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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장 25-33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시리라.
1.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2.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수백만 명의 환영인파 속에서 왕으로 등극할 것이고, 자기들은 장관 자리 차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내일이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자신만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제자들에게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그래서, 오늘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5절. 이것을 비유로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새번역: 지금까지는 이런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비유로 말하였으나, 다시는 내가 비유로 말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에 대하여 분명히 말해 줄 때가 올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지금까지는 내가 비유로 말했으나 때가 되면 너희에게 비유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겠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비유적인 언어로 말해왔다: 내가 너희에게 더 이상 비유적인 언어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께 대해 명백히 말할 시간이 오고 있다. ("These things I have spoken to you in figurative language; an hour is coming when I will no longer speak to you in figurative language, but will tell you plainly of the Father.)
New International Version: 비록 내가 비유적으로 말해왔지만, 내가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내 아버지에 관해서 너희에게 명백히 말할 때가 오고 있다. ("Though I have been speaking figuratively, a time is coming when I will no longer use this kind of language but will tell you plainly about my Father.)
이것을 비유로 일렀거니와,
Ταῦτα ἐν παροιμίαις λελάληκα ὑμῖν·
These in allegories I have spoken to you
직역하면 ‘이것들을 비유로 내가 너희에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일렀거니와’(λελάληκα)는 현재완료형입니다(I have spoken).
때가 이르면 다시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ἔρχεται ὥρα ὅτε οὐκέτι ἐν παροιμίαις λαλήσω ὑμῖν,
is coming hour when no more in allegories I will speak to you
직역하면 ‘때가 이르면 그 때는 내가 다시 비유로 너희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는 뜻입니다.
‘이르면’(ἔρχεται)은 현재형이고(is coming), ‘이르지’(λαλήσω)는 미래형입니다(I will speak).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ἀλλὰ παρρησίᾳ περὶ τοῦ Πατρὸς ἀπαγγελῶ ὑμῖν.
but plainly concerning the Father I will tell to you
직역하면 ‘그러나 아버지에 대해서 내가 밝히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이르리라’(ἀπαγγελῶ)는 미래형입니다( I will tell).
1. <비유>란 단어(παροιμία)는 어원이 ‘덧붙여 하는 말’(by the way)에서 나왔는데, ‘속담, 비밀스런 말, 비유, 비유적인 담화, 잠언’( byword, cryptic saying, a parable, an allegory, figurative discourse a proverb)을 가리키는 말이고, 마태복음 13장에서 일반적으로 쓰인 비유란 단어(παραβολή)는 ‘곁에’란 단어와 ‘던지다’란 단어가 합쳐서 된 단어(pará, "close beside" and bállō, "to cast")로서, ‘이미 가르친 진리를 곁에 비유를 던져서 더욱 쉽게 가르치는 것”(a parable; a teaching aid cast alongside the truth being taught)이고 ‘친숙한 비유를 사용해서 더욱 잘 깨달을 수 있는 빛을 던져주는 것’(additional light by using an familiar analogy)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두 단어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개역성경에서는 본 절의 것은 ’비사‘로 번역했다가 개역개정에서는 똑같이 ’비유‘로 번역했습니다.
<밝히>라는 단어(παρρησία)는 원래 명사로서 ‘말의 자유, 공공연히 말함 담대함, 확신’(freedom of speech, openness especially in speech; boldness, confidence)을 가리키는데, 여격으로 쓰여서 부사와 같이 ‘밝히, 명백히’( plainly)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비유로 일렀거니와>와 <비유로 이르지 않고>에서 ‘이르다’는 단어(λαλέω)는 ‘말하다’(talk)는 뜻이고, <밝히 이르리라>에서 ‘이르다’는 단어(ἀπαγγελῶ)는 ‘보고하다, 알리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말을 전하다’(to report, announce, report from one place to another)는 뜻으로서 차이가 납니다.
즉 ‘예수님이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는 비유로 말씀하시던 것을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께서 임하시면, 예수님과 천국에 대한 비밀을 더욱 분명하게 계시해주실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십자가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시고, 구주되심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았으며, 천국에 대한 계시도 더욱 분명하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유대나라를 회복할 유대나라의 정치적인 메시야로만 이해했던 것입니다.
