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들의 도전 / 조영안
반가운 비가 내린다. 이번에 내린 비로 가뭄은 해갈되었다며 어머님은 흡족해 하신다. 며칠 전 장날에 사다 마당 한쪽에 심어놓은 고추, 상추, 어린 수국과 넝쿨 땅 장미가 뿌리를 내렸는지 한껏 생기가 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에서 보내는 안전 안내 문자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린다. 그동안 말라 있던 땅에 갑자기 내린 비로 위험 상황이 발생할까 염려해서다. 비가 많이 내려도 걱정, 가뭄이 들어도 걱정이니 변화무쌍한 자연의 섭리에 따를 수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주어진 잠깐의 여유에 창밖의 빗소리는 편안하게 다가온다.
일상의 글쓰기 수업에서 이번 주 글감은 ‘재미’이다. 생활의 모든 일 하나하나가 재미로 시작한다. 좋은 결과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게 끝나기도 한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고 그러지 않으면 슬픔, 실망 등으로 두고두고 아픈 기억이 되기도 한다.
어릴 적 내 재미는 유별났다. 개미가 나오는 구멍 앞에 앉아 뾰족한 꼬챙이로 죽이기도 하고, 웅덩이 가에서 돌멩이를 던져 고기를 잡느라고 수선을 떨었다. 또 청개구리만 보면 갖고 놀았다. 어쩌면 그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쿡' 하고 웃음이 나온다. 지금은 바퀴벌레만 보아도 줄행랑치고 파리 한 마리도 못 잡는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우리 집 바로 옆은 대밭이었다. 누렇게 마른 대나뭇잎을 보니까 호기심이 일어 소죽 끓이는 아궁이 앞에서 불장난했다. 어른들이 켜는 성냥이 신기해 불을 붙이게 되었고, 그 불은 삽시간에 번져 집으로 옮겨붙었다. 불은 꺼졌지만 결국 새로 지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며 철없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서도 후회되고 씁쓸한 기억이 있다. 40대 초반 늦은 나이에 두 아이를 낳고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세상을 향한 돌파구가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모임을 하는 친구가 약초 카페를 소개했다.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기다렸다는 듯 가입하여 신나게 활동했다. 전국에 사는 회원들로 구성되어 그 수도 어마어마했다. 약초, 과일, 열매, 뿌리, 줄기 등 몸에 좋은 것은 닥치는 대로 효소를 담았다. 지역 방에서 총무를 맡으면서 들로, 산으로 또 섬여행도 다녔다. 이렇게 활기찬 사십 대를 보내면서 전국 곳곳의 회원과 친분을 쌓아갔다. 각양각색의 사람과 교류하면서 정보도 주고받았고, 좋은 재료나 특산품은 보내주고 받기도 했다. 회원 중에서 유독 가깝게 지내는 분이 있었는데 근무지는 익산 보건소였다. 나도 좋아했지만 그분이 더 다가와 좀 부담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해 사월 첫날이었다. "만우절은 거짓말하는 날이다"라며 지인들과 문자를 주고받다 문득 그분이 생각났다. 닉네임이 '바보 천사'였는데 "오늘 익산에 볼일이 있어 기차를 타고 갈 거예요." 했더니 흔쾌히 반겨주었다. 통화 후 몇 시간이 지나서 전화가 왔다. 언제 도착할 예정이냐고 묻는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는 그때야 아차 싶었다. "바보 천사님! 죄송해요. 오늘이 만우절이라 그냥 해본 소리예요. 다음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 꼭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분은 내가 올라간다는 말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식당을 예약하고 선물까지 준비했었단다. 사과했지만 크게 실망한 목소리였다. 재미로 시작한 만우절 사건 때문에 한동안 소원해졌고 서로가 섭섭한 마음으로 지냈다. 내 끈질긴 사과 덕분에 겨우 화해하여 지금까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다.
그런데 참 묘하다. 그렇게 열정적이던 내 마음도 사그라들고 있으니 나이 탓일까? 재미로 시작했던 활동이 하나둘 관심조차 없어진다. 그래도 글쓰기는 운명처럼 곁을 지키고 있어 다행이다. 글쓰기 반에서 열심히 재미나게 공부하며 남은 삶을 살찌워야겠다.
첫댓글 자랑할 만하네요.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멋진 아이들입니다.
응원합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 뿌듯하답니다.
선생님 근무 하셨을때 두 아이 모두 저학년이었네요.
@글향기 하하, 그런가요?
그때 좀 살필 걸 그랬네요.
꼭 합격하기를 바랍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선생님.
늦둥이들이 기쁨을 주시니 글에서 행복이 느껴집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와! 너무 훌륭한 자녀를 두셨네요. 든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