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죽매면부(竹梅麪賦)」 격조 높은 죽순과 매실의 식문화>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거제도 유배문학 「죽매면부(竹梅麪賦)」 즉, '죽순과 매실의 격조 높은 음료'는 조선후기 문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1(卷之一) 부(賦)편에 실려 있다. 저자 김진규(金鎭圭)가 양숙(養叔, 이이명)에게서 받은 편지와 요리법에 답하며 지은 「부(賦)」이다.
저자는 '죽매면'을 시식한 후, 소감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맛이 산뜻하여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며, 근심 걱정을 몰아내어 없어진다. 염장(개펄의 독한 기운)을 깨끗이 씻어내고, 맑은 바람이 양 겨드랑이에 일어나니, 잠시 날개가 생겨 하늘로 올라갈 것 같이 황홀하다.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난 봉래섬에서 신선의 선약을 맛본 듯이 미혹된다." 하면서, 죽순과 매실은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며, 마지막 단락에서 '죽매면 찬가'를 7언 한시로 남겼다.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대나무(죽순)의 청결함과 매실의 조화로움을 통해 군자의 덕을 수양하려는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죽순의 식감, 녹두의 부드러움, 매실의 새콤함이 어우러진 여름철 별미를 한 편의 시처럼 묘사했다. 또 유배지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변의 자연 재료로 정갈한 음식을 만들어 즐겼던 조선 시대 선비들의 격조 높은 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 글은 단순한 음식 예찬론이 아니다. 귀양지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대나무(절개, 淸)와 매실(조화, 和)을 통해 선비로서 지켜야 할 중용의 도를 되새기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친구인 이이명이 보내준 정성에 화답하며 서로의 안녕을 비는 따뜻한 우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저자 김진규(金鎭圭 1658~1716)가 기거하던 배소는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반곡서원 부근에 있었고 거제유배기간은 1689년~1694년이다. 김진규는 조선후기 노론의 대표적 정객으로 스승 송시열(宋時烈)의 입장을 고수했던 인물이다. 서포 김만중이 친 삼촌이고 누이동생이 숙종비 인경왕후(仁敬王后)이다. 문장에 뛰어나 반교문·교서·서계 작성을 많이 했으며, 전서·예서 및 산수화·인물화에도 능했다. 그는 거제시 반곡서원 터에서 귀양살이를 5년간 했다. 문집으로 『죽천집(竹泉集)』, 편저로 〈여문집성(儷文集成)〉이 있다. 거제 반곡서원(盤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청이다.
○ [전통 조리 과정 번역] 천지 만물이 저마다 맛을 지녔으니, 그 공묘함은 신비로운 조화에서 비롯되었네. 아름다운 저 대나무여, 산골짜기 한가운데서 자라나 서리를 맞으면서도 그 성질은 따뜻하고, 옥처럼 단단하면서도 속은 비어 있구나.
어린 싹(죽순)이 흙을 뚫고 솟아오를 때, 껍질을 벗기면 그 속살이 비단처럼 보드랍네. 이를 칼로 가늘게 썰어내니 마치 부드러운 실이 얽힌 듯하고, 녹두 가루를 골고루 입히니 하얀 눈가루가 흩뿌려진 듯하구나.
끓는 솥에 잠시 넣었다가 건져내니 맑고 투명하여 마치 구슬꿰미 같네. 여기에 잘 익은 매실 즙을 더하니 황금빛 액체가 그릇 속에 일렁이네.
한 모금 마시니 가슴 속까지 시원해져 여름날의 무더위가 씻은 듯 사라지고, 신맛과 담백함이 조화를 이루니 입안에는 맑은 향기가 가득하도다.
