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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2일 안반데기 주차장 도착... 걸어가야 할 일출 전망대 언덕길을 바라본다 (09:40)
안반데기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자연 마을.
안반데기는 고루포기산에서 내려온 줄기에 있는 마을의 모습이
떡메로 떡쌀을 칠 때 밑에 받치는 안반처럼 평평하게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안반데기’는 떡메를 치는 안반 같은 땅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안반덕’의 강릉 방언이기도 하며, ‘안반덕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원조양곡을 지원받아 개간이 시작되어 1965년을 전·후한 시기에 마을이 개척되었으며,
1995년 주민들이 개간된 농지를 불하받으면서 완전히 정착하였다. <출처: 네이버, 안반데기>
안반데기 마을은 1965년을 전후하여 고루포기 산줄기를 개척하여 주민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생겼는데,
마을에는 정착사업을 할 당시 강원도지사, 명주군수, 왕산면장이었던 분의 송덕비가 있다.
안반데기 마을은 고루포기산[1238m] 줄기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고원지대에 있고, 마을 뒤에는 피득령이 있다.
안반데기 마을은 고루포기산에서 내려온 줄기에 있는데,
이곳에서 피득령을 넘으면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가 되고,
산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배나들이(대기3리)가 되고, 내를 따라 내려가면 곰자리와 맹떼기가 된다.
안반데기 마을에는 화전민의 삶과 애환이 담긴 생활상을 보여주는 안반데기 사료전시관,
귀틀집을 복원한 숙박시설인 운유촌,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던 개척정신과 애환을 생각할 수 있는 멍에전망대 등이 있었다.
마을은 고지대 특성상 봄은 늦게 오고, 겨울은 일찍 시작된다.
바우길 패스포트를 구입 한 후... 완주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시작하기로 한다...
안반데기? or 안반덕?
'구름 위의 땅, 힐링의 명소'로 널리 알려진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 4리
속칭 안반데기의 명칭이 두고 안반덕과 혼합된 이름이 불려 명칭 통일이 시급하다.
해발 1천100m의 태백산맥 험준한 산 능선의 안반데기는 1965년부터 화전민에 의해 개간돼
현재는 198만㎡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단지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원조양곡을 지원받아 개간이 시작돼 화전민의 고단한 삶과 애환, 문화와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다.
2013년 '전국 향토자원 베스트 30'에서 우수상에 선정될 만큼 우수한 자연환경을 간직한 마을이다.
이 때문에 사진 좀 찍는 사람치고 이곳을 찾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안반데기와 안반덕이 혼용되면서 아예 다른 곳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강릉시는 각종 자료에 안반데기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극심한 가뭄 때 이곳을 찾았던 국방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방문 자료 등에는 안반덕으로 썼다.
행정기관조차 각기 다른 이름을 쓰고 있다.
특히 강릉시도 도로명 주소에는 안반덕을 쓰고 있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는 안반데기라는 마을 이름이 떡메로 떡쌀을 칠 때
밑에 받치는 안반처럼 우묵하면서도 평평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나와 있다.
안반데기가 안반덕의 강릉사투리라는 설명도 있다.
이곳은 훌륭한 자연자원을 간직한 곳으로 최근 힐링 명소로 급부상하는 곳이어서 명칭통일이 시급하다.
강릉시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해 안반데기 일원에 힐링을 테마로 한 관광 인프라를 구축,
체험 프로그램과 트레킹 코스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지역 내 힐링의 명소로 육성할 계획이다.
가뭄 현장인 이곳을 찾은 최명희 강릉시장도 혼용되고 있는 명칭의 통일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강릉시는 안반데기 명칭 사용을 각계에 요청하는 한편 안반덕길로 돼 있는 도로명 주소도
주민의 동의를 받아 안반데기길로 바꿀 계획이다.
강릉시 관계자는 "최근 힐링 명소로 부상한 안반데기가 안반덕과 혼용 사용되면서 혼란이 있어
각계에 안반데기로 통일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라며
"명칭 통일을 계기로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나길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향호 바람의 길 .길. 수목원 길.. 2주 연속 비를 맞으며 걸었는데....
이번에도 하늘이 하 수상한게 ... 왠지 3주 연속 비를 맞으며 걸을 것 같은 불길(?) 한 예감이....
지기님의 정성 어린 여러 종류의 과일 포장 선물...
