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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주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는 그리스도인]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어려운 일, 속상한 일을 많이 겪는다.
이 세상에는 악인들이 많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에게는 특별히 더 어려운 일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도록 맡기는 것이 옳다.
[그리스도인은 화를 내도 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이 화를 내도 되는지, 우리에게는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답을 먼저 말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화를 내지 않을 수는 없다.
물론 화를 내는 것은 성경적으로 금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러나, 화가 나는 것 자체를 죄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누구도 화를 안내고 살 수 없다.
만약 화를 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정상이 아닐 것이다.
누구든지 화를 내고, 분노는 그리스도인들이라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그 화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과 불신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화를 하나님의 뜻대로 처리해야 한다.
[화가 나면 복수를 찾는다]
화가 나면 어떻게 처리할지, 모든 사람이 정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세상에는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한다는 법이 없다.
화가 나는 문제는 그냥 각 사람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므로, 화가 난 당사자 본인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람들은 분노할 때, 복수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세상에는 복수심이 많다.
또, 여전히 복수의 과정에 이르는 일들도 너무 많다.
또, 복수를 하고 난 후에도, 자기 복수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내게 피해를 주었으면, 내가 화가 나서 두배로 되갚아도 여전히 나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쁜 짓을 했으니까, 나는 정당하다고 하는 것이다.
진짜 자기 마음 속에는 나를 아프게 했다는 생각이 있다.
겉으로는 그가 나쁜 짓을 했으니,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 일로 인해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나타내려고 한다.
이것은 진짜 정의는 아닐 것이다.
그 행위 자체가 따로 판단을 받아야 할 일이다.
정말 정의를 실현했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문제다.
나를 중심으로 한 생각이 모든 것을 집어삼켜서, 공평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
[원수를 갚지 못할 때 트라우마]
보복 하는 것도 문제지만, 보복을 하지 못해도 문제다.
복수를 하지 못하면, 그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다.
자기가 보복을 했다면, 앙금이 가실 수 있는데, 하지 못하면, 억울한 마음이 남게 된다.
해결되지 않고, 마음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삵혀져서 없어질 것 같다고 하지만, 상처는 여간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모든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다. 몸 스스로 견디는 것 뿐이다.
우리가 겪은 아픈 상처의 충격은 마음에 없어지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이상한 때, 이상한 방법으로 그 반응이 나타난다.
왜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 잠재의식만 알고 있다.
그래서, 복수를 못해도 병이 든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미 받은 상처 때문에, 어느 정도 병들어 있다.
[모든 것을 앞서는 이기적 판단?]
그래서, 복수를 해도 문제, 하지 않아도 문제다.
화가 나서, 이 일이 처리되는 동안, 죄의 생각이 내 속에서 범람한다.
생각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고, 자의적이고, 이기적이게 된다.
그러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균형잡힌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 때, 어떤 기준잡힌 법도 없이, 자의적으로 심판한다.
그 때는 내 질투가 법이다.
인간의 죄 중에 제일 악한 죄는 가인이 자기 동생을 죽인 사건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이것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느냐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그 때, 정말 합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그것은 질투였다.
남은 하는데, 나는 못하고, 남은 가졌는데, 나는 못가졌다.
그런 질투가 그렇게 큰 범죄로 이어졌다.
이런 일은 가인과 아벨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분노를 제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구분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똑같지는 않고, 분노를 제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분노하면, 죄를 범하기 쉽다.
남이 나에게 해를 끼치면, 나는 복수를 하려고 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죄를 범하기 쉽다.
누가 나쁜 짓을 했다고 해서, 내가 복수한다는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판단이 따로 또 필요하다.
원수 갚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복수는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도록, 그에게 남겨진 일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원칙이다.
말이 원칙이지, 이것은 진리다.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화는 제어가 되어야 한다.
각인에게 주어진 책임이 있다.
우리는 능히 그런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할만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새피조물들이다.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이 생성되도록, 우리를 새롭게 지으셨다.
참 의와 참 거룩함이 나타나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이 이끄신다.
그래서, 옛사람의 성질을 불러와서, 오늘의 거룩한 삶을 망칠 수 없다.
옛 것은 버리고, 오늘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본문]
지난주에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거짓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는 말씀을 했다.
거짓말 하는 자는 결국 천국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거짓은 친리의 반대되는 말로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전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우리의 이웃은 서로에게 지체가 된 주의 성도들이다.
