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념
―21세기적 참호에서
이영숙
얼추 나이 오십이 돼가는 아파트 밤에도 낮에도 천장 위로 우두둑 쥐들이 달린다
여러 겹 덧붙인 벽지의 무게로 들뜬 벽과 벽지 사이에 쥐 일가가 살림 차린 건 부모님의 청계천 시절이지만 벽지 속을 내달리던 발소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쥐는 대를 물려가며 내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철원이모 댁 천장에서 떨어진 쥐 한 마리를 이종들과 함께 마대에 몰아넣어 대문 밖에 풀어준 일도 있었다
세 마린지 열두 마린지 독립군인지 토벌댄지 그들이 한 차례 지나간 후엔 세상에 없던 적막이 아주 잠깐 온다 화장실 천장 쪽문을 열고 손전등을 비춰 보면 자갈밭처럼 자욱한 쥐똥의 세계
이해해다오
꼬리 잘린 채 똥간이나 수챗구멍에 던져지던 쥐의 사체와
잘라낸 꼬리를 봉지에 담아 가 학교에서 검수받던 아이들
이해하지 말아다오
아이들은 자라 다시 쥐약을 놓는 어른이 되고
사과가 갉아 먹힌 곳간 길목 갉힌 사과 앞에 다음날이면 주도면밀하게 쥐 끈끈이를 놓는다
오, 용서하지 말아다오
약한 자들은 지구 곳곳에서 쥐처럼 소탕된다
번영과 평화의 이름으로 가차 없이 청소된다
얘야, 이리 와보렴
쥐똥나무 밑에서 뾰족한 입을 내미는 생쥐를 불러봐도
눈 마주쳐주지 않고
한번 만져보고 싶은 분홍색 발바닥
긴 꼬리만 잔상으로 남기고 사라지는
―《문학에스프리》 2023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