17 구간지기 생쥐님과 든든한 조력자 ( 助力者) 착한 아들...
산두꺼비님, 동그라미홍님
구간지기 언니와 동생....
힘차게 출발한다...(10:11)
강릉 희망 마을 화전민 생활 체험촌 (江陵希望-火田民生活體驗村)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화전민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마을.
운유촌 (雲流村) 이라고도 한다.
[개설]
행정 안전부는 2010년부터 희망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희망 마을 사업은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통한 다양한 지역 사회 문제 해결 및
주민 행복 구현을 목적으로 사회 복지 확충형, 소득 사업 추구형, 생활공간 개선형 사업으로 구분되어 있다.
강릉시는 마을 만들기 지원 센터를 통해 지역의 마을 만들기 사업을 계획하고, 대상 마을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다.
[명칭 유래]
대기리(大基里)는 큰 터가 자리하고 있어 큰 턱, 대기(大基)라 부른다.
대기 4리 안반데기는 떡메로 쌀을 치는 안반처럼 우묵하면서도 널찍한 지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효종 때 밀양 박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된 후, 각 성씨가 이주해 오기 시작하였다.
본래 강릉시 구정면 지역이었으나, 1916년 20여 개의 마을을 병합한 후 대기리라 하고
상구정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상구정면이 왕산면으로 개칭되면서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가 되었다.
대기리는 본래 3개 리로 구성되었으나 1967년 고루포기산 능선인 안반데기 농지를 개간해
감자와 채소를 심는 화전민이 들어와 마을이 생기면서 이 안반데기가 대기 4리가 되었다.
1965년 국유지 개간을 허가해 감자, 약초 등을 재배하다가 1995년 경작자들에게 농지를 불하하였다.
행정 안전부에서 시행하는 2010년 희망 마을 만들기 명품 사업 공모에서
대기 4리 안반데기 마을이 대상 지역으로 선정되어 안반데기 일대에 화전민 생활 체험촌이 조성되었다.
[자연환경]
안반데기는 해발 1,100m의 경사가 심한 고산 지대이다.
[현황]
안반데기는 6·25 전쟁 직후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소와 쟁기, 사람의 힘과 노력만으로
임야를 개척하는 화전 방식으로 개간한 농경지로
수많은 화전민의 고단한 삶과 애환이 그대로 묻어 있는 전형적인 농업 지역이다.
강릉시는 2010년부터 7억 500만 원의 예산을 집중 투입해 희망 마을 만들기 사업, 마을 기업 육성 사업,
농촌 정주권 개발 사업 등을 펼쳐 화전민들의 개척 정신을 계승하고, 농촌 체험 관광을 통한 대체 소득원 개발에 힘썼다.
주요 사업으로 화전민이 생활하던 귀틀집[운유촌(雲流村)] 복원, 화전민 사료 전시관 건립,
멍에 전망대 및 저온 저장고 설치 등 체험 관광객을 위한 숙박 시설 및 편의 시설,
농가 소득 향상을 위한 기반 시설과 마을 회관 등을 건립하였다.
28개 농가가 거주하고 있으며 전국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 산지이다.
매년 5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성황제를 올리고 있다.
최근 들어 고랭지 체험, 백두 대간 등산,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각광받는 힐링의 고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개척대(開拓隊)-마을
강릉 지역에서 인위적으로 새로 개척하여 농사를 지으며 사는 마을.
[형성]
개척대 마을은 평야 지대나 구릉 지대를 개척하여 생긴 마을이다.
개척대 마을은 3단계로 구분되는데 먼저 일제강점기 초기의 개척대 촌락,
해방 이후의 개척촌락, 5·16 군사쿠데타 이후의 개척대 촌락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개척된 마을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와 학산리에 있는데
일제의 조선 토지 조사 사업과 관련하여 일제 세력에 편승한 동양 척식 회사를 비롯한
일본 식민 회사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관유지를 불하받은 일본 이민자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다음은 해방 이후의 개척대 마을이 있는데 해방과 한국 전쟁을 거치며
동막저수지와 칠성저수지가 완공되기 전까지 임야 개척이 본격적으로 조성되었다.
