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파병과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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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파병으로 한국경제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며 또 그로 인해 어떻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였을까? 1966년 파월 장병이 국내로 송금한 직접 수입액은 1억 7,830만 달러였다.그러나 월남파병으로 인해 베트남에 수출과 군납, 용역 및 건설로 민간 파월 기술자가 국내로 송금한 간접 수입액은 6억 9,420만 달러였다.
이는 당시 국내 총 외화 획득에 80%가 되는 큰돈이다.
또 한국군 파병으로 월남특수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차관, 상품 등, 수출 물꼬가 터져 외자 도입액은 32억 8,820만 달러가 되었으며
대미 수출액은 1964년도에 3,600만 달러이던 것이 1973년도에는 무려 10억 2,120달러로 28.3배나 늘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 그 어느 나라도 돈을 빌려주지 않던 한국에 서방 11개 국가가 서로들 돈을 빌려 주겠다고 나섰다. 다시 말해 월남 파병으로 직접 수입보다 간접 수입이 더 많았으며 국가 신용도는 높아졌다는 얘기다.
주한 미군이 한국에 뿌린 돈이 8억 달러, 군원이관 중단액이 9,300만 달러 등,
총체적으로 한국군이 월남특수로부터 거둬들인 경제적 이득은 무려 5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대일 청구권 8억 달러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큰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군이 월남 8개 항만 중, 5개 항을 장악하고 있음으로 월남 중요 공사는 우리나라 건설사가 도맡아 했으며,
한진은 월남에서 1억 5천만 달러을 벌어들였고,
현대는 캄란 부두 공사 500만 달러를 비롯해 연평균 100만 달러 이상의 계약액을 올렸다.
이러다 보니 외환 보유액이 1964년도에는 겨우 1억 2,800만 달러이던 것이 1978년도에는 무려 49억 4,000만 달러로 폭증, 38.6배나 늘어났으며
북한에 뒤젓던 1인당 GNP는 1975년에는 1.4배 앞섰고, 박대통령이 서거하신 1979년에는 무려 12.8배로 앞섰으며 사상 유래가 없는 연평균 12%의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당시, 가발, 스웨터, 와이셔츠 만들어 팔던 경공업 패턴을 바꾸려 하던 1974년 초. 월남파병은 또 하나의 중동특수라는 신화를 창조하게 됐다. 모래 바람이 부는 열악한 땅, 중동은, 금녀, 금주의 나라로 선진국 근로자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가질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군인 정신으로 무장된 수십만 제대 장병과 수많은 월남참전 용사들이 많았다.
1965년부터 9년간 중동건설 수주 총액은 2,400만 달러였으나,
1974년 8,900만 달러, 75년 7억 5,000만 달러, 76년 24억 3,000만 달러,
77년 33억 8,700만 달러, 78년 79억 8,200만 달러로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
1965년부터 9년간을 평균으로 계산해서 보면 박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에 무려 2,993배, 거의 3천 배로 늘었다. 당시 기업이든 개인이든 해외로 나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때,
중동 및 주월 한국군의 선풍적인 인기로 미국, 호주, 남미, 동남아 등, 너도나도 세계로 진출, 우물안 개구리였던 이 나라가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한국경제 성장동력 엔진을 가동시킨 촉발 제가 된 것이다.
월남에서 벌어들인 돈과 축적된 기술을 가지고 경부고속도로, 댐, 발전소, 제철공장 등, 단군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한편 기술 전문학교를 세워 수많은 기능공을 대량으로 양성해 국제기능 올림픽에서 매년 금메달을 독차지하여 세계는 찬사와 부러움의 눈으로 한국을 보게 되었다.
박대통령은 외국에 특사를 보내 한국에 값싸고 질 좋은 기능공이 많으니 들어와 공장을 지어달라고 호소했고,
이를 신뢰하고 믿게 된 많은 외국기업이 들어와 수많은 공장을 지어 실업자 천국이던 이 나라에 갑자기 일자리가 늘어나기 시작, 삶의 꿈을 같게 된 국민은 비전 있는 내일의 희망과 의욕, 자신감이 충만 되어 '주식회사 대한민국' 하나로 모두가 똘똘 뭉쳐 손톱깎이 하나도 만들 수 없던 허약한 나라에서 불과 몇 년 만에 일약 공업국가로 발전, 전무후무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놓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자료 출처:naver. 2017.8.16. 뉴스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