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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강의(經史講義) 22 ○ 시(詩) 2
[녹명지십(鹿鳴之什)]
‘주항(周行)’ 두 자를 《집전(集傳)》에서는 대도(大道)라고 해석하였다. 어떤 사람이 나를 이미 좋아한다면 나에게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데에 있어서 허다한 도리가 있을 것인데, 굳이 대도를 보여 달라고 그에게 요구한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이것은 가빈(嘉賓)이 이미 말한 대도인가, 아니면 가빈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다면 의당 나에게 지극한 도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사슴이 먹는 것을 평(苹)이라고도 하고, 호(蒿)라고도 하고, 금(芩)이라고도 하였는데, 사슴이 좋아하는 것이 다만 이 세 가지뿐인가?
[이익운(李益運)이 대답하였다.]
대도(大道)라는 것은 선왕(先王)의 대도를 말합니다. 이것은 통합해서 말한 것이니, 대도의 가운데에 허다한 일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보여 달라고 한 말은 장차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사슴은 풀을 먹는 짐승이니, 좋아하는 것이 단지 이것들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평소에 강구한 바가 없어 이 세 가지 외에는 감히 억측해서 답변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장은 사신이 스스로 말한 말인가, 아니면 또한 위에 있는 자가 아랫사람을 위로하는 시인가? 2장의 ‘편안히 거처할 겨를이 없다[不遑啓處]’와 3장의 ‘아버지를 봉양할 겨를이 없다[不遑將父]’와 4장의 ‘어머니를 봉양할 겨를이 없다[不遑將母]’와 5장의 ‘어머니를 봉양함을 와서 말한다[將母來諗]’는 것에 대해서도 역시 먼저 말하고 뒤에 말하는 순서가 있으며 한 절(節)씩 나아갈수록 뜻이 깊어지는 것인가? 만약 ‘어머니를 봉양함[將母]’을 거듭 말한 것을 가지고 은의(恩義)가 편중되었다고 한다면 아버지를 봉양하는 의리[將父之義]에는 참으로 거론할 만한 얕고 깊은 차이가 있는가? 추(鵻)의 속명(俗名)은 무엇이며, 추가 흥을 일으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종섭(李宗燮)이 대답하였다.]
사신으로 나가 고생하는 상황을 신하가 감히 스스로 고하지 못하고 윗사람이 그 마음을 헤아려 대신 말한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옛날의 노시체(勞詩體)입니다. 4장과 5장에서 ‘장모(將母)’를 거듭 말한 것에 대해서는 소주(小註)의 공씨(孔氏) 설을 보면 “어머니는 은의가 치우치게 중하기 때문에 거듭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비록 얕고 깊은 정도를 거론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절이 거듭될수록 뜻이 깊어진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추(鵻)의 속명은 부불(夫不)로 해석하고, 이것이 흥을 일으키는 뜻에 대해서는 고주(古註)에 이르기를, “추는 일숙조(壹宿鳥)인데, 일숙이란 것은 자기가 자는 나무만을 한결같이 생각한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만약 새에게 편안히 여기는 곳이 있다는 것으로써 이 사람이 봉양을 하지 못하는 뜻을 비유했다고 한다면, 시인의 뜻이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황화시(皇華詩)는 사신이 치화(治化)를 아래에 펴고 아랫사람들의 정(情)을 위에 전달하는 것인데, 방문하여 묻는 것은 과연 어떤 일인가? 사신이 스스로 매양 미치지 못함을 생각하므로 널리 방문하고 물어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과연 풍속의 선악을 살피고 민간의 질고(疾苦)를 묻는 정도일 뿐이겠는가. 만약 거도(車徒)를 아름답게 나타내려고 한다면 의당 서지(徐遲)니 한완(閒緩)이니 하는 등의 말로 찬탄하며 노래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치구(馳驅)라고도 하고 선선(駪駪)이라고도 하여 많은 사람들이 빨리 달리는 모습만 있고 여유 있고 한가한 기상은 없으니, 어느 겨를에 풍속을 보아 살피고 질고를 찾아다니며 파악할 수 있겠는가.
[이현묵(李顯默)이 대답하였다.]
