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어머니 깊은 마음
저는 4남 3녀의 가정에서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형님이 세 분이 계신 덕분에 어려서 형들이 입었던 바지와 셔츠를 자연스레 물려받아 입게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제가 입은 옷을 살펴보니 모두 형들이 입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안의 내의까지 말입니다.
그런 저의 모습에 실망하고 어머니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나는 왜 새 옷을 입지 못하고 형들의 옷을 물려받아 입냐면서 이럴 거면 왜 낳으셨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때 돌아오는 말씀이 “이놈아! 나는 널 낳고 싶어 낳은 줄 아느냐? 어쩌다 보니 애가 들어섰고 그래서 낳은 거지”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 소리가 이제 와 생각하면 당연한 말씀인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실망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제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사셨나 봅니다.
제 나이 17살 때인 1970년에 둘째 형님이 군에서 제대하면서 카키색 하의를 두 벌 가져오셨는데 그 옷은 새것이라 어머니가 제게 웃음을 지으면서 건네주셨습니다. 그해 저는 서울 서소문에 있는 해태 아이스크림 대리점의 점원으로 취직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소문과 서울역 근방의 가게에 빙고, 아이스 컵, 브라보콘 등을 배달하였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설 때 어머니는 깨끗하게 다려놓은 바지를 입게 하셨고, 언덕 마루턱까지 배웅하시며 멀리 떨어질 때까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여 주셨습니다. 그 덕분으로 운동신경이 별로였던 제가 커다란 상자에 실려 있는 드라이아이스와 아이스크림을 자전거에 싣고 배달하면서 한 번도 다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첫 월급을 타는 날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달음질쳐 봉투째 드렸을 때 곱게 웃음을 지으시며 “장하다. 수고했다.”라는 말씀에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던 그 시절, 저는 속으로 다짐했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아들이 되겠다고 말입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저도 자식을 낳아 길러 보니 어머님의 속 깊은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자식에게 주고 주어 넉넉하게 해 주고 싶으셨던 그 마음,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마음 아파하셨던 어머니, 비록 군복이지만 새것이라 그것을 날마다 빨고 말려서 다림질하여 입히셨던 손길이 있었기에 저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입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 춘천 옥천동에서 어린 저를 업고 찍으셨던 빛바랜 사진에 드러난 고우신 미소를 보면 사무치게 그리움을 더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