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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
바벨론의 상품 (계 18:12-15)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영분별 은사>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던 바벨론의 상품이 무엇인지 푸는 중요한 힌트는 11절의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한 말씀입니다. 즉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 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오직 육신에 속한 사람들만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내놓는 바벨론의 상품이란 사탄이 그럴듯한 온갖 거짓으로 사람들의 코를 꿰어 일생 세상에 붙들어 두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모든 속된 미끼들입니다(롬1:29-32). 마치 라반이 야곱을 두 딸 등을 미끼로 해서 20년을 부려먹고도 모자라 삯을 변역하고 최후로는 죽이려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미끼는 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사탄의 상술이 뛰어나서 온 세계가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벨론 상품은 교묘한 속임으로 헛되고 헛된 것을 위해 살게 함으로 인생을 망치려는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상품들에 대한 연구는 인생길 가는 동안 실족하지 않고 바른 길 가도록 돕는 영분별의 지혜가 될 것입니다.
세상이 현혹하는 바벨론의 상품의 특징은?
1. 절대 가치 있어 보입니다.
"그 상품은 금과" 여기서부터 가치와 관련된 보물류들인데, 먼저 금은 신성의 상징입니다. 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성막이나 성전에서 많은 기구 등이 금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처럼 위대하게 보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하나님처럼 보이고 명예 권력 쾌락이 그렇게 보입니다(롬1:22-23, 빌3:18-19, 요일2:15-16). 하와가 뱀에게 꾀어 하나님 같이 된다는 말에 선악과를 먹었던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붕붕 뜨게 만듭니다.
2. 무엇이라도 팔아 사고 싶은 것들입니다.
"은과" 은은 화폐로 많이 쓰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속의 상징으로 쓰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귀히 여기셔서 자기와 맞바꾸셨습니다. 이처럼 어떤 것을 희생하고라도 사고 싶게 우리 눈에 보입니다. 문제는 보잘 것 없는 세상 것을 위해 귀한 영적인 가치를 포기하는데 있습니다. 에서는 식욕 때문에(히12:16), 사울은 교만 때문에, 가룟 유다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망했습니다.
3. 하늘 영광보다 더 귀해 보입니다.
"보석과" 보석은 원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고난을 통과한 영광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고난 없이 영광을 준다고 말합니다(마4:8-10). 세상에서 영광을 받아버리면 하늘에서 받을 것이 없는데 사람들에게 칭찬 듣기 바라고 이름을 내고 자랑하기 원하는 것들이 그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토록 무가치한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요12:42-43).
4. 한이 맺도록 갈망하는 것들입니다.
"진주와" 진주는 조개의 고통 속에서 만들어지듯 고난의 연단 속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신앙이나 참 지식을 의미합니다(히5:8-9, 잠3:15). 그런데 세상도 진주를 만들어줍니다. 사랑에 한 맺히고, 돈에 한 맺히고, 인간관계에서 한이 맺혀 나름대로 진주가 만들어집니다. 그 결과 돈에 한이 맺혀 자신도 쓰지 않고 남에게도 주지 않고 헌금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귀한 결실 같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보잘 것이 없는 것입니다.
5. 죄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상품도 있습니다.
"세마포" 여기서부터 옷감에 대한 소개입니다. 옷은 신분과 관계가 있는데, 바벨론 상품으로서 세상이 입혀주는 세마포란 무얼까요? 성도들이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거나 거룩한 행실의 세마포를 입는데(계22:14) 세상도 죄와 관계없이 생생하게 살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세속에 뒹굴면 죄악에 단련되어 죄의식이 사라집니다(벧후2:14-15). 죄악된 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시대가 점점 악하여 소돔의 관원들이 만든 악법 때문에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사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딤전4:1-2).
6. 신분을 상승시켜 준다는 상품도 있습니다.
"자주 옷감과" 자주 옷감은 고가라서 주로 로마 귀족들이나 공을 세운 장수들만이 입었습니다. 당시 노예가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신분 상승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타락한 이후 세상이 죄 짓는 자유를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 자색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던 부자와 같이 마음껏 놀라고 하지만 그런 자유는 방종이지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7. 의무감에서 해방시켜 해준다고 합니다.
"비단" 비단은 부드러운 옷으로 윤택하고 편하게 살던 헤롯의 옷입니다(마11:7-8). 헤롯은 다윗의 정통성과 거리가 먼 이두매 즉 이방 에돔 사람으로 로마에 가서 돈 주고 아부하고 왕위를 받아온 사람입니다. 편법으로 참 편하게 사는 자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편하게 살라고 유혹합니다. 신앙생활도 편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다 세상의 소리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길은 넓고 편안합니다(마7:13-14). 그러나 멸망의 길입니다.
