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당신사랑(여행,친목카페)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국내여행이야기◈ 스크랩 사진여행 [공주/계룡] 그리하여..그리도 좋더라, 계룡산 추갑사(鷄龍山 秋甲寺)
길손旅客 추천 0 조회 97 11.11.14 14:40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영산대제 열린 가을비 오는날의 절집 가는길, 

계룡갑사(鷄龍甲寺)

충남 계룡면 중장리 52  /  041-857-8981

 

가을비 내리는 날의 여행,

갑사로 떠난 날이다.

추적추적함은 구찮음이 아닌,

상쾌하고 청아한 마음이었다.

정갈한 마음마저 들게 하는 산사의 풍경,

부슬부슬 가을비에 씻어내는 심우정같다.

 

 

 

춘(春)마곡, 추(秋)갑사라 했다.

가을 갑사여행의 묘미는 그런것이다. 불현듯한 절집의 기행, 그리고 아득히 먼 언젠가의 그 자리에 서 있었을듯한 데자뷰, 하필이면 후드득! 비까지 내리면서 접집의 여행은 더 오묘해진다. 절집으로 가는 길은 더욱 운치가 더해진다.

그리고...그리도 좋더라.

 

계룡산 계룡갑사(鷄龍山 鷄龍甲寺),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산 마곡사의 말사다. 접집의 사세로만 보면 어느 사찰에 속한다기 보다는 단독적인 절집의 느낌이 더 강하다. 그만큼 갑사는 그만의 규모를 가졌으며, 그만의 역사를 가진 절집으로 마곡사와는 옛 부터 많은 왕래가 있던 절집이다.

'동국여지승람'에 '계룡갑사(鷄龍岬寺)'로 기록되어 있는 절집으로, '갑사(岬寺)', 갑사사(岬士寺)', 계룡사(鷄龍寺)'라고도 불렸다. 지금은 계룡갑사(鷄龍甲寺)라 하였지만, 길손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갑사라 하는 편이 편다.

갑사라는 뜻이 나라안에서 가장 으뜸가는 사찰'이라는 뜻이 되겠고, 거기에 더하여 산의 이름을 더 얹은 것으로 계룡갑사라 했다. 그만큼, '으뜸을 뜻하는 갑(甲') '불법을 전하는 산이라 할만한 계룡산'이 합쳐진 자리의 능선에 자리한 절집은 천녀고찰의 멋을 더하고, 그만한 가치를 지닌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 차라리 추갑사라 불러도 좋을 아름다운 가을날 찾은 갑사의 여행이 참 행복하다.

 

계룡산은 불법이 살아움직이는 산이라 했다.

동학사와 신원사등의 접집들이 산재한 곳으로 그 영험함이 으뜸인지라, 딴따라 도사들마저도 계룡산에서 반드시 3년은 묵어 살아야 무슨 짓거리(?)가 되든 도사가 된다는 뜻이다.

그 중 '천진보탑'은 갑사의 창건을 알려 주는 자연석실로 석가모니 부처가 입적한지 400년이 흐른 뒤 인도를 통합한 아쇼카왕이 부처의 설법을 널리 전파하고자 큰 서원을 세우게 된다. 이 때 사리보탑에 있던 부처의 사리를 사천왕들로 하여 마흔여덞방향으로 봉안토록 하였는데, 북쪽을 관장하던 비사문천왕이 동방의 남섬부주 가운데에서도 명산인 계룡산의 자연석벽에 사리를 봉안하니 지금의 천진보탑이다. 이 후 구이신왕 원년(420년경),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땅에 최초의 절집인 서산 도리산을 창건하고 고구려로 돌아갈 때 백제의 땅을 지나며 산중에서 상서러운 빛을 보고 찾으니 계룡산 천지보탑이었고 아도화상은 그 아래에서 예배하며 절집을 창건하니 그곳이 갑사이다. 이 후 위덕왕3년(556년) 혜명대사가 천불전과 진광명전, 대광명전을 중수하였다 전한다. 

