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나도 1학년 2반인데. 옆집에다가 같은 학교에 같은 반. 우리 완전 인연이다."
나는 지금도 환히 웃는 그 애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사소한 것에 금방 웃음 짓는 그 아이를
좋아했던 걸까. 지금도 가끔, 아주 가끔 그애의 미소를 볼 때 내 심장의 쿵쾅거림을 느끼지만
그때마다 나는 남녀간의 우정에 그런 거 가끔씩은 있는 거라고 치부해 버리곤 했다.
우리는 늘 함께 있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동네에서도. 가끔 친구들이나 어른들한테 사귀는 거 아니냐
오해를 받곤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그녀석의 여자친구에 의해 그런 소문은 금새 잠잠해 졌다.
하지만 다시금 또 다시 소문은 어느새 나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녀석과 그녀석의 여자친구가 헤어졌을 때마다.
그 때 마다 그들의 헤어진 이유는 항상 같았다.
나라는 존재가 그녀석의 여자친구에겐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녀석은 항상 나와 함께 다녔다. 그 녀석이 나를 좋아하는 걸까, 라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을 즈음에마다 생기는 그녀석의 여자친구 때문에 그런 나의 오해도 금새 사라져 버렸었다.
늘 함께 일 것 같은 나와 그녀석도 2008학년도 수능, 이 때를 기점으로 점점 따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 때는 부모랑 같이 있을 때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녀석인데.
"재수생 신분으로 이래도 되는 거냐, 너."
"뭐 어때. 대한민국 헌법상 나는 엄연히 성인이라고."
"하아, 재수생 친구가 부를 때마다 네네 하면서 나타나는 나도 한심한 놈이다."
"대학생활 좋아?"
"응, 좋아. 쭉쭉빵빵 여자선배들도 많고 고딩랑은 비교도 안되게 좋아. 그러니까 너도 빨랑 오란말이다."
"맞다, 네 애인이랑은 잘되고 있는거야, 여전히?"
"애인? 아아, 김주은? 헤어졌어, 며칠전에."
별 일 아니라는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그 녀석.
문득 또 다시 생각나버렸다. 이 녀석과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 걸까. 애인과 헤어진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난 또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흘려 듣고. 도대체 어느 지점에 있을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생각은 또 금방 잠식해버렸다.
"너희 동아리는 MT안가?"
"갔어, 어제."
"...근데 넌 왜 여깄어? 신입생이 마땅히 가야 하는거 아냐?"
"헤에, 나 그런거 싫어하는거 알잖냐. 외할머니 돌아가셨다고 뻥치고 안갔다."
"천벌 받을 놈."
"네가 어제 갑자기 오늘 만나자고 했잖아. 원인제공은 너라고, 너."
"그래서, 나보고 천 벌 받으라고?"
"잘 못은 반반이니까 같이 받자고."
환히 웃는 녀석 때문에 몇달간 잠잠했던 내 심장이 다시 쿵쾅거렸다.
이 미친놈의 심장같으니라구. 애인 하나 만들어 버리면 이런 황당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겠지?
"어디로 갔데, 동아리?"
"이 여름날 여디 가겠냐. 당연히 동해바다로 떠났지."
"좋겠다. 나도 가고싶어! 동해바다!! 강원도!! 부산!!"
"넌 재수생이잖아."
다시금 내게 재수생이라는 신분을 일깨워 주는 녀석. 얄미워 죽겠다.
"우리 재수생양은 열심히 공부하세요."
"죽을래, 너!"
"하하, 다 널 위해서야."
"나쁜놈, 그래. 어차피 넌 대학생이고 난 재수생이니까. 재수생주제에 술이나 먹자고 대학생 불러내는
내가 한심해 죽겠지, 넌?!"
"농담이야, 농담. 이제 가자, 늦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너무 오랜만에 녀석과 함께 여서 인지 아까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은 멈출 생각을 않는다.
녀석의 미소를 보고 나니 심장의 박동이 더 빨라지는 것 같다. 이럴 때마다 정말이지 난 내가 싫어진다.