8. 환난도 고통도 잊게 해준다는 상품입니다.
"붉은 옷감이요" 붉은 옷은 왕이 입는 홍포인데, 잠31:21을 보면 겨울을 이기는 따뜻한 옷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환난도 고통도 슬픔도 과거도 느끼지 않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노래 춤 술 마약 여자 오락 노름 현실도피 등, 고통을 아주 잊기 위해서 자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살 후에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9. 보람되게 살게 해준다는 상품입니다.
“각종 향목과” 여기서부터 나무 그릇에 관한 상품입니다. 향목은 아프리카의 향기 좋고 색깔 좋은 시트러스 나무로서 품질이 뛰어나서 값비싼 사치품에 활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연약한 인성을(눅23:31, 막8:24), 향기는 희생을, 그릇은 쓰심의 상징입니다(딤후2:20-21). 이처럼 연약한 몸이지만 주를 위해 희생하면 얼마나 보람된 일입니까? 세상 역시 나름대로 보람된 일을 위해 희생하며 살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일에 올인하며 짐승인지 기계인지 모르고 살게 합니다(마6:31-32). 그 결과 신앙도 건강도 가족도 다 잃고 맙니다.
10. 존귀하게 하겠다는 상품입니다.
“각종 상아 그릇이요” 상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가로 거래되는 값진 상품입니다. 상아는 결이 곱고 단단하여 세공에도 알맞아 부요와 권세와 미의 상징이었습니다(아5:14, 7:4, 왕상10:18, 왕상22:39, 시45:8, 암3:15). 그런데 상아 그릇은 크기와 쓰임새에 비해 희생이 너무나 큰 산물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보잘 것 없는 것을 위해 큰 희생을 치릅니다. 가령 정권 유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혹은 전쟁을 일으켜 모두가 절망에 빠집니다. 정권 가진 한 사람을 위해 온 나라가 노예가 되기도 합니다.
11. 특별한 사람을 만들어준다는 상품입니다.
“값진 나무와” 바벨론 상품으로 값진 나무 그릇이 소개됩니다. 나무 그릇은 천한 그릇인데 값지다면 특별한 나무입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인성의 상징입니다(눅23:31, 막8:24). 인성이란 인간의 속성으로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가르침은 뭐라고 말합니까? ‘믿을 건 너 자신 밖에 없다. 네가 하나님이다. 그러니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해라.’ 이방종교에서는 이런 거짓된 소리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어디까지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하나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하면서 쓰임 받는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하나님께서 모세처럼 귀하게 써주십니다. 인본주의에서 비롯된 생각으로 자신을 망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2. 순수한 자로 만들어준다는 상품입니다.
“구리와” 개역성경에는 구리를 “진유”(眞鑐)라 했는데 순수한 구리라는 뜻으로, 성경적에서도 구리로 거울 악기 물두멍 등을 만드는 등 순수한 일에 사용되었습니다(겔1:7, 고전13:1, 출38:8). 구리 그릇이니까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거룩한 일군인데(딤후1:3-5), 세상은 그렇게 인정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세상에서 흠 없는 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이력, 경력, 자기 감추기, 거짓말, 외식, 체면, 연기, 분장, 표정, 성형수술, 음성까지,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안 통합니다.
13. 강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상품입니다.
“철과” 그러니까 철그릇입니다. 성경에서 철은 강함의 상징입니다(단7:19). 그래서 가나안의 철병거는 청동기시대에 머물렀던 이스라엘에게는 대단히 힘든 상대였습니다. 강하게 쓰임 받으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렘1:17-19). 이처럼 세상도 강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술 마셔라. 마약도 해라. 문신도 해라. 화도 내라. 굽히지 마라. 폭력도 써라. 소영웅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강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별 짓을 다합니다.
14. 영광스럽게 만들어주겠다는 상품입니다.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옥석의 기명으로도 번역 되었는데 대리석 그릇입니다. 돌은 침묵과 비천의 상징인데(눅19:40) 빛나는 옥석은 그 반대로 찬양과 영광의 자재입니다(눅21:5). 이처럼 세상은 대리석으로 만든 그릇처럼 천하영광 부귀공명을 가득 담아주려고 그것을 마음에 품어라. 가져라. 꿈꿔라. 절해라.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던 것과 같습니다(눅4:5-7). 그런데 세상이 주는 영광은 희망사항일 뿐, 진짜 영광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영광이 주어진다 해도 그것은 땅의 영광일 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내가 다 영광 받으면 하늘의 상이 없습니다(마6:1-4). 이처럼 성경은 바벨론 상품을 통해서 우리가 실패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15. 바벨론 상품은 쾌락의 상품입니다.
