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빌 설리번 지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내가 왜 이러는걸까
“우리는 모두 자기가 자신의 북소리를 따라, 자기만의 방식대로 산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자기가 북을 울리고 있다고 믿으며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이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사실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조화롭게 운용하는 숨겨진 힘이 존재한다.” 살면서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소리는 수도 없이 듣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말이며 뭐 그리 대수인지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거나 본인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괴리감으로 힘들어할 때가 더 많다. 저자는 인디애나 의과대학의 미생물학과에서 유전학과 전염병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입맛, 식욕, 중독, 기분, 공포, 이성을 선택하는 방식, 심지어는 정치와 종교적 신념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라는 존재를 형성하는 이 놀라운 생물학적 힘을 유전학, 미생물학, 심리학, 신경학, 환경의 영역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친절하면서도 윗트있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이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라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보통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납득하지 못하기에 힘들어한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의지력이 없는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다.
나를 움직이는 꼭두각시 줄
우리가 비만인 사람을 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무엇일까. 대부분은 “왜 이렇게 자제력이 없느냐”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우울증에 빠져 어둠 속에 있는 친구를 보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좋은 생각만 하고 빨리 털어내서 다시 일어나야지”일 것이다. 저자는 이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컴퓨터에서 프로그램을 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도 우리는 컴퓨터가 게을러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에 시동이 안 걸린다고 차더러 왜 이렇게 결단력이 없냐고 고함지르지 않는다. 이 기계들이 작동하는 원리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 몸 역시 정교한 기계로 비유할 수 있다면 분명 작동 원리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DNA는 한 유기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시사항을 담고 있어 ‘생명의 청사진’으로 불린다. 이 청사진은 몸이라는 집의 뼈대를 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집을 꾸미는 것은 환경 요인에 의한 것이다. 환경에 의해 생기는 DNA의 변화와 상처는 다음 세대로 전달되며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을 만들어낸다. 또한 과학자들은 우리 위장관 속에 우글거리는 미생물 침입자들이 음식에 대한 갈망, 기분, 성격등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고한다. 평소에 활기가 넘치던 생쥐에게 우울증을 앓는 사람으로부터 채취한 미생물을 주입했을 때 그 쥐를 우울증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정크푸드를 먹으면 운동을 하겠다는 동기가 극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감정이 몸의 다양한 기관에서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사랑은 심장에서 오고, 분노는 쓰디쓴 쓸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감정은 엄청나게 다양한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생화학적 신호에 의해 지배받는다. 비록 유전자와 생화학물질이 우리의 감정을 주도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옳든 그르든 생화학적 신호임을 인정하면, 아무 생각 없이 순수하게 본능에 휘둘리기보다 이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증거가 있는 삶
“도킨스는 유기체를 이기적인 유전자가 구축한 ‘생존기계’라고 말했다. 유기체의 근본적 목적은 자신의 DNA를 보호해 다음 세대로 확실히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렌즈로 바라보면 수많은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인간이 우월의식, 탐욕, 권력에 끌리는 것은 우리 유전자 풀의 저면에 깔려있는, 거부하기 힘든 흐름일 뿐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 나 자신을 이해하고 알고 있다는 것은 의도치 않게 흘러가는 상황을 개선하고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저자는 우리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집단적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발전이 지연되고, 정신건강, 사법체계, 정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그 질문들에 대한 설명이 어디 한 가지로 해결이 되겠는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몸의 반응들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행동과 성격이 유전자, 미생물층,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환경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생긴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무력감에 빠지는 것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내 아이가 쓴맛을 더 잘 감지하는 미각수용기를 만드는 TAS2R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브로콜리를 절대로 좋아할 수 없으니 먹지 않는다고 무작정 혼내지 않을 수 있다. 이 아이는 단지 잠재적 독성을 가진 식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해 그런 미각이 발달한 것 뿐이다. 물론 브로콜리의 다양한 영양성분을 포기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우리 행동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은 우리자신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이끌어주며 나아가 더 행복하고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힘을 갖게 되는 것에 도움을 줄 것이다
책 익는 마을 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