글씨 본문과 잔글씨 주석을 모두 펴놓고 읽고 떠오르는 말뜻 맥락을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하곡 정제두 선생이 처음부터 3편을 지으려는 것이 아니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3편이나 지었을 수도 있고 또는 필사 과정에서 본문과 주석이 서로 섞였고 또 어떤 단락은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1편 주석을 제2편 본문에 옮겨 넣고 다시 본문을 구성하여 읽어보니 조금 맥락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족자를 다시 고쳐 썼는데 정성문 제1편을 따로 쓰고 제2편과 제3편은 원문대로 두고 모아서 썼습니다. 아래와 같이 문장을 재편집하고 번역하였습니다.
「정성문」에는 심학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心)과 최고 작용(神)을 비롯하여 몇 가지 수양공부를 들어 설명하고 수양공부에서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앎(知, 지혜)이라고 결정하였습니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천리와 만물, 만물을 낳고 주재하는 마음의 인식(精)과 최고작용(神)과 도덕 원칙(衷, 皇極天則)을 비롯하여 도교 수양공부에서 말하는 정기신(精氣神) 지식과 이해가 담겨있고 또 불교 법상종에서 말하는 유식론(唯識論) 지식도 담겨있습니다. 정제두 선생은 정주 성리학을 넘어 유불도 삼교의 심성론과 공부론을 융회(融會)하여 유학으로 이끌어 나왔다고 봅니다. 결론에서는 앎(知)를 강조하였습니다. 「정성문」의 전체적인 뜻은 정명도의 「정성서(定性書)」보다는 성리학에서 참구(參究)하던 『대학』의 대인(大人) 또는 불교에서 말하는 관세음보살의 14종 무외공덕(『능엄경』)을 닮았습니다.
유학에서는 맹자의 철학사상과 수양공부(『孟子、盡心上』︰“盡其心者,知其性也。知其性,則知天矣。存其心,養其性,所以事天也。”知性階段︰盡心知性知天;養性階段︰存心養性事天)를 핵심으로 삼고 다시 『대학』과 『중용』의 계신공구(戒愼恐懼, 愼獨) 수양공부도 강조하였습니다. 수양공부에서는 본성을 원만하게 깨달은(性定) 경지를 구체적으로 물격지지(物格知至, 使萬物各得天理, 位育功化)의 최고경지라고 설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본심을 깨달으면서(立心은 맹자의 盡心에 가깝고 또는 불교처럼 대보리심을 발원하여 수양공부하면서) 이기심을 극복하기(立心克己) 위하여 계신공구(戒懼)와 존심양성(存省 글자보다는 맹자의 存心養性) 공부과정도 설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하곡 정제두 선생의 심성론과 수양공부를 보면 『중용』의 존덕성(尊德性)을 핵심으로 삼은 성종(性宗)이라고 판단하며 물론 앎(知)을 핵심으로 식심(識心)을 바꾸는 것은 상종(相宗)에 속합니다. 그래서 2010년 9월 13일에 하곡학 연구원 설립하고 설립 취지는 「정성문」 3편에 근거하여 존성(尊性)이라고 설정하였습니다.
불교의 유식론 지식도 담겨있습니다. 아래 단락에서 명백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蓋乎天地萬物之精,發而開竅于心,賦而命德于性。
一點靈明,感通爲竅,天則之眞,無不具足。
天地萬物을 蓋(「八識規矩頌」,第六識頌︰“三性三量通三境。” 第六識은 三性과 三量과 三境 모두에 能緣한다.)하는 精은 사실상 불교에서 말하는 境(外境과 帶質境과 獨頭境 포함)을 인식하는 識(五俱意識과 第六識)입니다. 識을 발동시키고 5개 감각기관(根)과 識(前五識)이 외경(境)에 攀緣하여 생각하는(了知, 分別) 것에 협력하는 제6식이며 제6식의 본원이 심(心)이라고 말하는데 심(心)은 소위 아뢰야식(阿賴耶識)이고, 아뢰야식에 도덕을 부여하고 명령하는 주체가 본성(性)이라는 말은 소위 여래장(如來藏)입니다. 물론 여래장은 소극적이고 아뢰야식이 적극적인 조업(造業) 역할을 담당합니다. 송대 성리학 이기론(理氣論)에서는 이(理)가 불변(不變)으로서 소극적이고 기(氣)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能緣能作)을 담당한다고 보는데 불교의 이심론(二心論)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또 주목할 것은 입심극기(立心克己)의 전체적인 뜻인데 물론 입심(立心)은 맹자의 진심(盡心)에 가깝고 극기(克己)도 성리학에서 많이 말하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많이 말합니다. 그렇지만 법상종 轉識成智 과정에서 먼저 제6식을 바꾸면서(立心) 제7식(克己에서 己는 제7식 末那識이고 我를 말함)을 바꾸고 다시 제6식과 제7식 둘이 제8식(阿賴耶識)을 바꾸는 전성(轉成) 과정의 순서를 말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타고난 本有를 설득하려고(心佛眾生三無差別) 여래장이 가끔 아뢰야식에서 발현되는 현상을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일점 영명(一點靈明, 때때로 드문드문 조금씩 우연히 나타나는 영명)이란 말로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심성(精心性)은 도교의 정기신(精氣神) 삼보(三寶)보다는 불교의 식심성(識心性)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불교 관점에서 보면 “日新須要日日新” 구절은 유가의 말이지만 오히려 불교 轉識成智의 점진적 과정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 여러 구절에서는 三界唯心造라는 唯識無境을 나타냈습니다.
