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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그대로 들고 떠나는 경주 여행, 사실 경주는 역사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알고 가면 더욱 재미있다.
왜 무덤에 '~능/~총/~분/~묘'라는 이름이 각기 다르게 붙는지부터 실제로 발굴 중인 고분을 볼 수 있는 곳까지 경주는 꽤나 볼거리가 다양한 곳이기 때문이다.
향기가 나는 왕의 절, 분황사
경주에서 지내던 숙소에서 분황사가 아주 가까웠던 터에 오후까지 대릉원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늦은 오후나 되어서야 분황사에 방문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관람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채 간 나는 분황사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분황사의 관람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만 운영하니 관람시간을 꼭 확인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내가 경주를 갔던 당시에 분황사 근처의 청보리밭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여서 힘든데도 방문한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청보리밭을 모두 베어낸 이후였다. 주차장에 차들이 별로 없어 한적하다고 느껴졌을 때 모든 이유를 알았어야 하는데..
아쉬운대로 분황사 주변을 한 바퀴 걸었다.
분황사는 '원효대사 해골물'로 우리에게 익숙한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곳인데 불국사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아서 잠깐 시간내어 둘러보기 참 좋은 곳이다.
분황사의 이름은 '향기 나는 왕의 절'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는 선덕여왕 시절에 세워진 절이다.
선덕여왕이 신라 최초로 여성왕이 되고 난 후, 당시 당태종이 모란꽃 그림을 선물하였었다. 하지만 그림 속에 모란꽃 그림만 있고 벌과 나비가 없었고 선덕여왕은 "벌과 나비가 없는 모란꽃은 향기가 나지 않는다."라며 당태종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향기가 나는 왕의 절'이라는 분황사를 세운 것이다.
비록 입장하지는 못했지만 향기 나는 왕의 절인 분황사에 들어가면 국보 30호인 모진 석탑도 만나볼 수 있고 이것저것 둘러볼거리가 꽤 많으니 분황사에 갈 예정이라면 관림시간을 확인한 후 가는 것을 추천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300원이다.
이 곳이 남아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황룡사지
분황사 인근에는 경주 황룡사지 터도 위치해 있다.
황룡사지는 신라 전성기 때 만들어진 사찰인데, 지금은 발굴 중이기 때문에 적막하게 보존되어 있다.
한 마디로 지금은 그저 황룡사의 흔적만 볼 수 있다.
황룡사 터 곳곳에는 황룡사의 남은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황룡사의 흔적들의 크기로 실제 크기를 가늠해봤을 때 그 규모가 무려 축구장 8배 정도의 크기가 된다고 한다.
보존되어 있었다면 엄청난 규모의 역사박물관이 되었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사진 속 보이는 곳은 황룡사지에 있는 황룡사 역사문화관으로 여기에 들어가면 황룡사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고, 9층 목탑을 1/10 크기로 재현해 놓은 모형 탑도 만나볼 수 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원래대로 구현할 경우 무려 아파트 30층 높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과거에 이렇게 큰 탑을 쌓아올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 신기하다.
황룡사지 주변은 이렇게 적막함이 가득하다.
걷다보면 경주가 참 신기한 도시라고 계속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펼쳐진 초원에서 유적지가 나온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경주에는 주택과 아파트들이 가득한데 조금만 걷다보면 이렇게 논밭이 펼쳐지고 유적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가끔 발굴중인 곳들도 툭 툭, 정말 우리나라의 역사 그대로를 보여주는 느낌의 경주는 이탈리아 로마, 그리스 아테네, 이집트 룩소르에서 느낀 신기한 역사 속 세상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 경주 황룡사지
실제 발굴중인 고분을 구경할 수 있는 쪽샘유적발굴관
고분 발굴의 생생한 현장을 보고 싶다면 추천하는 곳이 있다.
바로 '쪽샘유적발굴관'이다.
대릉원 입구 기준 동쪽에 위치한 쪽샘지구에 있는 쪽샘유적발굴관은 한창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고분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은 고분 발굴과정을 경주를 찾는 관광객 그리고 모든 국민과 공유하고자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쪽샘44호분에 천장을 덮고 전시시설을 갖춘 후 사람들에게 개방한 곳이다!
이미 발굴 진행이 완료된 고분들은 봤어도, 발굴 진행 중인 고분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로웠다.
쪽샘유적발굴관에 들어서면 이렇게 발굴중인 고분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현재 쪽샘44호분은 흙과 돌을 걷어낸 과정까지 진행되어 있다.