1948년 정부의 후원 아래 발족된 한국 개척대가 국유림에 투입되었는데
한국 개척대는 해방 후 월남한 북한 출신으로 구성되었고,
그 후 피난민, 경상북도, 강원도, 충청북도 등지에서 소작농 임금 노동자,
영세 자작농민들이 유입되어 생활하면서 마을이 개척되고,
가옥 형태도 원주민의 가옥, 개척대 가옥, 유입민의 가옥 등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1960년 이후의 개척대 마을인데 이때는 칠성 저수지와 동막 저수지가 완공됨으로써
지역의 토지 이용 및 촌락 발달의 양상에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변천]
칠성 저수지와 동막 저수지는 강릉 수리 조합의 주관 아래 1952년부터 1961년까지 10개 년 사업으로 축조되었다.
칠성저수지와 동막 저수지의 완공으로 개척대 마을이 몽리구역으로 책정되어 도수로에 의한 관개용수로 공급이 가능해졌다.
종래의 반전(反田) 현상으로 인구 부양력의 증가와 저렴한 땅값, 신문, 라디오의 보도,
동향인의 유대 관계 등에 의해 개척대 마을로 이끌려 온 유입인들로 인하여 인구의 이입 현상이 촉진되었다.
[위치와 교통]
강릉 지역에 새로 개척된 마을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어단리·금광리 지역과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데기에 있다.
가을 고랭지 배추 출하를 목표로 질서정연( 秩序整然 )하게 밭 정리를 해 놓은 모습...
첫 번째 언덕길을 힘차게 올라서면서...(10:31)
다정스러운 모자..
자매님들...
이 작은 배추가 자라 7~8월이 지나면 농부들은 출하(出荷)의 기쁨을 ...
동쪽(강릉) 방향이 운해에 잠겨있다.
두 번째 언덕을 오르면서...
발아래 닭목령과 백두대간 마루금이 ...
닭목령 (706m)
강릉과 임계를 잇는 2차선 포장도로가 이 고개를 지난다.
고갯마루 북쪽의 왕산리엔 닭목골, 남쪽의 대기리엔
'닭목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닭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가 들은 여기의 지세를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 의 길지로 보았는데,
이 부근이 닭의 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닭목이라는 지명을 얻은 것이다.
고갯마루엔 산신각이 세워져 있다.
이곳의 산세는 천상에서 산다는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인 금계포란형이고,
이 고갯마루는 금계의 목덜미에 해당한다 하여 계항-닭목인 셈이다.
[금계포란형 : 풍수지리설에서, 닭이 알을 품은 듯한 형세를 이르는 말]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이젠 구라청(기상청)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비가 또 내린다... 3주 연속 비를 맞으며 바우길을 걷는다...(시원해서 좋긴 한데....)
이 분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니 ... 문득 , 노래 ' Singin' in the Rain' 이 생각났다....
배추 모종을 심고 잘 자라라고 영양제(?)를 뿌리는 중....
비를 맞으며 걸어도 모두들 즐겁다...
배추 모종을 심고 있는 사람들....
저 멀리 서 있는 사람은 무얼 하고 있는 건 지.... 당겨 보았는데 어둡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고... 그렇게 속절없이 내린다
산이 배추밭이고, 배추밭이 곧 산이다.
한낱 드넓은 배추밭으로만 여겨졌던 안반데기의 풍경이 노동의 신성함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배추밭이자
태백의 고랭지 배추밭과 더불어 우리나라 2대 고랭지 배추밭 중 한 곳이다
이곳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사람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없다면 김장철이 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김치는 중국산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이들이 있어 여름철에도 우리는 국산 배추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나마 누릴 수 있다
고랭지답게 7월 말부터 시작해 8월 말이면 모든 배추의 수확을 끝내는 곳이 이곳 안반데기이다.
성황당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서 식사를 한다 ...(11:40)
식사 후 다시 출발...(12:14)
젊은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
운유촌....
안반데기 길....원점 회귀 주차장에 도착...(12:45)
지기님이 스탬프 찍는 걸 도와주고 있다.
첫 번째 스탬프를 찍은 날..... 완주하시는 그날까지 화이팅! 하시길....
노추산 모정의 탑으로 달려 가면서...차 안에서 셔터를 눌렀더니 흐릿하다...(13:10)
노추산로 (魯鄒山路)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도로.
노추산로는 왕산면 대기리와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사이에 있는
노추산[높이 1322m] 줄기를 지나는 도로로, 시·군 간을 이어 주는 광역도로다.