이 녀석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비웃겠냐구. 우린 단순히 친구 사인데.
술 값을 계산하고 나오는데 우연히 동네 아줌마와 만났다.
"어머, 둘이 오랜만에 같이있네?"
"안녕하셨어요, 아주머니?"
"보기 좋아, 둘. 같이 술먹은거야?"
괜시리 어른 들 이야깃 거리 만드는 게 싫었다.
"아뇨! 다른 애들도 같이요.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 뭉쳤거든요."
"아아, 그래? 둘이 사귈 생각 없어? 둘이 잘어울리는데."
"에이, 친군데 왜그러세요~"
"그래, 그럼. 잘 들어가~"
"네."
아줌마가 저 멀리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난 한숨을 내쉬었다.
"너 저 아줌마 알지? 우리동네 스캔들메이커. 저 아줌마 한테 찍히면 너랑 나랑 완전 죽음이야."
"우린 스캔들 만들면 안될 사이냐? 뭐 어때, 조그마한 동네 작은 스캔들 터지는 거 따위."
"풋. 웃기잖아, 이자식아! 우린 아무사이도 아닌데."
"..그럼.. 이제 부터 무슨 사이 하면 될거아냐."
"뭐?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해. 술먹어서 그런가, 애가 약간 맛이 갔어~"
"농담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피식 웃어보이는 녀석의 말에 왜인지 가슴 한구석이 아파왔다.
이 감정이 뭐인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우린 이미 아주 오래전 부터 친구에 익숙해져버렸기에 이런 감정을 가지는 건 이 녀석에게 죄를 지은 것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난 항상 늘 그랬듯이 다시금 외면해버렸다.
다시금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애써 무시하며 난 녀석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말했다.
"이신혁, 너 대학 나보다 먼저 갔다고 나 외면 하면 죽는다~"
"..."
"어쭈, 대답이 없어?"
"있지, 나 군대간다."
"응?"
"군대 간다고."
"... ... 왜?"
"풋. 뭐야, 왜라니. 그냥 나이가 찼으니까."
이상하게 큰 충격이었다.
군대, 물론 이 녀석은 남자니까 막연히 언젠가 군대 가겠지, 라고 생각 한 적이 있긴 했어도
이렇게 갑작스레,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군대를 간다고 말 할 줄은 몰랐다.
"언제.. 가는데?"
"일주일 후."
"뭐, 뭐야!"
"..."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너 공부하는 중이었잖아. 걱정마. 군대가서도 틈틈히 생각 날 때마다 전화 할테니까."
"이신혁!"
"아아, 왜 신경질이야?"
높은 내 목소리에 귀가 따갑다는 듯 양쪽귀를 손가락으로 막는 이신혁, 이 망할 자식.
군대 가면 2년 후는 있다 올텐데. ..
그럼 그 때 동안 나는.. ... 난...
"왜 갑자기 우울모드야?"
"그, 그런건 진작에 말해 줬어야지! 마음 정리 할 수 있도록!!"
"너 수능공부 방해 되고 싶지 않아서였어.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아무리 그래도, 우린 친구잖아!"
"그래. 친구. 네 말대로 우린 친구잖아. 내가 너한테 나 곧 군대가니까 마음 정리할 준비 해. 라고 말할 만큼
특별한 사이가 아닌 단순히 친구!"
그런 녀석의 말에 난 할 말을 잃었다.
더 이상 뭐라 화를 내고 싶음에도 짜증스러울 만큼 하나도 틀리지 않은 녀석의 말 때문에
할 말을 잃었다.
"... 그래. 네가 맞아. 미안해. 내가 술먹어서 너무 흥분 했나봐, 미안해."
"별로. 마음 넓은 이 오빠가 다 이해 해야지 않겠냐?"
"...
잘가라, 군대."
"어? 입대날 안 올거야?"
"내가 거길 왜가냐? 공부해야지."
