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걷는 산 제르마노 베르첼레제(San Germano Vercellese)에서 베르첼리 (Vercelli)까지 20 km입니다. 아주 평탄한 논두렁 길입니다. 중간에 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구간이어서 날씨를 보고 충분히 담아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구름 낀 흐릿한 날씨였습니다. 6시, 해가 막 떠오를 참이었습니다. 마을을 떠나 관개용 수로 (Naviglio d'Ivrea)를 따라 잠시 걷다가 SP11번 도로를 건너 논두렁을 걸었습니다. 마을에서 멀어지면서 까마득하게 논만 있는 벌판이었습니다. 한낮이면 뜨거워도 피할 그늘이라고는 전혀 없는 길이었습니다. 모기 떼 공격이 있기는 했지만 벌레 기피제가 한 몫을 했습니다. 구름과 바람이 도움이 되는 구간이었습니다.
철길 옆으로 난 농로를 따라가다가 스트렐라(Strella) 마을로 가는 도로의 철길 오버패스 밑 그늘에서 쉬었습니다. 마을은 철길 너머에 있었습니다. 산 제르마노 마을에서 4km를 걷는 동안 나무 그늘 없습니다. 철길을 따라 가다가 길다란 2층 건물에 노란색 칠을 한 까시나 디 까스텔로네 (cascina di Castellone) 를 지나갔습니다. 이곳에서 남으로 방향을 바꾸어 SP11 번 도로를 건넜다,
남쪽으로 거대한 까시나 주변에 나무 그늘이 있을 것 같아 길을 벗어나 그 대형 까시나까지 왔습니다. 산 제르마노에서 10km 지점이었습니다. 베르첼리까지 10 km 남았습니다. 큰 규모의 농장이었고 안에 성당 건물도 있었습니다. 기업농이었습니다. 세 개의 커다란 사일로에 벼를 저장해놓고 대형 곡물트럭이 벼를 선적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년 1800톤의 벼를 생산해서 도매로 공장에 출하한다고 했습니다. 주로 중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가족이 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주인 없는 개 세 마리가 목줄도 없이 달려들 기세였습니다. 밥이나 제대로 먹었을지 모를 녀석들이었습니다. 개 다루는 법을 알기에 걱정은 없었습니다.
카시나 
까시네 안에 있는 커다란 2 층 건물은 예전 농사철 인력을 수용하는 시설이었습니다. 조금 전 지나 온 까시네 디 까스텔로네의 2 층 건물 역시 그런 용도였습니다. 농번기에 포(Po) 강 들판으로 일하는 몬디나(mondina) 들이 잤던 곳입니다. 대부분 인근 지역의 가난한 여성들이었습니다. 매년 수 많은 여성들이 베르첼리와 노바라 지역 논에 투입되었습니다. 피아첸자, 만코바노 같은 원격지에서 어렵사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희망은 일하고 돌아갈 때 빵 덩어리나 폴렌타 죽을 식들에게 가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농촌 까시나에 도착할 때까지 담요와 지푸라기 베개를 가지고 집결지로 모인 다음 특별열차에 타고 베르첼리로 향했습니다. 베르첼리의 접수센터는 이들을 맞이하여 출생증명과 보건증을 확인하고 농장주의 차량에 태웠습니다. 보건증에는 면역여부가 주 검사항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차량이래야 말이나 트랙터가 끄는 화물 마차였습니다. 농장주와는 집단 계약을 하게 됩니다. 급료 이외에 약 40kg의 백미를 지급했다고 합니다.
이들 몬디나들은 4월부터 6월까지 모내기와 어린 모를 잘 자라게 하기 위한 잡초제거였습니다. 하루 종일 맨발로 논에서 구부리고 일해야 했고 강렬한 햇빛과 모기, 거머리에도 자신들을 보호해야만 했습니다. 가혹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으로 자주 분규가 발생하고는 했습니다. 결국 1909년 8 시간 노동으로 법이 정해지면서 분규는 진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고된 삶은 노래와 문학,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아침 일찍 겨우 일이나요(Alla mattina appena alzata)”는 20세기의 저항운동을 상징하는 노래 "bella ciao"가 되었습니다. 노동조건을 두고 노동자와 지주 사이에 갈등이 많았습니다. 영화 “쓰디 쓴 쌀(Riso Amaro)”에 소재가 된 분규였습니다. 까시나는 이들 몬디나의 아픔과 고통이 자고 나간 곳이었습니다.