2. 이것을 비유로 일렀거니와
‘이것을’이란 16장 21절에서 ‘해산 여인의 비유’를 말씀하여, 여인이 해산이 임박하면 근심하듯이 예수님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제자들이 근심할 것과 아들을 낳으면 근심이 사라지고 기뻐할 것처럼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님이 강림하시면 제자들이 기뻐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3. 때가 이르면 다시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때’란 성령님이 강림하신 때를 가리키고, 성령님이 강림하시면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것을 밝히 말씀해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4.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성령님이 오시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가르쳐주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해주시고, 또 예수님에 관한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밝히 말씀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요 16:13-14)
26절. 그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니
현대인의 성경: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직접 구할 것이며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아버지께 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고,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아버지께 구하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In that day you will ask in My name, and I do not say to you that I will request of the Father on your behalf;)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ἐν τῷ ὀνόματί μου αἰτήσεσθε,
In that the day in the name of Me you will ask
‘구할 것이요’(αἰτήσεσθε)는 미래형입니다(you will ask).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니
καὶ οὐ λέγω ὑμῖν ὅτι ἐγὼ ἐρωτήσω τὸν Πατέρα περὶ ὑμῶν·
and not I do say to you that I I will request of the Father for you
직역하면, ‘그리고 바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할 것이라는 것을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내가’(ἐγὼ: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구하겠다는’(ἐρωτήσω)은 미래형이고(I will request of), ‘말하고’(λέγω)는 현재형입니다(I do say).
1. <이름>이란 단어(ὄνομα)는 ‘이름, 권위, 명성, 평판, 인격, 대의명분’ (a name, authority, fame, reputation, character, cause)을 가리킵니다.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에서 <구하다>란 단어(αἰτέω)는 ‘구하다, 요구하다, 간청하다’(to ask, request, petition, demand)는 뜻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에서 <구하다>란 단어(ἐρωτάω)는 ‘구하다, 질문하다, 요구하다, 기도하다’(to ask, question, make a request to, pray)란 뜻으로서 ‘특별한 관계 속에서 고려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 requesting receives special consideration because of the special relationship involved)을 뜻합니다.
2.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그 날’(τῇ ἡμέρᾳ: the day)이란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 시대가 된 때, 즉 교회 시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을 여섯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14:13-14, 15:16, 16:23, 24:26)
3.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니
예수님이 육신으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14:16, 17:9, 15, 20)
그러나 십자가 대속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 시대 즉 교회 시대에는 성도들이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지만(롬 8:34, 히 7:25), 그것은 육신으로 계시면서 기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성령님 강림하신 교회 시대에는 성도들이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씀입니다.
4. 예수님이 이 세상 나라의 왕이 되셨다면, 제자들의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상시 제자들에게 먹을 것도 주시고, 병도 고쳐주시고, 마귀도 쫓아주신 것을 누리며 부족함 없이 살아왔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제자들도 인기 있고, 높은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록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 날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받으리라고 희망적인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성도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5. 예화
제가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일입니다.
각 지방에서 오시는 강사님들이 저희 신학교에 오시면, 점심을 들고 가셔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한 음식점을 정해놓고, 신학교에서 오셨다고 하면, 언제나 식사를 거저 하실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강사님들은 언제나 신학교 이름만 대면, 그곳에서 식사를 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청구할 수 있게 해놓으셨으니까, 성도들은 예수님 이름만 대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6.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동안에는 제자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예수님이 직접 챙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제 세상을 떠나서 천국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들어주실 것이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먹을 것이 어디 있으니, 챙겨 먹으라고 일러두는 것과 같습니다.
7. 옛날 어르신들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부인이 게으름뱅이 남편을 데리고 살았답니다.
그런데, 친정에 다녀올 일이 생겨서, 남편에게 당부하고 떠났답니다.
먹을 것이 어디 어디에 있으니까 굶지 말고 찾아 먹으시오.
그런데, 아무래도 부인이 생각하기에 이 게으름뱅이 남편이 굶어죽을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커다랗고 동그란 빵을 만들어서 남편의 목에다 걸어주고 갔답니다.
그런데, 친정에 갔다 와 보니까, 남편이 굶어죽었더랍니다.
왜 굶어죽었을까요?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 싫어서, 굶어죽었답니다.
하 하 하 ....
8.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이 굶어 죽지나 않을까, 불신자들의 핍박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모든 것을 염려하셔서, 가장 손쉬운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임금님 하시지 않더라도,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늘나라 임금 되시는 하나님에게서 모든 것을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498장>
1.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은사 원한 내게 은사의 주님. 신유 구한 내게 신유의 주님, 나의 마음 속에 지금 오셨네. 나의 생명 되신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찬송가 91장>
1.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27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새번역: 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믿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for the Father Himself loves you, because you have loved Me and have believed that I came forth from the Father.)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αὐτὸς γὰρ ὁ Πατὴρ φιλεῖ ὑμᾶς,
Himself for the Father loves you,
직역하면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사랑하심이니라’(φιλεῖ)는 현재형입니다(loves).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ὅτι ὑμεῖς ἐμὲ πεφιλήκατε καὶ πεπιστεύκατε ὅτι ἐγὼ παρὰ τοῦ Θεοῦ ἐξῆλθον.
because you Me you have loved and have believed that I from the Father I came forth.
