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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의 늪
이 홍사
누가 화병에 가을을 꽂아두었지?
어제는 종일 현장을 누비다가 사무실에 들어오니 화병에 가을이 꽂혀 있었다. 곱게 물든 단풍나무 가지와 들국화를 꽂아 둔 것이 보는 이의 기분을 의외로 상큼하게 했다. 잘 익은 가을이다. 화병의 가을은 잘 그린 한 폭의 유화처럼 보였다. 사무실 직원이라고는 딸랑 하나 있는 경리 부장인 여동생이 꽂아둔 것이겠지만 계절이 주는 덤이었다.
“계절은 확실히 뭔가를 보여주는군!”
공정이 바쁘고 난해한 현장이라 새벽에 나갔다가 돌아오니, 사무실 문을 활짝 열려 있고 여동생은 퇴근했는지 책상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소파 앞 탁자에는 아침에 보지 못하고 나간 신문이 놓여 있었다.
신문을 들추지도 않고 소파에 앉아 한 사장과 통화를 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 말만 귀에 남아 이명처럼 울렸다.
어느 코미디언이 했던 말인데 한때 유행했던 말이다. 이 말만 들어도,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의 말인지 알 것이다. 그 양반이 워낙에 유명했으니까.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그 말을 아는지 모르겠다. 그 말이 유행한 지가 벌써 삼십 년이 넘었으니.
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생각하니 여운을 남기는 명언이다.
성현이나 철학자만 명언을 남기는 게 아니라 코미디언도 명언을 남긴다는 사실은 나는 이제야 알았다.
이젠 옛말이 되었지만, 조국 근대화가 일 무렵에 우리는 세계인을 상대로 뭔가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급속도로 기적 같은 성장을 이룬 것은, 바로 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하는 심리가 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누구는 장담했다. 세계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경제 기적을 일군 나라는 유사 이래 없다.
가까이 지내는 송무라는 후배가 되는 시인은 이렇게 기적을 일군 것은, 까라면 까! 라는 군인정신이 우리나라 남자의 심장 밑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까라면 까!
여자들도 가끔 이 말을 쓰는 것을 보지만 그 말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 말의 본래 뜻은 ‘좆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좆이 없는 여자들이 어떻게 가시가 있는 밤송이를 까라면 까나? 군대에서 나온 용어인데 까라면 나는 깐다.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나는 까라면 깐다.
한 사장은 나를 만나면 충성이라는 구호를 붙이며 인사를 한다.
나이가 오십이 넘어서도 군대 서열을 따지는 건 해병대밖에 없다. 그러나 한 사장과 나는 육군 출신이다.
어제저녁 무렵에 전화하니 누구인지 알고 전화를 받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뜸 충성이라는 구호를 먼저 붙였다.
한참을 통화하고 끝에 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라고 해서 웃었다.
한 사장이 한 말인데 듣고 보니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고 그 코미디언이 생각나서 피식 웃은 것이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가 전 세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에 번진 역병인데 일 년이 넘어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비상이 걸린 지 일 년이 넘었다.
한 사장은 미얀마에 살고 있는데 미얀마 아내를 데리고 들어와 나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가 확산하기 전에 들어와 돌아갈 길이 막혀 주저앉은 것이다.
어제 미얀마 현지 매니저에게 카톡으로 연락을 받기에는 확진자가 사만이 넘었고 사망자가 구천 명이 넘어 미얀마에서는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봉쇄령이 내려졌단다. 학교고 관공서고 모두 문을 닫았다고 했다. 현지 매니저라는 녀석은 한국의 양말공장에서 십 년이 넘게 일을 했으니 한국말을 잘한다. 한국어보다 한글은 더 명확하게 의사가 전달된다. 전화로 하는 것보다 카톡이 훨씬 의미 전달이 확실하다.