풍속의 선악과 민간의 질고가 바로 찾아다니며 묻는 일인데, 이에 대해서는 정자(程子)의 소주(小註)에서 이미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치구 등의 말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천천히 다녀야 살피며 물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왕명을 받듦에 있어서는 게으르게 세월만 보내서는 안 되니, 이러한 곳에서도 미치지 못할 듯이 한다는 뜻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시에서 반드시 ‘벌목정정(伐木丁丁)’으로써 흥을 일으킨 것은 어째서인가? 무릇 소리가 나는 물건은 한이 없는데 유독 나무 베는 소리를 취한 것은 어째서인가? 정정(丁丁)과 앵앵(嚶嚶)은 모두 소리가 나는 것이기 때문에 신(神)이 능히 들어준다고 하는 것인가? 호호(許許)는 야호(邪許)를 부르는 소리인데, 야호를 부르는 소리는 사람이 힘들고 고생스러울 때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즐거운 데에다 취하여 흥을 일으키는 것인가? 마른밥[乾餱]은 하찮은 음식이다. 일반적인 마음으로 헤아려 보면 귀한 음식 때문에 혹 서로 책망할 리는 있지만 하찮은 음식 때문에 실덕(失德)하게까지 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만약 말세에 인심이 아름답지 못해서 마른밥같이 하찮은 음식을 두고도 얼굴을 바꾸는 일을 면하지 못하게까지 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또한 그렇지 않다. 무릇 사람들 간에 생긴 불화의 틈은 모두 하찮은 일로 말미암아 크게 된 것이다. 처음에 하찮은 실수를 한 것 때문에 나중에는 서로 등을 지게 되는 법이니, 이러한 것들에 대해 자신에게 돌이켜 체험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감감고아(坎坎鼓我), 준준무아(蹲蹲舞我), 유주서아(有酒湑我), 무주고아(無酒酤我)에 모두 아(我) 자를 썼는데, 이른바 아라는 것은 누구인가? 만약 주인이 스스로를 아라고 하였다면 한 사람이 어느 겨를에 북을 치고 춤을 추며 또한 술을 거르고 술을 받아 올 수 있겠는가. 그리고 ‘변두가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다[籩豆有踐]’고 하기도 하고, ‘음식을 팔궤에 진열했다[陳饋八簋]’고 하기도 했으니, 이 잔치는 성대하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술이 없어서 내가 술을 받아 오는 데에까지 이른단 말인가. 아니면 술을 마시는 자의 취향이 같지 않고 술과 단술의 품격이 각기 달라 가빈(嘉賓)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받아 온 것은 아닌가. 앵앵(嚶嚶)하게 우는 새는 비록 벗을 구하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기는 하나, 저 그윽하고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 온 것은 혹 사람들이 성급하게 나아가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 혹 새들 세계에도 또한 인간 세상의 세태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고인들은 이 구절로 뜻을 취하였는데, 상세히 기억해 낼 수가 있겠는가?
[박종정(朴宗正)이 대답하였다.]
나무를 베고 새가 우는 것은 대개 보는 것에 따라서 흥을 일으킨 것이니, 신이 강림하여 들어주는 것은 반드시 나무를 베고 새가 우는 소리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호호(許許)는 여러 사람들이 힘을 쓰는 소리이니, 새들이 조화롭게 우는 소리에 비유한 것입니다. 마른밥은 지극히 하찮은 물건인데도 말속(末俗)에서는 간혹 이것 때문에 서로 과실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으니, 이것은 모두 시인에게 절실하고 비근한 말입니다. 아(我)라는 것은 주인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고, 고(鼓)와 무(舞)는 무동(舞童)과 악동(樂童)의 일인 것 같습니다. ‘술을 받아 온다는 것[酤酒]’은 술이 없어서 사 온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뜻은 대개, ‘지금은 술이 있지만, 나중에 만약 술이 없게 되면 내 마땅히 술을 사서 부족하지 않게 댈 것이다’라는 것일 것입니다. 새가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 간 것은 비유를 취한 것이 절실한데, 고인의 시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지 못합니다.
