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보이는 것에서 자유하라
10/24목(木) 창 13:5-15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창 13:14).
기독교 진리 중 가장 중요한 영적 진리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만물을 지탱하시며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만물이 존재하는 근원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영안이 열리면 보이는 환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진정 복된 환경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합 3:17-18).
복된 선택의 축복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기회의 선택에서 자유합니다.
아브라함은 좋은 땅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땅으로 인해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떤 환경도 복된 삶으로 변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잘 선택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함께 하신다면 좋은 것을 다 양보하고 나머지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승리임을 알기에 소돔 고모라를 선택한 것입니다. “롯이 멀리 바라보니 요단 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아직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롯은 요단의 온 들판을 가지기로 하고 동쪽으로 떠났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따로 떨어져서 살게 되었다”(창 13:10-11). 이것이 롯이 실패한 이유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눈에 보이는 것에서 자유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진정한 실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유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8).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아브라함은 보이는 것에 자유 하니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고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미래의 시간인 영생에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창 13:14-15).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오늘뿐 아니라 영원까지 동일하게 역사하심으로 미래의 시간에서도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And...
눈에 보이는 것에서 자유하려면 먼저 실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주님을 나타내는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는 허상입니다. 건물, 인간, 동물, 식물, 그리고 모든 사물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그림자입니다.
100년 전에 지은 건물은 대부분 다 사라졌습니다. 아직 존재한다 해도 언젠가는 다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한 실재입니다. 영원한 실재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주님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눈에 보이는 그림자와 같은 허상에 붙들리면 실패합니다. 영원한 실재이신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붙들었는데, 눈에 보이는 환경들에 대한 염려가 있다면 속은 것입니다. 주님을 붙잡으면 내가 붙잡은 세상의 그 어떤 환경보다 더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넘치는 복을 주십니다.
저는 취미로 사진을 찍습니다. 대부분 꽃이나 나무가 피사체입니다. 주로 아웃포커싱의 사진을 찍는데 예전에 꽃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과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꽃을 보면 그냥 예쁘다는 정도의 감정이었다면 지금은 가까이에서 꽃의 얼굴을 찍다 보니 어느 꽃 하나도 예쁘지 않은 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꽃들은 주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꽃의 이름 그대로를 나타냅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니 그 또한 은혜입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다 지나는 그림자입니다. 아름다운 꽃도 시간이 지나면 다 시들어 흔적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옛 선조들은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라고 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없어질 것이니 좋은 일을 많이 해서 후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라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그릇으로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릇의 삶에 만족하면 보이는 것에서 자유합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만 아시면 됩니다. 맛디야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았지만, 주님은 그를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릇의 용도에 맞는 삶을 산 것입니다. 때로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에게는 무명인, 주님께는 유명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쟁에서나 보이는 것에서 자유 하다면 이런 사람을 감당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헛된 세상의 물질, 명예, 권력에 속아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기를, 세상을 붙들면 시간이 지날수록 남는 것은 허무함뿐입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집니다. 겨울옷을 꺼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올 한 해도 두 달 남짓 남은 것 같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남은 시간을 영생과 연결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보이는 것에서 자유하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으로
https://youtu.be/wTSKqEs4K5w?si=VFAgp0GSdYNbRTy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