미얀마의 열악한 의료체계로는 무증상 확진자는 확진자에 포함하지 않은 것일 터이다. 아파서 병원에 가야만 확진 판결을 받는 시스템이니 확진자가 더 많을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평생 독감에 걸려보지 않아서 코로나에 대한 면역력이 약해서 사망자가 많은 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한 사장에게 전화했더니 단박에 누구인지를 알고 충성 구호를 붙였다.
“좋았어. 동작 그만! 지금 어디 있어?”
이번엔 제주도가 아니라 목포에 있다고 했다.
목포?
한 사장은 한국에서 결혼에 실패하고 미얀마로 넘어간 사람이다. 미얀마 여자와 재혼해서 양곤에서 족발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미얀마에서 만나 아주 절친하게 지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산의 같은 부대에서 해안경계병으로 복무를 마친 후배였다. 그걸 연결고리라고 더 가까이 지냈다.
그렇게 연결이 된다는 걸 알고부터, 미얀마에 있을 적에 내가 한 사장의 족발 가게에 찾아가면 먼저 충성이라는 구호를 붙이며 거수경례를 했다.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나 혼자 가서 먹는 한국 소주 한 병과 족발 부스러기는 공짜요, 누구를 데려가면 술값을 받았다. 소주 원가라도 지급하려고 해도 공짜에 인심이 난다며 막무가내였다. 하여 혼자 가기가 항상 미안했다. 미얀마에서 한국의 소주는 값이 곱절이다.
아직도 나는 미얀마에 집이 여남은 채가 남았다. 미얀마에 들어간 지가 칠 년인데 아직도 사업을 접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 사업은 내 인생의 티눈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부디 흉터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곳에 투자한다고 빚을 좀 지고 있는데, 라고 대수롭잖게 지인들에게 말하지만, 말이 좀이지 명절이면 농협에서 한우 갈비를 선물로 보낼 정도의 빚이다.
여남은 채,
모두가 팔아야 할 집인데 주인이 나타나면 마무리 공사를 하려고 외벽 페인트는 칠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열대몬순기후인 나라의 우기가 육 개월이 넘으니 외벽에 페인트로 마감을 하고 일 년이 지나면 헌 집처럼 보이기에 그 공정은 미루고 있는 것인데 지난번에 들어갔을 적에 두 집은 세를 놓았다.
미얀마는 전세가 없다. 다 월세인데 지금 생각하니 적절한 시기에 세를 놓은 것이다. 그렇게 세라도 놓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그 세를 받은 돈으로 매니저와 가사도우미의 원급을 나눠 가지라고 카톡으로 지시를 했는데 한 집은 나가겠다고, 코로나로 인해 일을 못 해서 월세를 낼 돈이 없다고 나가겠다고 해서 보증금을 내줘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보증금이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난감한 일이다.
한국에 앉아서 전화로 미얀마의 자금을 융통할 방법이 없다. 한 사장이 미얀마에 있다면 한 사장에게 부탁하면 가능한 일이지만, 한 사장도 한국에 있다. 그렇다고 언제 들어갈지 모르는데 월급을 주지 않고 내가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면 직원들은 손가락을 빤다. 그 정도로 취약한 계층의 직원들이다.
한 사장에게 미얀마의 사정도 알려주고 돈을 보낼 방법이 없느냐고 물으려고 전화를 했다. 환치기를 통해서 보내면 되지만 수수료가 엄청나다. 다른 루트가 있나 알아보려고 전화를 했더니 목포라고 했다.
목포에서 뭘 하느냐고 물었더니 화물차를 샀다고 했다.
화물차?
대형화물이라고 했다. 영업용인가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화물차도 일거리가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조건이 좋아서 샀노라고 했다. 조건? 회사의 고정으로 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양계장의 닭을 싣는다고 했다. 한 사장은 제주도에서도 몇 달간 화물차 운전을 했다. 그때는 월급을 받는 기사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를 직접 샀다는 것이다.
