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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너더리통신 95/180809]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의 동상
지난 4월 24일 서울 종로 네거리, 보신각(普信閣) 건너편, 영풍문고 앞에서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던 전봉준(全奉準․1855∼1895) 장군의 뜻을 기리는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그날은 마침 장군이 123년 전 순국(殉國)한 날로써, 마지막 숨을 거둔 전옥서(典獄署)가 있었던 장소가 아니던가? 전옥서는 조선시대 형조의 지휘를 받아 죄수들을 관장하는 관청으로, 오늘날의 교도소(矯導所). 이런 것을 두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 해야 하나? 서울 한복판에 이제껏 변변한 ‘전봉준 장군’의 동상 한 기(基)가 없었다니, 어찌된 일인가?
전봉준이 누구이던가? 조선 후기 탐관오리의 횡포와 일본의 침략에 맞서 제폭구민(除暴救民)․보국안민(輔國安民)․척왜양(斥倭洋)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한반도 전역을 흔들어댄, 참으로 담대한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고부군수가 수탈을 일삼자 1894년 3월 농민봉기를 일으켰고,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한 뒤로는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섰으나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크게 패배하면서 1895년 4월 23일 사형판결을 받고 다음날 새벽 교수형(絞首刑)을 당했던 사람. 그는 죽음을 앞두고 “나는 바른 길을 걷다가 죽는 사람인데, 반역죄를 적용하다니 만고에 유감”이라며 한시(漢詩) 한 편을 남겼다. 그 한시가 1974년 5월 11일자 경향신문의 보도로 세상에 빛을 보았으니, 그 또한 유감스럽지 아니한가. 향토사학자 최현식씨가 천안전씨 족보에서 최초로 발견, 공개했다. 나이 마흔의 창창한 장년 사나이의 빛나는 기개(氣槪)를 보아라. 소설가 김동리님이 번역했다.
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謀 愛民正義我無失 愛國丹心誰有知
(시래천지개동력 운거영웅불자모 애민정의아무실 애국단심수유지)
때를 만나서는 천지도 내 편이더니/운이 다하니 영웅도 할 수 없구나/백성 사랑 올바른 길이 무슨 허물이더냐/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이 절명시(絶命詩)는 당시 일본의 ‘시사신보(時事新報)’라는 신문에도 실렸다고 한다.
동상은 전봉준이 일본영사관에서 조사를 받은 후 들 것에 실려 압송당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저처럼 형형(炯炯)한 눈빛을 언제 어디서 보신 적이 있는가? ‘형형하다’라는 말처럼 어울리는 단어가 또 있는가? 불쑥 얼마 전 미국에서 화제가 된 신간 ‘화염과 분노’라는 제목조차 떠오른다. ‘실패한 혁명가(革命家)’로서 얼마나 많은 회한(悔恨)을 안고서 눈을 감으셨을까?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고 백성들은 방방곡곡에서 ‘파랑새’ 노래를 부르며, 장군의 죽음을 애도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녹두밭에 앉지 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청포장수 울고 간다> ‘녹두’는 키는 작지만 한없이 다부졌던 장군을 부르던 애칭(愛稱)이 아니던가?
장군의 동상을 세운 것은 백 번 칭찬해도 부족할 일이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 유감(有感)을 말하자. 왜 하필 저 모습을 형상화했을까? 우금치전투에서 말을 타고 피를 토하며 일본군을 무찌르던 모습을 그렸으면 어떠했을까? 오늘 아침 새벽, 버스로 그 앞을 지나며 장군을 보았다(매일 그 동상을 숨죽여 바라본다). 거대한 빌딩숲에 가려 왠지 너무 왜소(矮小)하고 초라한 듯 싶어, 숨이 막혀 왔다. 앉아 있는 것도 약해 보인 것같아 괜히 불만스러웠다. 장군이 이룩하고자 했던, 제폭구민-보국안민의 뜻을 기리려 했다면 종로사거리 바로 한복판에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처럼 장군의 동상을 장대(壯大)하게 세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충무공과 세종대왕의 업적을 칭송하는 것만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실패한 혁명’이 주는 우리 역사(歷史)의 교훈(敎訓)을 깊이 새기게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물론 잘 알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나마 ‘생각있는’ 서울시가 큰 힘이 되었고, 전봉준장군동상건립추진위에서 국민들로부터 1년여 동안 모은 2억7000여만의 성금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숨은 이야기도 많이 있을 것이다. 평생 동안 동학혁명에 천착해온 역사가 이이화 선생님이 위원장이었다고 한다. 엄청 고마우신 분이다. 백 번 칭송을 해도 부족할 일이긴 하나, 아쉬운 것은 아쉬운 일이다. <소련놈에 속지 말고/ 미국놈 믿지 말라/ 되놈(중국)은 되나오고/ 일본놈은 일어난다/ 조선 사람 조심하라>던 해방 직후에 유행했다는 참요(讖謠)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아무튼, 종로1가 영품문고 앞을 지나시거든, 장군의 동상 앞에서 묵념이라도 드리자. 옷깃을 여미며 경의를 표하자. 그나마 그게 후손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와 그나마 안도를 해야 할까? SBS에서 전봉준 장군을 주인공을 내세운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한다.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도 이것이 처음이다. KBS에서 방영한 사극 ‘정도전’으로 유명한 정현민 작가의 극본 ‘녹두 전봉준’(가제)은 내년 봄에 방영될 거라는데, 기대가 크다. 연출은 SBS의 대표 사극 ‘뿌리깊은 나무’와 ‘육룡이 나르샤’를 연출한 신경수 PD.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