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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20.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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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지혜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제2독서<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복음<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9,23-26)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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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20.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http://www.ofmkorea.org/ofmhomily/585399
2026.09.19 20:51
2026년 9월 20일 일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루카 9,23-26
순교자들의 대축일에 교회가 펴 드는 복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특히 ‘날마다’라는 말씀이 마음을 붙듭니다.
십자가는 한 번의 극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날마다’ 짊어지는 일상의 충실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순교자들은 이 말씀을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순교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신앙을 지키고, 이웃을 돌보고,
책을 읽어 진리를 익히고, 성사를 갈망하며 살던
그 ‘일상의 십자가’가 쌓이고 쌓여,
마침내 피의 증언으로 활짝 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 교회의 남다른 아름다움을 기억합시다.
우리 신앙은 밖에서 선교사가 들여온 것이 아닙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책(서학)을 읽고’ 진리를 알아본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돌아와 공동체가 생겨났고,
신앙은 신분을 넘어 온 백성에게 번져 갔습니다.
곧 한국 신앙은 ‘독서와 배움(문화)’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은 성 예로니모가 성경을 옮겨 심었듯,
말씀을 읽고 새기는 ‘독서의 사랑’ 위에서 자랐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화 주간’이 오늘 시작되는 뜻이 있습니다.
문화 주간은 음악·미술·시·‘독서’로
영혼을 살찌우는 주간입니다.
어제 복음의 ‘좋은 땅’이 백 배의 열매를 맺듯,
순교자들의 좋은 땅은 이 땅에 풍성한 ‘신앙의 문화’ ―
성가와 성화와 시와 수많은 책― 를 열매 맺었습니다.
참된 문화는 이렇게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에 뿌리를 둡니다.
주님께서는 또 물으십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
순교자들은 ‘온 세상(목숨·재산·안전)’과 ‘그분’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그분을 택했습니다.
세상을 다 얻는 것보다 ‘그분을 잃지 않는 것’이 참된 삶임을,
그들은 피로써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날마다’ 지는 일상의 십자가에 충실한가?
나는 ‘온 세상’과 ‘그분’ 사이에서 그분을 택하는가?
나는 순교자들이 물려준 ‘신앙과 문화’를 소중히 잇고 있는가?
나는 나와 그분의 말씀을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주님,
순교자들처럼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온 세상보다 당신을 택하게 하시고,
그들이 피로 일군 신앙과 문화를 소중히 잇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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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20.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https://cafe.naver.com/f-e/cafes/30893450/articles/3236?boardtype=L&referrerAllArticles=true
2026.09.19. 16:45
사랑의 법!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호명환 번역)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머무시어, 사랑 안에 뿌리내리고 굳건히 서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바오로 사도의 삶을 변모시켜 준 환시
사랑의 법!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리처드 신부는 어떠한 율법보다도 하느님의 사랑를 신뢰한 바오로 사도와 함께 기도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완전한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필리피서 3장 5–6절).
그러나 그는 스스로 묻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종교적 준수 속에서도 나 같은 증오와 폭력을 품은 사람이 생겨날 수 있는가?"
이것은 바오로의 지극히 솔직한 질문이었고, 그는 겸손히 그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율법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어떤 방법으로도 그 사랑을 더 크게 하거나 줄일 수 없습니다.
영적 율법의 참된 목적은 우리가 누구인지, 또 하느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더 깊이 깨닫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그 깨달음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근본적인 부족함을 인식하게 되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충만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허락하실 뿐 아니라, 그 실마리마저도 우리에게 유익하게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놀라운 은총의 섭리이며, 참으로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좋은 소식"(루카 2,10)이라 불릴 만한 유일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체험했듯이, 우리는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합니다."(2코린토 12,10). 율법과 은총 사이의 창조적 긴장 속에서 씨름을 마치고 나오면,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승리는 패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체험한 것처럼, 우리가 자신의 약함을 깊이 깨닫고 동시에 사랑의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 그 아름다운 바오로 바친 기도가 참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 앞에 나아갑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가문이 그분에게서 이름을 받았습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의 풍요로움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여러분의 내적 존재가 굳세어지기를,
그리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머무르시기를,
사랑 안에 뿌리내리고 굳건히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지식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에페 3,14-19 참조) 하고 기도합니다.
References
Adapted from Richard Rohr, Things Hidden: Scripture as Spirituality (Franciscan Media, 2022), 85–86, 87, 88.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Chris Chow, untitled (detail), 2020, photo, Roscoe Village, Coshocton, O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베틀 위에 팽팽히 당겨진 실처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무늬(패턴)를 기꺼이 내려놓을 때에만 더 큰 이야기를 짜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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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20.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6.09.20 05:21
- 순교자들은 증거자들
제 생각에 순교자란 위대한 증거자들입니다.
한 사람의 순교도 위대한 증거이지만 한국 순교 성인들처럼 많은 사람의 순교는
이 세상의 어떤 권력자도 어쩌지 못하는 정말로 대단한 하느님 힘의 증거입니다.
당대 세상의 권력자들은 몇 명 죽이면 천주교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교인이라고 의심되는 사람을 싹 잡아 죽이면 씨를 말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천주교가 망했나요?
권력자들의 생각대로 됐고 신자들이 그들의 뜻대로 천주교를 버렸나요?
일부는 배교했지만 다수는 순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얘기하듯 박해는
참 신앙인과 거짓 신앙인을 가르고 순교자와 배교자를 가릅니다.
그리고 거룩한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가르고
참 지혜로운 사람과 헛똑똑한 자도 가릅니다.