이렇게 흙과 돌을 걷어낸 후 죽은 이가 담겨 있는 목곽의 관에 다다르면 이 고분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발굴과정은 물론 쪽샘지구의 위치와 간단한 전시들도 실내에 있어 짧게 둘러보기에 좋다.
쪽샘지구는 4~6새기 신라 귀족의 무덤 800개가 모여 있는 지역인데, 2020년 기준 국립경주문화재 연구소에서는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의 정밀 발굴 조사를 진행한 결과 바둑돌 200여 점과 신라 여성 호화 장신구를 한꺼번에 발굴했다고 한다.
특히, 비단벌레 장식과 장신구의 조합을 볼 때 무덤 주인이 여성인 왕족으로 추정되며 천마총, 황남대총 등과 같은 최상위 계층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나중에 이렇게 발굴 현장을 공개하던 이 곳의 무덤이 누구의 것인지 밝혀지면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로 다가올 것 같다.
특히, 44호분에서 발견된 비단벌레 장식은 여태까지 발굴이 진행된 신라 고분에서는 확인될 수 없는 형태와 크기의 장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해당 무덤을 여성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과거의 역사의 한 순간을 발굴하는 현장을 직접 볼 수 있게 만든 쪽샘유적박물관은 거창하게 둘러볼 것은 없지만 무덤의 발굴 과정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몇 년 후 이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조금 더 많은 부분이 발굴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쪽샘유적박물관]
관람시간: 매일 09:30 ~ 11:30, 13:00~17:30
관람료: 무료
▲ 쪽샘유적발굴관
경주는 공부를 할수록 더욱 흥미로운 곳이랍니다.
쪽샘유적박물관 주변에는 다양한 고분들이 펼쳐져 있다.
물론 아직 이 고분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주에 펼쳐진 수많은 무덤을을 보면 분/능/총/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쪽샘 44호'분', 천마'총', 선덕여왕'릉', 김유신'묘' 등과 같이 무덤의 끝에는 각기 다른 이름이 붙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기준도 알고 보면 경주여행이 더욱 재미있어 진다.
'쪽샘44호분'과 같이 이름의 끝이 '분'으로 끝나는 경우, 가장 보편적이고 큰 범위의 명칭으로 보면 된다.
'분'은 무덤의 주인을 묻은 뒤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려 만든 한 무덤을 뜻하며, 옛 무덤이라고 하여 '고분'이라고도 많이 부른다. 그리고 고분의 규모에 따라 왕릉일 수도 있고 인물의 무덤일 수도 있다.
'무열왕릉', '선덕여왕릉'과 같이 이름의 끝에 '릉(능)'이 있는 경우, 고분 중에서도 거대한 언덕처럼 보일 정도로 규모가 크거나 왕이나 왕비의 무덤일 것으로 예상되며 무덤의 주인에 대한 확실한 추정이 가능할 때 무덤의 주인 이름 끝에 '릉(능)'을 붙인 경우다.
한 마디로 시대를 풍미한 왕의 릉의 경우가 그렇다.
'천마총'과 같이 이름의 끝이 '총'으로 끝나는 경우에는 규모나 발굴 후 유물을 기준으로 볼 때 분명히 왕이나 왕비의 무덤이지만, 무덤의 주인을 명확히 추정할 수 없어 '능'의 호칭을 받지 못한 경우다.
천마도가 출시된 천마총의 경우 천마도라는 고귀하고 특징적인 유물이 나왔지만, 정확한 무덤의 주인을 추정할 수 없어 '능'이라는 호칭 대신 신 특징적인 유물 뒤에 '총'이란 호칭을 부른 채 불린다.
다른 곳으로는 금관이 가장 먼저 출토된 제 128호분을 '금관총'이라고 부르는 것도 동일하다!
마지막으로 '묘'는 무덤의 주인이 왕과 왕비가 아닌 신하, 귀족의 무덤이고 무덤의 주인 추정이 가능할 때 끝에 '묘'를 붙인다. 대포적으로 '김유신묘', '김인문묘'가 해당된다.
다 같은 고분인 줄 알았지만 경주는 공부를 하고 여행을 할 수록 여행의 질이 더욱 상승되는 느낌이다.
같은 거대한 무덤으로 보이더라도 주인이 명확할 경우와 명확하게 추정되지 않을 경우에 이름이 달라지는 것까지. 아마, 이런 정보들을 알고 경주 여행을 떠난다면 경주 여행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