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 임제(林悌: 1549∼1587)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쳣나니.
잔(盞) 잡아 권(勸)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어휘 풀이】
<청초(靑草)> : 푸른 풀. 자연을 상징하고 변하지 않음을 의미함.
<골> : 골짜기. 여기서는 ‘무덤’.
<자난다> : 자느냐? 자는가. 자(어간)+나(현재 보조어간)+ㄴ다(의문형 어미)
<누웠난다> : 누웠느냐? 누웠는가?
<홍안(紅顔)> : 젊고 예쁜 얼굴. 보통 젊은 사람(弱冠을 뜻함. 여기서는 황진이를 가리킴.
<백골(白骨)> : 여기서는 황진이의 무덤 속의 흰 뼈. 죽음을 의미함.
<무쳣나니> : 묻혔느냐? 묻혔는고. 묻+히+었+나니(의문종지형).
<권(勸)하리> : 권할 사람이. 여기서는 황진이를 가리킴.
<슬허하노라> : 슬퍼하노라.
【현대어 풀이】
푸른 풀이 우거진 산골짜기 무덤 속에 자고 있느냐, 누워 있느냐?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어디에 두고 백골만 묻혀 있느냐?
술잔을 잡고 권해 줄 사람이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해설】
지은이 임제(林悌)는 당대의 대문장가로서 명산(名山)을 두루 찾는 풍류(風流)인이었다.
이 시조는 작자 임제가 평안도 평사(評事: 정6품의 외직 무관)로 부임 도중 개성(開城)에 들러
황진이의 무덤에 술잔을 부으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여 부른 노래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임지에 부임도 하기 전에 파직당한 것으로 전해 온다.
사대부가 일개 기생의 묘를 참배하고 시까지 지었다하여 파직 당한다.
선생은 조선조 낡은 인습과 도덕률에 얽매인 양반들의 의식구조를 풀어 해친 문명(文名) 높은 대시인이었다.
가식과 위선에서 벗어나 마음껏 사상의 자유로움을 펼친 호방한 임재는 대자유인으로살았다.
그는 평양 기생 일지매와 사랑에 빠진 일화로도 유명하다.
당시 지체 높은 사대부가 기생의 무덤에 시를 바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그러한 멋스러움은 임제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흉내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임재 사상은 호방하면서도 명쾌하고 드높은 기상을 지녔다.
나라의 자주성 회복과 강대한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고
세계를 호령하고 싶은 심정이 담긴 그의 시가
신걸산(나주 368.1m) 끝자락에 백호(白湖) 임제(林悌) 선생 묘가 있다.
묘아래 시비(詩碑)에 적혀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만주 땅을 못 삼켰으니
그 어느 날에나 서울 땅을 다시 밟을 것이냐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말을 재촉해 돌아가는데
눈이 시린 저 먼 하늘
짙은 안개가 걷히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