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있어서 좋았어 / 정선례
아버지 생신. 서울에 가려고 마음먹었더니 속이 메스껍고 침이 쓰다. 벌써 멀미가 시작된 것이다. 서울 가기 며칠 전부터 취나물과 두릅을 뜯어 시들지 않게 신문으로 싸서 냉장 보관했다. 식당이 아닌 집에서 밥 먹자고 형제들에게 제안했다. 갈비도 손질해서 배, 마늘, 생강 듬뿍 넣고 재웠다. 시중에서 구입하는 양념장은 너무 달다. 과일 외는 단맛이 느껴지는 건 싫다. 알배기 꽃게도 제철이어서 양념게장을 담그고 갓을 넣은 쪽파김치까지 넣었더니 여행용 가방 바퀴는 짐을 가득 실은 화물차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막내딸이 광림아트센터 공연장이 회사 근처에 있다며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한다. <넥스트 투 노멀>이다. 희곡 부문에서 상을 받았고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작품. 여우주연상, 최고 음악상, 최고 오케스트레이션 상을 받은 데 이어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140분 공연이다. 홍지민과 최정원, 남경주 팬인데 최정원이 다이애나 엄마역이다. 귀빈석에 앉았더니 눈앞에서 배우들의 표정까지 다 보여 그들과 한호흡으로 관람했다. 3인 이상 가족 할인을 받았는데도 입장권이 옷 한 벌 값이다. 최정원은 나보다 두 살 적은 나이인데도 군살 없는 몸매로 힘이 넘치는 열연을 선보였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내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족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화해와 사랑으로 회복해 가는 과정을 주제로 다뤘다. 엄마(다이애나) 아빠(댄) 딸(나탈리) 나탈리 남자 친구(헨리) 파인, 매든박사(다이애나 주치의) 아들(게이브)가 등장한다. 무대는 집으로 3층 집. 2층과 3층 좌우 끝에 악단이 대사와 딱 맞는 연주를 하는 것이 놀랍다. 어떻게 저렇게 연주와 배우가 호흡이 잘 맞을까? 수없이 많은 연습의 결과이겠지. 대부분의 대사가 노래다. 록, 재즈, 컨트리, 발라드의 다양한 장르 음악이 시종일관 연주된다. 이런 상황인데도 가운데 앉은 어머니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주무신다. 강부자, 윤유선 배우가 나오는 ‘친정엄마와 2박 3일’ 연극 공연이었으면 흥미롭게 보셨을 텐데 뮤지컬 선택이 신중하지 못했다.
다음 날 연차를 낸 딸내미와 분위기 좋은 살라뎅템플 레스토랑에 갔다. 배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갯배를 타고 작은 호수를 지나 들어갔다. 이국적인 관광지 느낌의 레스토랑 한가운데 인공 연못과 벽에 불상 비슷한 인테리어 구경하며 음식 기다릴 때까지만 해도 서로 웃는 얼굴이었다. 메뉴판을 보며 세 가지를 주문했다. 딸이 메뉴판 가격을 손으로 가리고 계산서를 얼른 잡아 주머니에 넣는다. 푸팟퐁 커리, 팟타이, 라자냐. 땡모반이라고 수박 맛 나는 음료도 시켰다. 태국 음식이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음식맛이 좋아 만족했다는 평가에 엮였다. 인기 있는 장소라고 해서 왔는데 영 아니다. 이름만큼이나 낯선 요리가 짜고 향이 강해 먹을 수가 없다.
음식을 앞에 두고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체한 것 같다는 딸의 말에 가족 통신 대화가 시끄럽다. 큰딸이 개인 카톡을 보내왔다.
“불평불만 좀 하지 마, 엄마랑 할머니 모시고 다니는 은혜가 기특하지 않아. 왜 이렇게 사람이 안 변하는 거야? 돈 쓰고 시간 쓰고 마음 쓰는데 불평까지 들어야겠어?”
손녀와 딸 눈치를 보며 어머니는 억지로 드신다. 간만에 할머니, 엄마와 평소 먹어 보지 못한 색다른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지내고 싶었던 딸은 속상한지 눈물을 보인다. 연차 쓰고 내가 가 보고 싶다던 곳으로 왔는데도 안 좋아하니까 너무 화가 났나 보다. 나와 어머니는 분위기보다는 음식맛이 중요한 나이다. 외국 음식이라고는 피자와 파스타만 먹고 돈까스는 입에 대지도 않는데 이런 음식이 입에 맞을 리가 없지 않은가. 끼니마다 콩나물과 총각김치, 텃밭에서 솎은 상추 겉절이와 산에서 채취한 취나물을 먹고 사는 시골 입맛이라 색다른 음식에는 거부감이 있나보다.
점심 먹고 남산 둘레길 걷기로 했는데 취소했다. 우리는 자취방에 올 때까지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아빠 성품을 많이 닮아서인지 집안 곳곳이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다. 집 안 구석구석이 반질반질하고 분리수거도 잘되어 있다. 웬만한 주부들보다 손끝이 야물게 살림한다고 칭찬했더니 “엄마, 나 대학 다닐 때부터 자취생활 7년 차야” 한다. 저번에 보내준 밑반찬이 냉동고에 그대로 있다. 아침은 굶고 점심과 저녁은 회사에서 해결하고 와서 주말에만 햇반을 데워 먹어서다. 삶은 고구마에 모짜렐라 치즈 듬뿍 얹어 자취생 필수품이라는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내왔다. 파슬리 가루를 뿌려 치즈의 느끼한 맛을 잡았다. 맛있게 먹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 미나리’ 영화 보면서 화해했다. 허당인 나를 닮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지난주 토요일에 왔는데 벌써 금요일이다. 개미들이 줄지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사방 골목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려고 몰려든다. 고속버스터미널과 회사가 같은 방향이라 같이 지하철을 탔는데 출근 시간이라 발디딜 틈이 없다. 회사 일은 뒤로 젖혀 두고라도 출퇴근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출근해서 일하기도 전에 기진맥진하겠다. 딸내미가 먼저 내리고 나는 한참을 더 가서 내렸다. “엄마 내렸어?” “곧 버스 타겠다.” “조심히 가요.” “서울까지 와서 내 짜증 받아 줘서 고마워.” “집에 도착하면 푹 쉬어요.” “아빠 맛있는 거 많이 해 드리고.” “엄마랑 있어서 좋았어.” 실시간으로 문자를 보낸다. 딸이 표를 예매하지 않았다면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좌석이 매진이다.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잠 안 올 때 하는 방법인 양을 속으로 세었다. 일어나보니 차는 휴게소에 도착해 있었다. 서울 갈 때보다 내려올 때 매번 멀미를 더 심하게 하는데 푹 자서인지 속이 메스껍지 않다.
외딴집에 오니 너무 좋다. 밤이다. 집에 왔냐는 내 물음에 “퇴근하고 집이야, 엄마 없으니까 좀 쓸쓸한 것 같기도 해.” 딸내미의 마음이 읽혀 순간 목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단다.” 했더니 “그런 것 같아.” 한다. 막내라서 그런지 표현이 자유로워 가만히 속내를 내보인다. 함께 살면서 아침밥도 먹여 보내야 하는데 안타깝다. 감기라도 걸려 아프다고 하면 덜컥 마음이 내려앉는다. 그래도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속이 깊어 동료들과도 잘 지내는 것 같아 그나마 안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