직역하면 ‘이는 바로 너희가 나를 사랑했고, 바로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너희가 믿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너희가’(ὑμεῖς)와 ‘내가’(ἐγὼ)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사랑하고’(πεφιλήκατε)는 현재완료이고(have loved), ‘믿었으므로’(πεπιστεύκατε)도 현재완료입니다(have believed).
‘온’(ἐξῆλθον)은 부정과거로서( came forth)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에서 ‘사랑한다’는 단어(φιλέω)는 ‘사랑한다, 친구로서 사랑한다, 애정을 가지고 본다, 애정을 품다’(to love, love of friendship, regard with affection, cherish)는 뜻으로서, ‘언제나 하나님에 의해서 한정되는’(‘loving’ is always defined by God) ‘사랑하다’란 단어(ἀγαπάω)와 차이가 납니다.
<내가 하나님께부터 온 줄>에서 ‘오다’는 단어(ἐξέρχομαι)는 ‘오다, 나오다, 어디로부터 나오다’ (to go, go out, come out come out of)는 뜻입니다.
<믿었으므로>에서 ‘믿는다’는 단어(πιστεύω)는 ‘믿는다, 신뢰한다, 맡긴다, 확신한다’(to believe, have faith in, trust in. entrust, affirm, have confidence)는 뜻으로서, ‘인간적으로 설득당하고 믿는 것이나 하나님께 설득당하고 믿는 것’(be persuaded– believe; used of persuading human believing and of being persuaded by the Lord)을 가리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사랑하심이라>에서 ‘사랑하다’란 단어(φιλέω)는 ‘친구처럼 친밀하고 따뜻하게 사랑하는 것’(to show warm affection in intimate friendship)을 가리킵니다.
2. 제자들은 예수님을 친구처럼 애정을 가지고 사랑했습니다. (φιλέω)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단순히 부정모혈로 태어난 자연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신다”에서 동사(φιλέω)는 인정적인 애정을 가지고 측은히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인간 사람을 아가페 사랑(ἀγαπάω)으로 표현하지 않고, 인간적인 애정과 측은함으로 표현한 것은 본 구절이 유일합니다.
3.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줄 믿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그러면, 성도님들도 우리 예수님을 사랑하시며,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오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님들도 사랑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4. 이 세상 불신자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불신자는 돈을 벌려고, 예수님이 누구와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다고까지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오신 분이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것을 믿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5.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떤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어떤 사람을 사랑하실까요?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 성도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귀하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들을 사랑하시고, 아들을 믿는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그 기도도 들어주십니다.
순전히 아들 때문입니다.
6. 우리들도 아들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들 친구, 딸 친구도 사랑합니다.
아들이 친구를 데리고 오면, 어머니가 아들 친구에게, 맛있는 과일도 주고 음료수도 주고, 밥을 주기도 합니다.
아들이 미워하는 아이는 엄마도 미워합니다.
7. 하나님 아버지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들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 사도가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는 것을 보고, 유대인 스게와 아들들이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오히려 귀신들이 스게와 아들들에게 달려들어서, 스게와 아들들이 발가벗고 도망간 일이 생겼습니다.(사도행전 19:14-16)
8. 그러므로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도 구하면 주실 것인데,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면 주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전도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이웃을 돕기 위해서 기도하면,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9. 그래서 우리 교회도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사랑을 베풀고, 전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이웃을 사랑하고 돕고 전도하는 데 동참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0. 우리가 서로 도우려고 하면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미워하고 물고 헐뜯으면, 함께 망합니다.
천국은 서로 돕기 때문에 잘 사는 곳입니다.
지옥은 자기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모두 다 못 사는 곳입니다.
뻗정다리 손 이야기 아시지요!
누가 웃기는 이야기로 천국을 소개할 때, 천국이나 지옥 사람들은 모두 뻗정다리 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옥 사람들은 못 먹어서 빼빼 말랐고, 천국 사람들은 살이 통통 하더랍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았더니 지옥 사람들은 뻗정다리 손으로 자기만 먹으려고 하니까 빼빼 말랐고, 천국 사람들은 서로 남을 먹여주니까 번들번들하더랍니다.
이것은 옛날 어르신들이 지어낸 우화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도우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웃들도 잘살고 성도님들도 잘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11. 그러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 피를 흘려서 낳으신, 예수 믿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사랑은 예수 믿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이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즉, 교회 성도들 가운데 가장 연약한 성도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해드린 것이란 말씀입니다.
요한일서에는 <보는 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 사랑은 곧 성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12.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성도들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몸인 교회의 성도들을 사랑합니다.
