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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세종로 1)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역사문화 공간 청와대가 온전히 국민의 공간이 되었다.
청와대는 서울의 중심부이자 구도심인 경복궁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918-1392)부터 궁궐로 사용되었고,
조선시대(1392-1910)에는 경복궁의 후원이 있었다.
고종 5년(1868년)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문무가 융성하길 기원하는 의미로 경무대(景武臺)라 이름 붙였다.
일제 강점기 이 자리에 총독 관저가 들어섰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 사령관이 머물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60년 푸른기와집이라는 뜻의 '청와대'로 이름을 개칭했다.
1991년 지금의 본관이 들어서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와대의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시청과 종로, 을지로 등 도심 사무실 밀집지역의 북쪽에 있다.
청와대의 주소는 일제 강점기인 1911년 12월 20일 '광화문 1번지'로 정해졌었는데,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1월 1일부터 일본식 주소가 한국식으로 바뀌면서 '세종로 1번지'가 되었다.
고려시대 이궁(離宮)이 있던 자리
청와대 부근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 고려의 이궁이 이 곳에 들어서면서 부터다.
고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도읍이었던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과 함께 서경(평양), 동경(경주)의 세 곳을 삼경으로 두었는데
숙종 때 동경 대신 이곳에 이궁을 설치하고 남경으로 삼았다.
남경이란 '남쪽의 서울'이란 뜻이 담겨져 있다.
조선시대 경복궁의 후원터
청와대 자리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도읍을 옮기자는 주장이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조선의 첫 임금인 태조 이성계는 1394년
새로운 서울을 세우기 위한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이라는 특별 기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관리들을 보내 궁궐터를 찾아보게 했는데 고려 숙종 때의 이궁 자리는 너무 좁아서
새로 궁궐을 짓기가 어려우므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궁궐을 지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즉, 오늘날의 청와대 터에서 좀 더 내려간 평지에 왕궁을 짓기로 한 것이다.
태조는 그 해 12월 정도전으로 하여금 궁궐 짓는 일을 시작하도록 했고
이듬해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9월에 궁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궁이 바로 경복궁이다.
경복궁이 완성된 뒤 세종 8년인 1426년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경복궁의 후원(뒤뜰)이 조성되었다.
이때 후원에는 서현정, 연무장, 과거 시험장이 만들어졌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경복궁과 이 곳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경복궁과 그 후원인 지금의 청와대 근처는 27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2년인 1865년 흥선대원군의 노력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 당시에 함께 건축되어 후세까지도 이름을 남기게 된 경무대도 지어졌는데,
경무대는 창덕궁 후원의 춘당대 뒤를 이어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장’으로서의 기능을 이어갔다.
경복궁은 고종 33, 건양 1(1896)년 소위 아관파천으로 고종 황제가 경운궁으로 떠나자
정궁으로서의 위상이 급속히 추락했다.
고종이 이어(移御)한 경운궁은 대한제국 황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증축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청와대 자리
1929년 조선총독부 통치 2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조선박람회가 경복궁과 옛 후원 자리에서 열리면서
이 곳의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되었다.
일제는 1937년부터 1939년에 걸쳐 조선박람회 이후 한동안 공원으로 남아있던 옛 후원 자리에 조선 총독의 관사를 지었다.
이후 조선 총독의 관사 일대를 경무대라고 불렀다.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이화장에서 일제 총독 관저였던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다.
경무대는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라는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푸른 기와의 청와대로 불리고 있다.
신문고의 옛 얼을 담아 제작한 것으로 문민시대를 연 김영삼 대통령이 중요무형문화재 63호 윤덕진으로부터 기증받았다.
서울 정도 육백년 기념
대고각
영빈관앞 분수대 조각상
영빈관 앞 영빈문에서 기다리다가 비가 올 지도 모른다는 날씨예보 때문에... 정문으로 이동했다.