“萬物無得動吾心,心中寧有可少物?” 구절에서는 見道位 또는 無想定에 도달하였더라도 미세한 근본번뇌가 아직 남았기 때문에 더욱 修習하여 斷滅하여야 한다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마치 「唯識三十頌」 “現前立少物,非實住唯識” 구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또 불교의 成自性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곡 정제두 선생은 조선 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앎(知)이고 계신공구(신독 포함) 공부를 거쳐 앎을 깨달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 앎을 깨달아야만 본성이 先天에서 받은 본체라는 것을 알고 또 수양공부로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知惟其主愼惟功 ; 物致其知,性斯天出 ; 物致其知,性斯天復) 그런데 불교 오위법에서 보면 계신공구 수양공부는 복덕과 지혜를 쌓아가는 자량위와 가행위를 거쳐 본성을 깨닫는 견도위에 올라가는 방편(未到定) 공부이고 맹자의 존심양성(存養)과 『중용』의 진성(盡性) 수양공부가 수습위와 구경위에 분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제두 선생은 앎(知)의 학술적 근거를 맹자의 지성(知性)에 두었고 또 지성(知性)과 양성(養性) 두 단계를 두었는데 불교에서 견도위와 수습위 둘로 나눈 것과 닮았습니다. 이것은 장재를 비롯하여 정명도와 정이천 및 주희 모두 맹자의 이 구절을 모두 성인의 입신(入神) 경지라도 동등하게 보았던 견해를 부정하고 두 단계로 이해하여 성리학에서 심학의 수양공부 단계를 설정하였습니다.
정제두 선생이 건립한 조선 심학에서 앎(知)은 수양공부의 처음이고 끝이며 심성론과 수양공부론의 핵심이었습니다. 앎은 유가에 그치지 않고 도교와 불교까지 융합하여 설명하고 설정하였다고 평론합니다. 물론 왕양명은 앎(良知)를 유식학의 영향을 받아 第六識의 自證分(또는 제8식의 自證分을 말하며 護法의 正義이고 玄奘과 窺基의 전승입니다.)으로 보려고 시도하였습니다만 정제두 선생은 오히려 맹자 지성(知性)의 지(知)에 근거를 두고 또 불교의 지혜(四智)에 가깝게 설정하였습니다.
하곡 정제두 선생의 「정성문」 3편은 짓는 과정에서 써놓은 글이며 3편이 따로따로 문맥을 잇고 있으나 오히려 첫째 글을 짓다가 나머지 2편도 썼고 1편을 고르는데 결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제두 선생이 젊었을 때 각종 서적을 많이 읽었다고 전해오는데 아마도 불교 서적도 상당히 많이 읽고 깊이 이해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지 「정성문」 3편은 조선 심학을 대표하는 학술종지를 담은 아주 큰 글이며 현장(玄奘)의 「팔식규구송(八識規矩頌)」에 견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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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을 깨달아 실천하는 글(定性文)」
첫째 글 :
천지 만물을 누가 주재하시는가?
사람의 마음이요 마음에서도 신(神)이 최고 주재자입니다.
하늘께서 올바른 도덕(衷)을 내려주시고 또 하늘은 도덕을 밝게 아는 앎도 내려주셨네,
따라서 내 마음에는 하늘에서 내려주신 최고의 도덕 원칙을 타고 났습니다!
이 도덕 원칙이 내 생명의 근원이며 만물을 주재하는 주재자이며,
따라서 만물을 체감(體感)할 수 있고 만물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
(말뜻 : 내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기에 만물을 체감(體感)할 수 있고 만물의 군주이기에 만물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는 모든 천리를 갖추었고 모든 일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만물의 등급이 많더라도 모두 내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물의 종류가 아무리 많더라도 모두 내 마음이 지어낸 작용입니다.
