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보다 시인이란 소리를 더 듣기 좋아한 그 사람. 시인으로 시를 처음 쓰던 때. 늦봄도 흔한 다른 시인과 마찬가지로 시를 썼지요. 그러다 나중에 전 태일을 알고 사회를 보고 노동을 보면서 자신이 잘못 살아왔음을 느낍니다.
그때부터 늦봄은 언제나 어두움과 맞서는 자리에서 힘있게 싸우는 사람이 되었고 그리하여 감옥에서 지낸 시간이 감옥 밖에서 지낸 시간보다 더 긴 나날을 보냈습니다.
1973년에 펴낸 시모음 하나.
<새삼스런 하루>.
어느 한 사람이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며 달라지고 자라는 모습을 봅니다.
<새삼스런 하루>
아침 식탁에서 만나는 얼굴 얼굴이 새삼스러워 어느 하나 옛 얼굴이 아니다. "처음 뵙겠군요!" 나는 눈으로 반가운 인사를 한다. 책가방을 들고 뛰어나가는 웬 사내녀석의 뒤통수가 오늘따라 참 잘도 생겼다. "잘 다녀 오너라!" 웬 여인의 낯선 목소리가 오늘따라 가을 하늘처럼 맑다. 대문을 밀고 날아 나오는 미소에 손을 흔들어 답례하는 나의 아침은 왠지 발이 허공을 딛는다.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나오고 웬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왁자지껄하는 낯선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디서 듣던 소리런 듯 오늘따라 새삼스럽다. 왼종일 원고지에 하늘을 메우다 말고 생소한 골목길들을 지나 아름다운 노을이 비낀 저 낯선 문짝을 열고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얼굴들이 또 나를 반겨줄테지. "처음 뵙겠군요!" 이 저녁에도 다시 눈으로 반가운 인사를 해야지.
새삼스러운 구석이 없는 시. 그냥 그런 시. 늦봄도 이렇게 지내고 일하던 때가 있었죠. 성경을 히브리말에서 우리 말로 옮기고 조촐하게 행복을 느끼고 가끔 시도 즐기며 살던 어느 한 사람. 그런 자기를 새롭게 느낀 어느 때.
곰곰 생각해 봅니다. 늦봄이 이렇게 흔한 시인이자 목사로만 살았던 때가 참 행복할 때였는지. 아니면 감옥에서 지낸 동안이 훨씬 길던 때가 참 행복할 때였는지 말이죠.
아무리 읽어도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는 <새삼스런 하루>를 우연찮게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1973년에 나오고 월간문학사라는 데에서 펴내고 천 상병씨에게 선사했다는 글귀를 남긴 시모음 하나. 아내 박 용길 장로가 책글씨를 써준 소박한 책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