비가 오면 실내관람을 금지한다는 안내문 때문에 비가 오기전에 실내를 모두 둘러봐야 겠다는 욕심에서다.
가장 길게 줄을서는 본관을 먼저 관람하기로 해서 먼저 정문으로 가서 줄을 섰다.
그리고 정확히 오전 7시에 입장을 했다.
청와대 본관
청와대 중심 건물로 대통령 집무와 외빈 접견 등을 위한 공간
1991년 전통 궁궐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신축
1층 충무실(忠武室)
동쪽 별채의 충무실은 대규모 인원의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회의를 하는 공간이었다.
외빈이 왔을 때 만찬과 공연을 하는 등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텔레비젼에서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고 함께 사진찍는 장면을 봤던 바로 그 장소다.
청와대의 인테리어는 심플하면서도 격조가 느껴지는 고급스러움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한다.
인왕실(仁王室)
청와대 서쪽 산의 이름을 딴 인왕실은 한국적 요소가 많은 본관의 주요 공간들과 달리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유백색의 벽과 촛대형 샹들리에가 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간담회나 오찬, 만찬이 열리는 소규모 연회장, 그리고 외국 정상 방한 때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장소로도 활용한 공간이다.
인왕실에 걸려있는 그림은 <통영항>이다.
경남 통영의 풍경을 푸른 색감이 두드러진 기법으로 그린 이 그림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 본인이 좋아했던 전혁림(1915-2010) 화가에게 작품을 주문해 인왕실에 걸었다.
<통영항>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수장고로 들어갔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행방을 물었던 것을 계기로 다시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 걸렸다.
인왕실 동쪽 밖으로는 큰 창문을 통해 중정(中庭)을 볼 수 있다.
중정은 마당의 한가운데를 의미하는데, 집 안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이라는 뜻이다.
인왕실을 나와 이제 청와대 본관 2층으로 올라간다.
관람객 1등으로 제일 앞서서 관람하니까 사진에 다른 관람객들이 찍히지 않아서 좋다.
대형 벽화인 "금수강산도"는 가로 11m 세로 5m로 규모도 압도적이지만 한반도 지도를 형상화하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청와대 본관을 준공한 1991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김식 화가가 그린 작품이다.
일반 관람객들 중에는 한반도 지도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천장엔 포스가 남다른 어마어마한 규모의 샹들리에 두 개가 매달려 있다.
대통령 집무실
본관의 핵심 공간으로 대통령이 업무를 하던 곳이다.
국정 현안에 대해 집무를 보거나 소규모 회의를 주재했던 장소다.
집무실을 포함한 대통령 공적 공간인 청와대 본관 전체 면적은 2,761m²로,
이전된 용산 대통령실 청사의 윤석열 대통령 집무공간 면적(415m², 현재 기준) 대비 약 6배에 달한다.
대통령 집무실 뒤편으로 접견실이 있다.
접견실
대통령과 외빈이 만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동쪽 벽면은 황금 색 <십장생문양도>로 장식되었으며
창문은 나무 창틀과 문살 위에 한지를 마감하여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십장생문양도>는 나정태 작가의 1991년 작품으로 한지에 채색을 한 것이다.
다시 반대편으로 1층으로 내려간다.
무궁화실[영부인 집무실]
무궁화실은 영부인이 사용하던 공간으로 외빈을 만나는 접견실과 집무실로 쓰였으며,
역대 영부인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지난 2022년 5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는 별도의 영부인 관련 전용 공간은 없다.
대통령 집무실에 비하면 작고 소박하지만 영부인의 집무실이 따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관저에서 대통령 출근시키면 그냥 관저에서 머무는 줄 알고 있었는데... 영부인도 바빴구나.
김건희 여사도 따로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할 듯...
보통 교과서에서 나열되어 있는 대통령의 이름들만 보다가
이렇게 영부인들의 모습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까 낯설기도 하고 재미있다.