세상사의 견지에서도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의 부귀와 권력을 탐하다가 망해버립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들을 멀리하고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지혜는 그 행복이 세상에서의 행복이고,
이 세상 너머의 저세상을 보지 못하고 그 행복은 모릅니다.
사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믿는 이유가 천국에서의 참 행복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행복을 위해서이고 그래서 철저히 현세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의 신앙이 현세를 지향하는지 천국을 지향하는지
그것을 아는 것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복을 받기를 원했는데 벌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즉시 성당에 나오지 않습니다.
돈을 벌기를 바라는데 부자는 못 되고 주일 날 성당에서 돈과 시간만 뺏기면
세례받고 얼마 안 가서 성당에 나오기를 그만둡니다.
이들에게는 고통과 시련이 불필요한 벌일 뿐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고 신앙의 단련도 아닙니다.
주님을 따라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은 이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짓 이전에 광신도들의 미친 짓일 뿐입니다.
불사불멸이란 것은 없고,
불사불멸을 주시는 하느님도 없으며,
그래서 불사불멸의 하느님 나라는 믿지 않음은 물론 꿈도 꾸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주님 말씀을 듣고 이 사람들이 따라나서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인들의 순교는 이것이 어리석은 짓이나 미친 짓이 아님을
증거 하는 것이요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거룩한 지혜라고 하는데
오늘 독서 지혜서는 이 지혜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순교자들은 결코 어리석거나 미친 사람들이 아니라
거룩한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며 그 증거자들입니다.
그들의 지혜는 시련을 단련으로 받을 줄 아는 것이고,
어두운 현실에서도 불사의 희망을 볼 줄 아는 것이며,
어떤 것도 하느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낼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이렇게 웅변적으로 얘기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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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20.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숨영성 묵상글
https://cafe.naver.com/f-e/cafes/30893450/articles/3237?referrerAllArticles=true
2026.09.20. 06:05
주님을 '기꺼이 따르려는 마음'....
솔직히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을 따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초대와 과제, 그리고 그분 자신이 우리의 인도자이심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23)
여기서 "누구든지"라는 말은 제한이 없는 초대입니다. 제자들은 특별한 재능이나 학문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은 어부였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준비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꺼이 따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의 첫 제자들은 실수와 잘못, 믿음의 흔들림과 실패에 너무나도 쉽게 빠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런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많은 이들이 '나는 못하겠다, 포기할 수 없다, 두렵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단 하나, '기꺼이 따르려는 마음'입니다.
기꺼이 따르려는 마음 안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시며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강제로 우리를 끌어들이지 않으십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신앙의 길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억지로 걸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로봇 같은 순종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유로운 사랑을 원하십니다.
"나는 희생이 아니라 자비를 원한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놓고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선택하여라. 그리하면 너와 네 자손이 살 것이다." (신명 30,19-20)
그런데 참된 선택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 들어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 무엇보다 주님을 따르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겠지요?!
다른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모순처럼 보입니다. 잃음 속에서 얻고, 약함 속에서 강해지며, 죽음 속에서 생명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길이 참된 자유와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늘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필리 1,21)
이는 그리스도라는 분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그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의 고백입니다!
필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이를 깨달은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은 자기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주님을 따랐던 이들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말이나 평가 때문에 마음이 그곳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잠시 '내'게 왔다가 나가는 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면 이는 주님을 기꺼이 따르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목숨보다 덜 중요한 것에 매달려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말 중요한 것! 이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려놓아야 할 것은 지금 '내'가 무의식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일 겁니다.
애플의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이런 말을 했지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정말 하고 싶은가?"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 무엇이 결국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임을 일깨우게 하는 명언입니다. 이 말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를 깨워주는 자명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살기고 결심한 우리에게는 지금 가장 중요한 선택이 바로 "사랑과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을 기꺼이 따르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 오늘 저와 함께 이 기도를 바쳐 봅시다!
"주님, 제 영혼이 죄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강하게 서 있으려 애쓰지만 너무 힘이 듭니다.
주님, 당신의 사랑을 제게 드러내 주소서. 당신께서 제 삶의 길을 마련해 주셨으니, 그 길 위에 제가 서 있는 이유를 다시 일깨워 주소서.
때로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를 지금 이곳에 두신 이유가 있음을 압니다. 주님, 저에게 당신과 머물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시옵소서.
당신과 함께함이 다른 무엇보다도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임을 의식하게 하소서!
세상은 저를 잘못된 길로 끌어당기고, 분노와 다툼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주님, 제가 굳건히 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제가 당신을 기꺼이 따르려는 마음을 갖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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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20.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이 마르첼리노 M. 수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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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기도 1 하느님께서 들어오시는 거룩한 여백 ( 2026.08.26. 10:41 )
http://www.ofmkorea.org/ofmkfb/584127
가난과 기도 2 팔을 벌리시는 하느님과 포옹의 사랑 ( 2026.08.27. 01:21 )
http://www.ofmkorea.org/ofmkfb/584146
가난과 기도 3 십자가를 바라보는 눈과 존재의 가난 ( 2026.08.28. 03:06 )
http://www.ofmkorea.org/ofmkfb/584207
가난과 기도 4 형제 안에서 배우는 가난과 무소유 ( 2026.08.29. 03:36 )
http://www.ofmkorea.org/ofmkfb/584312
가난과 기도 5 사랑의 아름다움과 위대한 교환 ( 2026.08.30. 05:42 )
http://www.ofmkorea.org/ofmkfb/584342
가난과 기도 6 보게 되는 사람에서 기도가 된 사람으로( 2026.09.02. 06:35 )
http://www.ofmkorea.org/ofmkfb/584513
가난과 기도 7 가난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 2026.09.04. 19:57 )
http://www.ofmkorea.org/ofmkfb/58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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