한 사장의 아내가 진설 씨다. 한국 이름 같지만, 미얀마인이고 미얀마 이름이다. 한국어를 어눌하게 하는데 한 사장과 결혼 하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 한국의 어디에 거주한다고 출입국 관리소에 주기적으로 보고를 해야 하는데 본인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라서 이번에 같이 들어왔는데 코로나로 길이 막혀 나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몹쓸 역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른다. 역병이 잦아들고 하늘길이 열려야 들어갈 수 있는 형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미얀마에서 들어온 지가 벌써 대여섯 달이 되었는데 나가지 못하고 있다. 어디를 경유하더라도 갈 방법이 없다. 하노이를 거치는 비행기도 베트남 정부에서 막고 있고, 방콕도 태국 정부에서 막고 있으며 어떻게 들어간다고 해도 집이나 호텔로 보내지 않고 칸막이를 설치한 학교에서 삼 주간 격리해야만 한다고 했다.
여남은 채.
남은 집을 팔아도 본전치기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그렇다.
애초에 아르바이트 삼아서 미얀마에서도 중장비 사업을 하려고 건너갔다. 가서 조사해보니 인건비가 너무 싼 나라라서 중장비는 시기상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더니 집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자고 나면 오르는 게 집값이었다.
여기서 주택사업을 벌이면 되겠구나, 마음을 먹으면 급한 게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급한 성질이 단점으로 작용을 했다. 매니저를 구하고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여유자금으로 한두 채 시험 삼아서 했으면 무리가 없는데 욕심이 나서 빚을 왕창 끌어다가 대대적으로 지었다. 그런데 아웅산수찌 여사가 정권을 잡고 친구인 우 틴조를 대통령으로 앉히면서 경제를 개방하니 달러가 폭등을 했다. 집을 팔아서 달러로 바꾸어 와야 하는 나는 가만히 앉아서 재산이 반 토막이 되었다. 설상가상 집값은 과잉공급으로 하락하고 있으니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파는 게 마땅하다 싶어, 눈을 질끈 감고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판다고 인쇄물을 만들어 돌렸는데 그 인쇄물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집을 구경하러 온 사람이 한 사장이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는데 집은 사지 않았지만 친하게 지냈다. 한 사장이 있거나 없거나 찾아가면 한 사장의 아내 진설 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제저녁 통화에서 안 사실은 진설 씨는 제주도에서는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했는데 목포에서는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한 사장! 이런 기회가 없어. 미얀마에서 한 이십 년, 먹고 살 금액을 벌어서 가!”
한 사장은 웃으면서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인 말이, 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라는 말이었다.
“그래. 꼭 뭔가를 보여줘!”
그 말을 하며 궁금했다. 도대체 양계장이 얼마나 크기에 매일 닭을 싣는다는 말인가? 그걸 물었더니 한 양계장의 닭이 아니라 열댓 개의 양계장이 모여 있는 곳이 있는데 돌아가면서 매일 출하되는 닭을 싣고 전국으로 나른다고 했다. 거래처와 화물차를 동시에 샀다는 것이다. 닭을 싣고 전국의 도계장을 찾아다니는 게 일인 모양이다.
언제 길이 열릴지 모르겠지만, 내외 둘이서 잘하면 미얀마에서 한 이십 년, 먹고 살 만큼 벌어서 갈 수가 있다. 미얀마는 물가가 싸다. 한국에서 마음먹고 한 달을 벌면 미얀마에서 일 년을 버틸 수가 있다.
한 사장 내외가 한국으로 들어온 지가 벌써 육 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얼마나 모았을까?