13. 그래서 작은 성도 하나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사람을 대접하는 사람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상을 받을 것이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성도들에게 좋은 말을 하고,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대접하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사랑의 봉사를 하면, 예수님이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14. 이전에 선배 어르신들이 다른 성도에게 대접을 받으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시는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예수님 이름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친히 성도님에게 복을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대접을 받사오니, 주님께 충성하게 하옵소서.>
그러니까, 세상적으로는 부모 형제나 친척도 아닌데, 오직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이런 귀한 대접을 받사오니, 예수님이 친히 복을 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예수님 때문에 대접을 받사오니, 예수님께 충성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사랑과 예수님 사랑이 먼데 있는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반드시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긴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회 성도들을 열심히 사랑하고 섬기심으로, 우리 하나님과 예수님께 큰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278장>
3절.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 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28절.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새번역: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 왔다. 나는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간다.“
현대인의 번역: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에게로 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에 왔노라.: 내가 다시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려고 한다. ("I came forth from the Father and have come into the world; I am leaving the world again and going to the Father.")
English Standard Version: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에 왔는데, 이제 내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려고 한다. (I came from the Father and have come into the world, and now I am leaving the world and going to the Father.”)
New International Version: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이 세상에 들어왔다: 이제 내가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려고 한다. (I came from the Father and entered the world; now I am leaving the world and going back to the Father.")
New Living Translation: 그렇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이 세상에 왔고,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려고 한다. (Yes, I came from the Father into the world, and now I will leave the world and return to the Father.")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ἐξῆλθον ἐκ τοῦ Πατρὸς καὶ ἐλήλυθα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I came forth from the Father and have come into the world;
‘나와’(ἐξῆλθον)는 부정과거로서(I came forth)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세상에 오신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왔고’(ἐλήλυθα)는 현재완료로서(have come)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현재까지 죽 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πάλιν ἀφίημι τὸν κόσμον καὶ πορεύομαι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again I leave the world and I go to the Father."
‘떠나’(ἀφίημι)와 ‘가노라’(πορεύομαι)는 둘 다 현재형입니다(I leave, I go).
1.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란 말(ἐξῆλθον ἐκ τοῦ Πατρὸς καὶ ἐλήλυθα εἰς τὸν κόσμον)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와 있고: I came forth from the Father and have come into the world)란 뜻으로서, ‘나와’란 단어(ἐξῆλθον)는 과거형으로서 ‘내가 나왔다’(I came forth, came out, came out of)는 뜻이고, ‘왔고’란 단어(ἐλήλυθα)는 현재완료형으로서 ‘현재 와 있다’(have come)는 뜻입니다.
<세상을 떠나>란 말( ἀφίημι τὸν κόσμον)에서 ‘세상’이란 단어(κόσμος)는 ‘질서, 세상, 우주, 세상일, 세상 주민’(order, the world, universe; worldly affairs; the inhabitants of the world)을 가리키고, ‘떠나’란 단어(ἀφίημι)는 ‘보내다, 홀로 남겨두다, 가게 하다, 놓아주다, 떠나다’(to send away, leave alone, let go, release, permit to depart)는 뜻입니다.
<아버지께로 가노라>란 말에서 ‘가노라’란 단어(πορεύομαι)는 ‘간다, 여행한다, 죽는다’(to go, travel, journey, go, die)는 뜻으로서 ‘한 장소에서 다른 특별한 목적지로 옮겨가는 것”(to transport, moving something from one destination to another particular destination)을 가리키고, 현재형으로서 ‘아버지께로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계시다가 세상에 오셨고, 다시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원래 계시던 곳은 하늘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3. 우리들은 모두 세상에서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떠나면, 두 군데 중에 한 곳으로 모두 갑니다.
예수님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 따라서 하늘나라로 가고, 마귀 따라 자기 욕심대로 산 사람들을 마귀를 따라서 지옥에 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 따라 살지 말고, 예수님 따라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신 천국에 모두 다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9절.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새변역: 그의 제자들이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제 밝히 말씀하여 주시고,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시니,
현대인의 성경: 그때 제자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은 주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비유로 하지 않으시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의 제자들이 말하기를 “주여, 당신이 명백히 말씀하고 계시고, 비유의 말씀을 사용하지 않고 계십니다”고 했다. (His disciples said, "Lo, now You are speaking plainly and are not using a figure of speech.)
English Standard Version: 그의 제자들이 말하기를 “아, 지금은 당신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고, 비유의 말을 사용하지 않고 계십니다!”고 했다. (His disciples said, “Ah, now you are speaking plainly and not using figurative speech!)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Λέγουσιν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Ἴδε, νῦν ἐν παρρησίᾳ λαλεῖς,
say the disciples of Him, Behold, now in openness You speak
직역하면 ‘그의 제자들이 말하기를, 보소서 지금은 당신이 공개적으로 말하고 계십니다’는 뜻입니다.