◉ [한문 문체 ‘부(賦)’] 본래 부(賦)는 운문(韻文)과 산문(散文)의 요소(要素)를 결합(結合)한 한문(漢文) 문체(文體)의 하나다. 또한 본래 <시경(詩經)>의 표현 방법의 하나이며, 작자의 생각이나 눈앞의 경치 같은 것을 비유를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한대(漢代) 부(賦)를 한부(漢賦)라 한다. 한부(漢賦)는 초사(楚辭)에서 유래한 반문 반시(半文半詩)의 새로운 문학양식이다. 한대(漢代)에 부(賦)는 원래가 시경(詩經) 육의(六義)의 하나였다. 직접적인 서술의 수법을 말한다. 이러한 직접적인 서술 수법을 사용하는 문학 장르를 부(賦)라 함으로서 문학의 한 장르 체재(體裁)가 되었다. 가장 오래된 부(賦)는 순자(荀子) 부(賦)편이다. 예(禮), 지(智), 운(雲), 잠(蠶), 잠(箴) 5가지에 대해서 암시(暗示)와 상징(象徵) 등의 수법을 이용하여 서술한 부(賦)다. 한대(漢代)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굴원(屈原)이다. 굴원(屈原)은 초혼(招魂)에서 장황하고 과장된 묘사와 대화 형식을 후세의 부가(賦家)들이 모방을 했다.
●**「죽매면부(竹梅麪賦)」** 병서[幷序]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서문을 나란히 싣다(幷序)]
양숙(養叔, 인물 별칭)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죽순을 가늘게 썰어 녹두 가루를 입힌 뒤, 끓는 물에 데쳐내어 매실즙(梅漿)에 섞었습니다. 이를 마셔보니 그 맛이 매우 상쾌하여 이름을 '죽매면(죽순과 매실로 만든 국수)'이라 지었습니다. 양숙이 그 만드는 법을 나에게 보내주며 부(賦)를 지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에 다음과 같이 글을 짓습니다.[養叔出新意 細切竹筍 傅菉豆粉 烹瀹而和梅漿 飮之味甚爽 名之曰竹梅麪 寄眎其方 仍要余賦之 乃作賦曰.]
*[죽매면부(竹梅麪賦) 본문]
(1) 유배지의 삶과 죽순의 발견
이자(李子, 양숙 이이명)가 남쪽 끝 거친 땅으로 귀양을 가니, 그곳은 바다 섬이라 사람이 살 곳이 못 되었습니다. 풍토는 나쁘고 먹을거리 또한 생소했으나, 이자는 처한 환경에 따라 편안히 지내며 마치 고향에 있는 듯했습니다. 배불리 먹으면 산책을 하고 거닐며 스스로 자적하였는데, 그러다 한 곳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긴 울타리 옆에 수많은 대나무가 푸르스름하게 엄연히 서 있으니, 마치 기수(淇水)의 굽이진 곳에서 노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때는 꽃 시절은 이미 지고 보리 익는 바람이 훈훈하게 불어오는데, 한 차례 가랑비가 내리자 죽순들이 떼 지어 솟아났습니다. 옥 같은 속살은 안으로 깨끗하고, 비단 도포 같은 껍질은 겉으로 얼룩덜룩했습니다. 기이한 재목이라 볼만하기도 했지만, 빼어난 바탕은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2) 죽매면의 탄생과 그 형상
흔연히 흥이 일어 새로운 조리법을 창안해내니, 옛 요리사들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대나무 숲에서 늦게 밥을 먹는 고사(篔簹)와도 달랐습니다. 이에 어린 종에게 명하여 따고 썰게 한 뒤, 녹두 가루를 입혀 끓는 물에 다시 데쳐내었습니다. 그 모습이 희고 깨끗하기가 마치 갓 뽑아낸 명주실을 햇볕에 말리는 듯하고, 환하기가 얼음을 새겨놓은 듯 정결했습니다. 마침 잘 익은 황매(黃梅)가 때맞춰 익어 가지 끝에는 황금 알이 찬란하고 숲 아래 죽순과 비치니, 이 두 종류는 모두 보배로운 물품이요 기운과 맛 또한 서로 잘 어울렸습니다. 차가운 샘물에 담그니 상쾌하고, 꿀을 타니 그 맛이 더욱 기이했습니다.