이제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기억되는 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제일 앞서서 관람을 시작했었는데... 이것 저것 살피며 천천히 관람을 하였더니...
뒤이어 관람을 시작한 관람객 두 명이 나보다 앞서 관람을 마쳤다.
아직 비가 내리지는 않으니까 천천히 영빈관만 둘러보면 실내관람을 모두 마칠 수가 있다.
뒤이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청와대 본관 관람을 하고 있었다.
이제 영빈관으로 이동한다.
영빈관(迎賓館)
외국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빈 방문 시 공연과 만찬 등의 공식 행사 또는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등을 진행하던 장소
영빈관 1층만을 개방하고 있어서 아쉽지만 영빈관 2층은 관람할 수 없다.
손님을 맞이한다는 뜻의 영빈관(迎賓館)은 국빈이 방문하였을 때
우리나라를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행사장으로 이용되었으며,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및 연회를 위한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1층은 접견실로 외국 국빈의 접견행사를 치르거나 대규모 회의장소로 사용되었으며,
2층은 만찬장으로 대규모 오찬이나 만찬 행사가 열렸던 장소다.
1970년 이후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국빈들이 증가하였으나 청와대 내에 만찬이나 연회 등 행사를 치를 공간이 마땅치 않고
국가 위상과도 걸맞지 않다고 판단하여 청와대 내에 대규모 행사장을 갖춘 지금의 영빈관을 마련하였다.
영빈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5,904m² 규모로 1978년 1월 15일 착공하여 같은 해 12월 22일 건립되었다.
견고한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건물로서,
기둥의 원석은 국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서 채석한 화강암이다.
특히 전면에 있는 이음새 없는 4개의 돌기둥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1개 중량이 60톤에 달하고 높이 13m에 둘레가 3m에 이른다.
또한 건물의 내부 벽은 무궁화, 월계수, 태극무늬를 형상화하여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행히 비가 내리기 전에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 두 실내관람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이제는 대통령 관저로 이동한다.
대통령 관저
대통령과 그 가족의 거주 공간
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 우리나라 전통 양식의 뜰과 사랑채 등으로 구성
대통령 관저 현판 인수문(仁壽門)
어질게 오래살라는 말인가?
그렇지... 오래살아도 어질지 못하면 안돼지...
얼핏보면 한옥형태의 단층구조로 보이지만... 올라오면서 보니까... 지하공간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지하주차장인지... 지하벙커인지... 아니면 지하통로인지...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인수문을 들어가면 왼편으로 사랑채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별채가 있다. 만찬장의 조명이 화려하다.
외관은 한옥인데... 안은 서양식으로 정말 화려하게 꾸며져 언밸런스한 모습이 이채롭다.
이렇게 밖에서만 보면 얼마나 안이 화려한지 잘 모르고 지나갈 듯...
별관 입구의 문은 열려있으나 통제되어 있어 들어가 볼 수 없다.
마치 출입통로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간다리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랑채(청안당, 淸安堂)와 연결된 길도 징검다리 형식으로 아주 예쁘게 놓아져 있다.
오른쪽 끝으로 별채와 본채의 연결된 통로가 보인다.
이곳이 본채의 입구다.
입구에서 오른쪽은 편의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왼쪽은 생활공간이다.
티테이블과 함께 놓여진 두 개의 의자가 대통령 부부의 일과 후 모습을 상상하게 해준다.
앞쪽에 놓여진 텃밭은 아무래도 방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뭐라도 좀 심어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
뒷편으로 가면 창문을 통해서 본채의 내부를 엿보는 투어를 만들어 놓았다.
바깥으로 통하는 길은 통제되어 있다.
본채의 각종 방과 드레스룸, 식당, 미용실 등을 창문을 통해 들여다 보고 장독대를 지나 별채 뒷길을 돌아 나오면
다시 관저 입구다.
