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기다리다가
병신인가 베하며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러운 날은 길 위에 돌부리가
유난히도 많이 솟아났다
보이는 것은 어느 하나 다를 게 없다
세상이란 다 이런 건가 보다 눈멀고 귀멀어 살면 그만인 것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삶의 메아리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질문을 받는 순간
파란 희망의 빛이 보여 가는 길마다 돌부리에 채어 넘어져도
뭣하나 다를 게 없다고 여겨져도
더러는 사랑을 보듬은 사람들이 곁에서 사는 세상
사는 건 등불 하나 들고 가는 것
다 그런 것인가 보다
- 최명숙,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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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경상북도장애인종합복지관 의성분관 앞마당에서 제43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의성장애인부모회 손형정 회장님과 딸 다례, 그리고 아내와 함께 기념식에 참여하였습니다. 행사장에는 많은 이들이 모였더군요.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하지만 참여할 때마다 깊은 한숨이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건 왜일까요? 단상에 선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위한 온갖 위로의 말을 쏟아내지만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그들의 언어에는 장애인들을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소중한 일원으로서가 아닌 무언가를 해주어야 하는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제가 경험한 장애인의 날 행사는 장애인을 위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장애인이 주인공이 아닌 들러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늘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번 행사에도 그랬습니다.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여러 사람들이 장애인 상을 받았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그 대상들이었지요. 주로 사회복지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헌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장애인의 날에는 적어도 어려운 현실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을 격려하는 것이 주(主)가 되어야 하지만, 그날 행사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지역에 사는 장애인들이 당당히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모든 불편한 사항을 개선해주고, 그들의 꿈이 조금이라도 현실과 맞닿을 수 있도록 제반여건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장애인의 날 행사는 그렇게 그들만의 잔치로 끝이 났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것은 행사가 끝난 이후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답답한 심사를 달랠 겸 장애인부모회 회장님과 다례와 아내와 함께 군위 화산산성 '바람이 좋은 저녁'으로 바람을 쐬고 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이 설 자리가 너무나 좁습니다. 사회가 장애인들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행복한 세상이라야 모두가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입니다. ‘희망’이란 단어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쉬이 잡히지 않는 아득 단어입니다. 비장애인들도 그러할진데 늘 벽에 서 있는 듯한 장애인들은 오죽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를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이 희망마저 없다면 그들의 삶은 무너지게 될테니까요. 저 개인적으로도 아들 지우에 대한 저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동안 저의 기준에 맞추어 지우가 따라오기를 기다렸다면, 이제는 지우에 맞추어 저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이제야 들다니...
뇌성마비인 최명숙 시인의 ‘희망’을 음미해봅니다. 그녀의 어색한 행동거지는 비장애인들에게 이상한 모습으로 비추어졌겠지요. 그런 부담스러운 시선을 매일 마주하고 살아가는 시인은 ‘세상은 다 이런 건가 보다’고 체념하다가 그의 곁에 사랑으로 보듬는 사람들이 건네는 따스한 등불 하나 들고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깁니다. 그래요. 세상을 다 바꿀 수는 없겠지요. 단 내가 그들의 진심어린 동행이 되어줄 순 있습니다. 희망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그저 손 맞잡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2023. 4. 21.>
* 참고로 이번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의성군의 장애인 비율이 12.6%(6,300여명)이라고 하네요. 제가 의성에 내려올 때(2018년)가 10.3%였으니 장애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그러니 장애인들을 향한 곱지않은 시선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비장애인들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진짜 장애는 욕심스런 마음, 나누지 않는 마음, 함께 하려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첫댓글 💌 반성합니다. 저 역시도 저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해 왔습니다. 꼭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보폭이 좁은 사람이, 빨리 걸으면 숨찬 사람이 내 걸음폭과 속도에 맞추기를 은연중에, 무심결에 바라며, 때로 강요하며 살았습니다. 기다려주고, 손을 잡고, 잠시 쉬고, 보폭을 좁히고, 속도를 늦추며 동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또 잊고 살았습니다. 아득에서 가득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멀까요? 그러나, 그래도, 그래서 그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희망이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아득 단어가 아닌 가득 단어가 될 수 있도록 세상을, 아니 나를 바꿔 나가야 합니다.
아득이 아닌 가득..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