(3) 맛에 대한 찬사와 효능
이 두 가지 아름다운 재료를 모아 한 입 들이키니, 밀가루로 만든 괴도(槐淘)도 비교할 수 없고 대추 떡(棗糕)인들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다시 죽순 돗자리를 끓여 먹는다고 비웃겠으며, 나무를 바라보며 갈증을 멈추길 기다릴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한 잔을 겨우 다 마시자 마음과 정신이 맑고 넓어져서, 근심과 번뇌를 몰아내고 여름날의 염병과 독기(瘴氣)를 씻어내었습니다. 양 겨드랑이에서 서늘한 바람이 일어나니 황홀하게 신선이 되어 날아갈 것만 같고, 봉래산이 멀지 않으며 신선의 음료인 옥액(玉液)을 대접받은 듯했습니다. 기름진 고기만 먹는 자들이 어찌 이 맛을 알겠습니까. 비록 속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더라도 어찌 혼자서만 즐기며 사사로이 하겠습니까. 같은 처지(유배)의 병을 앓는 옛 친구를 가엾게 여겨, 그 방법을 알려주며 서로 즐거움을 나누고자 한 것입니다.
(4) 음식에 담긴 군자의 도리
아아, 이자여! 그대는 일찍이 들어가면 임금을 모시고 강론했고 나가면 풍속을 살피며, 하사하신 술을 많이 마시고 진수성찬을 대접받았습니다. 남들은 모두 이를 영광이라 했으나 그대는 잘난 체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유배를 오게 되어 거친 나물국도 얻기 힘들고 단사표음(簞食)조차 부족하여 굶주릴 때가 많아도, 도(道)의 풍요로움을 맛보며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고기 음식의 기름진 맛은 잊고 담박한 것에서 마음의 즐거움을 찾으니, 그 가슴 속이 넓고 넓어 외부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그러니 비록 나쁜 파나 부추, 천한 도토리와 밤일지라도 충분히 달게 여겨 싫어하지 않음이 마치 고기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어찌하여 이것을 좋아하여 정성스럽게 알리는 것입니까? 대저 이 두 가지 물건은 과일과 채소 중에서 비길 데가 없고, 백 가지 맛이 많다 한들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몇 치 안 되는 작은 몸으로 이미 청정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맛을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품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5) 결론과 노래
대나무의 맑음(淸)을 취하고 매실의 조화(和)를 취하여, 그 안에서 덕을 비교하며 스스로 훌륭함을 닦으려 함입니다. 백이(伯夷)의 맑음과 유하혜(柳下惠)의 화합하는 무성한 행실을 겸하여 참작하고 보태어 치우침이 없게 하니, 좁지도 않고 흐트러지지도 않아 대중(大中)의 도리에 기약하고자 함입니다. 어찌 한갓 입과 배만을 위함이겠습니까? 잠시 그 절차탁마하는 마음을 기탁한 것입니다. 이에 물건이 비록 보배롭고 아름다우나 기다림이 있어야 나타남을 알겠으니, 이 사람(이이명)이 이것을 취한 덕분에 그 아름다움이 추천될 수 있었습니다. 본래 미천한 물건은 부(賦)를 지을 만한 것이 못 되나, 그대를 위해 노래를 지어 서로 권면하고자 합니다.
*노래하노라(歌曰). 죽매면 찬가.
사람을 풀과 나무에 비유하여 구별하듯이, 마시고 먹는 것 또한 하나의 절개로다. 국화꽃을 먹고 초피 가루를 섞는 것은 그 향기로움을 좋아함이나, 그 원망하고 상심함은 중용의 도가 아니로다. 아름다운 죽순과 매실 열매여, 그 깨끗함과 상쾌함은 옛 현인과 짝할 만하구나. 지금 이것을 취하여 학문과 덕을 닦으니, 즐거워하며 근심을 잊으니 그 덕이 넉넉하도다. 내가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 또한 화평하니, 이 글을 보내어 그대의 성정을 기르도록 돕노라.
