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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방원 제181편:충녕대군을 세자로 삼다
"술 한 모금도 못하면 군왕의 자질은 없다"
우의정 한상경과 여러 신하들이 제(禔)의 아들로 세손을 세우자고 하였으나 영의정 유정현이 반대했다. “신은 배우지 못하여 고사(故事)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에는 권도(權道)와 상경(常經)이 있으니 어진 사람을 고르는 것(擇賢)이 마땅합니다.”
그 유명한 택현(擇賢)이 여기에서 튀어나왔다. 조선조 5백여년 동안 나라가 혁명 상황에 처하거나 정국이 안개 속을 헤맬 때 실력자들이 합리화의 보도처럼 내미는 것이 택현을 현실화 한 택군(擇君)이다. 태종조의 택현은 택군과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나 이때부터 군주제에 반하는 씨앗이 뿌려졌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곧바로 태종의 손자 수양대군이 변형된 택군을 시도했고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 택군의 다른 이름이다.
“아비를 폐하고 아들을 세우는 것이 고제(古制)에 있다면 가(可)합니다만 없다면 어진 사람을 골라야 합니다.”
좌의정 박은이 유정현의 의견에 동조했다. “어진 사람을 고르소서.” 기다렸다는 듯이 조연 김구덕 심온 김점 유은지 이춘생 최운 문계종 이배 윤유충 이적 이원항 이발 정상 허규 등 15인이 가세하고 나섰다. 심온은 충녕의 장인이다.
“옛 사람은 큰 일이 있을 적에 반드시 거북점(龜占)과 시초점(筮占)을 쳤으니 청컨대 점을 쳐서 세자를 정하소서.”
칼 날 위에서 춤추고 싶지 않다, "점으로 결정하자" 이조판서 이원이 점을 치자고 했다. 생뚱맞은 엉뚱한 발상인 것 같지만 묘책이다. 점을 쳐서 점괘에 따랐다면 그 누구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조말생이 들어왔다. 의논을 멈추게 한 태종은 좌우를 물리쳤다.
“제경(諸卿)들이 무엇이라고 하던가.” “점을 쳐서 결정하는 것이 가(可)하다고 합니다.” 나라의 녹을 먹는 중신들 태도가 이렇다. 중대 국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소신보다 보신에 급급하다. 일이 잘못되어 태종이 의도한 양녕의 폐위가 물거품이 되고 양녕이 등극한다면 폐위 찬성자들은 목을 내놓아야 한다. 이러한 위험부담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꼼수다.
양녕을 폐하고 새로운 세자를 세우는 것이 대의에는 부합 할런지 모르지만 정의에서는 벗어난다는 것이 그들 발목을 잡은 것이다. 택현은 신하의 입장에서 임금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자칫 역신과 공신의 칼 날 위에서 춤을 추는 위험을 안고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는 택현과 택군을 옳다 그르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으나 도덕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는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점을 쳐서 이를 정하겠다.”
태종이 점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예정된 수순이다. 조말생이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던 중신들이 모여 들었다.
“주상 전하께서 이원의 의논을 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말을 마친 조말생이 편전 밖으로 뛰듯이 사라졌다. 점을 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잠시 후 태종은 내관 최한을 보내어 조말생을 불러오게 했다.
언어의 마술을 조언하는 여자의 지혜.
“의논 가운데 점괘를 따르도록 원한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이를 따르고자 하였다. 그러나 나라의 근본을 정하는 것은 어진 사람을 고르지 않을 수 없다.” 신하들의 시험이 끝났으니 점치는 방법은 철회한다는 것이다. 점을 치자고 한 신하들만 머쓱해진 꼴이 되었다. 태종이 내전으로 들어갔다. 사태의 추이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던 정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를 폐하고 아우를 세울까 하오.” “형을 폐하고 아우를 세우는 것은 화란(禍亂)의 근본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마술이다. 정비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한 태종은 한참 만에 깨달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의 수사학이다. 내전에서 나온 태종은 힘주어 말했다. “나는, 제(禔)의 아들로써 대신 하고자 하였으나 제경(諸卿)들이 모두 말하기를 ‘불가(不可)하다.’고 하니 마땅히 어진 사람을 골라서 아뢰어라.”
“아들을 알고 신하를 아는 것은 군부(君父)와 같은 이가 없습니다.” 유정현 이하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아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은 아버지 이외에 누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임금과 신하의 줄다리기다. 그 누구도 총대를 매려하지 않았다. 도리 없이 태종이 밀렸다.
비장의 카드를 불쑥 꺼낸 태종, 충녕대군을 낙점하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라에 훌륭한 임금이 있으면 사직의 복이 된다’고 하였다. 효령대군은 자질이 미약하고 성질이 곧아서 개좌(開座)하는 것이 없다.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몹시 추운 때나 몹시 더운 때를 당하더라도 밤이 새도록 글을 읽으므로 나는 그가 병이 날까봐 두려워하여 항상 밤에 글 읽는 것을 금지하였다. 중국의 사신을 접대할 때면 신채(身彩)와 언어동작이 두루 예(禮)에 부합하였고 술을 마시는 것이 비록 무익하나 중국의 사신을 대하여 주인으로서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다면 어찌 손님을 권하여서 그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느냐?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 효령대군은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니 이것도 또한 불가(不可)하다. 충녕대군이 대위(大位)를 맡을 만하니 나는 충녕으로서 세자를 정하겠다.”-<태종실록>
태종의 전격선언이다. 감추어 두었던 충녕을 불쑥 꺼내어 결정해버렸다. 반론을 제기하거나 토론할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광석화다.
“신 등이 이른바 어진 사람을 고르자는 것(擇賢)도 또한 충녕 대군을 가리킨 것입니다.”
영의정 유정현과 여러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태종은 조말생을 급히 들라 일렀다.
“대저 이와 같이 큰일은 시간을 끌면 반드시 사람을 상(傷)하게 된다. 너는 선지(宣旨)를 내어서 속히 진하
(陳賀)하게 함이 마땅하다.”
이윽고 문무백관들이 예궐(詣闕)
하여 세자를 정한 것을 하례하였다. 택현이 끝난 것이다. 임금이 즉시 장천군(長川君) 이종무를 한양에 보내어 종묘에 고(告)했다. 일사천리다.
“세자 제(禔)가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 꾸짖는 글을 지어서 고(告)
하였으므로 신이 그를 보존하였는데 일 년이 되지 못하여 다시 전날의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신이 가볍게 꾸짖어 그가 뉘우치고 깨닫기를 바랐으나 그가 올린 상서를 읽어보니 그 사연이 패만(悖慢)하고 신자
(臣子)의 예(禮)가 없어 대소 신료가 합사(合辭)하여 폐하기를 청하고 충녕대군이 저부(儲副)에 합당하다
는 여망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고(告)
합니다.”
태종•이방원^다음 제182편~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