천하의 본원은 내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하늘과 땅의 어떤 것도 내 마음의 본체와 작용을 비유하여 설명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내 마음의 큰 근본을 깨달으면 어떤 외부 만물에도 근본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타고난 본성을 깨닫는다면 모든 만물이 순리대로 역할을 다합니다.
따라서 만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이치를 깨달으면 나의 본성도 하늘에서 원만하게 내려주신 것을 알게 됩니다.
내 마음을 깨닫고 이기심을 극복하려면 계신공구하고 존심하며 반성하여야 합니다.
계신공구하고 존심하며 양성하는 수양공부가 지극한 덕성에 이르지 못하면 지극한 하늘의 도리를 이루지 못합니다.
둘째 글 :
천지 만물을 아는 인식 주체는 내 마음의 정(精)이요,
천지 만물을 주재하는 인식 작용은 내 마음의 신(神)입니다.
따라서 천지 만물은 내 마음이 알기 때문에 마음이 만물을 주재할 수 있습니다.
천지 만물을 모두 알아차리는 인식 주체(精)가 발현되는 곳은 마음에서 열려져 나온 것이고 마음은 본성에서 도덕을 명령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마음의 한 점 영명(靈明)이 만물을 인식하고 작용하는(感通) 것이 감각기관이며,
여기에는 하늘이 내려주신 참된 법칙 모두 갖추었습니다.
이 영명이 천지 만물의 주재자이며, 천지 만물의 제어자이기 때문입니다.
외부 만물이 내 마음을 흔들 수 없더라도 마음속에 어찌 아주 작은 장애(少物)가 없겠습니까
따라서 본성을 깨닫고 만물마다 각기 본성을 따른다면 지극한 본성을 원만하게 깨달은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앎(知, 智慧)이 본성을 깨닫고 만물마다 각지 본성을 따르게 하는 주인공이기에 계신공구가 앎을 깨닫는 수양공부의 핵심입니다.
계신공구 수양공부를 날마다 할수록 앎(知, 지혜)은 날마다 새롭게 바뀌기에 반드시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바뀌도록 열심히 공부하여야 합니다.
앎이 지극한 덕성에 이르지 못하면 지극한 하늘의 도리를 이루지 못합니다.
셋째 글 :
천지 만물을 다스리며 작용하는 신(神)은 내 마음 안에 있습니다.
마음속의 신(神)은 만물을 낳을 수 있고 모든 도리를 부여하여 형체를 이루어줍니다.
만물의 종류가 아무리 많더라도 모두 내 마음이 지어낸 작용입니다.
따라서 내 마음의 큰 근본을 높이 깨달으면 외부 만물이 마음을 흔들 수 없습니다.
타고난 본성을 깨닫는다면 모든 만물이 순리대로 역할을 다합니다.
따라서 만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인식의 근원인 앎(知, 智慧)을 깨달으면 나의 본성을 하늘이 내려주신 원만함 그대로 되찾습니다.
내 마음을 깨닫고 이기심을 극복하려면 계신공구하고 존심하며 반성하여야 합니다.
계신공구하고 존심하며 양성하는 수양공부가 지극한 덕성에 이르지 못하면 지극한 하늘의 도리를 이루지 못합니다.
「定性文」︰
天地萬物,孰爲之主?曰惟人心,乃其神首。
帝降其衷,天縱其明。維皇之極,維帝之則!
有生之源,有物之君。是能體物,是能命物。
萬理以備,萬事以興。有萬其品,皆是其物。
有萬其倫,皆斯之用。天下之本,於是而出。
擧天地間,無能喩者。立其大者,物莫能奪。
性苟得定,物無不職。物致其知,性斯天出。
立心克己,戒懼存省(存養)。苟不至德,至道不凝。
又一本︰
天地萬物,心是其精。天地萬物,心爲其神。
物者心之有,心所以宰物。
蓋乎天地萬物之精,發而開竅于心,賦而命德于性。
一點靈明,感通爲竅,天則之眞,無不具足。
以爲天地萬物之主宰,以爲天地萬物之權衡故也。
萬物無得動吾心,心中寧有可少物?
性定物順斯至性,知惟其主愼惟功。
日新須要日日新,苟不至德道不凝。
又一本︰
天地萬物,其神在心。是能生物,萬理以形。
有萬其倫,皆心之用。尊立其大,物無能動。
性苟得定,物無不職。物致其知,性斯天復。
立心克已,戒懼存省。苟不至德,至道不凝。
참고자료 少物︰
護法菩薩,『成唯識論』曰︰“(『唯識三十頌』︰)‘現前立少物,謂是唯識性。以有所得故,非實住唯識。’論曰︰菩薩先於初無數劫,善備福德、智慧資糧,順解脫分,既圓滿已。為入見道,住唯識性,復修加行,伏除二取(我法二取隨眠種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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