[李子移遷南荒 地是海島 非人所居 風土旣惡 食物亦殊 然而隨遇以安 若處鄕國 食飽散步 逍遙自適 爰有所覯 踈籬之側 儼萬竹之靑靑 怳神游於淇澳 是時花事已闌 麥風正熏 一番微雨 逬筍成羣 玉膚內淨 錦袍外斑 旣奇材之足觀 而秀質之可餐 欣然起興 刱出新方 異參師於廉景 非晩食於篔簹 乃命小僮 乃採乃切 乃糝豆屑 浸湯再瀹 皎皎如繰絲之曝 烱烱若鏤氷之㓗 適會黃梅 其熟如期 燦枝頭之金丸 暎林下之文犀 品類並其共珍 氣味合而相宜 漬石泉而旣爽 調崖蜜而益奇 於是集兩美試一啜 槐淘旣不堪比 棗糕亦何足說 誰復煮簀而見笑 不待望樹而止渴 一盃纔盡 心神淸曠 驅除憂煩 洗滌炎瘴 泠風起於兩腋 怳羽化之可望 知蓬島之不遠 疑玉液之見餉 彼持粱與齧肥 疇此味之能知 縱塵世之勿語 寧獨享而自私 憐故人之同病 報方法而相嬉 嗟乎李子 子甞入則侍講 出而觀風 飮旨多之賜酒 食方丈之廚供 人皆以爲光華 而不見其矜容 迨其流竄 藜羹不克 簞食易缺 雖顑頷而不備 味道腴而爲樂 忘肉食之脂膏 託心賞於淡泊 諒其中之浩浩 不隨外而變易 然則雖䓗韭之惡 芧栗之賤 亦足甘而不厭 如得享夫芻豢 獨胡爲乎好此 與發揮而拳拳 盖以之二者之爲物 在果蔬而無並 以百味之多而能調和 自數寸之小而已淸淨 非滋味之是耽 而所貴者資性 故欲取竹之淸取梅之和 於焉比德以自修姱 兼夷惠之茂行 更參益而無頗 庶不隘而不流 希大中而爲科 豈徒事乎口腹 聊以寓夫切磋 乃知物雖珍嘉 有待而見 賴斯人之取斯 效厥美而得薦 固微物不足以賦之 請爲子作歌而相勉 /歌曰 人譬草木以區別兮 矧伊飮食亦一節兮 餐菊糳椒好是芳兮 然其怨傷非中行兮 猗竹之萌摽梅實兮 其㓗其爽與古匹兮 而今所取爲進修兮 樂而忘憂德則優兮 我爲子歌亦和平兮 寄以侑之養性情兮]
◉ 거제도로 유배 온 김진규(金鎭圭) 선생이 1689년부터 1694년까지 생활하면서 기록한 2편의 거제도 음식에는 '시래기 나물죽(食菁莖羹)'과 '죽매면(竹梅麪)' 2가지에 대해서만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저자는 "고기와 생선을 먹으면 죽은 음식을 먹는 것이고, 채소를 먹으면 산 음식을 먹는 것이다"라며 채소의 유익함을 강조했다.
보통 시래기로 음식을 만들 때면, 말린 무 잎사귀를 오래 푹 삶아 찬물에 우렸다가 각종 반찬을 만든다. 시래기나물, 시래기죽, 시래기찌개, 시래기국이 대표적인 음식이다. 거제도 김진규 선생의 음식 관련, 첫 번째 글은 <시래기 나물죽> 만드는 이야기로써, 순무를 썰어 소금을 고르고 시래기를 삶아 메조밥을 넣어 나물죽을 만들어 여럿이 함께 식사를 한다. 또한 대추 떡(棗糕)도 참 맛났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죽매면‘을 소개하면서, ”콩을 길러서 새로이 밖으로 내어놓은 음식이 있다. 잘게 자른 죽순에다 녹두 가루를 바르고 살짝 삶아 데쳐, 매실 열매로 만든 신맛의 초를 섞어 마신 맛은 심히 시원하다. 그 이름이 "죽매면"이다. 그 방법을 엿보다가 부탁하곤 이런 과정을 요약하여 시를 짓는다.(細切竹筍 傅菉豆粉 烹瀹而和梅漿 飮之味甚爽 名之曰竹梅麪 寄眎其方 仍要余賦之)“고 밝혔다. 어찌되었건 「죽매면부(竹梅麪賦)」는 수백년 전에 거제도에서 주민들이 요리해 먹었던 음식에 대한 기록물로,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거제도의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