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꽃벼룩
박경선
산골 시골집에 상사화랑 연잎이 활짝 핀 날, 부산에서 다니러 온 제자 헌무가 물었다.
“선생님, 이렇게 소나무로 둘러싸인 정원 집을 어떻게 알고 구했어요?”
물음에 ‘아하! 첫사랑의 벼룩 신문이 지금 이 ’베나의 집‘을 보내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 첫사랑은 ‘벼룩 신문’이었다. 1994년에 낸 첫 동화책『너는 왜 큰 소리로 말하지 않니』가 화제작이 되자,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지만, 현직에 있다 보니 출장을 갈 수 없어 모두 거절하였다. 그 무렵 지역 벼룩신문사 기자도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만나고 싶으면 근무하고 있는 학교로 찾아오라고 했다. 학교로 온 기자는 발표하지 않은 동화들을 벼룩 신문에 연재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벼룩 신문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길거리 코너 여기저기에 꽂아두고 무료로 가져가게 하는 신문사로 알고, 내 원고도 무료로 넘겨주겠다며 계약서를 쓰지 않고 2년간 신문에 동화를 연재했다. 1997년에는 그 연재원고들을 책으로 묶어 어린이날 선물로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그때도 원고료를 거절하며 원고를 넘겨주었다. 신문사에서는 『개구쟁이 신부님과 해를 맞는 부처님』 제목으로 1만 부를 찍어 어린이날 사은품으로 사용하였다. 작가에게도 1천 권을 주어서 여러 복지시설과 성당 등에 나누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광고 신문들은 광고주들에게 광고료를 받는 모양이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풋내기 작가로서 그 덕에 순수하게 책으로 정 나눈 첫사랑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벼룩 신문과의 인연이 이 집으로 연결된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런 멍청함이 내게 축복을 가져다준 인연이라 여겨진다.
남편의 정년퇴임을 1년 앞두고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보자고 주말농장과 별장을 겸한 집을 찾아, 토요일마다 도시락을 싸 들고 대구 근교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마뜩한 집이 없어 계속 찾던 중, 허리가 아파 경락마사지 치료를 받으러 간 날이었다. 같이 간 남편은 내가 치료받는 사이에 그 집 탁자에 있는 ‘벼룩 신문’을 훑어본 모양이다. 마치고 나오면서 남편이 물었다.
“벼룩 신문에, 고령군에 터 넓은 시골집이 있다는데 그 집을 한 번 가볼까?”
“그래요. 거기라면 한 시간도 안 걸리잖아요.”
그 길로 부동산을 찾아가서 안내받은 집은 전형적인 초가삼간을 기와로 지붕 개량한 집에 거실을 달아낸 집이지만 소나무 32그루, 단풍나무 20그루며 각종 유실수와 넓은 잔디밭과 텃밭이 있어서 흙 만지며 살고 싶어 하는 남편 마음에 딱 들었다. 나는 나대로 넓은 거실에 반했다. 늘 아파트 베란다 구석에서 그림을 그리던 남편이 퇴직하면 넓은 거실을 화실로 쓸 수 있겠다 싶은 생각 하나만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7월에 집을 급하게 구해 8월에 정원에서 남편의 퇴임식을 하는데, 제자들이 기념수랑 기념 표지석을 들고 오는 바람에 내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이사를 하며 화성에서 온 남자는 잔디 깎는 기계, 전기톱, 그라인더, 전지가위 따위 주로 밖에서 쓸 연장들을 사느라 바쁜 나날이었다. 금성에서 온 여자는 손님맞이에 필요한 주방 그릇이며 세간들을 사들이느라 분주하였다. 주말마다 달려오면 또 어떻고? 여자는 텃밭으로 가 잘 자란 웰빙 채소를 다듬어 이집 저집 나누기에 바빴고, 남자는 잔디밭이랑 텃밭에 풀 뽑고 나무 전지하기에 바빴다. 집 앞 강둑을 따라 산책하러 나가도 남자는 강만 내려다보고 걸으며 ‘햐, 팔뚝만 한 물고기가 팔딱팔딱 뛴다.’ 며 신기해하고, 여자는 산기슭에 난 꽃들을 바라보며 ‘달맞이꽃 좀 봐요. 으아리꽃 너무 청순하네!’ 하며 관심사가 서로 다르다.
