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드, '오디세이' 그리고 '성경'
여러분은 마치 정신과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하는 말투로 “성경이나 한번 읽어보시지 그래요?”라는
말을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말 잘 듣는 강아지를 다루듯 여러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음, 성경도 괜찮지.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자랑하듯 잘 장정된 책들이 전시된 선생님의 책장을 보노라면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채 한 번도 펴 본 적이
없어 보이는 흠정역성경(KJV: King James Version판, 1611년 제임스 1세가 만들게 한 성서―역주)이
플라톤의 '공화국'(Republic), 버질의 '아에네이드'(Aeneid), '셰익스피어 전집'과 더불어 고전문학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고전에 속하는 여러 책들 가운데 한 권이 아닙니다. 성경은 유일무이한 책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선생님이 성경을 여러 고전류와 함께 책장에 꽂아 두거든 근사한 새 책장을 하나 사서
맨 위의 칸에 성경만 꽂아 두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성경은 다른 책과 비교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 관한 모든 것'이라는 책에서 시드니 콜레트는 M. 몬티에로-월리엄스 교수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그는 사십 이 년 동안 동양 서적 연구에 몸바친 사람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동양 서적들을 책상의
왼쪽에 쌓아 두십시오. 그리고 오른쪽에는 성경책만 두십시오.
그 둘을 멀찌감치 떼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왜냐구요? 성경과 소위 동양의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 사이에는
결코 이어질 수 없는 영원한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문학사에 있어서 기적과도 같은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어떤 책을 쓰는 데는 한평생이 걸리기도
하지만 성경은 천 육백 년의 기간에 걸쳐 쓰여졌습니다.
또 몇몇 학자들이 함께 공저로 남기는 책들도 있지만 성경은 왕, 농부, 철학자, 어부, 시인, 정치가,
학자 등 다양한 부류의 마흔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남긴 것입니다. 쓰여진 장소도 어떤 부분은
광야에서 쓰여지고, 어떤 부분은 감옥에서, 궁중에서, 유배지에서, 그리고 전쟁시에, 평화시에 두루 걸쳐
쓰여졌습니다.
성경은 삼 개 대륙에 걸쳐 삼 개 국어로 쓰여진 수백 가지 논쟁거리를 갖고 있는 책입니다. 면밀히 기술된
역사, 정신을 온통 빼앗는 듯한 전기, 편지, 회고의 글, 예언들 뿐만 아니라 영감이 번뜩이는 문학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
일관된 주제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계속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한 가지
주제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구원의 메시지, 바로 그것입니다.
하루는 '서구의 명저'(the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를 출판한 회사의 대표자가 판촉 활동을
도와 줄 사람을 구하러 날 찾아왔습니다. 그는 그 시리즈에 대해 5분 정도 열심히 내게 이야기했는데,
그후 나는 90분을 그에게 단 한 권의 명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 시리즈에서 비슷한 분야, 비슷한 세대, 비슷한 장소와 시간, 같은 공감대, 같은 대륙,
같은 언어, 같은 논쟁거리를 갖고 있는 열 명 정도의 사람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후 내가 물었습니다.
“이 작가들이 다 같은 의견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은 잠깐 동안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그러면 뭐지요?”
그는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모두 다른 것들의 덩어리에 불과하지요.”
이틀이 지난 뒤 그 사람은 예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는 성경의 유일무이함을 깨달았고
그것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료출처 : 『신앙의 불순물을 걸러내라』/조쉬 맥도웰 지음
http://blog.daum.net/davidstent/1704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