산(山), 언덕[阜], 산마루[岡], 구릉[陵]은 형체가 있는 사물이고 복(福)은 형체가 없는 물건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산, 언덕, 산마루, 구릉과 같을 수가 있는가? ‘그대로 하여금 많은 이익이 되게 하겠다[俾爾多益]’는 말은 장차 누구에게 이익이 되게 하겠다는 말이며, ‘그대를 모두 좋게 하도다[俾爾戩穀]’라는 말은 누구를 그렇게 하겠다는 말인가? 선조(先祖)가 복을 내려 그 자손에게 끼친다는 것은 인정(人情)으로 헤아려 보건대 지극히 간절한 말이니 의당 상천(上天)이 그대에게 주는 것보다 앞서야 하는데, 이 장에서는 ‘신이 이른다[神之弔矣]’는 말이 ‘하늘이 그대를 보정한다[天保定爾]’의 뒤에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백성들이 마시고 먹는 것이 덕(德)을 실행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반드시 마시고 먹는 것으로써 덕을 실행하는 근본을 삼는데, 그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남산(南山)은 이지러지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는다는 말과 송백(松柏)은 잎이 계속 이어져 나온다는 말은 인군을 송축하는 말이니 그런 뜻이 될 수 있지만, 해는 한낮이 되었다가는 기울어지고 달은 가득 찼다가는 이지러지니 어떻게 인군이 복 받기를 송축하는 뜻이 될 수가 있는가?
[서용보(徐龍輔)가 대답하였다.]
그 복이 두텁고 큰 것을 형용할 때에는 산, 언덕, 산마루, 구릉에서 비유를 취하고, 그 복이 모여드는 것을 형용할 때에는 시냇물이 이르는 것에서 비유를 취한 것입니다.
[김재찬(金載瓚)이 대답하였다.]
이 장의 종지는 바로 하늘과 인군의 관계에 있어서 덕을 닦고 복을 내려 주는 말이니, ‘많이 이익되게 한다’는 것이나 ‘모두 좋게 한다’는 것은 그 주체가 하늘 아닌 것이 없습니다. 현덕(玄德)이 올라가 하늘에까지 전해져 마주 대하고 제사를 지내니 하늘로부터 이러한 복을 받게 되고, 정성껏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니 조고(祖考)들이 강림하여 돕는 것입니다. 대개 먼저 하늘로부터 녹을 받았기 때문에 조고도 또한 따라서 거듭 도우신 것입니다. 무릇 백성들이 일상생활하는 데에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으니, 백성들이 풍족한 뒤에야 각각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덕을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너의 덕[爾德]’이라고 한 것은 진실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해에 대해서는 ‘떠오른다[升]’고 하고 달에 대해서는 ‘항상한다[恒]’고 하여 복록이 장차 일어날 상(象)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무궁한 복록과 장구한 수명을 송축하는 말을 거듭 말하였으니, 인군에게 축원하는 정성이 또한 간절하다 하겠습니다.
출거시(出車詩)는 대개 장수를 위로하기 위하여 지은 것인데, “왕이 남중을 명하여 삭방(朔方)에 가서 성을 쌓게 하였다.[王命南仲 往城于方]” 하고, 또 이르기를, “천자가 나를 명하여 저 삭방에 성을 쌓게 하였다.[天子命我 城彼朔方]”라고 하여, 마치 성을 쌓는 일에만 오로지 뜻을 둔 듯한 반면에 장수에게 명하여 군사를 출동시키는 뜻은 조금도 보이지 않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시에서 ‘위엄과 명성이 찬란한 남중[赫赫南仲]’이라고 일컬은 곳이 한두 군데일 뿐만이 아니니, 그렇다면 남중은 참으로 원융(元戎)이다. 그런데 원융의 직책이 외적을 막아 싸우는 일에 있지 않고 도리어 다만 성을 쌓고 수자리 가는 것만을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옛날 내가 출정할 때에는 기장과 피가 무성하더니, 지금 내가 올 때에는 눈이 내려 진흙탕이 되었네.[昔我往矣 黍稷方華 今我來思 雨雪載塗]”라고 하였으니, 그사이에 많은 시간이 지났을 터인데 수자리를 전전하며 체류하는 것에 대한 탄식이 없을 수 있겠는가? 동래 여씨(東萊呂氏)의 주에 이르기를, “채미(采薇)에서 이른바 간다는 것은 수자리를 보낼 때이고 이 시에서 이른바 간다는 것은 길 가는 도중에 있을 때이며, 채미에서 이른바 온다는 것은 수자리를 끝내고 돌아올 때이고 이 시에서 이른바 온다는 것은 돌아오는 도중에 있을 때이다.” 하였고, 두 시의 대지(大旨)에서 수자리에 보내는 시라고 하기도 하고 개선하는 장수를 위로하는 시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 사이의 대체적인 내용은 심하게 다르지 않은데, 왕래(往來) 두 자의 뜻이 이와 같이 다른 것은 어째서인가? 그리고 아래 장의 왕래가 다른 뜻을 어떻게 보면 되겠는가?