그래도 한 마음으로 구심점을 찾을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거실에 <손님은 신이 보내주신 선물입니다>는 현수막을 붙여두고 베풀고 나누는 ‘베나의 집’ 손님을 맞는 일이다.
새도 풍수가 좋은 곳만 찾아다닌다더니 오목눈이, 딱새, 비둘기, 참새는 아예 우리 집 정원의 숲과 정자 처마 밑 구석구석에 둥지를 지어 살고, 떠돌이로 날아오는 까치, 직박구리, 물까치는 6월이면 블루베리, 매실, 7월에는 자두, 무화과, 8월부터는 복분자, 사과, 돌배, 감, 석류, 대추가 익으니 익은 열매를 먼저 알고 새들의 맛집으로 이용하는 걸 보고서야 노래 감상료를 톡톡히 받아 가는 사실에 ‘공짜 좋아했던 마음’을 반성하였다. 두더지와 지렁이, 개미는 텃밭의 흙 속에 살고 쥐, 고양이, 개구리, 꽃뱀, 말벌도 터를 공유하며 살고 있으니 정말 풍수가 좋은 걸까? 하긴, 강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집 잔디밭에 큰 자라까지 방문했던 걸 보면 풍수 좋은 집이 맞는 것도 같다. 심지어 까치들은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대왕 소나무 위 가지를 전용 식당으로 쓰고 있다. 해마다 농가에 말려놓은 튼실한 땅콩을 물고 와서 소나무 가지에서 까먹다가 떨어뜨리면 내려와 찾지 않고 다시 날아가서 물고 와 까먹는다. 그 덕에 우리는 까치가 떨어뜨린 땅콩을 더러 줍기도 하고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이듬해 새싹으로 돋아나기도 한다. 그 이야기를 문학 기행 온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더니 ‘흥부에게 박 씨를 물어다 준 제비가 이 집에는 까치로 변해 찾아오네요.’ 하며 재미있게 들었다. 살아있는 모든 곤충, 벌레, 새들은 방명록을 쓰지 않고 드나들지만, 7년 동안 찾아온 1,326명의 손님은 ‘베나의 집’ 방명록에 소감을 적고 갔다. 굿네이버스 심리센터에서 심리 치료를 받는 아이들과 작가를 찾아 문학기행 오는 학생들에게는 ‘자연 속 교실’이 되고 지역 중학교 전교생이 문학기행을 다녀간 후에는 감사 엽서를 보내와 거실에 걸어두니 전교생의 ‘행복 전염 엽서 전시회’가 되었다. 마을 어르신을 모시고는 젊은 날의 고운 자태를 되돌아보게 하는 ‘드레스 차림의 신부 놀이’를 하고 사진첩을 만들어드렸다. 후배들이 교감, 교장으로 승진했다고 찾아오면 ‘승진 축하식’을, 책을 출간하고 찾아오면 ‘출판기념 축하식’을, 부부가 찾아오면 ‘리마인드 웨딩식’을 해준다. 우리 친구들도 이제 칠순 줄에 들어 마당에서 ‘합동 칠순 축하식’도 했다. 잔디밭에 4홀 ‘파크 골프장’도 만들어 놓으니, 역으로 되돌면 9홀이 된다. 집이야 볼품없지만 정원만은 이렇게 복합문화공간으로 재미있게 쓰고 있다.
돌아보면, 벼룩 신문의 벼룩이가 꽃벼룩으로 승천하여 우리를 ‘베나의 집’ 주인으로 불러주었다. 승천한 꽃벼룩이 벼룩 꽃을 피워 내듯, 밥주걱 들고 손님 맞으며 여력이 남아있는 동안 베풀고 나누는 즐거움의 꽃 피우며 늙어가고 싶다. 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