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지식의 원전 8. 사과와 색 아이작 뉴턴 2023 12 28
(참고 사항) 파란 글씨는 편저자가 쓴 글이고, 아래 검정 글씨는 원저자의 글이다.
‘인류 지성의 틀을 형성한 위대한 천재성의 소유자(뉴턴의 자서전 저자 리처드 웨스트폴의 표현)’였던 아이작 뉴턴(1642~1727) 경은 링컨셔 시골 마을의 평범한 양치기 가정에서 태어났다. 과학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사과에 관한 그의 젊은 시절의 일화는 놀랍게도 사실인 것 같다. 다음은 뉴턴의 말년에 그와 가깝게 지냈던 윌리엄 스터클리William Stukeley 박사의 기록이다.
1726년 4월 15일, 나는 켄싱턴의 오벨스 빌딩에 살고 있는 아이작 뉴턴 경을 방문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하루 종일 그와 단 둘이 시간을 보냈다. (중략)
점심 식사 후, 날씨가 따뜻해져서 우리는 마당으로 나가 사과나무 그늘에서 차를 마셨다. 여러 얘기 끝에 뉴턴 경은 ‘지금이 중력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던 때와 똑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가 사과나무 아래 앉아 명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사과가 떨어졌는데 그는 왜 사과가 항상 땅바닥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일까, 하고 자문했다고 한다.
‘왜 옆이나 위로 가지 않고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떨어지는 것일까? 당연히 그 이유는 지구가 그것을 잡아당기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모든 물질에 잡아당기는 힘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물질에 작용하는 인력은 지구의 어느 외곽 쪽이 아니라 그 중심에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사과가 중심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만약 물질 간에 인력이 작용한다면, 그 크기는 질량에 비례해야 한다. 즉,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기는 만큼 사과도 지구를 끌어당겨야 한다. 우리가 중력이라고 부르는 이 힘은 우주 전체에서도 작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중력의 개념을 지구나 천체의 움직임에 적용하기 시작하였고, 그들 간의 거리나 크기, 그리고 일주 주기 등을 계산하였다. 그리하여 중력의 원리를 통해 행성들의 궤적과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모든 행성은 서로를 향해 당겨지고 있는 것이며, 하나의 중심을 향해 낙하하고 있는 것이라는 우주의 대원리를 밝혀낸 것이다. 이것이 그 놀라운 발견의 탄생이다. 이를 통해 그는 확고한 학문적 기저를 확립하였고, 전 유럽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젊은 시절, 어떻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뉴턴은 ‘그것에 관해 계속 생각해서 발견하게 되었다’라고 대답했는데, 그것이 스터클리의 이 이야기와 꼭 상반되는 것만은 아니다.
『프린키피아Principia』(1687)에 적혀 있는 뉴턴의 법칙은 우주의 모든 만물은 서로 끌어당기며, 그 힘의 크기는 질량에 비례하고, 둘 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이 나올 때까지 중력을 설명하는 법칙으로 받아들여졌다.
뉴턴의 또 다른 위대한 법칙은 젊은 시절 케임브리지에서 했던 실험을 바탕으로 기술한 『광학Optics』이었는데, 이 책은 1704년이 되어서야 출판되었다.
나는 아주 어두운 방의 창문 셔터에 3분의 1인치 크기의 동그란 구멍을 뚫고, 그 앞에 유리 프리즘을 설치했다.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프리즘에 의해 굴절되어 반대쪽 벽에 비추어지면서 거기에 햇빛의 색깔이 나타났다. (후략)
이렇게 해서 프리즘을 이용한 그의 실험이 시작되었으며, 이 실험을 통해 뉴턴은 백색의 빛이 모든 다양한 색깔이 혼합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그는 각각의 색깔을 가진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어떤 일정한 각도로 꺾이는데, 붉은빛은 가장 작은 각도로 꺾이고,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의 순으로 꺾어지는 각도가 커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의 설명을 보면, 색깔에 대한 그의 감각이 매우 뛰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어떤 물체에서 반사되는 빛이 단 하나의 색깔만 갖기 때문에 그 물건의 색깔이 그 빛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종이, 재, 붉은 납, 남색 안료, 금, 은, 동, 풀, 푸른색 꽃, 바이올렛, 여러 색깔이 얼룩져 보이는 물방울, 공작깃털, 리그넘 네프리티쿰lignum nephriticum(스페인산 나무의 하나로 이 나무의 푸른색 혼합물은 신장병 치료에 쓰인다) 나무 등 백색, 회색,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색의 물체들 모두 다 빨간 불빛 아래서는 빨갛게 보이고, 초록 불빛 아래서는 완전히 초록으로 보인다. 다른 색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일 색깔의 빛 아래서는 그 들 모두 똑같은 색깔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어떤 물체는 그 빛을 더 강하게 반사하고, 또 어떤 물체는 그 빛을 희미하게 반사하는 차이가 있다. 나는 단일 색깔의 빛을 반사해서 다른 색을 나타내는 물건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결과로써 확실해진 것은 만약 태양 빛이 단일 색깔을 가진 빛이라면, 온 세상에 그 색깔만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뉴턴의 친구인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핼리혜성의 발견자)는 서섹스 앞바다에서 잠수정을 이용한 해저 실험을 하고 있었다. 핼리와의 대화를 통해 뉴턴은 해저에서의 색깔에 대한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하게 된다.