지난봄에 들어올 적에 한 사장 내외와 같은 비행기로 들어왔다. 정기노선은 이미 끊겼고 미얀마에서 예정보다 두 달 반이나 기다리다가 한국으로 의료용품을 실으러 오는 비행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비싸게 주고 우여곡절 끝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입국 절차를 밟는데, 네 시간이나 걸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마지막 들어오는 비행기였다. 한 사장 내외는 인천공항에서 마련한 격리 센터로 들어가고 나는 아들 녀석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서 그 차를 타고 구미로 내려왔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집으로 내려와 자가격리를 보름간 했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제주도로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도에 친한 친구가 있어 내려간다고 했는데 거기서 당분간 터를 잡았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목포란다.
한 사장과 어제저녁에 통화를 했는데 오늘 새벽에 다시 전화가 왔다. 그 시간이 새벽 다섯 시도 되기 전이었다. 새벽잠이 없는 나는 그 시간쯤이면 사무실에 내려와 조간신문을 보는 시간이었다. 핸드폰에 찍힌 발신인이 한 사장이라는 걸 알고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뭐야? 이 친구가 이 시간에 왜 전화를 해?
“한 사장! 무슨 일이야?”
“혹시 주무시는데 전화를 드린 거 아닙니까?”
“아니야. 일어났는데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하하하! 놀랄 것 없습니다. 지금 구미에 와 있습니다.”
구미? 그 대답이 나오기까지 상당히 긴장하고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으니까. 한 사장은 닭을 싣고 구미 도계장으로 찾아가는 길인데 시간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새벽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어제저녁에 통화할 적에 아무 말이 없더니? 그 점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닭을 다 싣고 나면 양계 조합에서 배차를 받는다고 했으며 도계장이 아홉 시에 문을 여는데 차에서 좀 눈을 붙일까 하다가 전화를 했노라고 했다.
“어디쯤이야? 얼굴이나 보게 이리로 와. 여기서 도계장이 가까워.”
“닭똥 냄새가 날 터인데요?”
“닭똥 냄새? 상관없어. 아파트가 아니야. 상가주택인데 지금 마당이 비어있어. 대형차도 충분히 들어 올 수 있어. 지금 어디쯤이야?”
고속도로에서 내려 인근 사거리 부근의 공터라고 하면서 한 사장은 주소를 불러달라고 했다. 핸드폰의 내비게이터로 찾아오겠노라고 했다.
주소를 불러주고 마당에 불을 켜는 스위치를 올렸다.
밖은 아직 칠흑의 어둠이었다.
마당에 불을 켜는 스위치를 올리면 마당 양쪽에 서 있는 철제 기둥의 대형 램프에 불이 들어오면서 마당 전체가 훤해지는 시스템으로 만들어두었다. 야간에 중장비들이 들어와 정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는데 불을 켜는 순간, 마당의 두꺼운 어둠이 걷혔다.
마당에 불을 켜고 한 사장을 기다리며 신문을 건성으로 보고 있는데 밖에서 화물차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 저건 아니다. 보나 마나 청소차다. 매일 아침에 듣는 소리라서 단박에 알 수가 있다.
신문을 보면 나는 정치면보다 문화면을 먼저 읽는다.
새벽부터 정치면을 보고 머리를 어지럽히고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서다. 문화면을 읽으면서 정서를 깔끔하게 만들어서 중립적인 시각으로 정치면을 읽는다. 그래도 정치면을 읽으면 새벽부터 욕설이 나온다. 이 칼날같이 예리한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가 없다. 분노를 공유해야 하는 공동운명체다.
정치를 어떻게 했기에 경제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삼만 불 시대가 깨어지고 있고 부동산 고시가격을 올려서 국민은 세금 폭탄에 비실거리는 실정이다.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정부에 월세를 사는 것이나 진배없는 상황이 되었다. 세금이 그만큼 올랐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국가채무가 줄었느냐? 아니다. 국가채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국가채무는 GDP의 60%까지 올리는 게 이 정부의 목표란다. 목표를 설정할 게 따로 있지, 그렇게 설정해놓고 흥청망청 쓰자는 얘기인데 그렇게 저지르면 앞으로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르겠다.