‘말하되’(Λέγουσιν)은 현재형이고(say), ‘말씀하시고’(λαλεῖς)도 현재형입니다(You speak).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καὶ παροιμίαν οὐδεμίαν λέγεις.
and allegory not You speak
직역하면 ‘그리고 당신은 비유를 말씀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말씀하지’(λέγεις)는 현재형입니다(You speak).
1. <제자들이 말하되>란 말(Λέγουσιν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은 ‘그 분의 제자들이 말하기를’(His disciples say)이고, ‘제자’란 단어( μαθητής)는 ‘제자, 배우는 사람, 생도’(disciple, learner, pupil)을 가리킵니다.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란 말(ἐν παρρησίᾳ λαλεῖς)에서 ‘밝히’(ἐν παρρησίᾳ)란 ‘자유롭게, 확신있게, 담대하게’(in freedom of speech, confidence, openness, especially in speech; in boldness, confidence)를 가리키고, 여기 ‘말씀하다’란 단어(λαλέω)는 ‘말하다, 대화하다’( to talk)는 뜻이고, 앞에서 제자들이 ‘말하다’는 단어(λέγω)는 일반적으로 ‘말하다’(say, speak)를 뜻합니다.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란 말(παροιμίαν οὐδεμίαν λέγεις)에서 ‘비유’란 단어(παροιμία)는 어원이 ‘덧붙여 하는 말’(by the way)에서 나왔는데, ‘속담, 비밀스런 말, 비유, 비유적인 담화, 잠언’( byword, cryptic saying, a parable, an allegory, figurative discourse a proverb)을 가리키는 말이고, 마태복음 13장에서 일반적으로 쓰인 비유란 단어(παραβολή)는 ‘곁에’란 단어와 ‘던지다’란 단어가 합쳐서 된 단어(pará, "close beside" and bállō, "to cast")로서, ‘이미 가르친 진리를 곁에 비유를 던져서 더욱 쉽게 가르치는 것”( a parable; a teaching aid cast alongside the truth being taught)이고 ’친숙한 비유를 사용해서 더욱 잘 깨달을 수 있는 빛을 던져주는 것‘( additional light by using an familiar analogy)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두 단어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개역성경에서는 본 절의 것은 ’비사‘로 번역했다가 개역개정에서는 똑같이 ’비유‘로 번역했습니다.
‘하지 아니 하시니’란 말(μίαν λέγεις)은 문자 그대로는 ‘말씀하지 않으시니’(not speak)로서 ‘현재는 비유로 말씀하고 계시지 않으니’란 뜻이고, 여기서 ‘말씀하다’란 단어(λέγω)는 일반적으로 ‘말하다’(say, speak)을 뜻합니다.
2.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비유를 많이 사용해서 말씀하셨으나, 십자가 죽음과 승천을 앞두고는 제자들에게 직접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믿는다고 했습니다(30절).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 버리고, 흩어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32절)
30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제는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사람이 당신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을 믿습니다. ("Now we know that You know all things, and have no need for anyone to question You; by this we believe that You came from God.")
New International Version: 이제는 당신이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시고, 당신은 사람이 당신에게 질문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을 믿습니다. (ow we can see that you know all things and that you do not even need to have anyone ask you questions. This makes us believe that you came from God.")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νῦν οἴδαμεν ὅτι οἶδας πάντα, καὶ οὐ χρείαν ἔχεις, ἵνα τίς σε ἐρωτᾷ·
Now we have known that You have known all things, and not need You have, that anyone You should ask
직역하면 ‘지금은 당신이 모든 것을 아시고, 누가 당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필요를 갖지 않으신 것을 우리가 아나이다’는 뜻입니다.
‘아나이다’(οἴδαμεν)는 현재완료이고(we have known), ‘아시고’(οἶδας)도 현재완료이고(You have known), (필요를) ‘갖지’(ἔχεις)는 현재이고(You have), ‘물어보아야 할’(ἐρωτᾷ)은 현재가정법 동사입니다(should ask).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ἐν τούτῳ πιστεύομεν ὅτι ἀπὸ Θεοῦ ἐξῆλθες.
by this we believe that from God You came forth
직역하면 ‘이로써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는 뜻입니다.
‘나오심을’(ἐξῆλθες)는 부정과거로서(You came forth)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믿사옵나이다’(πιστεύομεν)는 현재형입니다(we believe).