[분을 내다는 뜻]
오늘은 거짓행위 다음으로 생각할 문제인데, 화를 내는 일이다.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본문에는 화가 나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어떤 일을 맞이하여, 흥분하여 버럭 화가 나도, 죄를 짓지 말라.
그리고, 그 화가 가라앉지 않고, 계속 지속되게 하지 말라.
화병이 이런 개념이다.
당장 타오르지 않지만, 속에서 두고보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버럭할 때와는 달리, 싸늘하면서,생각날 수도록 분통이 난다.
약간 상태가 다르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분을 오래 품고 있으면, 개인적으로 보복할 것을 생각하게 되어서, 죄에 빠지기 쉽다.
유대인의 관습상, 해가 진다는 의미는 하루가 지난다는 의미다.
즉 분노가 오래가지 않고, 오늘 정리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의로운 분노]
의로운 분노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시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하나님의 일이 방해받고, 모욕받는 일에 대해서, 의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믿는 자라도 화를 낼 수 있다. 하나님도 화를 내실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이 방해받고, 모욕당하는데도, 아무렇지 않다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로운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그 자체가 죄는 아니다.
화를 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예수님도 화를 내셨다.
예수께서 아픈 자를 불쌍히 여겨 치료하려고 할 때, 그것을 엿보고, 기회삼아 고발하려고 하는 바리새인에 대해서는 화를 내셨다.
막3: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불쌍한 자를 돕는 것을 악하게 보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신 것이다.
또, 주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실 때도 노하셨다.
상을 엎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내어쫓으셨다.
만민이 의지하는 하나님의 집의 본질을 모르고, 장사하고 있으니까 화가 나신 것이다.
주님은 자기에게 이로운지, 불리한지 따지지 않으셨다.
주님은 아버지가 모욕되는 일에 대해서, 분명히 의분을 가지셨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해를 가하고, 모욕을 가한 것에 대해서는 참으셨다.
주님은 모든 것에 대한 최후의 심판자시다.
그분에게 가해진 악행에 대해서, 그는 반응하지 않으셨다.
그는 아버지의 일이 방해받고, 모욕되는 것에 대해서 분개하셨다.
의분은 어쩔 수 없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충성이 있다면, 의분이 일어날 일이 많을 것이다.
교회에 악의적으로 피해를 주는 일에 대해서는 의분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피할 수 없는 일로서, 이기적인 욕심으로 내는 분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거룩한 양심이 없다면, 타락한다. 거룩한 양심을 가진 자에게 화를 내는 일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나님의 일이 해를 받는데, 화가 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교회가 부숴지는데도, 자기는 중립이라고 하는 것은 의분을 가질 능력이 없는 것이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마다 화날 일도 많다.
하지만, 인간은 한계가 있어서, 의로운 분노를 한다고 해도, 죄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본문은 이것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사람이 순수하게 의로운 분노로 화내고, 의롭게 끝낼 수는 없다.
그렇게 하더라도, 이기적인 관점에서 자기가 타오르기 때문에,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잘못된 결정을 하기 쉽다.
본문의 말씀은 교회안에서 사랑과 연합을 하는 거룩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악행을 범하는 신자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다.
다음절에는 도적질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기적 분노는 죄를 범하게 된다]
이기적인 분노는 죄가 되기 쉽다.
일단 화가 나면, 자기 잇속을 챙기는데, 신경이 집중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반발심이 생긴다.
마5:21-22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것은 결국 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는 분노다.
성경의 말씀에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나, 미워하는 것도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기적인 분노, 앙심을 품는 분노는 죄성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허락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왜 분을 품고 있으면 안되는가.
엡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마귀에게 틈을 주기 때문이다.
성경적으로 노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엡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본문에서 집중해야 할 핵심은 분노가 나더라도,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다.
분노는 피해야 하지만, 만약 분노가 일어나도, 죄를 짓지 말라.
통제하므로, 엄습하는 분노를 제어하여, 분노에 빠지는 시간도 짧아야 하고, 처리도 신속해야 한다.
약1: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화를 내는 자는 하나님의 일과 자꾸 부딪히게 된다.
[분노는 하나님의 백성이 피해야 할 일]
갈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골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전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잠22:24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엡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노로 인해 서로 앙숙이 되고, 멀어지는 일은 그리스도 교회안에서는 옳지 않다.