그게 싫으면 이민이라도 가라는 얘기인데 정말 미얀마로 가서 주저앉을까? 집이 여남은 채나 있으니 미얀마에 가면 부자로 살 수가 있다. 여기에 있는 재산을 정리하여 빚을 갚고 나머지를 싸 안고 미얀마로 날아가?
아서라! 지금은 길이 막혀 있다. 그건 역병이 끝나면 다시 생각해보자.
그렇게 결론을 내는데 골목에 대형 화물차가 들어오는 엔진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한 사장 차가 맞는 모양이다.
신문을 접고 후딱 일어나 사무실에서 일 층 마당으로 내려갔다.
제대로 찾은 모양이다. 화물차는 꽁무니부터 마당으로 밀어 넣었다.
스톱!
엔진을 정지시키고 한 사장이 운전석에서 내려오는데 이게 뭐야?
숨통이 콱 막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수천 개의 초롱, 아니 새벽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동자! 순간적으로 나는 눈동자에 사로잡혀 꼼짝할 수가 없었다. 눈동자는 마당에 밝혀둔 LED 조명에 빛을 발하며 초롱같이 보였다. 수천 개의 눈동자! 닭들은 철망 사이로 모가지를 빼고 생소한 광경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눈동자에 갇혔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무슨 말을 하랴? 나는 꼼짝없이 눈동자에 붙들렸다.
“이럴 수가.”
한 사장이 내려와 뭐라고 인사를 했지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눈동자의 늪이었다.
그 늪에 빠져 나는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사무실이 이 층입니까?”
“응 그래.”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올라가서 새벽 커피라도 하죠?”
“응 그래.”
역시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수천 개의 눈동자! 눈동자의 늪에 빠져 한 사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뭘 그렇게 유심히 봅니까? 닭장차 처음 봐요?”
“응 그래.”
눈동자의 늪에 빠져 넋을 놓고 있다가 한 사장의 손에 이끌려 사무실로 올라왔다. 인스턴트커피를 타는데도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무중력 상태의 허공을 밟고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눈동자의 늪이 이런 것인가?
“닭이 몇 마리야?”
“한 삼천 수가 됩니다.”
“그러면 눈동자가 육천이네? 육천 개의 눈동자!”
한 사장은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며 사무실이 노가다 사무실이 아닌 것같이 깨끗하다고 했지만, 귀에 담아 들을 수가 없었다.
“집은 어디입니까?”
“응 그래.”
눈동자가 잔상으로 남아 눈에 어른거렸다. 한 사장이 무슨 말을 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집이 어디냐구요?”
“집? 무슨 집?”
“사는 집이 어디냐구요?”
“아! 집! 바로 위층이야.”
현실을 직시하자고 고개를 내저었지만, 눈동자의 잔상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초롱초롱 빛이 나는 눈동자.
무의식 상태에서 두 잔을 탔지만, 커피 맛을 모르겠다.
커피를 다 마신 한 사장은 속이 쓰리다면서 어디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이 없느냐고 물었다.
“길 건너 양평해장국으로 가지.”
밤새워 운전했으니 속이 쓰릴 것이다. 얼큰한 해장국이 좋겠다 싶었다. 양평해장국은 바로 길 건너에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양평해장국으로 가려면 마당으로 나가야 하는데 또 그 눈동자의 늪에 빠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게 몹시도 두려웠다.
예상대로 마당으로 내려서자 또 늪에 빠져 꼼짝할 수가 없었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들, 닭들은 모두 철망 사이로 모가지를 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발목을 잡은 눈동자, 닭들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한 사장이 팔짱을 끼고 이끌며 말했다.
“닭장차 처음 봐요?”
“응 그래.”
양평해장국으로 가는데도 허공을 밟는 듯 내 걸음이 부실했다.
양평해장국에는 문을 열려 있는데 손님이라곤 공사판에 나가는 인부로 보이는 한 사내가 돌아앉아 국밥을 먹고 있었다. 한 사장과 나는 걸상이 있는 탁자에 앉지 않고 신발을 벗고 보일러가 켜진 마루로 올라가 구석 자리에 앉았다.