[명칭 유래]
노추산로는 노추산 줄기를 돌면서 이어진 도로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추산은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사이에 있는데,
이곳에서 신라 때 설총(薛聰)과 조선시대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학문을 연마하여 대성하였으므로,
이곳은 중국 노(魯)나라의 공자(孔子)와 추(鄒)나라의 맹자(孟子)와 같은 위대한 인물의 학문의 업적이 서려 있고,
또 그들의 기상을 이어 간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산 남쪽 중턱에는 노추사[이성대(二聖臺)]가 있는데,
이곳에 홍유후(弘儒侯) 설총, 문성공(文成公) 이이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제사는 4월 중정일[음력]에 지낸다.
[건립 경위]
노추산로는 왕산면 대기리와 정선군 북면 구절리를 잇기 위해 만든 도로다.
[제원]
길이 1만 7017m, 폭 12~40m의 2~7차선 도로이다.
[현황]
노추산로는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와 경계 지역인 왕산면 대기 3리 동초밭에서 시작한다.
송천을 따라 종량동, 한터[옛 대기초등학교 대기분교장 터], 제도리를 지나면 배나들이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는 모정의 탑과 율곡 이이 선생의 구도장원비 탑이 있고,
이곳을 지나면 대기 2리 벌말에 이르러 왕산로와 만나면서 끝난다.
이곳에는 대기 보건진료소와 옛 대기초등학교 터가 있다.
노추산은 1973년 7월 1일 당시 강원도 명주군 왕산면 구절리에서 당시 정선군 북면 구절리로 이관되었는데,
이때 노추사의 관할도 정선군으로 넘어갔다.
노추산로 전체 구간으로는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고, 대기 3리 배나들이와 대기 2리 벌말 구간으로만 시내버스가 다닌다.
주차 후 ... 모정의 탑 가는 길 다리를 건너면서..
노추산 모정탑 길은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이 뼈에 사무치는 사연을 담은 돌탑길이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마음에 평화가 찾아드는
왕산면 대기리의 노추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3천 개의 돌탑이 장관을 이룬다.
이 탑은 차옥순 할머니가 지극정성으로 쌓은 탑으로, 이렇게 많은 탑을 쌓기까지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와 슬하에 4남매를 두고 행복하게 살던
차옥순 할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자식 2명을 먼저 떠나보내 가슴에 묻게 되었다.
실의에 빠져있던 차 여사에게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계곡에 돌탑 3,000개를 쌓으면 가정에 평화가 온다는 말을 하였고,
탑을 쌓을 적지를 찾아 헤매던 차 할머니는 율곡 선생의 정기가 살아있는
이곳 노추산 계곡을 발견하여 그때부터 오로지 돌탑을 쌓는 일에 매달렸다.
수많은 돌탑을 쌓아 나가던 중에 태풍과 집중호우가 잇따르면서
애써 쌓은 돌탑이 유실되는 허망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강한 모정의 의지로 지난 2011년 3,000개 돌탑이 완성하였다.
간절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곳이다.
비에 젖은 신록 속 빨강 우산이 강한 대비로 다가온다
모정탑 입구에서...(13:32)
삼천 모정탑
돌탑은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질병 등을 막고 복을 불러들인다는 의미로 여겨지는 신앙 대상물로
한국 선조들은 주술적인 의미로 돌탑을 쌓으면서 집안의 평화와 안정을 기원하였다.
노추산 모정탑길은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기자 집안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차옥순 할머니가 1986년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25년간 쌓은 돌탑길로
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하기에 믿기 어려운 광경과 할머니의 염원, 기원이
다른 이들에게도 감동을 주고 노추산 일대의 명소가 되고 있어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높은 곳이다.
2016년 1월 5일 산림청장이 국가산림문화자산 제2015-0005호 강릉 노추산 삼천 모정탑으로 지정하였다.
비를 머금은 신록의 싱그러운 내음이 꽤나 좋았다
초여름 숲처럼 / 문정희
나무와 나무 사이엔
푸른 하늘이 흐르고 있듯이
그대와 나 사이엔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
신전의 두 기둥처럼 마주 보고 서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쓸쓸히 회랑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오늘 저 초여름 숲처럼
그대를 향해 나는
푸른 숨결을 내뿜을 수밖에 없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서로를 쑤실 가시도 없이
너무 멀어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길을 만드는 일도 없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흐르는 푸른 하늘처럼
그대와 나 사이
저 초여름 숲처럼
푸른 강 하나 흐르게 하고
기대려 하지 말고, 추워하지 말고,
서로를 그윽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
차옥순 여사가 기거하던 움막 앞에서....
