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성이 좋아보였던 롯
(창14:1~16)
사람을 잘 사겨야 합니다. 사귀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지존파, 막가파, 영웅파 조직폭력배들이 나타나 세상 람들을 경악케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납치하여 살해한 후 그 시체를 나누어 먹기도 하고, 산 사람을 땅에 생매장하여
살해하기도 했던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마에다가 “나는 조직폭배다”라고
쓰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은 친구를 잘 못 사귀어서 그렇게 됩니다.
독일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는 1,250여 점의 그림과 판화를 남긴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뉘른베르크 박물관에 있는
<기도하는 손>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서점에 가보면 이 <기도하는 손>이 액자로
만들어져 판매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그려지게 된 동기를 이렇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난 뒤러는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학비가 없어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죽마고우도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역시 학비가 없어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둘은 대화를 하다가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미술공부를
하고 한 사람은 일을 해서 학비를 대주자. 그다음에는 졸업한 사람이 돈을 벌어서 나중 사람
에게 학비를 대주자.” 이 약속으로 뒤러가 먼저 공부를 하고 친구는 노동을 하여 뒤러의 학비를
대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미술공부를 마친 뒤러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뒤러가 친구의 오두막집에 들어서는 순간 마침 친구는 책상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친구의 손을 보는 순간 뒤러의 가슴은 뭉클했습니다. 얼마나 힘든
노동을 했는지 친구의 곱던 손은 매우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자신
때문에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른 친구가 고마웠고 감격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뒤러는 즉시 연필을 꺼내어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습니다. 이것이 훗날 불후의
명작 <기도하는 손>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삶으로 끝날 뻔 했던 뒤러는 친구 한 사람 때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잘 사겨야 합니다.
롯이 삼촌 아브라함과 함께 살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평화롭고 유복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욕심을 내어 물과 풀이 많은 요단 동편으로 이주하면서 그의 삶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문제는 좋은 변화가 아니라 나쁜 변화가 왔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롯은 요동 동편으로 이주한지 몇 년도 못 되어 수많은 가축 떼를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물과 풀이 넉넉하다 보니 양과 염소가 새끼를 엄청나게 낳는 거예요. 양털과 염소털을
팔고, 가죽과 고기를 팔고, 치즈를 팔고... 돈이 왕창 굴러들어온 거예요. 돈이 들어오니까
들판생활을 청산하고 소돔성에 들어가 도시문화생활을 즐기며 살고 싶어졌습니다.
창13:13을 보시기 바랍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소돔 사람들은 큰 죄인이었습니다. 작은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롯의 가족이 이런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 어떻게 될지 뻔하지 않습니까? 창19장을 보면 롯의 가족이 거기서 얼마나 나쁜
물이 들었는지 자세히 나옵니다.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사건들입니다. 이것은 그때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두 연합군 간에 전쟁을 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절에는 4개국으로
이루어진 사해 동방연합군이 나오고, 2절에는 5개국으로 이루어진 사해 남부연합군이 나옵
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5개국 남부연합군 가운데 소돔성이 있는데 롯이 여기서 살고 있었습니다. 5절을 보면
5개국 연합국 측에 르바 족속과 수스 족속이 나오는데 당시 중동에서는 이 족속들이
나타나면 모두 벌벌 떨었습니다. 이유는 이들의 신장이 2m가 넘는 거인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들이 미국 NBA 농구코트에서 뛰었다면 아마도 슈퍼챔피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쟁의 결과는 거인족이 속해있는 5개 연합군이
참패를 당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되는 사람을 배워서
따라갈 생각을 하지 않고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참 고약한 심보예요. 임진왜란 때도
그랬습니다. 원균은 왜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는 이순신이 너무나 꼴 보기 싫었
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원균이라는 사람은 원래 거칠고 무지한 위인으로서
당초 이순신과 공로다툼을 하면서 백방으로 상대를 모함하여 결국 이순신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다”라고 기록해놓았을 정도였습니다.
선조(宣祖)는 이순신을 한양으로 불러들여 문초를 한 후 투옥시키고 대신 원균을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했습니다. 이에 신바람 난 원균은 친척에게 찾아가 “이 직책이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직 이순신에게 치욕을 갚은 것이 통쾌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질투심이 강한
사람입니까?