“계피와” 여기서 부터는 각종 향료에 대한 것입니다. 계피는 성소의 거룩한 관유 제조에 쓰였지만(출30:25), 부정적인 용례로는 잠7:17에 음녀가 침구에 뿌리고 사람을 맞는 향수로도 쓰였습니다. 이처럼 계피는 쾌락의 상징입니다(엡5:5-6, 잠5:3-6). 이처럼 세상은 쾌락으로 유혹하지만 세상이 주는 쾌락은 우리 영혼이 죽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 대신 우리를 사랑하사고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천국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6. 지극히 위해 주겠다는 상품입니다.
“향료와” 인도나 아프리카의 관목에서 나는 것으로 값진 향료와 두발용 향유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에 부어드렸던 그 나드향입니다. 나드향은 향내가 좋고 비싸고 신경안정제로서도 효과가 뛰어났습니다. 나드향은 술람미가 신랑에게 부은 향유로(아1:12), 신혼의 향취이기도 했습니다. 이 향유를 붓는 것은 지극한 대접이나, 최고의 주인공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우리를 대접받는 주인공으로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배까지도 내가 은혜 받고 내가 행복하고 내가 형통하고 내가 복 받고 이렇게 나나나 내가 주인공이 되면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은혜도 받지 못합니다. 세상종교나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에 세상이 틈타면 실패합니다.
17. 소원을 성취시켜 주겠다는 상품입니다.
“향과” 성경에서 향은 기도입니다(계5:8, 시141:2, 계8:3). 율법에 자기를 위해서는 향을 만들 수 없습니다(출30:37-38). 그런데 향이 바벨론의 상품으로 나온다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소원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세상은 이기적 소원성취 기도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소원성취 얼마나 매력적인 상품입니까? 그러나 자기만을 위한 기도는 응답을 막는 가장 어리석은 기도입니다(마6:31-32).
18. 다 잊게 해주겠다는 상품도 있습니다.
“향유와” 여기 향유의 성경적 용례는 부활하신 새벽에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부으려고 가져갔던 그 향유로 보입니다(눅23:55-56). 이 향유는 시체에 바르려고 한 것을 볼 때 몰약으로 추측됩니다. 몰약은 마취제 역활을 하는 향유입니다(막15:22-23). 이처럼 세상은 마취를 약속합니다. 다 잊어라. 고통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꺼내놓아야 하는데 잊어라. 양심이 이건 아니라고 채찍하는데 난 모르겠다. 이웃과 형제의 고난을 보고도 난 모르겠다. 말도 칭찬하는 말만 듣고 도움 되는 말은 회피합니다.
19. 치료와 용기와 낙을 준다는 상품입니다.
“유향과” 유향은 성막에서 쓰는 기도향이요(출30:34), 왕에게 드리는 보물이요(마2:11), 소제와 함께 불살랐고(레2:1-16), 진설병 위에 얹어졌으며(레24:7), 창상 치료제이기도 했습니다(렘51:8, 렘8:22 ). 그러나 속죄제나 의심의 소제에는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몰약이 고난을 예표하는 개념이라면, 유향은 부활과 성령강림 등을 나타냅니다(아3:6, 4:6). 유향이 보스웰리아인데 사용해 보면 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우리에게 위로와 치료와 보물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위로를 위해 춤추고 노래하고 오락을 즐깁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오는 허무가 더 큽니다. 세상에서 만족과 위로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말입니다.
20.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을 주겠다는 상품입니다.
“포도주와” 여기서부터 고급 식료품들입니다.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 나오는데 이것은 상고들이 취급하던 식료품들로 부자들이 먹던 고급식품이요, 성전에서 전제나 소제로 드려지던 제물이기도 합니다. 포도주는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전10:19),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도 도취에 빠지게 하는 것들이 많은데 하나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해야지 세상을 즐거움으로 삼으면 부자 농부와 같이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21. 인생의 소망하는 꿈을 이루어주겠는 상품입니다.
“감람유와” 성경에서 감람유는 성령의 상징으로 쓰였고, 성별의 상징으로 발랐으며(민3:3, 7;1, 삼상10:1), 제물용, 조리용, 등화용, 접객용, 치료용, 화장용, 관유용 등으로 쓰였습니다. 감람유는 성령의 기름의 상징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귀한 직분을 주시고 사명과 꿈이 주어지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불태웁니다. 그런데 세상도 허망한 것을 위하여 정열을 불타게 합니다. 록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죽기도 합니다. 그 열기는 교회부흥회보다 몇 배나 더 뜨겁습니다.