[홍인호(洪仁浩)가 대답하였다.]
옛날 성왕(聖王)이 융적(戎狄)을 다스린 방도로는 변방을 견고하게 할 방책을 찾아 안으로 정교를 닦고 밖으로 외적을 물리치는 것을 극진하게 했을 따름입니다. 험윤(玁狁)이 중화를 어지럽힌 것은 변경에서 소란을 피운 것에 불과했으니, 주왕(周王)이 오랑캐를 방비하는 것도 의당 성을 쌓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구루(溝壘)와 기계(器械)가 이미 매우 잘 갖추어졌다면 오랑캐를 잘 무마하여 안집(安輯) 시키는 방도가 없다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 장은 바로 개선하는 장수를 위로하고 수자리 가는 것을 가엾게 여기는 뜻이니, 이는 참으로 진지에 나아가 무기를 준비하는 말도 아니고 또한 인군이 수레를 밀고 부월을 주는 말도 아닙니다. 이는 다만 우리 변경을 견고하게 하여 드센 저들을 막는 데에 불과하니, 주 나라가 오랑캐를 막는 데는 참으로 훌륭한 계책을 얻었다고 이를 만합니다. 변방에 가서 수자리 사는 것을 방추(防秋)라고 하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습니다. 이 장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기장과 피가 무성한 것은 5, 6월이고 눈이 내려 진흙탕이 된 것은 동풍(東風)이 불어 얼음이 풀리는 철입니다. 그사이의 기간을 따져 보건대 8, 9개월을 넘지 않으니, 해를 넘기며 체류하는 고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위 장에서는 일행을 파견하려 하면서 미리 길을 가며 지체할 상황을 서술하였고, 아래 장에서는 이미 돌아와서 길에서 갖은 고생을 겪었던 것을 진술하였는데, 이것들은 모두 아랫사람의 마음을 빠짐없이 환히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버드나무가 하늘거릴 때는 이미 기장과 피가 무성한 계절과는 다르고, 함박눈이 펄펄 내릴 때는 눈이 내려 진흙탕이 될 때보다 조금 이르니, 그렇다면 양장(兩章)의 왕(往) 자는 참으로 선후의 구분이 있는 것입니다. 군사들이 돌아올 처음에는 눈이 펄펄 내렸는데 징을 울리며 개선하는 것은 모춘(暮春)에까지 미쳤으니, 길 가는 것이 더디고 돌아오는 기간이 오래 걸린 데 대한 탄식은 이 5장과 6장에서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내(來)’ 자를 길에 있을 때라고 한 것은 바로 일행을 파견하는 뜻과 돌아온 자들을 위로하는 뜻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역에서 돌아온 것을 위로하는 시이니, 그렇다면 정부(征夫)가 간 때는 언제이고 돌아온 때는 언제이며, 갈 때의 일은 말하지 않고 돌아올 때의 일만을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정부에게는 의당 부모와 형제가 있을 듯하니 만약 그리워하는 정(情)을 말한다면 의당 부모와 형제를 그리워하는 것을 우선해야 하는데, 단지 여인의 마음이 서글프다고만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노춘(李魯春)이 대답하였다.]