주차장으로 돌아오다 신시아님 모습을 몰래 ....습기가 차 흐릿 하지만 올려 본다
내리는 비와 함께 집으로 ....(14:15)
3주 연속 내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바우길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고 있는 바우님들...
푸르름이 가득한 날들처럼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나날이 되시길.... 수고들 하셨습니다.
비도 오고 그래서 / 헤이즈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거지 별 의미 없지 오늘은 오랜만에 네 생각을 하는 날이야 일부러 난 너와 내가 담겨 있는 노랠 찾아 오늘은 슬프거나 우울해도 괜찮은 맘이야 어차피 이 밤이 다 지나가면은 별 수도 없이 난 또 한 동안은 널 잊고 살테니까 내 가슴 속에만 품고 살아갈테니까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거지 별 의미 없지 우산 속에 숨어서 네 집을 지나쳐 그 날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파서 떨어지는 빗물과 시계 초침 소리가 방 안 가득 채우면 그 때로 난 돌아가 차라리 난 이 비가 그치지 않았음 해 매일 기억 속에 살 수 있게 나 널 아프게 했던 못난 놈이니까 널 다시 품에 안을 자격도 없으니까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거지 별 의미 없지 우산 속에 숨어서 네 집을 지나쳐 그 날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파서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을 너무 빨리 쓴 것 같아 거기까지 인 것 같아 이 비가 그칠 땐 각자 있던 곳에서 다시 살아가야만 해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거지 별 의미 없지 우산 속에 숨어서 네 집을 지나쳐 그 날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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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아 ~부럽습니다.
안반데기는 언제나 멋지네요.
비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무려 73명이나 참가하시다니요.
(제가 일일이 세봤습니다 ^^)
일이 있어서 참석 못하는 날에 이렇게 많이들 나오셔서 걸으시다니!
사진을 보며 부러움에 빠져봅니다.
걷자님 후기, 음악은 완전 신세대시네요.
즐감했습니다.
^^
키 큰 아저씨가 안 보여....좀 섭섭했다는...
최근 들어 시원해서 좋긴 한데..3주 연속 비와 함께 걷는 것 같습니다.
구름님이 매의 눈으로 그 와중에 꼼꼼히 일일이 참석자들을 세어 보았군요....대단하십니다..ㅎ
음악은 국적, 나이 불문하고 듣는 편 입니다.....(뽕짝은 아직 취향이 아닌 것 같고...)
감사드립니다....^^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바우길은 늘 행복입니다.
멋진사진 살짝 퍼 갑니다.
즐거이 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함께 하니 더 큰 행복 인 것 같습니다.
살짝 퍼 가지 마시고 마구~마구 퍼 가시길...^^
비 오는 날 안반데기
멋집니다 !
다른 행사 때문에 참석을 못해 궁금했는데,,,
걷자님 덕분에 오랫만에 안반데기를
걸어봅니다
많이들 나오셨네요~
비가 많이 내려 사진 찍기 힘드셨을텐데,,,
한장 한장 감사한 맘으로 감상합니다
대관령 국민의 숲길에서 뵐께요~걷자님 ^^
조금씩 내리는 비와 안개 덕분에 시야는 좀 답답했지만...
덥지 않게 즐겁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3주 연속 계속해서 비와 함께 걷다 보니....
어디 한번 폭우를 제대로 맞으며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하루에 300mm가 내리는 날에도 산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ㅎ)
저는 개인적인 일로 참석 못했지만 많은 분들이 오셔서 보기 좋네요~
글고 배경음악도 신세대 취향 깜놀했어요~ 점점 젊어져가는 느낌~
정보수집, 사진, 음악까지 종합 예술적인 감각을 가진 멀티플레어어십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두 분이 안보여서 주디님에게 물어 보았다는....
안개와 비가 내리던 안반데기....나름 분위기 있었습니다.
음악 취향은 잡식성(?)이라.....장르를 그닥 편식하지 않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