22. 더 온전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고운 밀가루와” 거친 가루보다 귀히 여기는 제물입니다. 고운 가루가 되려면 형체가 남지 않도록 갈듯이 온전히 부서지고 깨뜨러지는 자아처리를 가리킵니다. 자아처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를 주로 삼고 자의로 행치 않으며 그 말씀에 순종하고 경건생활의 본을 그대로 열심히 전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처럼 세상도 우리를 곱게 처리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도덕 수양 고행 교육 등은 본질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며, 세상종교 역시 무아지경 해탈 등 심리적 조작으로 그 의는 시험이 오면 불탈 것이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영생의 길까지 막고 있습니다.
23. 더 많은 열매 맺게 해주겠다는 상품입니다.
“밀이요” 성경에서 밀의 교훈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요12:24). 이처럼 세상도 많은 열매 맺게 하겠다고 장담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대성할 수 있는 목회의 비밀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마 4장). 그러나 주님은 이를 거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전도에 앞서 성령 받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매 맺는 비밀을 알지 못하고 화려한 외형적인 꿈만 가지고 맘몬의 신을 섬기며 일생 돈 마련의 노예가 되어 동분서주합니다.
24. 더 큰 일군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소와” 여기서부터는 유용한 가축들입니다. 성경에서 소는 일군을 상징합니다(고전9:9-10). 소가 유용한 가축인 것은 주인의 의도에 따라 쓰임 받기에 적당한 힘과 자세와 인내와 성품과 지능과 헌신을 가지고 충성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도 소 같은 큰 일군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는 겸손한 자세가 없고, ‘너는 할 수 있다. 큰 꿈을 가져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라.’ 등 긍정적인 사고방식만 가르쳐 자기의 뜻을 이루는데 성공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세가 없이 내 꿈과 내 계획과 내 방법이 앞선다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모세가 이 실수를 깨닫는데 40년이 걸렸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실수이기도 합니다(시123:1-2).
25. 더 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양과” 양은 지능은 뛰어나지 않지만 온유한 성격에다 메마른 땅에서도 이동하면서 먹이를 찾고 털과 고기를 제공하는 대단히 유익한 동물이요, 성전에서 귀한 희생 제물로서 죄를 대속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요1:29, 사53:5). 이처럼 세상도 거룩을 약속합니다. 바벨론 상품에서 양이란 자기 의입니다. 가인이 피 없는 제물로 제사한 것과 같습니다. 감사제에서 곡식의 소제도 제물이 될 수 있지만 반드시 피의 제사와 곁들여 드려야 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된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였지만 다른 후보와는 달리 왕이 주는 물품만 썼기 때문이었듯 내 방법 추가해서는 안 됩니다. 의롭게 되기 위해 심지어 이방종교에 가서 수행하는 법을 배우려는 어리석은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의 죄과는 물론 옛사람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되 예수 안에서 영광스럽게 하셨으므로(롬8:30) 그 예수를 온전히 중심에 모시는데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26. 더 능력의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말과” 말은 이동수단과 전쟁의 도구로 기동성과 신속성과 정복력을 가능하게 한 동물이었습니다. 말은 약한 군대를 강한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애굽산 말이 가장 유명했는데 사람들이 말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신17:16, 신20:1, 사31:1-2). 이처럼 말은 능력의 상징입니다.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행1:4, 막16:20). 그러므로 은사의 나타남은 중장비를 얻은 것처럼 유익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은사는 우리 몸까지 드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 임합니다(시84:11).
이처럼 세상도 능력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능력과 신비 추구로 나가다 귀신의 영을 받고 맙니다. 기본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상품에서 말은 부리는 말입니다.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부리려는 태도 때문에 성령의 사역자가 되지 못합니다. 이런 성령을 부리는 자세는 노력할수록 더 절망 가운데 빠지게 합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을 따르듯 열심히 기도하면서 앞서 행하시는 성령을 따라 행하고 쉴 때는 쉬고 막막할 때는 멈추어 여쭈시기 바랍니다.
28. 삶을 더 가볍고 편하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수레와” 수레는 짐을 실어 나르는 도구로,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성물 중 일부를 운반할 때도 쓰였습니다(민7:3-5). 그러나 법궤는 어께에 메어야지 수레에 실으면 안 됩니다. 어께는 의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데 최선을 다해야지 신앙생활을 편하게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목숨까지도 드려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상품의 수레는 편의주의적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신앙 갖는 건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적당히 해라. 가볍게 해라.' 이것이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이 속삭임에 넘어가면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없습니다(눅6:46).
