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주택도 ‘래미안’ ‘자이’… LH, 시공-설계-감리 선정권도 넘긴다
국토부 ‘LH 권한축소’ 혁신안 발표
민간 공공주택, LH는 땅만 공급
“전관특혜 확실히 끊어내야” 지적
철근 누락이 확인된 인천 검단신도시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아파트.
공공주택, LH 독점 깬다… 민간에 개방, 경쟁체제로
앞으로 공공 아파트도 민간 건설사가 ‘래미안’ ‘힐스테이트’ ‘자이’ 등으로 지어서 분양할 수 있게 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독점하던 공공주택 사업 시행을 민간에 개방해 공공주택 공급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LH의 설계·시공·감리 업체 선정 권한도 다른 공공기관으로 넘긴다. 다만 2021년 땅 투기 사태 때도 ‘해체 수준의 쇄신’을 내걸고 개혁안을 쏟아냈지만 비슷한 문제가 재발한 만큼 체질 개선을 위해선 정부가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1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LH 혁신방안 및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LH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철근 누락 등으로 무너진 뒤 이 같은 부실 공사의 원인이 전관특혜 등 LH의 이권 카르텔이라고 판단해 마련한 방안이다.
우선 민간 건설사도 단독으로 공공주택 사업 시행을 맡도록 개방한다. LH는 땅만 공급하고, 사업 전 과정을 민간이 맡는 것이다. 현재는 LH가 단독으로 시행하거나, LH 사업에 민간이 참여하는 형태만 가능하다.
LH가 권한을 줄이고 전관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설계·시공 업체는 조달청이, 감리 업체는 국토안전관리원이 각각 선정하도록 권한을 넘긴다. 퇴직자 재취업 심사는 부장급에서 차장급으로 넓히고 퇴직자가 3년 이내에 재취업한 업체는 LH 발주 사업 입찰에서 배제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LH의 독점적 권한을 줄여 민간과의 경쟁 시스템을 구축하고, LH 퇴직자가 취업한 업체가 LH 공사에 참여해 특혜 받는 걸 차단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주택사업 개방과 업체 선정 권한 이양은 과거 LH 혁신안에 없던 방안으로 LH 권한 축소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다만 수익성 측면에서 민간 참여가 보장될지 불확실하고 타 기관에서도 전관 로비 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에도 전관 업체와의 수의계약 금지 등 특혜 차단 방안이 나왔는데도 전관특혜가 반복된 만큼 실행이 담보되지 않으면 용두사미 개혁에 그칠 것이라는 것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입찰 때 심사위원에 대한 로비가 없는지 등을 정부가 철저히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했다.
공공주택도 ‘래미안’ ‘자이’… LH, 시공-설계-감리 선정권도 넘긴다
LH 독점 공공주택사업 민간에 개방
LH 年10조 발주… 권한-역할 비대
부실공사-전관특혜 문제 반복
민간, LH택지 분양받아 공급 가능… 수익성 쉽지 않아 참여여부 미지수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독점하던 공공주택사업을 민간에 전격 개방하고, 시공·설계·감리 업체 선정 권한을 타 공공기관으로 넘기기로 한 건 LH가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독점하는 게 문제의 발단이 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비대해진 LH가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면서 전관 특혜와 철근 누락 등의 문제가 발생한 만큼 이번에는 외부의 힘을 빌려 경쟁 체제를 구축해 혁신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2021년 땅 투기 사태 때도 LH 혁신안이 나왔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만큼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공공주택 LH가 독점…“권한 줄인다”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LH는 공공임대와 공공분양 등 공공주택 공급량의 72%를, 공공택지 공급량의 85%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지방공사가 맡는 구조로 LH가 공공주택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LH의 발주 규모만 연간 10조 원으로 윤석열 정부의 270만 채 공급 계획 중 LH가 지어야 하는 물량만 102만8000채(38.1%)에 이른다.
LH가 공공주택 시장의 큰손이다 보니 업체마다 LH 용역을 따내려 LH 출신들을 경쟁적으로 채용하면서 LH 현직과 결탁해 이른바 ‘엘피아(LH+마피아)’가 생겼고, 결국 부실 공사로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2022년) LH 설계 감리 용역을 수주한 10개 업체 중 LH 전관이 없는 곳은 단 1곳에 그쳤다. 국토부 관계자는 “LH 조직이 비대해져 부실공사, 전관특혜 등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LH 혁신안에서 공공주택사업의 시행권을 민간에 단독으로 부여하는 방안을 앞세운 것도 LH 권한과 역할을 덜어내기 위해서다. 앞으로 민간은 LH가 조성한 공공택지를 분양받아 ‘래미안’이나 ‘자이’ 등의 브랜드로 공공분양에 나설 수 있다. 자재를 자체 조달할 수 있고, 설계·시공도 제약 없이 할 수 있다. 기존 LH 사업에선 중소기업 자재를 의무 사용하고,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제약이 많았다.
정부는 분양가와 하자 빈도, 입주민 만족도 등을 평가해 택지별 지구단위계획 수립 때 공공주택 사업자를 정하는 방법으로 LH와 민간을 경쟁을 붙이기로 했다. 김오진 국토부 1차관은 “LH가 품질과 가격 경쟁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 도태되고, 주택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될 수 있다”고 했다.
● 민간 참여 여부 불확실… “관리·감독이 더 중요”
관건은 공공주택 시장에서 LH와 경쟁할 민간의 참여 여부다. 정부는 민간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공주택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LH가 이를 매입하도록 확약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매입한 주택은 공공임대로 쓰인다. 건설업계에서는 공공주택은 분양가를 낮게 책정해야 해 수익성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저렴한 자재를 써 분양가를 낮출 순 없다”며 “서울 등 좋은 입지가 아니라면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주로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설계와 시공·감리 업체 선정 권한을 조달청과 국토안전관리원에 넘기는 방안도 향후 관리·감독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민간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심사 방법·기준을 마련해 조달청에 전달하고, 조달청은 심사위원을 구성·평가해 업체 선정을 담당하게 된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는 “조달청에서 전문성 높은 심사위원을 꾸리고 운영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할 것”이라며 “특히 설계 업체를 선정할 때는 정성 평가가 많이 들어가는데 조달청이 선정한 심사위원과 업체 간 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감독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혁신안의 실행력 역시 관건이다. LH는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 통합 이후 직원 수만 9000명 안팎에 이르는 대규모 조직이 됐다. 2021년 땅 투기 사태 때에도 LH는 조직 축소를 위한 직원 수 20% 감축, 퇴직자 취업심사 강화 등 혁신안을 두 차례 추진했지만, 아직 직원 수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데다 취업심사도 대부분 허용 판정을 받는 등 혁신안이 유명무실하다는 목소리가 컸었다.
최동수 기자, 이축복 기자, 오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