양립할 수 없다.
분노와 서로 지체가 되는 일은 함께 갈 수 없다.
본문의 문맥상, 우리는 서로 지체이므로, 서로 거짓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화도 오래품지 말고, 얼른 마무리해야 한다.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우리가 분을 품고, 다음날까지 이어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분노를 오래 품으면, 그 시간부터는 마귀로 하여금 자기 마음에 침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분노는 일단 마음 속에 증오감이 꽉 차고, 악의로 보복할 마음이 생긴다.
자기 관점이다.
내가 누군데, 감히. 스스로 심판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분노는 한순간에 들어온다.
그것을 품고, 잠자리에 들어도, 이미 상당히 격앙되어 있어서, 제어가 잘 안된다. 마귀는 그런 상황을 자기 목적을 위해 악용한다.
이미 이 때, 이 순간만은 의와 거룩함은 상실한 상태가 되고, 악한 인격이 된다. 그러면, 마귀가 지시하는 악행을 하게 된다.
분노가 길어지면, 사람은 복수하게 되므로, 즉시 다루어야 한다.
[사단은 분노하는 자를 노리고 있다]
마귀, 사단 같은 말이다.
화가 났을 때는 아무리 정당한 이유를 대도, 여전히 사단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이미 무장을 벗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분노에다 억울한 생각을 집어넣는다. 너 불쌍하잖아. 너 억울하잖아.
이렇게 해서, 임의로 행동하면, 하나님의 뜻도 범할 가능성이 높다.
분노하는 것은 사단과 연관성이 있다.
거짓말도 사단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거짓과 분노를 동시에 하면, 사단에게는 최고의 잔치나 다름없다.
분노를 피하라. 거짓을 미워하라.
분노와 거짓은 양날을 가진 악이며, 판단력에 혼란을 준다.
계속 혼란해지면, 하나님은 그 영혼에게서 물러서시며, 원수가 그 영혼을 대신 다스린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을 하면, 하나님이 물러가시고, 마귀가 대신 자리를 차지한다.
성경은 마귀가 틈을 노리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바울은 그 부분을 명확히 표현했다.
딤전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딤후2: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하나님께 사로잡히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마귀에게 잡혀있으면 안된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단은 분노하는 자를 노리고 있다.
야생에서 포식자는 사냥감이 한눈을 팔면, 멈추고 노려본다.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원수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
교회 안에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 뿐 아니라, 질투나 화가 나 있어서 그러는 것이다.
화를 내는 자는 마귀를 돕는 자다.
성경은 차라리 용서하도록 노력하라고 한다.
고후2: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사단에게 속지 않으려 함이다.
격분하면, 오히려 사단에게 당할 수 있으니, 차라리 용서하라고 성경은 제안한다.
롬16:17-20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또, 성경은 분쟁과 범죄를 일으키는 자와 싸우기보다, 차라리 떠나라고 한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에게 맡겨져 있다]
분노하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을 범하기 쉽다.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져 있다는 원칙을 어길 수 있게 된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가장 큰 경고는 하나님께서 진노를 참고 계시다는 것이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누가 다 없어졌다고 했는가.
계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시94:1 여호와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
신32:35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히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향해 가고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을 판단하고 계시다.
시135: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 종들을 긍휼히 여기시리로다
살전4: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하나님은 진노를 참으시면서, 성도를 불쌍히 여기셔서, 살려주시려고 하신다.
보복과 살려주려고 하는 생각이 함께 용솟음치고 있다.
마음에 맺힌 원한을 주께서 풀어주신다.
본문의 말씀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시4:4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이 말씀은 고대부터 두루 통용되는 말씀이다.
본문의 말씀과 다른 면이 있는데, 왜 인용되었을까.
왜 떨며라고 되어있을까.
합3:1-19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 (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률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도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하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에 돌리셨으며 분을 내사 열국을 밟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그들이 회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 떨고 있다. 하지만,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
불의한 자 때문에, 내가 분노하고,해결 못해서 병이 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자들 되자.
우리는 두려움으로 그 날을 기다려야 한다.
모든 악행에 대해서, 그가 반드시 보응하신다.
주의 교회에 못을 박고, 성령을 배반한 자에게 반드시 보응하신다.
롬12: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잠20:22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