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만 원
이렇게 큰돈이
왜 남편 옷에 있는 거지?
이 사람이
공금을 횡령한 건 아닐까...?
슐취한 사람이
택시에서 내리면서 놓고 간걸
보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백만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나는
혼미해져 머리에 두통약을 두 알이나
털어 넣고서 자리에 누웠다가
“아니지..
한 달 뒤 내 생일인데
생일선물로 주려고 모은 걸 거야..“
그렇게
단정해 버린 나는
“이럴게 아니지...
남편이 좋아하는 고등어에
소주 한 병으로 근사하게 차려줘야지“
라며
서둘러 시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6월20일
드디어
내 생일이 찾아온 오늘
들뜬 마음을 애써 진정시켜놓고
비번이라 늦잠을 자는 남편을 깨워가며.은근히 생일선물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날
노란 달님이 하품해대다
다음날 하얀 해님이 출근할 때까지
남편은 내게 그 돈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뭐해.!!!!
출근 안 하고???“
내 발에 떠밀려
나가버린 남편의 뒤통수에다 대고
머저리..
노답..
꼰대...
바보 멍텅구리...
라고 퍼부은 뒤
돈 냄새라도 맡아 보자는 심정으로
옷장 문을 열고 양복 주머니를 더듬거리는 순간
뭉클하게 잡히던
오만원권 다발들이
잡히지 않는 게 아니겠어요
,,어디간거야?“
들고 잇던 먼지떨이와 청소기를
방바닥에 팽개치고
식탁에 앉아
소주잔에 시름 다 부어놓고
세상살이 덧없음을 노래하다 잠들어 버렸는데요
“아니...
여보,,웬 술을 이렇게 먹었어?“
퇴근해 온 남편의 눈에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부엌바닥에서
뻗어있는 나를 보며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대는 모습이
어찌나 고소하던지...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요런 맛에 남자들이 술을 마시는구나
하구요
그날 밤부터
다락방을 쓸고 닦아 각방을
쓰기 시작한 저를 보며 영문을 몰라하던 남편은
“왜 그래...여보..
내가 뭘 잘못했어?“
아내 몰래
그렇게 큰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언반구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는 게 속이 상한 저는
밤새 이혼장을 섰다가 찢고를 반복하다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내가 저런 인간을 남편으로 믿고
산 게 바보지,,,,,“
라며
하품해대는 달님에게
화풀이를 해대면서요
해님이
출근을 했다가
조퇴를 해서 그런건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더니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는 오후
“진수 애미야?“
“엄마가 어떻게?"
“병원에서 이리 바로 내라 주더라“
“누가?”
“누구긴 누꼬 차 서방이지”
“오늘 급하게 태울 손님이 있다고
허둥지둥 나가더니만 엄마한테 간 거였네“
병원에 있던 엄마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이 났던 난
비도 오고 해서 모처럼 옛 기억을
더듬어 보며 부침개를 쑤어먹다
“참...
엄마...엄마,..
엄마가 어떻해 여기 와있지?“
“야가 벌써 치매가
차서방이 태워줬다 했다 아이가“
“아니 내 말은 병원비는 어쩌구?“
“그건 나도 모린다
그냥 차서방이 와서 짐 챙기면서
퇴원하자 캐서 그냥 온긴데...“
그제야
양복주머니 속 돈의 행방을 알게 된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서방님......
비 오는데 안전운전 하시와요..
그 말에
턱 빠지게 웃고 있는 남편에게
저는 아부 2탄을 날리고 있엇습니다
“당신 좋아하는 막걸리에
부침개 대령해 놓을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람같이 나타난 남편과 셋이서
오붓하게
주거니 받거니..
부어라 마셔라...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나는
그 돈의 용도는 알았지만
출처가 갑자기 궁금해 졌기에
“여보...남편?”
“왜 마누라..?“
“울 엄마 병원비 내줘서 고마운데
그돈 어디서 난건대?“
남편은 그냥 말없이 실실거리며 웃기만 하는 게 더 수상해 다그쳐 묻고 있는 내가 진상스러웠는지
“진수 애미야 마 됐다
우리 차 서방 같은 신랑이 어딨다고
이리 좋은 날 바가지 빡빡 끍어 샀노??“
그렇게
실랑이하며 몇 잔 더 들어간 술에 취해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실토를 하고 잇었는데요
“앞전에 시장 갔다 오다가
내가 사준 복권 기억나나?“
“그거..어딨더라”
삶은 가볍게
선택은 무겁게를
늘 외치던 남편은
습관적으로 로또를 사고 있었고
그날도 들어오는 길에 혼자 사기 미안했던 남편이
“이건 당신 거야“
라며
건네준 복권 한 장이
3등에 당첨됐다고 말하는 남편
“근데 왜 숨겼는데?“
“거기 사실은 내 복권이 아니라 당신 복권이 붙은기다“
“뭐라꼬.....????”
게슴츠레 풀려가는 두 눈을
봄 독 오른 독사처럼 치켜들고서
그 회차에 3등담첨금을 조회해 본 나는
“울 엄마 병원비하고.,..
십오만 원이 비내...“
“아 그건...”
“빨리 안 내놓고 뭐하는데...?”
남편의 눈동자가
자꾸만 냉장고로 가있는 게 수상해
얼른 뛰어가 문을 열어본 내눈에
보약 한재가 얌전히 들어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이기 뭔데...?”
“어머니 보약한재 짓다
옛날 같지도 안으신 거 같고 해서..“
대한민국에 우리 차서방같은
사위 있으면 나와 보라며
껄껄대며 웃고 있는 엄마와는 달리
내 머리는 번개처럼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오만원이 비는데..?“
“아 그거....로또 쌌다“
“이 인간이 피 같은 돈을...”
그날 밤
옥상으로 쫓겨나
잠들려는 별들을 부여잡고
밤새 푸념을 해대다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남편에게
이불이라도 덮어주려 올라가 보렵니다
살아갈
작은 소망하나를
품을 수 있게 만들어준 그 사람이
내 남편이니까...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첫댓글 이런남편 있을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