"...친구 멀리 떠나는 데 손인사 정도도 못해?"
"나 공부해야 한다니까."
아쉬운 듯 볼멘 소리를 하는 녀석.
정말 이젠 안녕 인건가. 지난 약 사년간 지속되던 우리의 이상한 애매모호한 관계는 안녕 인건가.
#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난 녀석에게 연락 하지 않았다.
딱히 연락할 만한 구실거리가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그건 녀석도 마찬가지였는지, 아님 내게 연락하는게 귀찮은건지
녀석에게도 아무런 연락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녀석이 말한 일주일 후는 훌쩍 다가와 버렸다.
가서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거기 가서 뭐해? 거기 가면 나 말고 이신혁 친구들 많이 올텐데.
나 말고도 녀석에겐 친구가 많으니까.
...
...
..
.
.
.
에씨.
아침부터 펜을 붙잡고 열심히 수학문제를 풀으려니까 슬슬 짜증이 났다.
아니, 녀석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은 핸드폰에게 짜증이 났다. 이 자식은 뭐가 그리 바쁘다고
안부 전화, 하다못해 문자도 못해?! 이제 오랫동안 못 만날 텐데!
하다 못해 잘있으라, 나 간다 라는 문자라도 보내야 할 거 아냐!!!
할 말이 있다고, 이자식아.
..
'Rrrrrrrrrr'
"여보세요?!"
때 마침 울리는 핸드폰 진동소리에 나는 발신전화번호를 확인하지도 않고 폴더를 열었다.
-[어, 빨리 받네? 내 전화 기다린거야?]
녀석이다.
"아니거든요? 나 다른 전화 기다리고 있었거든?"
-[하하. 여전하다니까. ...나 간다.]
"...잘가."
-[응. 혹시나 해서 전화 했는데, 넌 역시나 냐.]
"무슨 소리야?"
-[용기 없는 정하나양. 내가 군대 다녀오고 2년 뒤엔 바뀌어 있길 바래.]
"..."
-[나 진짜 간다. 잘 있어라. 시험 잘보고.]
"..이신혁."
-[응?]
"네 말대로 용기 없는 정하나는 기다릴게."
-[...]
"너 돌아 올때까지 기다릴게. 용기 아주 많이 키워놓고 기다릴 테니까, 돌아와, 꼭."
-[Ok]
그리고 녀석과의 대화는 끝났다. ..
하지만 계속된다, 녀석과 나의 애매모호한 그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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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소닷단편소설
[단편]
[칸타빌레♬] 녀석과나의애매모호한관계
칸타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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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04 17:16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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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실은 이 소설의 남주격인 신혁인 현실 에서 모티브 해온 인물이랍니다ㅋㅋ
아너무귀여운소설이예요 ㅋㅋㅋ
꺄악, 귀여운 소설!! 감사합니다!!><
뒷이야기가궁금해요ㅠㅠㅠㅠㅠㅠㅠ
^^뒷이야기는 리지. 님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왠지 소설같지않은 현실같은 분위기가 물씬~ㅋㄷ
일부러 그렇게 쓸려고 노력했답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무튼 리플 감사해요~~~
오오
짧지만 굵은 리플!!! 쌩유베리감사해요~~~~~~~
그후 번외로 보고싶어요!!!^^ 암튼 결론은 너무 좋네요^^
결론이 마음에 드신다니 감사해요~ㅠ 실은 이 이야기 결론을 그냥 저상태로 끝낼까, 아님 해피로 끝낼까 고민했는데... 리플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저도그후가너무궁금해요!
그 후의 이야기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그후가 어찌될지 막 상상이되는 ㅋㅋㅋ
ㅋㅋ네, 막 상상하세요~~~
오호호호 신혁이도아는건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리플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외써주세요 ㅜㅜㅜ
우와 실화같은이야기네요 ㅋㅋ 솔직히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용기내서 고백하고 이러지만.. 현실에선 ㅜㅜ 잘 이루어지지 않는게 더 많을꺼같아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