1.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란 말(νῦν οἴδαμεν ὅτι οἶδας πάντα)에서 원문에는 ‘알다’란 단어가 두 번 나와서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Now we know that You know all things)는 뜻이고, ‘안다’는 단어(οἶδα)는 ‘알다, 인식한다, 터득하다, 고려하다, 보다, 기억하다’( be aware, know, perceive, appreciate, consider, remember, behold)는 뜻입니다.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는 말(οὐ χρείαν ἔχεις ἵνα τίς σε ἐρωτᾷ)은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묻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다’(have no need for anyone to question You)는 뜻인데, 여기서 ‘묻는다’는 단어(ἐρωτάω)는 ‘묻는다, 질문한다, 요구한다, 기도한다’(to ask, question, make a request to, pray)는 뜻으로서 ‘특별한 관계 속에서 고려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 requesting receives special consideration because of the special relationship involved)을 뜻하고, 26절에서는 ‘구한다’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는 말(ἐν τούτῳ πιστεύομεν ὅτι ἀπὸ Θεοῦ ἐξῆλθες)은 ‘이로써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by this we believe that You came from God)는 뜻이고, ‘나오신’이란 단어(ἐξῆλθες: came)는 ‘나오다, 오다, 떠나오다, 내려오다, 생기다’(to go or come out of, come forth, depart, descend, go forth, leave, proceed forth)는 뜻이고, ‘믿는다’는 단어(πιστεύω)는 ‘믿는다, 신뢰한다, 맡긴다, 확신한다’(to believe, have faith in, trust in. entrust, affirm, have confidence)는 뜻으로서, ‘사람에게 설득 당하고 믿는 것이나 하나님께 설득당하고 믿는 것’(be persuaded– believe; used of persuading human believing and of being persuaded by the Lord)을 가리킵니다.
1.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사실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믿음은 아직 확실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도, 제자들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16, 요한복음 10:27).
그런데, 제자들은 다시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줄 믿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처럼,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2. 이것을 볼 때, 인간의 지식과 결심은 그렇게 믿을 것이 못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한때 목숨 바쳐 충성할 것 같아도, 위기의 순간에는 배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통해서 진리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그 때는 능력을 받아서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감정을 믿지 말고,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에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1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새번역: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이제는 믿느냐”고 했다. (Jesus answered them, "Do you now believe?)
New Living Translation: 예수께서 물으시기를 “마침내 너희가 믿느냐?”고 하셨다. (Jesus asked, "Do you finally believe?)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ἀπεκρίθη αὐτοῖς Ἰησοῦς, Ἄρτι πιστεύετε;
was answered them Jesus, Now do you believe?
‘대답하시되’(ἀπεκρί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answered) 예수께서 단호하게 대답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믿느냐’(πιστεύετε)는 현재형입니다(do you believe).
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란 말(ἀπεκρίθη αὐτοῖς Ἰησοῦς)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되’(Jesus answered them)란 말이고, ‘대답하다’는 단어(ἀποκρίνομαι)는 ‘대답하다, 응답하다, 회답하다’(to answer, reply, take up the conversation, respond, response)는 뜻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는 말(Ἄρτι πιστεύετε)에서 ‘믿는다’는 단어(πιστεύω)는 ‘믿는다, 신뢰한다, 맡긴다, 확신한다’(to believe, have faith in, trust in. entrust, affirm, have confidence)는 뜻으로서, ‘사람에게 설득당하고 믿는 것이나 하나님께 설득당하고 믿는 것’(be persuaded– believe; used of persuading human believing and of being persuaded by the Lord)을 가리킵니다.
32절.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새번역: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벌써 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보라, 때가 오나니 이미 왔도다. 이제 너희가 흩어져 각자가 자기 집으로 가고, 나를 혼자 버려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 ("Behold, an hour is coming, and has already come, for you to be scattered, each to his own home, and to leave Me alone; and yet I am not alone, because the Father is with Me.)
New Living Translation: 그러나 때가 이르렀으니 실로 지금 여기에 왔도다. 너희가 흩어지고 각자 자기 집으로 갈 것이고, 나를 홀로 남겨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 (But the time is coming--indeed it's here now--when you will be scattered, each one going his own way, leaving me alone. Yet I am not alone because the Father is with me.)
보라---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ἰδοὺ, ἔρχεται ὥρα, καὶ ἐλήλυθεν,
Behold, is coming hour, and has come,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분명히 보라는 뜻입니다.
‘오나니’(ἔρχεται)는 현재형이고(is coming), ‘왔도다’(ἐλήλυθεν)는 현재완료형이므로(has come) ‘벌써’란 말을 첨가해서 ‘벌써 왔도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잘된 번역입니다.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ἵνα σκορπισθῆτε, ἕκαστος εἰς τὰ ἴδια, κἀμὲ μόνον ἀφῆτε·
when you will be scattered, each to the own, and Me alone you shall leave
직역하면 ‘너희가 각자의 곳으로 흩어지고, 너희가 나를 혼자 남겨둘 (때가)’란 뜻입니다.