핼리 씨의 말에 의하면 (중략) 잠수정을 타고 바닷속 깊이 수십 미터 아래로 잠수하면, 물과 잠수정의 창문을 통과한 햇살이 그의 손 위쪽에서는 다마스크 장미처럼 붉은빛을 띠고, 손 아래쪽은 그 밑의 물에 의해 반사된 빛이 비쳐서 초록색을 띤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닷물은 보라색이나 푸른색을 띤 빛을 잘 반사하고, 붉은색을 띤 빛은 아주 깊은 곳까지 통과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깊은 바다에서는 주로 붉은 색깔의 태양 빛들이 잘 통과하기 때문에 물체가 붉게 보이는 것이다.
백색광이 순수한 것이 아니라 여러 색깔이 혼합된 것이라는 뉴턴의 이론은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 이론은 백색이 순수성이나 단순함과 연관되어 있다는 오랜 상식을 깨뜨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새로운 이론을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인 시인도 있었다. 『광학』의 내용은 18세기 문학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알렉산더 포프의 시 <머리 타래의 약탈>에서 화장대 주위를 날아다니는 요정인 ‘실프스’는 뉴턴의 발견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보여준다.
투명한 형체들, 너무나 가늘어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유체같이 흐르는 몸은 빛을 받아 반쯤 공기로 날아가 버렸네.
공기처럼 가벼운 그네들의 옷가지가 바람에 하늘하늘 나풀거렸네,
가는 이슬을 엮어 짜 찬란하게 반짝이는 얇은 사(絲).
빛의 전령이 형형색색을 섞으며 장난치는 곳,
천상천계의 오색찬란한 색조에 풍덩 담가 염색하였네.
광선이 시시각각 변모하는 새로운 색조,
그들의 날갯짓에 따라 변모하는 색조를 쏘아 올리는 동안.
투명한 형체들, 너무나 가늘어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적 가치관에 반대하는 낭만주의 시인들은 뉴턴이 우주의 신비를 빼앗고 모든것을 사실과 이성의 수준으로 전락시켰다고 비난하였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예술은 인생의 나무이며 과학은 죽음의 나무’라고 말하였고, 존 키즈John Keats 역시 ‘뉴턴이 무지개에 관한 모든 시상(詩想)을 파괴하고 무지개를 단순한 프리즘 색깔로 전락시켰다’고 동조하였다.
한때 장엄한 무지개가 천상에 있었는데,
우리가 그녀의 씨실과 날실을 알게 되자,
그녀는 진부한 것들로 만든 칙칙한 목록으로 전락하였다네.
철학이 천사의 날개를 꺾어 버리고
법칙과 계보로써 모든 신비를 정복하고 말았다네.
이러한 낭만주의적 반응은 뉴턴이 우주에 대한 신비감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뉴턴의 『광학』에는 색깔 그 자체가 여전히 신비로운 것이라는 점이 서술되어 있다. 우리가 어떤 물체의 ‘색깔’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그 물체가 어떤 특정한 종류의 광선을 다른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반사한다는 것’뿐이다. ‘마치 종소리나 악기의 소리라는 것이 단지 물체의 진동에 불과’하듯이 광선 자체도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단지 우리의 눈에 도달했을 때 우리에게 색깔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뿐이다. 왜 특정 사물이 특정 색깔의 광선만을 주로 반사하는지, 그리고 그 광선이 왜 우리에게 그런 색깔의 자극을 일으키는지는 뉴턴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20세기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면서, 그의 저서 『과학과 현대사회Science and the Modern World』에서 시인들에 대한 그 의미를 논하고 있다.
우리의 세상에 사실상 빛이나 색깔이란 없다. 단시 사물의 진동만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광선이 우리의 눈을 통해 각막에 도달할 때에도 단지 사물의 진동만이 있을 뿐이다. 그로부터 우리의 신경계와 뇌가 자극받지만, 이 역시 사물의 진동에 불과하다. (중략) 실제로는 우리의 마음이 그 감각을 경험하는 것뿐이며, 엄밀히 말해서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마치 옷이 우리의 신체를 덮어버리듯, 이러한 감각은 우리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사물은 그 자체에 속한 어떤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마음에서 각각 의미 지어진 것으로 인식된다.
자연의 대상도 사실상 우리 마음에 의해 인식되는데, 장미는 향기로, 나이팅게일은 노랫소리로, 그리고 태양은 빛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인들은 시 구절을 시인들 마음속의 의미로 정의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쳐야만 한다.
말년의 뉴턴은 자신의 발견으로 인해 자연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던 신비감이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은 내가 바닷가에서 좀 더 매끈한 자갈과 어여쁜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이리저리 뛰어노는 소년과 같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내 앞에 그대로 놓여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