속이 쓰리다는 한 사장이 주문한 건 콩나물국밥이었다.
나도 같은 걸 달라고 했다.
소주 한 잔 마시면 속이 확 풀리겠다는 말에 소주를 한 병 곁들였다. 해장술에 취하면 아비도 못 알아본다며 한 사장은 딱 두 잔을 마시고 그만두었다. 나머지 술은 내가 다 마셨다. 콩나물국밥을 먹는데 밥알이 닭은 눈동자처럼 보여서 차마 삼킬 수가 없었다.
“저 닭들이 오늘 다 죽는 거야?”
“아마 그렇겠죠.”
국밥을 먹으며 한 사장은 대수롭잖게 말했다.
“누가 죽여?”
“지금은 기계로 다해요.”
“이야, 인간은 무서운 동물이구나. 저 닭들이 며칠이나 살았지?”
한 사장은 병아리로 부화하고 약 90일이면 출하한다고 했다. 육계는 그만큼 키우면 육질이 연하고 먹기에 딱 좋다고 했다. 그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눈동자를 떠올렸다. 닭의 눈동자에 사로잡히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이었다. 나는 닭의 눈동자, 아니 밥을 반도 먹지 못하고 소주를 거의 다 비웠다. 밥알이 닭의 눈동자로 보여서 도저히 넘어가지 않았다. 한 사장은 운전 때문이라며 딱 두 잔을 마셨을 뿐인데 얼굴이 금세 불그레했다.
“저 생닭이 한 마리에 보통 얼마나 하지? 도계장으로 넘어가는 가격이?”
한 사장이 한 차를 싣고 오면 운임을 얼마나 받는지 그건 궁금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닭 한 마리에 얼마에 넘어가느냐가 중요했다.
“아마 삼천 원 미만일걸요. 운임 포함해서.”
삼천 수가 실렸다. 삼천 원으로 잡아서 얼마냐? 나는 속셈으로 닭 한 차에 얼마나 나가느냐? 그걸 계산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 값을 내가 치르고 닭을 몽땅 방생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걸 다 산다고 해도 어디에 방생을 하지. 마당에 풀어두면 길거리로 나가 차에 치여 죽는 것도 있을 터인데? 생각하니 끔찍했다.
소주를 두 잔 마신 한 사장의 눈이 게슴츠레했다. 밤새 운전을 했으니 꽤 피곤한 눈이었다. 초롱초롱한 닭들의 눈과는 대비되는 눈이었다.
“아홉 시에 도계장 문을 연다고 했지?”
한 사장은 그렇다고 했다.
“그런 사무실에 가서 한 두어 시간 눈을 붙여. 난로를 켜 줄게.”
한 사장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모텔을 찾아 들어가기도 뭣한 시간이고. 차에서 눈을 붙이기에도 불편하다고 했다. 사무실 소파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이면 되겠다 싶었다.
국밥집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마당을 들어서다가 또 눈동자의 늪에 빠졌다. 닭들은 오늘 운명이 다하는 날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나를 보고 굴리고 있었다. 어쩌면 구원의 눈빛인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날이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사무실로 올라와 마당의 불을 껐다.
한 사장은 여덟 시가 되면 깨워달라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일찍 도착해야지만 빨리 하차를 할 수가 있다고 했다. 커피를 한 잔 더 할 거냐고 물으니 싫다고 했다. 소파에 누운 한 사장 편으로 전기난로를 켜서 놓아주고 잠에 방해가 되지 않게 집으로 올라갔다.
아내는 아직 오밤중인 모양이다. 건넌방에는 기척이 없었다.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접어둔, 지난밤에 읽던 책을 집어 들었다. 후배 시인 송무가 보내온 산문집인데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활자마다 불을 밝히고 있었던 까닭이다. 글자가 닭의 눈망울처럼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글자가 건성으로 눈에 밟히는 것이 닭의 눈동자로 변하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고사하고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지독할 수가.