‘흩어지고’(σκορπισθῆτε)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 동사로서(you will be scattered) 분명히 제자들이 다 흩어져버릴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나를 혼자 둘’에서 동사(ἀφῆτε)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you shall leave) 분명히 제자들이 예수님을 혼자 둘 것을 확실히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καὶ οὐκ εἰμὶ μόνος,
and not I am alone,
‘있는’(εἰμὶ)은 현재형입니다(I am).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ὅτι ὁ Πατὴρ μετ’ ἐμοῦ ἐστιν.
because the Father with Me is
직역하면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계시느리라’(ἐ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s) 언제나 함께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란 말(σκορπισθῆτε ἕκαστος εἰς τὰ ἴδια)은 ‘너희가 각각 자기 곳으로 흩어질 것이다’(you will be scattered each to his own place)는 말이고, ‘흩어진다’는 단어(σκορπισθῆτε)는 부정과거형으로서 ‘갑자기 싹 흩어지는 것’을 가리키며, ‘흩어지다, 사라지다, 나누어주다’( to scatter, disperse, scatter abroad as of sheep; dissipate, waste; distribute alms)를 뜻합니다.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는 말( ἔρχεται ὥρα καὶ ἐλήλυθεν ἵνα-- κἀμὲ μόνον ἀφῆτε)은 ‘나를 혼자 남겨둘 때가 왔으니 이미 왔도다’(an hour is coming, and has already come, for you to be scattered---and to leave Me alone)는 뜻이고, ‘둔다’는 단어(ἀφίημι)는 ‘보낸다, 홀로 남겨둔다, 풀어놓다, 떠나간다, 버려둔다’(to send away, leave alone, permit, let go, release, permit to depart, remit)는 뜻이고, ‘오나니’란 단어(ἔρχ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 ‘오고 있나니’(is coming)란 뜻이고, ‘왔도다’는 단어(ἐλήλυθεν)는 완료형으로서 ‘이미 왔다’(has come)는 뜻입니다.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는 말(οὐκ εἰμὶ μόνος, ὅτι ὁ Πατὴρ μετ’ ἐμοῦ ἐστιν)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I am not alone, for Father is with me)는 말이고, ‘혼자’란 단어(μόνος)는 ‘혼자, 홀로, 외로이, 쓸쓸히’(alone, only, solitary, desolate)를 뜻하며, ‘있다, 계신다’는 단어(εἰμὶ, ἐ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 ‘아들된 예수님이 아버지와 함께 계시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늘 함께 계시는 것’을 뜻합니다.
2. ‘제자들이 다 각각 흩어지고, 예수님을 혼자 둔다는 것’은 스가랴서에 예언된 것입니다.
스가랴 13: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3. 예수님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똑 한 번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혼자 두신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였습니다.
마태복음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광야 생활도 천국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떠나가신 곳은 사울 왕의 궁정 같은 곳이라도, 악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입니다.
요셉과 다니엘과 다윗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길이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생명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84편에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예수님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 날마다 천국 생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새번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현대인의 성경: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였다.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이 세상을 이기었노라. ("These things I have spoken to you,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e world you have tribulation, but take courage; I have overcome the world.")
New International Version: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이 세상을 이기었노라. ("I have told you these things,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New Living Translation: 내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 지상에서는 너희가 많은 시련과 슬픔들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이기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라. (I have told you all this so that you may have peace in me. Here on earth you will have many trials and sorrows. But take heart, because I have overcome the world.")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ταῦτα λελάληκα ὑμῖν, ἵνα ἐν ἐμοὶ εἰρήνην ἔχητε.
These I have spoken to you, so that in Me peace you may have
직역하면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갖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이름은’(λελάληκα)은 현재완료로서(I have spoken) 과거부터 지금까지 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누리게 하려’(ἔχητε)은 현재 가정법 동사인데(you may have) ‘너희가 (평안을) 갖게 하려고’란 뜻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ἐν τῷ κόσμῳ θλῖψιν ἔχετε·
In the world tribulation you have,
직역하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갖고 있다’는 뜻이니다.
‘당하나’(ἔχετε)는 현재형이고(you have) (환난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담대하라.
ἀλλὰ θαρσεῖτε,
but take courage;
직역하면 ‘그러나 담대하라’는 뜻입니다.
‘담대하라’(θαρσεῖτε)는 명령형입니다(take courage).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ἐγὼ νενίκηκα τὸν κόσμον.
I I have overcome the world.
직역하면 ‘바로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뜻입니다.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기었노라’(νενίκηκα)는 현재 완료로서(I have overcome) 이미 이기셔서 현재도 이긴 상태라는 것입니다.