29. 섬기는 경건한 삶을 살게 하겠다고 합니다.
“종들과” 원문에는 ‘몸들’입니다. 롬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한 말씀이 생각 납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피로 사셨으므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과 인생 전체를 주의 것이라 믿고 주를 위해 살아갑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바벨론 상품도 이를 모방하여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것도 충성되고 신실한 종입니다. 문제는 주가 하나님이 아닌 자기와 세상과 사탄이라는데 있습니다. 헛된 것에 정성을 다하면 할수록 그 인생은 절망적입니다. 노예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면 겔27:13에 노예는 당시 무역품 중 하나였고, 요한이 살던 당시 로마의 3분의 1이 노예였는데 대부분은 일을 시키거나 접대부로 심지어 원형극장의 볼거리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생명의 존엄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처럼 헛된 것에 자신을 노예로 드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30. 갈망하는 것을 채워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들이라” 주석에서는 노예의 생명을 가리킨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예의 생명이 오고가는 것은 당시 검투사와 같이 노예의 생명을 두고 벌인 원형장의 경기를 연상시킵니다. 왜 이런 일을 할까요? 인간의 근본이 악한데다 더 찌릿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침투하면 영생의 문제가 오가는 문제인데도 찌릿한 신비주의를 추구하다가 악령에 붙들리거나 이단에 걸려서 영혼을 팔아먹습니다(잠14:12). 정상적인 은혜체험은 예수를 주로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열심히 할 때 오지만, 신비주의는 사람의 제일된 본분보다 능력이나 신비가 주요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영을 받고 사탄에게서 배워 교회를 혼란시키고 이단 교주가 되는 사탄의 유희에 놀아나게 됩니다. 세상 것을 총망라하는 이상의 30가지의 것으로 성도를 넘어뜨려왔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성도들이 변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변화와 바벨론>
14절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바벨론 곁에 있었던 바벨론이 그토록 탐하고 좋아하던 음식들이 철저히 떠났음을 '떠났다. 없어졌다.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라는 3가지 동사를 통해서 강조합니다. 바벨론에게서 그런 매력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바벨론의 변화라기보다 은혜 받은 성도의 변화 때문입니다. 변화 받은 성도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우리 영혼을 죽이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먼저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 이 표현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보일 만큼 탐스럽기도 선악과를 생각나게 합니다(창3:6, 요일2:16). 하와가 사탄의 말을 받은 후에 보았으니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선악과를 보았다면 애초에 이런 모습으로 보일 리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라 해서 주어가 바벨론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탐하는 과일이니 그 과일은 영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우리 영혼을 잡아 먹는 것이 그렇게 좋았나 봅니다(마23:15).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는 앞의 말을 되풀이하거나 보충하는 평행법 문장입니다. 맛있는 것은 마음을 사기 위하여 베푼 간사한 음식을 가리키고(잠23:1-3), 빛난 것은 포도주의 매력을 강조할 때 쓴 말입니다(잠23:31). 여기에 걸리면 꼼짝없이 포섭되고 맙니다. 문맥상 바벨론이 주어니까 바벨론이 좋아하던 맛 있는 것과 빛난 것들입니다. 먼저 바벨론이 좋아하던 간사한 음식이라면 우리의 간사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듯 적당히 믿는 신앙이 바로 세상에게 먹히기 쉬운 밥상입니다(시14:4, 시53:4).
바벨론이 좋아하는 빛난 포도주는 계17:6에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했듯 세상에 넘어지는 근신하지 못한 성도들과 주의 종들입니다. 맹수가 어리거나 약한 짐승을 공격하듯 주님을 사랑하지 않거나 하나님을 경외함에 부족한 어린 신앙들이 세상의 사냥감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안에서 장성한 성도들은 더 이상 세상의 요구대로 넘어가지 않으니 세상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할 만큼 붕괴되었습니다. 죄악의 바벨론을 사랑하고 떠받들고 유지 발전시켜 오던 죄인들의 마음이 변했습니다(벧전4:3, 살전5:21-22, 벧후2:20-22). 먼저는 성도의 마음 안에서 세상이 붕괴되었고, 나아가 성도의 빛된 역할의 유무에 따라 세상문화가 달라져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요일4:4-5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 우리의 말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예수 안에서 세상을 이긴 자입니다. 아직도 세상 말을 듣는다면 세상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5:12-14).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으로 장성한 자가 되어 선악을 분별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시는 세상의 헛된 말에 속아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잃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잘 분별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간수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