책을 덮었다.
사무실로 내려오니 소파에 누운 한 사장이 가볍게 코를 골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부스럭거리며 단잠을 방해할 수가 없었다.
마당으로 내려갔다.
날은 더 밝아 있었다.
철망 사이로 고개를 빼낸 닭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쏟아졌다. 하릴없이 차를 한 바퀴 빙 돌았다. 닭 모가지의 각도가 나를 따라 움직였다.
“한 사장이 확실히 뭔가를 보여주는군.”
화물차 뒤의 철망 문을 열었다. 닭들이 일제히 살았구나, 하며 쏟아져 나올 줄 알았는데, 겨우 세 마리가 뛰어내렸다. 닭장 문을 열어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더는 뛰어내리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닭 세 마리는 모두가 흰색이었는데 멀리 도망을 가지 않고 화물차 꽁무니, 내 발치에서 맴돌았다. 야성이 죽은 닭들이라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담배를 빼 물고 내 발치에서 노는 닭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닭은 더 내려오지 않았다.
닭이 던지는 눈동자의 늪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한 사장은 깨울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사무실로 올라오니 한 사장은 언제 일어났는지 커피를 타서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마시고 있었다.
“어딜 갔다가 와요?”
“아! 잠에 방해가 될까 봐. 도계장에 갔다가 어디로 가?”
“목포로 내려가서 닭을 실어야지요.”
“잠은 언제 자?”
“그야말로 닭 잠을 자죠. 휴게소에서 좀 자고, 닭을 싣는 시간에 좀 자고.”
“그렇게 피곤하게 해서 어째?”
“미얀마에서 한 이십 년, 먹고살 것을 벌어서 가라면서요.”
“그랬나? 쉬어가면서 해.”
한 사장이 일어섰다. 일찍 가서 맨 앞줄에 서서 하차해야 한다고 했다. 더 쉬다 가라고 잡을 수가 없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한 사장 뒤를 따라서 계단을 내려갔다.
“어? 이게 언제 문이 열렸지?”
화물차 뒤에는 닭 두 마리가 새벽바람을 쪼고 있었다. 한 사장을 대수롭잖게 닭을 난폭하게 움켜쥐고 닭장차에 싣고 철망으로 된 문을 닫았다. 분명히 세 마리가 나왔는데 한 마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 사장은 자주 전화를 하겠다고 하면서 운전석에 올랐다. 시동을 걸고 운전에 앉아서, 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충성! 장난스레 거수경례를 하고는 문을 닫았다.
“이미 뭔가를 봤어.”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앞뒤로 불을 밝힌 대형 화물차가 수천 개의 눈동자를 싣고 마당을 빠져나가는데 닭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저 감당하지 못할 눈동자!
그 눈동자의 늪에 빠져 한참이나 허우적거리다가 돌아섰다.
한 마리가 어디 갔지?
찾아보니 담장 밑의 좁은 화단에 올라가 있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도로로 나가 닭장차에 실린 닭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을 두 손으로 잡았다. 역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니고 있었지만, 야성은 없고 퇴화에 퇴화를 거듭한 날개를 접은 닭은 얌전했다. 닭이 지닌 온기가 손에 전해졌다. 살아남을 닭이었다. 현관에 들어와 비닐 노끈을 찾아서 닭 발에 묶어 화단의 나무에 묶어 두었다.
닭을 어떻게 하겠다는 결단이 서지 않았다.
일단 먹이를 좀 주어야 하겠는데 뭐가 좋을까?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사무실 바닥에 수천 개, 눈동자가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분명히 눈동자였다. 닭의 눈동자였다. 현기증을 느끼며 한참이나 등을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등을 벽에 기대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뭔가를 보여주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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