 

또한, 의상대사가 당나라를 유학하며 종남산에서 지엄선사로부터 화엄의 뜻을 받아 한반도의 영지를 찾아 여러 절을 세우며 화엄십찰(華嚴十刹)이라 하였는데, 그 중 한 곳이 계룡산 갑사였다. 신라와 고구려를 거치면서 갑사는 크게 번창하였고, 선조16년(1583년)에 정문루(正門樓)를 중수하였고, 이듬해에 무게 8천근의 대종을 주조하였다. 그 이전에도 범종은 존재하였으나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화포로 만들기 위해 공출 되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까지 유지하던 고찰 갑사는 선조30년(1597년), 정유재란으로 많은 전각들이 화재로 소실 되어 선조37년(1604년)에 이르러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하기에 이른다. 이어 효종5년(1654년)에 들면서 크게 중창하였으며, 영조14년(1738년)에는 왕명으로 '표충원'이 건립이 되니, 이는 갑사에서 출가한 영규대사(靈圭大師, ~1592년)를 배출한 호국사찰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절집의 중건은 여러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허당 영규대사(騎虛堂 靈圭大師, ~1592년),

영규대사는 공주 계룡면 유평리에서 태어나서 갑사에서 출가한 승려다.

밀양박씨의 후손으로 이름은 영규(靈圭)이며 법호는 기허당(騎虛堂)이다. 갑사에서 출가한 뒤 사명대사와 함께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었으며, 선장(禪杖)을 가지고 무예 익히기를 즐겼다고 한다.

공주 천련암에서 수도하고 있을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 5백여명을 규합하여 왜군에 대적하니 이것이 전국의 승병 조직의 도화선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충청도의 중심이자, 한양과 영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던 청주성을 탈환하면서 영규대사의 전술과 용맹성에 모두 감탄하였다.

이 후 1592년, 청주성을 수복한 승병군은 한양으로 올라가던 중, 중순찰사로부터 전갈을 받으니, 왜군에게 빼앗긴 금산을 탈환할 것을 요청받게 된다. 당시 대사는 금산전투는 시기적으로 불리함을 알고 지적하였으나 중본 조현 장군이 공격하고자 하니 그와 뜻을 같이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영규대사가 이끌던 승병들은 금산성 밖 연곤평에 진을 치고 권율을 기다렸으나, 너무 적진의 깊숙히 들어 왔으며, 후속부대가 없는 것을 알게 된 왜군들의 기습공격에 죽음을 걸고 전투를 치르게 된다. 결국 조헌 장군이 전사하고 영규대사에게 피신할 것을 권유하지만 금산성 전투에서 끝까지 싸워 호남침공을 막아 내었다. 그러나 금산성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대사는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금산성 전투는 많은 의병과 승병들이 전사하였으며, 왜군도 많은 희생자를 낸 전투로 이 후,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을 침범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후, 선조는 천주성 탈환의 공을 인정하여 영규대사에게 정삼품 당상관과 금단의를 하사하였고 진위장군 시호를 내렸다.  

 

이에 영조의 왕명으로 세워진 표충원이 갑사에 자리하게 된다.

임진왜란에 적을 맞아 싸운 용감한 승병장 서산대사와 함께 사명대사, 영규대사의 영정을 함께 봉안하였다.

그리고 오늘,

불기2555년 서기 2011년 10월 29일, 순국419주년 진위장군 기허당 영규대사의 추모제가 갑사에서 열리고 있었다.

조용한 절집은 군악대에 취타대, 의장대의 입장도 정신 사납거늘, 요란한 조총발사까지 더 해져서 찰라, 뭔일인가? 싶을 정도의 공포가 있었을 정도다. 가는 날이 장날?, 아니다.

식전행사로 창건1591주년 영산대제가 열렸으며, 419주년 기허당 영규대사추모제가 열리고, 오후부터는 산사음악회가 열리는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려다. 성효스님의 연꽃사진 전시회와 일주문 주변으로는 서양화 전시회가 열리는 등 조용하던 산사는 오랜만에 야단법석을 치뤘다.

