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히 할 때와 더디 할 때
성경본문: 전도서 5:1-7
1.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6.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 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7.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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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19-20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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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영 목사
퐁테느의 우화에 보면 쥐와 소가 뺨맞기 내기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빨리 달리기에서 소가 쥐한테 지고 뺨을 한 대 얻어맞았습니다.
꾀 겨루기를 해서 소가 또 지고 뺨을 두 대를 얻어맞습니다.
그리고 새끼 많이 낳기에도 또 소가 지고 뺨을 세대 얻어 맞는다는 얘기입니다.
덩치만 크고 실속이 없는 것보다 적지만 신속, 지혜, 생산성이 뛰어난 것이 제일이라는 서구적 교훈입니다.
그러나 이 우화를 정반대로 뒤집어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20세기의 석학 버트랜드 럿셀 경입니다.
그는 "게으름의 철학"이란 책에서 쥐가 소를 이긴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먼 안목으로 볼 때 서양 문명은 신속은 졸속이 되고, 지혜는 교지가 되며 다산은, 저질을 양산시켜 서양 문화를 타락시켰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동양은 그 걸음으로 오랜 전통을 이어온다는 것입니다.
빠른 것을 좋아하기로는 우리나라 사람을 당할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미국을 여행 중이던 한국인 몇 명이 중국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체되자 "짜장면 빨리 줘요" 하고 소리 쳤습니다.
그러자 주방장인 듯한 사람이 눈을 부라리며 나와 당신들 한테는 음식 안팔테니 나가 달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그놈의 빨리빨리 소리 듣기 지겨워 미국으로 도망 왔는데 여기까지 좇아와서 빨리빨리냐, 어서 나가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신속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천천히 해야 할 것까지 서두르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속히 할 것과 더디 할 것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전도서 5:1-7절의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전에서 "네 발을 삼가라" 하였습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심성 있고 경외심 있는 행동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다음은,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보다 나으니라" 하였습니다.
말씀을 잘 배우는 것이 다시 말하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예배보다 낫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서원을 함부로 하지말고 서원을 했으면 반드시 갚으라고 합니다.
서원이란 사람이 하나님께 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 한 약속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 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멸하신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성급한 서원대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1:19-20절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먼저, "듣기는 속히하고" 하신 말씀은 자기 주장보다 먼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라는 말씀입니다.
"말하기를 더디하라"는 말씀은 상대편의 말은 다 알아 듣기도 전에 성급하게 판단하고 성급하게 정죄하는 과오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내지 말라"는 말씀은 상대편의 잘못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냄, 정죄, 고집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위의 말씀을 중심으로 속히 해야 할 것과 더디 해야 할 것을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
전도서 5:1 하반절에 "말씀을 듣는 것이…" 하신 말씀이나 야고보서 1:19 중반절에 "말하기는 더디하며…"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빨리 순종할수록 좋고, 사람에게 하는 말은 더딜수록 좋다는 말씀입니다.
유대 랍비들은 "빨리 듣고 더디 잊는자가 지혜롭고, 더디 듣고 속히 잊는자가 미련한자"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어느 기관의 통계를 보니 사람들은 대화 중에 상대편의 의도를 속단하는 경우가 67%, 잘못 알아듣는 경우가 34%나 된다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일상 대화는 50%는 잘못 이해하고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뜻입니다.
가장 가까운 남편과 아내의 대화도, 부모와 자녀의 대화도, 직장의 상사와 부하의 대화도, 동료와 동료 사이의 대화도 결국 반은 딴 소리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과오를 줄이려면 말을 더디 해야 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유대 랍비 중 유명한 시므온은 "나는 지혜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는데 침묵을 모르는 자로 쓸모 있는 자를 본 일이 없고, 말 많은 자로 남에게 유익을 주는 자를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집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정치인, 실업인, 군인, 문인, 그리고 괴테의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여서 늘 하는 말이 남의 뒷 얘기나 음담패설을 일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날이면 괴테는 늘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친구들, 음식 찌꺼기나 휴지쪽지는 버리고 가도 괜찮지만 쓸데없는 말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주워 가지고 가시오. 우리집 공기를 더럽히는 것은 싫습니다."
말에도 무게와 품위와 수준이 있습니다. 말은 더디 할수록 무게와 품위와 수준이 있는 말이 됩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용서는 속히 하고 분내는 것은 더디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19 하반절에 보면, "…성내기를 더디하라" 하였습니다.
여기 "성내기를 더디하라"는 말씀은 "성을 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때로, 의분의 필요성을 감안한 말씀입니다.
유대의 랍비들의 교훈서에 보면 "비록 그것이 정당한 분노라 할지라도 용서하는 것만 못하며, 용서는 노여움을 사라지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살다보면 화가 날 때도 있고 스스로 삭이기 힘든 분노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는 사람 관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분노를 소극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고, 분노를 적극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분노가 다스려지는 곳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됩니다.
프랑스의 루이 8세의 딸 이사벨라 공주는 그의 생명을 노리던 정적이 잡혀오자 분노와 증오심에 떨렸으나 독실한 천주교인이었기에 성당으로 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내 생명을 해하려던 원수가 잡혔습니다. 지금 제 가슴에는 복수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불을 꺼 주시고 용서할 마음을 주시옵소서."
이때,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일생동안 쌓은 선으로도 나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더니, 오늘 네가 원수를 용서함으로 나를 감동시켰으니 네 일생에 지은 모든 죄를 내가 용서하리라"
이사벨라 공주는 많은 교회와 고아원을 세운 여인이었으나 한번의 용서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이 얘기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해주는 얘기입니다.
용서는 속히 하고 성내기는 더디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옛 서원을 속히 갚고 새 서원은 더디 해야 합니다.
전도서 5:4 전반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께 서원 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였습니다.
서원이란, 사람이 하나님께 한 약속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위급한 일을 당하거나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는 쉽게 하나님께 약속을 합니다.
"이번만 살려 주시면…" "이 일만 이루어 주시면…" 그러나 어렵게 고비를 넘기고, 뜻이 이루어지고 나면 얼마 안가 그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서원을 잊어 버려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신속히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입이 내 몸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 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멸하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서 5:7절의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하신 말씀은 지킬 수 없는 헛 서원보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서원을 하고 서원을 지킨 성도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사기 11장에서 어려운 서원을 지킨 사사 입다를 볼수 있습니다.
기생의 몸에서 태어나 형제들과 동족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나 암몬 족속이 쳐들어오자 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입다는 지난날 쫓겨날 때의 수치를 개의치 않고 선뜻,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 나섭니다.
그는 전쟁터로 나가기 전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편안히 돌아오게 하시면 누구든지 내 집에서 나와 나를 영접하는 자를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약속을 했습니다.
전쟁에 대승리하고 개선 장군이 되어 돌아올 때 이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뛰어 나온 것이 무남독녀 외딸이었습니다.
입다는 옷을 찢으며 탄식하였으나 그 서원을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입다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패전을 모르는 장수가 된 것입니다.
속히 해야할 일을 머뭇거리면 허물이 됩니다.
더디 해야 할 것을 서두르면 죄가 됩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도 더디 하고
용서는 속히 하고 노하기를 더디 하며
옛 서원을 속히 갚고 새 서원은 더디 하고
오직 여호와만을 경외하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