1.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이란 말(ταῦτα λελάληκα ὑμῖν)은 ‘이것들을 너희들에게 말하는 것은’("These things I have spoken to you)이란 뜻으로서, ‘이른다’는 단어(λελάληκα)는 현재완료형으로서 ‘지금까지 계속 말해온 것’( have spoken)을 뜻이고, ‘말하다’는 단어(λαλέω)는 ‘말하다, 대화하다, 재잘거리며 말하다’(to talk, chatter, speak, say)인데, 신약성경에서는 좀 더 정중하게 쓰였습니다.( to talk, chatter in classical Greek, but in NT a more dignified word).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는 말(ἵνα ἐν ἐμοὶ εἰρήνην ἔχητε)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갖게 하기 위함이라’(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는 뜻이고, ‘평안’이란 단어(εἰρήνη)는 ‘하나 된 것, 평안, 고요함, 안식, 마음의 평안, 안녕, 건강’(one, peace, quietness, rest, peace of mind; farewell, health)을 가리키고, ‘누리게’란 단어(ἔχω)는 ‘갖게, 붙잡게, 소유하게’( to have, hold, possess)를 뜻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는 말(ἐν τῷ κόσμῳ θλῖψιν ἔχετε· ἀλλὰ θαρσεῖτε)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용기를 가져라’(In this world you have trouble. But take heart)는 뜻이고, ‘환난’이라는 단어(θλῖψις)는 ‘환난, 박해, 고통, 고난’( tribulation, persecution, affliction, distress)을 가리키며, ‘당한다’는 단어(ἔχω)는 ‘가진다, 소유한다, 붙들다’(to have, possess, hold)는 뜻인데 현재형으로서 ‘계속 환난을 당하면서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담대하라’는 단어(θαρσεῖτε)는 ‘용기를 가져라, 담대하라, 활기를 가져라’(be of good courage, good cheer, be bold)란 뜻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는 말( ἐγὼ νενίκηκα τὸν κόσμον)은 ‘바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란 뜻( I have overcome the world)으로서 ‘내가’가 강조되어 있고, ‘이기었다’는 단어(νενίκηκα)는 현재완료형으로서 ‘현재 내가 세상을 완전히 이긴 상태’라는 뜻입니다.
2.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14-16장 다락방 강화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는 참된 평안인데(요 14:27), 이것은 환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참된 평안입니다. (롬 5:3, 고후 1:4)
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합니다.
즉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당하는 환난도 있고, 또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환난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런 환난은 말세에 즉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대환난을 당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마 24:5-29)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격려하십니다.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는 이 말씀에 감격하여, “이 말씀은 로마에서 예루살렘까지 기어가면서도 전할 가치있는 말씀이다”라고 했습니다.
4. 사람은 죽음 앞에서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죽음은 말할 것도 없이, 수술만 하려고 해도, 두려워합니다.
5. 저는 예수님을 안 믿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죽음과 마귀 앞에서 얼마나 떠는 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똥을 싸고, 눈을 부라리고, 사지를 오들오들 떨고, 사지가 빳빳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6.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무서운 죽음과 마귀에게서 해방을 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고 돌아가시는 성도들은 정말 얼마나 평안하고, 환한 얼굴로 천사에게 들려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7. 우리 예수님은 일생 죽음이 무서워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2:14-15. 예수님이 한 모양으로 혈육에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를 놓아주려 하심이라.
이처럼,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일생에 죽음에 매어서 마귀에게 종노릇 하는 인생들을 놓아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이름으로 마귀는 쫓겨 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393장>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 우리들의 싸울 것은 육체 아니요
마귀 권세 힘써 싸워 깨쳐버리고 죽을 영혼 살릴 것일세
일심으로 힘써 나가세, 일심으로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최후 승리 얻을 때까지
8. 그러므로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함이라>
세상이 주는 평안은 일시적인 평안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참된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9.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고, 오히려 성도가 환난을 당하는 곳입니다.
마귀가 공격하는 곳이며, 병균들과 나쁜 벌레들도 많고, 더위와 추위가 있는 곳이며, 불신자들이 이유 없이 괴롭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0. 주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감당할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 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이 닥쳐와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능히 하나님께서 시험을 이길 능력을 주시고, 또한 시험 당할 즈음이 되면, 피할 길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쁘게 순례의 길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478장>
아 내 맘속에 참된 평화 있네. 주 예수가 주신 평화
시험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아 귀하다 이 평안함
주가 항상 계셔 내 맘속에, 주가 항상 계셔 아 기쁘다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11. 또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자초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엔 두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한 어머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모시고, 자녀들을 사랑하면서 담대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험한 세상 살아가시면서 모든 필요한 것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다 채워주셔서, 감사하고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454장>
주 사랑 안에 살면, 나 두렴 없으며
그 사랑 변함없어 늘 마음 편하다
저 폭풍 몰아쳐서 내 마음 떨려도
주 나의 곁에 계셔 겁낼 것 없어라
<찬송가 455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험악하여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