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장 13-22절. 베드로가 대제사장 앞에서 담대히 설교함. 요약설교
성령 받고 난 그 이후의 제자들의 행동과 태도가 과연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처럼 한심하고, 비겁하고, 배은망덕하게 행동했던 제자들이 전혀 달라져 있지 않습니까?
먼저, 13-14절 말씀을 봅시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저들의 신분은 여기서 언급한 대로 본래 학문 없는 어부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무식한 어부들이 지금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굉장히 말을 잘하는 유식한 사람으로 달라졌습니다.
옛날 유명한 축구 선수요 감독이었던 분이 현역으로 활동할 때, 신문기자들이 그와 인터뷰를 한번 하려고 하면,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도 말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억지로 인터뷰에 이끌어 내어서 한마디 말을 시키면, 횡설수설하고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소리만 잔뜩 하기 때문에, 기자들이 새로 기사를 소설 쓰듯이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예수님을 믿고, 또 무릎이 아파서 이천석 목사님께 안수받고 성령을 받고난 후에 얼마나 달라졌는지 아십니까?
여러 교회를 다니며 간증을 했습니다.
신문기자들이 너무 놀라서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해 보았더니 그 비결이 바로 성령 받은 것이라는 것을 저들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이고, 성령이 역사인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하는 것을 듣고, 유대인들이 이상히 여겼다고 했지요?
왜 그랬겠습니까?
너무나 말을 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4절에 보니까, 저들로 인해 병 나은 사람이 있었고, 또 바로 그 병 나은 사람이 저들 옆에서 함께 서 있어서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14절에 <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베드로는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어지는 용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9-20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1. 제자들이 너무 많이 달라져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20장 19절로 한번 돌아가 보면,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잡으러 올까봐, 전전긍긍하며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죽이려고 덤벼드는 저들 앞에서 용감히 맞서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이 아주 주목할 만합니다.
앞장인 3장 14-15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이 말씀은 쉽게 보고 넘길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베드로가 하는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두 달 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바로 그 가야바와 장본인들입니다.
바로 그들 앞에서 베드로가 지금 <당신들이 예수를 죽였소.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요>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솔직히 거의 ‘나를 죽이시오'라고 하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위험천만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집으로 쫓아오지 않았을 때에도, 혹시 잡으러 올까 봐 벌벌 떨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이렇게 달라진 것입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자기들을 잡으려고 하는 자들, 그들 앞에서 피하거나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히 맞서서, <당신들이 예수님을 죽였소. 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소>라고 정말 겁 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용감하게 나오니까 오히려 놀라고 당황하고 주눅 든 쪽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2. 그래서 지금 저들은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제자들을 회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6절, 18절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라.>
그러나 그 말에 베드로와 요한이 또 무어라고 응수하고 있습니까?
20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처럼 놀라운 것입니다.
그래서 꼭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3.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사도들의 당당함에 놀랐습니다.
13-14절.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이전에 대제사장 가야바와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재판하고 처벌할 때는, 사도들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가기에 바빴는데, 감히 교육을 받지도 못한 사도들이 최고의 지도자들 앞에서 당당히 너희가 죽인 예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나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 때 사도들이 한 말은 성령님이 주신 지혜와 권능으로 말한 것이었고, 또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같이 병 나은 사람이 사도들과 함께 서 있었기 때문에,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사도들의 달변과 증인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성령 충만함이 담대함과 달변의 원인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하므로, 이전에는 사람을 두려워하던 베드로가 하나님을 모시고 담대하게 되었습니다.
잠언 28:1.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베드로는 성령 충만하여 담대하면서도, 건방지지 않고, 예의 바르게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대했습니다.
즉 ‘백성의 관원들과 장로들아’라고 호칭하면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존경과 예의를 다했습니다.
그러나 산헤드린 공회원의 말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담대히 진리를 말했습니다.
5.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위협하기만 하고, 구속이나 처형을 하지 못했습니다.
16-17절.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즉 산헤드린 공회원들조차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로서 병 고침 받은 사람이 사도들과 함께 서 있었기 때문에, 만일 이 때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사도들을 처벌하면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하려는 유일한 방법은 사도들이 행한 기적 사건의 소문과 사도들의 가르침이 더이상 퍼지지 않게 하려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명백한 증거는 권력의 힘보다도 더 위대합니다.
6.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했으나, 사도들은 그들의 말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라고 하고,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부활하신 사건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18-20절.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한 것은 예수님께서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이 말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마 28:19, 막 16:15)에 정반대로 대치되는 악마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사람의 말 듣는 것 보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옳다고 하면서(행 5:29에서도 반복함), 우리는 신실한 증인으로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아테네 사람들에게 ‘나는 그대들의 말보다도 하나님께 순종하겠노라. 그대들이 내가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Apology. 23. B).
7. 핍박자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사도들을 공회에서 쫓아냈습니다.
21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언제나 권력자가 종교인을 핍박하는 것은 종교단체에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산헤드린 공회는 사도들이 병자를 고친 그 사람이 명백한 증인으로 서 있고, 모든 백성들이 사도들을 응원하고 있었으므로, 태형이나 구금형을 가하지 못하고, 단지 협박하고 쫓아내보냈습니다.
언제나 진실한 증인은 권력자에게 굴복하는 것 보다, 양심적 진실로써 자신이 체험한 성령의 중생과 예수님께 대한 생활 속의 체험을 진솔하게 증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나 전도도 이런 체험적 증언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솔직함과 성실한 답변과 명백한 증인으로 인해, 산헤드린 재판관들은 사도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풀어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성령님을 의지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판정과 같은 세상에서 항상 성령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진실하고 성실하여, 사람들의 재판에서 늘 승리하고, 복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