사진출처: https://leblogdudoigtdansloeil.wordpress.com/2018/04/30/o-bella-ciao-histoire-breve-dune-chanson/
사진 출처: https://www.google.com/search?q=Bella+Ciao+delle+mondine&tbm=isch&tbs=rimg:CT5rh6_1lkNGJIjjNGp0gzctJ-O6beJ0-ef7urv7vjAUibhBJsKHS_19n26aAGzRPKwtW7ChLj9vKhIiIdiiwiDadp9ioSCc0anSDNy0n4EeKYDh7JYCDwKhIJ7pt4nT55_1u4RiF7rKeV_1520qEgmu_1u-MBSJuEBETDAJTLTLFMyoSCUmwodL_12fbpEb7hogrm3dVjKhIJoAbNE8rC1bsRjqOrOG6qIL4qEgkKEuP28qEiIhGmb4ILHpidZioSCR2KLCINp2n2EW5DhRe--FVK&tbo=u&sa=X&ved=2ahUKEwjWsrrFgeHfAhVHU7wKHc7oDsEQ9C96BAgBEBs&biw=1219&bih=553&dpr=1.35#imgrc=7pt4nT55_u5XkM:
몬디나들이 불렀던 노동요는 이렇습니다.
Alla mattina, appena alzata,
작자 미상
Alla mattina, appena alzata,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Alla mattina, appena alzata,
In risaiami tocca andar.
E tra gli insetti e le zanzare,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E tra gli insetti e le zanzare,
Duro lavoro mi tocca far.
Il Capo in piedi col suo bastone,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Il Capo in piedi col suo bastone,
E noi curve a lavorar.
O mamma mia, o che tormento,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O mamma mia, o che tormento,
Io t'invoco ogni doman.
Ma verra' un giorno che tutte quante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Ma verra' un giorno che tutte quante
lavoreremo in liberta'.
아침 일찍 겨우 일어나요
작자 미상
아침 일찍 겨우 일어나요
벨라 차오, 벨라 차오, 벨라 차오, 차오 차오
아침 일찍 겨우 일어나요
논으로 가야해요.
벌레가 물고 가시덤불이 찔러요
벨라 차오, 벨라 차오, 벨라 차오, 차오 차오
벌레가 물고 가시덤불이 찔러요
독하게 일해야 해요.
감독이 몽둥이 들고 서 있어요
벨라 차오, 벨라 차오, 벨라 차오, 차오 차오
감독이 몽둥이 들고 서 있어요
구부리고 일하라고.
아 엄마, 힘들어요.
벨라 차오, 벨라 차오, 벨라 차오, 차오 차오
아 엄마, 힘들어요.
날마다 엄마 불러요.
그러나 모두 함께 살 날 있겠죠.
벨라 차오, 벨라 차오, 벨라 차오, 차오 차오
그러나 모두 함께 살 날 있겠죠.
그때는 자유롭게 일해요.
여성인력 동원은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은 몬디네의 역할이 기계화 농약이 대신합니다. 논 갈이, 모내기와 벼 베기는 기계화되어 인력이 많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잡초 제거 역시 농약을 쓰면서 5월이나 유월에 논에서 사람 만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중국인이나 동남아 인들이 그나마 남은 육체노동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베르첼리 시내에는 여성 몬디나의 동상이 있어 이들을 기억했습니다.
https://da.wikipedia.org/wiki/Mondina
간선도로 SP11옆으로 집 몇 채가 보이는 곳이 까시네 스트라(Cascine Stra)입니다. 순례길 길가의 경당도 그렇고 퇴락해가는 까시네의 성당 역시 방치된 듯했습니다.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었습니다. 논에는 중국사람들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밀을 심었던 논들은 갈아 엎어 놓아 벌건 흙이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1km 남짓 둑을 걸어서 몬토네로(Montonero)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버려진 축사 지붕에는 수백 마리의 왜가리들이 하얗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들판에서 나무가 우거진 모습만으로 지나는 나그네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집이 몇 채 안돼 보이지만 14-15세기에는 요새화된 마을로 위세를 떨친 곳입니다. 길가에 몬토네로 성(Il Castello di Montonero)이 아직 건재하고 있었습니다. 방치하지 않고 칠을 새로 해서 반듯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마을 안에는 비계를 설치하고 집을 고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습니다. 잠시 쉬다가 벌판으로 나섰습니다.
이미 더워진 여름 날씨에 땀을 흘리고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베르첼리가 멀지 않은 들판에 논에는 벼가 무섭게 자랐습니다. 출수한 벼들로 가득한 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수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마주 오는 순례자는 스위스 처녀였습니다. 로마에서 집으로 걸어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스위스에는 몬디나와 같은 계절 노동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1] 박성태 등, 벼, 농민신문사, 2016
[2] Giuseppe De Santis, et al., Riso Amaro, movie directed by Giuseppe De Santis, Lux Film, 1949
[3] 작자 미상, “Bella Ciao delle mondine,”
https://www.youtube.com/watch?v=1lRL_4IyaQE,
내려 받기 2019. 1. 9.
첫댓글 몬디나들의 노동요는 어릴 때의 나의 모습이 떠 오르게 하네요~
진흙, 허리 아픔, 발 거름, 거머리, 달콤한 휴식 ....
정말 감명깊은 이야기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