1597년 7월 15일 원균은 조선의 함선 160여 척을 모두 이끌고 부산에 있는 왜군의 본진
(本陣)을 치려고 갑니다. 그랬다가 칠천량에서 왜군의 기습을 받아 148척의 함선을 잃고
그는 전사를 합니다. 살아 돌아온 함선은 겨우 12척 뿐이었습니다. 이제 조선 팔도가 일본에게
먹히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패전의 소식을 들은 조정은 크게 놀라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여 내려
보냈지만 대승리를 얻은 왜군은 130척을 이끌고 한산도로 향했습니다. 이순신은 12척의
함선과 어선을 급조해 만든 한 척, 이렇게 13척을 가지고 왜군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3척과 130척은 게임이 안 되는 전쟁이잖아요.
그런데도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에서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
까요?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한 수를 쓰는 데 있습니다. 이순신은
왜군을 물살이 빠른 ‘울돌목’ 쪽으로 유인을 했는데 왜군이 이 수를 읽지 못했던 거예요.
명량해전은 13척으로 130척을 물리친 해전으로 세계 해전사에서 전무후무한 해전이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대패시켰던 일본 해군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를 넬슨 제독에 비교하는 것은 몰라도 이순신에 비교하는 것은 황공한
일이다. 넬슨이나 나는 국가의 전폭적인 뒷받침을 받아 결전에 임했으나 이순신은 그런
지원 없이 홀로 고독하게 싸운 분이다.” 어느 시대나 탁월한 한 사람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거예요.
거인족까지 합세한 5개 남부연합군이 약자인 4개 동방연합군에게 패전했습니다.
4개 연합군은 어떻게 강자였던 5개 연합군을 이겼을까요? 이순신의 명량해전처럼
유인책을 쓴 데 있었습니다. 10절~12절을 보겠습니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싯딤 골짜기에는 무엇이 많다고 했지요? 역청 구덩이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역청이란 히브리어로 헤마르(חֵמָר)라고 하는데 원유에서 석유 성분이 증발하고 남은
시꺼먼 찌꺼기를 말합니다. ‘콜타르’라고도 하지요. 약자였던 4개 연합군은 5개 연합군을
유정이 많은 곳으로 유인하여 거기에 빠뜨렸던 거예요. 이 사건에서, 고대 사해근방은
석유지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개 연합군이 패전하면서 소돔성에서 살고 있던 롯의 가족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는 노예로 부릴 수도 있었고 시장에 내다 팔수도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달려와 롯이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14절~16절을
보겠습니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 평소 훈련시킨 하인 318명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훈련을 시켜놓았을까요? 고대시대는 강도들이 흔했고 또 부족 간의
전쟁도 많았습니다. 만일 훈련된 하인들이 없으면 재산도 가족도 모두 강탈당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평소 훈련시켜 놓았던 하인 318명을 거느리고 추격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4개국 연합군입니다. 게임이 안 되는 전쟁입니다. 이럴 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야간에 기습을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 방법을 사용해서 롯의 가족을 구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롯은 소돔성에 들어가 살면서 그들의 타락한 문화에 물들었습니다. 물이 들자 하나님께
제단 쌓는 일도, 기도하는 일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마10:29을 보시기 바랍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미물 참새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날고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는 것이며,
그 사건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쟁을
통하여 롯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일까요? “방향을 돌려라!” “가나안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지요.
롯은 삼촌 아브라함 덕분에 살아났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삼촌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석하게도 롯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다시 소돔성으로
들어가 살았습니다. “삼촌. 나는 여기가 좋아요. 그냥 여기서 살래요! 가나안으로 가자고
강요하지 마세요.” 정말 그곳은 좋은 곳이었을까요? 물론 겉보기에는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소돔성이 유황불로 잿더미가 된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잘 사귐으로써 신앙이 성장하고, 사람을 잘 못 사귐으로써 신앙을 잃습니다.
사람을 잘 사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첫댓글 소돔의 심판을 보며 우리나라가 걱정이 되는군요. 깨닫지 못하는 모습이 꼭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