소나무 한그루가 안에서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제 오운정과 미남불로 가는 산책길을 올라가 보려고 한다.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1977호 (2018년 4월 20일 지정)
9세기에 조성된 통일신라 석불좌상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불상 조각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
원래 경주 남산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27년 총독부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오운정(五雲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2호(1997년 12월 31일 지정)
경복궁 후원에 있던 오운각의 이름을 딴 것으로
"5색 구름이 드리운 풍광이 마치 신선이 노는 곳과 같다"는 의미
오운정은 경복궁 후원에 휴식을 위해 지은 정자로, 자연의 풍광이 신선 세계와 같다고 하여
"오색구름"을 뜻하는 '오운(五雲)'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이 건물이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려 주는 기록은 없으나,
고종 4년(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은 이후의 모습을 그린 <북궐도형(北闕圖形)>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이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위치는 현재보다 아래쪽에 있었으나,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 정자는 정사각형 건물로, 지붕은 제 모서리가 한 꼭짓점에 모이는 사모지붕 형태로 되어있다.
주위에 난간을 두르고 있으며, 사방에 문을 내고 문짝을 들어 올려 자연스럽게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운정의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오운정에서 관저로 내려가는 길에 시야가 탁 트인 시내전망의 뷰 포인트가 나온다.
가까이로는 경복궁 광화문 세종대로 그리고 멀리 남산까지...
흐린날씨라 안타깝지만... 맑은 날에는 정말 멋진 뷰가 펼쳐질 듯...
들어갈 때랑 다르게 이젠 관저도 줄을 서서 들어가는 모양이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는구나.
향나무의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도대체 이런 나무의 모습은 지가 저렇게 자란건지 아니면 저렇게 자라도록 만드는건지... 궁금하다~
침류각(枕流閣)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3호(1997년 12월 31일 지정)
1900년대 초의 전통가옥
경복궁 후원이었던 지금의 청와대 경내에 있는 누각건물로
북궐(北闕)의 부속 건물로 추정
침류각은 경복궁 후원에 연회를 베풀기 위해 지은 건물로,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의 뜻에서
"침류(枕流)"라는 이름이 지어졌으며, 이는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의미한다.
침류각이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종 4년(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은 이후의 모습을 그린 <북궐도형(北闕圖形)>에 침류각이 보이지 않고,
1920년대의 한옥 건축 양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시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원래 위치는 현재보다 서쪽에 있었으나,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 건물은 중앙에 방과 넓은 마루인 대청을 두고, 앞쪽으로 한 단 더 높게 만든 누마루를 설치하여
한옥 건물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현재 건물의 기단 앞에는
물을 담아 수련 등을 키우는 돌로 만든 연못, 화재를 대비하여 물을 담아 두는 *두멍이 배치되어 있다.
*두멍: 물을 많이 담아 두고 쓰는 큰 가마나 독
건평 78㎡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ㄱ’자 집이다.
세벌대 기단 위에 사각주초(四角柱礎)를 세우고 사각기둥을 올렸으며, 5량가구(五樑架構)에 겹처마·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오른 한칸은 높은 장초석(長礎石)을 마련하여 누마루를 설치하고, 전통한옥의 양식을 따랐다.
상춘재와 녹지원 쪽으로 이동한다.
상춘재(常春齋)
국내외 귀빈에게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 행사, 비공식회의 등을 진행하던 장소
상춘재라는 이름은 '항상 봄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조선총독부 관사별관인 매화실(梅花室)을 상춘실(常春室)로 개칭했으며
1978년 서양식 목조건축으로 개축하고 상춘재라 명명했다.
궁궐 건축양식 한옥으로,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이용된다.
1982년 11월 기존 건물을 헐고 연면적 418m² 크기의 목조 한옥을 착공하여, 1년 반 만인 1983년 4월에 완공했다.
여민관(與民館)
청와대 직원들이 대통령 업무를 보좌하는 곳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과 함께 일하는 곳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위민관(爲民館)에서 여민관(與民館)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후부터 청와대 참모들이 근무하는 여민관에 집무실을 설치해 사용하였다.