수자리 부역의 기한을 금년 늦은 봄에 갔다가 내년 세모(歲暮)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번 정부(征夫)가 돌아오는 것은 세모에 수자리하는 인원을 교체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편의 뜻은 다만 아내가 괴롭게 그리워하는 것만을 기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인의 마음이 서글프다고만 말한 것 같습니다.
이상은 녹명지십(鹿鳴之什)이다.
[鹿鳴之什]
周行二字。集傳釋之以大道。人旣好我則其所以示我者。有許多般道理。而必責之以大道者何義也。且是嘉賓已說得之大道歟。抑亦謂嘉賓有愛我之心。則當示我以至道歟。鹿之所食。曰苹曰蒿曰芩。鹿性之所嗜好者。止此三者歟。
益運對。大道云者。先王之大道也。此乃統言之事。則大道之中。包得許多般事。而示我云云。乃是將
然之辭也。鹿是食草之獸。則其所嗜好。恐不止此。而臣於平日。無所講究。三者之外。不敢臆對矣。
此章卽使臣自道之語歟。抑亦在上者勞下之詩歟。二章之不遑啓處。三章之不遑將父。四章之不遑將母。五章之將母來諗。亦有先後之說。而一節深於一節歟。若以再言將母。謂以恩義偏重。則其於將父之義。眞有淺深之可言歟。鵻之俗名云何。鵻之起興何義歟。
宗燮對。出使勞苦之狀。臣下不敢自告。而上之人探其情而代其言。此所謂古之勞詩之體也。四章五章之再言將母。小註孔氏之說以爲母以恩義偏重。故再言之。雖若有淺深之可言。而恐不可謂一節深一節矣。鵻之俗名。釋以夫不。而起興之義。古註云鵻是壹宿之鳥。壹宿者壹意於所宿之大也。若以鳥有所安之處。喩此人無將養之義。則詩人之意。恐不無義矣。
皇華一詩。是使臣敷宣治化。導達人情。而其所諏謀度詢。果是何事歟。使臣自以每懷靡及。故廣詢博訪。以補其不逮。則果止於察風俗之善惡。問民間之疾苦歟。若欲美其車徒。則似當以徐遲閒緩等語。詠歌稱歎。而此云馳驅。又曰駪駪。便有衆多疾行之貌。若無雍容暇豫之象。何暇能觀風俗而訪疾苦耶。
顯默對。風俗善惡。民間疾苦。乃所以諮訪之事。而程夫子小註已詳之矣。至於馳驅等語。徐行緩驅。雖若可以察訪。而奉承王命。亦不可以忨愒。則此等處。亦可見靡及之義也。
此詩之必以伐木丁丁起興何哉。凡物之有聲者何限。而獨取伐木之聲者何也。丁丁嚶嚶。皆有聲焉。故謂之神能聽之歟。許許乃呼邪之聲也。呼邪之聲。人所勞苦。則奚取於湛樂之地而起興歟。乾餱食之薄
者。揆以常情則食之厚者。或有相誚之理。而至於薄食之致有失德。其故何歟。若謂末世人心不淑。至於乾餱之微。未免易面之事則此又不然。凡人之嫌隙。莫不因微而成大。始之薄過。終焉相背。此等處其可不反躬而體驗耶。鼓舞湑酤。皆下我字。所謂我者誰也。若云主人自我則一人之身。何暇鼓之。何暇舞之。又何暇以或湑或酤耶。或曰籩豆有踐。或曰陳饋八簋。惟玆之宴。可謂盛矣。何至於無酒而酤我耶。抑無乃飮者之性不同。酒醴之品各異。要慰嘉賓之心。有此酤酒之擧歟。嚶嚶之鳥。雖比求友之人。而捨彼幽 深之谷。遷于喬高之木。無或近於人之躁進。而抑可謂鳥亦世情歟。古人以此句有取義。可能詳記歟。
