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곡 베아트리체의 나타남과 베르길리우스의 사라짐
첫 번째 하늘의 일곱별은
질 줄도 모르고 떠오를 줄도 모르며
죄의 장막 외에 다른 어떤 구름도 알지 못했다.
일곱 명의 노인 혹은 일곱 개의 촛대는 북두칠성이 여행의 좌표 구실을 하듯 이들은 인간의 영혼을 선하게 이끕니다.
일곱 개의 별이 잠시 멈췄을 때 24명의 노인들은 전차를 향해 섰습니다. 스물 네 명의 장로 중 한 명이 노래를 하자 그 위대한 원로의 목소리에 맞추어 하느님의 영원한 사절이며 일꾼들인 백 명의 영혼이 하늘의 전차 위에서 일제히 일어섰습니다.
그들은 꽃을 공중으로 던지고 “백합을 우리 손 가득히 주소서! 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천사들의 손에서
위로 던져졌다가 전차의 안팎으로
쏟아져 내리는 꽃들의 구름 속에서
하얀 너울 위에 올리브 관을 쓰고 푸른 망토를 입은 베아트리체가 내려왔습니다. 그녀를 온전히 볼 수 없었던 나의 영혼은 그 순간에 그녀의 신비와 권능에 압도되어 전부터 지속되어 온 사랑의 힘을 다시 느꼈습니다.
단테는 항상 믿음을 지니고 따라다닌 베르길리우스에게 말했습니다.
내 핏줄 속에 떨리지 않는 피는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 눈에는
오래된 불꽃의 흔적만 남았어요.
이 구절에서 단테의 강한 정감이 표출됩니다. 이 30곡에는 단테의 격한 감정을 보이는 구절이 여러 곳 있습니다.
이 구절은 아이네이스에서 따온 것으로 퇴장하는 베르길리우스에게 이별 인사로 인용한 것입니다. 아이네이아스가 옆에 없다고 생각한 디도가 그를 그리워하며 한 말입니다.
그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베르길리우스는 우리를 떠나 홀로 사라졌습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영혼을 맡겼던 베르길리우스여,
옛날의 어머니(이브)가 잃어버린 모든 것(지상낙원)도
이슬로 씻긴 나의 뺨이
눈물로 얼룩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으리라.
단테는 슬픔이 극해 달했습니다.
단테여, 베르길리우스가 그대를 떠났다 해도
아직은 울지 말아요. 아직은 울지 말아요.
그대는 또 다른 칼 때문에 울어야 할 테니.
<신곡>에서 ‘단테’라는 이름이 나오는 유일한 곳입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자신의 죄에 대한 통렬한 심판의 눈물을 흘러야 할 때 (또 다른 칼 때문에 울어야 할 테니) 울어야 한다고 꾸짖습니다.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진다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마음이 아쉽고 서운해집니다. 이제까지 여행을 같이 했는데... <신곡>을 읽고 기록하며 어지간히 나하고도 친해졌나 봅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리니 그녀는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해군 제독이나 당당하고 단호한 여인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날 보세요! 나 정말 베아트리체이니!
그대는 마침내 산을 올랐군요! 여기에
인간의 행복이 놓여 있는 것을 이제 알았나요?
단테는 부끄러워서 이마를 들지 못하고 풀밭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이 듯, 내게 그렇게 보이는데도 엄격한 연민은 그렇게 쓰기만 했습니다.
그녀가 말을 멈추자 천사들이 노래했습니다. 천사의 노래를 들을 때까지는 내 안에서 눈물도 한숨도 없었는데, 그 감미로운 노래로 그들이 내게 더 간절하게 위로하는 것 같았을 때
얼음(근심)처럼 단단하게 내 마음을 묶어 놓았던
사슬들은 호홉과 물이 되어, 초조함이
내 가슴에서부터 입고 눈을 통해 세차게 흘러 나왔다.
천사들의 위로를 듣고 내 마음에 엉키었던 얼음이 날숨과 물이 되어버려 가슴으로부터 입으로, 눈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단테는 칼에 찔린 듯 회개하는 마음에서 탄식과 눈물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이 구절의 표현 또한 격정 그자체입니다.
그녀는 천사들을 향해 말문을 돌렸습니다.
내가 당신들께 말하지만, 내 목적은
저편 강둑 위에서 울고 있는 사람이 진실을
알게 하고 죄를 참회로 바꾸게 하려는 거예요.
베아트리체는 천사들에게 그의 죄를 말하고 그를 회유하기 위해 힘썼던 것과 그를 구원하기 위해 지옥의 순례를 시킬 수밖에 없었던 경위를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을 통해서 이 사람은 이른 나이에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단테는 그 은총을 남용했습니다.
내가 마음껏 그를 지지했던 때가 있었는데 나는 그를 젊은 눈으로 보면서 그의 목표로 곧장 이르는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시기의 문턱에서
나의 삶이 바뀌었고, 그 사람은
날 잃고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다 헤맸지요.
베아트리체는 25세 되던 해에 죽었고 그녀의 지상의 삶은 천국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단테는
내가 육체에서 영혼으로 올랐을 때 더 많은 덕을 지녔는데 나를 찾지 않고 선의 헛된 모상들만 쫓아다녔어요.
그는 심연으로 빠져 들었고 마침내는 그에게
길 잃은 사람들을 보여 주는 것밖에는
그의 영혼을 구할 다른 길이 없었지요.
베아트리체가 여러 방법으로 구하려 시도했으나 단테가 돌이키지 않자 최후의 수단으로 지옥의 순례를 하도록 베르길리우스에게 눈물로 호소해 단테의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단테에게 길 잃은 자들의 영혼을 보도록 해 깨우쳐 주려 했고 단테는 연옥을 거쳐 이곳에 왔습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지옥으로부터 연옥을 거쳐 천국까지 여행을 하는 목적을 여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단테가 이 책을 쓴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가 참회의 눈물로 쏟아지는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레테를 건너고 그 달콤한 물을 마신다면 ,
하느님의 최고 법은 깨질 것입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입을 빌려 자신의 죄를 깊이 되돌아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