상춘재 옆 산책길을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비가 오기 시작해서 우산을 쓰고 걷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물도 맑고 물고기도 많다.
녹지원(綠地園)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120여 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으며, 어린이날 행사 등이 펼쳐진 공간
각종 행사들이 많이 열리는 곳이긴 하지만 청와대 개방이후 많은 관람객들 때문에 현재는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통제를 한다.
310년 수령의 반송의 위엄... 녹지원이라는 이름이 바로 이 나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매년 식목일마다 식수를 했는지 대통령들이 식수한 나무들이 엄청 많았다.
Rhythm of the sea (해률, 海律) 강태성 제1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수상작
1966년, 대리석
가장 최근 식목일에 식수한 나무를 찾았다. 그리고 모든 식수가 성공한 이유를 알게되었다.
제법 다 큰 나무들을 심는다.
집 구경을 두시간 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두시간이 걸렸다.
이제 춘추관으로 이동한다.
좌측으로 보이는 문이 춘추관으로 나가는 문이고 밖으로 나가면 다시 재출입은 할 수 없다.
문을 통해 나가면 오른편으로 청와대 헬기장에 예쁜 휴식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평상도 있고 형형색색의 텐트도 있다.
그리고 이 길이 개방된 북악산 등산로 춘추관 출입구다.
이곳도 청와대 헬기장 휴식공간과 마찬가지로 예약 바코드없이 이용할 수 있다.
원래 계획은 청와대 관람을 하고 북악산 등산로를 오를 예정이었는데... 체력소모가 커서 그냥 포기...
다음에 아내와 함께 와야겠다.
춘추관(春秋館)
대통령의 기자 회견 및 출입 기자들의 기사송고실로 사용된 공간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 시정 기록을 맡아 보던 관청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자유언론'의 정신을 담고 있다.
국내 외 언론사 기자 300여 명이 출입하는 청와대 프레스센터이다.
맞배지붕에 기와를 얹고, 솟을대문과 고각을 세워 전통 건축양식을 부각시켰다.
1층에는 기자실과 작은 브리핑 룸, 2층에는 대형 브리핑 룸이 있다.
그런데 이곳은 2층으로 연결된 대통령과 청와대 대변인이 출입하는 춘추관 출입구고
춘추관 관람을 위해서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운무 Wave Clouds> 신석필 작, 1980년, 대리석
제2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수상작
좌우 모두 <경복궁도> 조선후기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북악산 등산로를 갈때 보이는 길로 나가 계단을 오르면 춘추관 2층 출입구가 나오고 바로 그 옆에 등산로 출입구가 있다.
이런 포토존을 끝으로 건물을 나가야 춘추관 관람로가 나온다.
춘추관 표시가 있고 그 오른쪽에 출입구가 있다.
그리고 청와대 신문고도 보인다.
국민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지만 전시용이라
실제 국민이 단 한번도 실제로 신문고를 두으린 적은 없다.
1층엔 작은 브리핑룸이 마련되어 있다.
등에 맨 배낭하고 우산은 내려놓고 찍을 걸 그랬다. 폼좀나게...
이 걸 찍으려고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린다.
2층으로 올라가면 대형 브리핑룸이 마련되어 있다. 보통 뉴스에서 대변인이 등장하는 바로 그곳이다.
처음 와 보지만 뉴스에서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 출입은 할 수 없도록 통제되어 있다.
뉴스에서 볼 때는 작은 공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웅장한 느낌이 드는 매우 큰 브리핑룸이었다.
특히 천장의 방패연 조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멀리 퍼다 나른다는 의미로 방패연을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모든 청와대 관람을 마쳤다. 제일 먼저 들어가서 다행히 비오는 날이었지만 빠짐없이 관람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아침 7시부터 관람인지라 힘들고 피곤하고... 빨리 집에가서 한 숨 자야겠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래도 매우 귀중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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