宗正對。伐木鳥鳴。蓋亦因所見而起興。神之降監。非必在於伐木鳥鳴之聲矣。許許衆人用力之聲。則比之於羣鳥之和鳴。乾餱乃至微至薄之物。而猶或有末俗之相愆。此皆詩人切近之辭矣。我者主人之自稱也。鼓舞似是舞童樂童之事也。酤酒非謂無酒而然。其意蓋曰今雖有酒。而後若乏絶。則我當酤以繼之耳。出幽遷喬。取譬則切。而古人之詩。未能詳矣。
山阜岡陵。有形之物也。福是無形底物事。則何以如山阜岡陵歟。俾爾多益。將益於誰。俾爾戩穀。誰所使也。祖先之降福。貽厥子孫者。揆以人情。至切至懇。宜先於上天之錫汝。而此章則神之弔矣。却在於天保之後何歟。民之飮食。何關於爲德。而必以飮食爲爲德之本。其義何在。南山則不騫不崩。松柏則無不或承。猶可爲祝君之語。而至於日月。中則昃滿則虧。是豈足爲頌君受福之義乎。
龍輔對。形容其福之厚大則取喩於山阜岡陵。形容其福之湊集則取喩於川至也
載瓚對。此章宗旨。卽是天與君之際。修德降福之辭。則多益戩穀。莫非天也。玄德升聞。對越于天。則天錫以福而受福于天。齎誠享先。祖考來格。則先祖降佑而受佑于祖。蓋其先受祿于天。故祖考亦從以申之也。凡民日用。莫切於飮食。而百姓裕足然後。各全其所固有之德矣。謂之爾德。良以是也。於日則曰升。於月則曰恒。以寓福祿將興之象。申言遐祉永年之祝。祝君之誠。亦云切矣。
出車一詩。蓋爲勞將帥而作。則此云王命南仲。往城于方。又云天子命我。城彼朔方。似若專意於築城之
役。而命將出師之意。不少槪見何哉。詩稱赫赫南仲者。非止一再。則南仲固是元戎。而元戎之職。不在於禦侮敵愾。乃反止於築城往戍者何歟。昔我往矣。黍稷方華。今我來思。雨雪載塗云。則中間日月當費幾何。而能無轉戍滯留之嘆耶。呂氏註云采薇之所謂往。遣戍時也。此詩之所謂往。在道時也。采薇之所謂來。戍畢時也。此詩之所謂來。歸而在道時也。兩詩大旨。或云遣戍役之詩。或云勞還率之詩。其間分槩不甚相遠。而往來二字之義。若是不同何歟。下章往來不同之義。於何看則爲得耶。
仁浩對。古聖王馭戎狄之道。在於得其固圉之策。盡其修攘之方而已。玁狁之猾夏。不過撓邊。則周王之備胡。宜在築城。而溝壘器械。旣極其精。則懷綏安輯。不患無術矣。此章乃是勞其還率。憫其征戍之意。則固非臨陣詰戎之謨。又異推轂授鉞之辭。直不過固我邊圉。捍彼強梁而止耳。周家禦戎。儘可謂得其長策矣。戍邊者謂之防秋。則自古已然。雖以此章言之。黍稷之華。乃是五六月之時。而雨雪載塗則又是東風解凍之節。計其日月。不過八九箇月。似無經年淹滯之苦矣。上章則將遣其行而預叙其行邁濡滯之狀。下章則旣覯其歸而追陳其艱辛在塗之苦。何莫非洞體下情。纖悉無遺者耶。楊柳依依。旣異於黍稷方華之節。雨雪霏霏。差早於雨雪載塗之時。則兩章之往字。固有先後之分。而師徒復路。始在於雨雪之塗。鐃凱言旋。終及於維暮之春。則行邁遲回歸期荏苒之歎。卽此第五章六章而可驗矣。來字之謂以在道時者。政以其遣行勞歸之意。有所不同故耳。
此是勞還役之詩。則其征夫之出往在何時。來歸在何時。而一篇之內。不言往時之事。只言來歸之事何
歟。征夫似當有父母兄弟。若言相思之情則當以父母之念彼兄弟之懷哉爲先。而只言女心之傷悲者亦何歟。
魯春對。戍役之期。出往于今年春暮。來歸于明年歲暮。則今此征夫之歸。似在歲暮代戍之時。而此篇之旨。但述其室家思念之苦。故似只以女心傷悲爲言矣。以上鹿鳴之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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