 

그렇게 갑사 대웅전 앞마당에 마련된 무대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 통에 절집을 순조롭게 둘러 본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천년고찰의 위용은 더해도 덜해도 그만한 가치를 느끼기에 충만하다.

 

 

 

 

갑사 공우탑(甲寺 功牛搭)

 

갑사는 유독 둘러 볼곳이 많은 절집이다.

창건신화를 지닌 천진보탑을 비롯, 중건 설화를 안고 있는 공우탑, 호국도량을 상징하는 표충원이 그곳이다. 천진보탑은 다음에 찾기로 하여 뒤로 미루어 두었고, 대덕전 가는길에 자리한 공우탑을 먼저 만난다. 정유재란으로 소실 된 절집을 되살릴때, 장정 열명이 해도 안되는 자재 나르기를 소 한마리가 불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스스로 끌고와 불사에 큰 힘을 보태어 주었다한다. 결국 불사 회향 날에 이르러 소는 지쳐 스러져 죽고 말았는데, 사대부중은 물론, 동물까지도 동참했던 갑사의 중건, 그 의의는 공우탑을 보면서 알게 된다.

 

또한, 월인석보판목을 보관하고 있는 보장각과 국내 유일의 철당간 지주, 삼국시대의 갑사부도밭이 그곳이며, 갑사의 절경을 감상 할때는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숲길과 봄에는 황매화단지, 가을에는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단풍의 갑사구곡은 꼭 들려 내려 볼곳이다. 또한, 사시사철 둘러 볼곳이 또 하나 있으니 대덕전 앞의 대나무숲으로, 스쳐 지나기에는 너무도 아쉬운 풍경이 가득한 시원함이 가득한 곳이다.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날,

영산대제가 열리면서 더 이상의 접집답사는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조용한 대덕전을 둘러 보며 숲과 숲길에 마음을 던져 놓고 한 없이 편안 마음을 갖게 된다. 이슬비인지 가랑비인지 구분도 안되는 마당이어서 갖고 있던 우산마저 등춤에 끼워 놓고, 떡국 공양 끝내고,

터벅터벅 걷는 산사의 길, 그 느낌. 눅눅함이 아닌 상쾌함, 축축함이 아닌 청아함이다.

그러한 기분이, 마음이...그리도 좋았다.

 

 

 

 

 

갑사부도(甲寺浮屠, 보물 제257호)

 

약사여래불

 

 

 

 

 

 

 

 

 

by 박수동

www.gilson.asia

 
다음검색
댓글
  • 11.11.14 14:45

    첫댓글 계룔산 갑사..대통이가 신혼여행을갔던곳..절 자체는 많이변한거같지는 안구만..유성호텔에서 하루자고 둘쩻날 계룔산 여관에서 하하..그뒤 서너번가봤지만,수동이사진으로 다시보니..좋아요..대통이결혼때는 유성도 훌륭한 신혼여행지였다웅..

  • 작성자 11.11.18 06:55

    오~~
    그런 멋진 추억이 계신곳이군요. ^^

  • 11.11.14 14:56

    공주 갑사 절집과 주변을 답사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1.11.18 06:55

    감사합니다.
    크지는 않으나 늘 편안해서 지나는 길, 종종 들리는 곳입니다.^^

  • 11.11.14 23:51

    2년전 가을 계룡산 갑사를 간다기에 따라갔다가 계룡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왔읍니다
    가다가 쉬고 못간다고 버티고
    같이간 일행의 도움으로 정상에 올라갔읍니다
    무척 힘들었지만 그때 그기쁨 소리치고 싶었읍니다
    계룡산 정상에 올라갔노라고...
    나르 도와준 모님께 감사합니다

  • 작성자 11.11.18 06:56

    아,
    갑사 지나 등산로를 따라 오르셨나봅니다.
    길이 수월치 않은 길인데, 수고하셨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