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덕의 옛날야구’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니 여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잠실구장에 갔다. (2편 조금만 더 기다리시라) 평소같으면 덕아웃에 가서 희수하고 농담따먹기를 해야되는데…… 혹시 ‘맞아 죽을 각오……시리즈’때문에 열받은 선수들이 빠따를 휘두르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냥 3루 지정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못알아보게 복장도 요새 젊은 애들처럼 세미 힙합바지에 반팔티, 렌즈에 색을 입힌 안경도 쓰고.
경기에 앞서, 목요일 등판시켰어야할 조규수를 금요일 내보낸건 이희수의 명백한 실수라는 걸 지적해야겠군. 청주구장이 어쩌구 핑계를 댄 모양인데, 목요일 맞상대가 최창양, 금요일은 방어율 1위 장문석이라는건 생각안하나? 만약 목요일 조규수를 써서 2승1패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면, 일요일 LG가 송진우와 상대할만한 선발을 내보낼 수 없는 입장이란걸 감안, 이번주 최소한 ‘3승 3패’는 올릴 수 있는데. 물론 목요일 삼성전은 투수들의 의외 호투속에, 5개의 화려한 병살플레이를 그림같이 연출해낸 타선덕분에 진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김경원보다는 조규수가 좀더 믿을 수 있는 투수인건 분명하므로, 스스로 먼저 꼬리를 내린거라고 볼 수 밖에. 가뜩이나 침체된 분위기인데 감독까지 이런 ‘삽질’을 한다면……
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 신뢰감을 전혀 주지 못하는 한화타선, 조규수가 잘던지더라도 한두점차로 강우콜드패를 당하는게 아닌가…… 이런 걱정과 자꾸 우산밑으로 들어와 지랄을 하는 미친 나방 때문에 경기에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어쨌든 조규수의 투구내용을 유심히 관찰했다.
조규수는 불같은 강속구로 상대를 압도하는 투수는 아니다. 지금까지 조규수가 괜찮은 성적을 올렸던 것은 공격적인 투구를 하는 베짱, 좋은 컨트롤과 볼배합, 신인답지 않은 위기관리능력이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런 장점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 악몽의 6회 이전, 5회까지 2실점을 했는데 이것도 사실 운이 좋아서 2점만 줬지 내용은 아주 안좋았다.
2회말, 선두타자 최익성에게 초구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변화구를 던져 안타를 맞고, 안상준의 번트타구를 무리하게 2루로 던져 무사 1,2루. 필요이상으로 흔들린 결과였다. 서용빈 희생번트로 1사 2,3루가 된 상황에서 조인성에게 어이없는 2구, 거의 한가운데로 쏠리는 직구를 던져 크게 얻어맞았으나 ‘다행히’ 희생플라이.
3회말 무사 1루에서 김재현에게 어정쩡하게 높은 바깥쪽 변화구를 던지다 간단히 얻어맞아 무사 1,3루. ‘다행히’ 요즘 좋지 않은 이병규, 양준혁이 삽질을 해줘 2사가 됐지만 최익성에게 적시타 허용. 바깥쪽 낮은 직구를 맞았으니 좀 억울한 면도 없지 않으나 다음 타자 안상준이 최익성보단 훨씬 처진다는걸 감안했을 때 보다 신중한 승부를 했어야 했다. 안상준에게는 높은 바깥쪽 직구를 던지다 통타당했으나 ‘다행히’ 2루수 정면. 운으로 2점을 막은셈.
6회말은 2회말과 거의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1사후 또 최익성에게 초구 안타허용.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다, 최익성이 앞선 두 타석에서 게속 밀어치니까 몸쪽 낮게 승부를 걸었는데 최익성이 잘 잡아당겼으니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 안상준 타석때 필요이상으로 흔들린 조규수, 강인권은 초구를 피치 아웃, 결국 쓰리볼까지 몰리고 말았고, 한가운데로 던지다 안타를 맞아 1사 1,3루. 2회말에 자신이 무엇때문에 실점했는지 교훈을 얻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것. 다음 서용빈의 2루타는 실투라기보단 서용빈이 잘친 것이고, ‘다행히’ 홈런은 되자 않았다. 어쨌든 스코어 1:3에 1사 2,3루, 2회말과 똑같이 타석엔 조인성. 여기서 어떻게 해야할까? 1점이라도 더주면 장문석의 구위와 침체된 한화타선을 생각할 때 ‘결승점’이나 마찬가지. 그렇다면 조인성을 고의사구로 내보내 만루를 만들고 이종열에게 병살타를 기대하는 작전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고의사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아주 어렵게 승부해야겠고. 그러나 이 모든 바람을 뒤로 한 채 조규수는 어이없는 초구를, 2회말때 조인성에게 던졌던 것과 거의 같은 코스의(조금 더 높은)볼을 던져버렸고…… 쓰리런으로 상황끝.
공격쪽에선 2회초 이영우의 2루타가 될 수도 있었던 타구가 잡힌 것이나 5회초 히트앤드런 실패로 이영우가 2루에서 죽은 것등이 아쉬웠으나 역시 가장 뼈아팠던 상황은 6회초라고 봐야겠다. 0:2로 뒤지고 있다 천신만고끝에 5회초 1득점. 5회말 LG의 병살타. 6회초 한화는 3번이 선두타자…… 당연히 뭔가 이루어져야할 분위기, 마침 조금 흔들린 장문석이 연속적으로 볼을 던져 투볼. ‘뻑…쟁이’데이비스는 아주 중요한 시점에 선두타자로 나선 자신의 역할이 뭔지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그러나 거의 똑같은 바깥쪽 낮은 볼에 3연속 헛스윙 삼진. 말그대로 찬물을, 아니 염산을 뿌린 꼴. ‘플레잉코치’와 ‘전설의 공갈포’도 기다렸다는 듯이 삼진쇼를 벌임으로써, ‘악몽의 6회말’을 위한 멋진 예고편을 완성했다.
조규수가 뛰어난 투수임은 분명하지만 신인은 신인. 팀 타선의 도움은 애초에 기대하기 힘든 요즘에, 정민태나 장문석같은 그 팀의 에이스급과 일부러 맞장을 뜨게하는 건 조규수에겐 너무 큰 부담이 아닐까? ‘한두점 먼저 실점하면 진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머리속이 복잡해지기 마련. 더구나 이희수의 지나친 편애에다 한화의 구세주니, 신인왕 0순위니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으니. 여기에 날씨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컨트롤이 흔들린데다, 강인권의 엉성한 볼배합도 한몫했겠고.
장문석이가 한화 중심타선은 변화구에 약한 주제에 큰 스윙만 연발해 상대하기 편했댄다. 이런 소리듣고 잠이 오남? 뭐, 어제 오늘 얘기도 아니고…… 맨날 주자가 있으면 병살, 주자가 없으면 삼진…… 이제 말하기도 지쳤는데, 더 이상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둘 수만은 없다. 일시적이라고 보기엔 너무 오래 간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이정훈이가 얼마전 애들한테 밀어치라니깐 왜 말 안듣냐면서 밥도 먹지 말라고 했다는데……, 정훈아 그 정도가지군 이젠 안될 것 같다. 음…… 줄빠따를 맞아야 팀배팅을 하려나? 아니면 홈런을 치면 뺨을 후려갈기고, 초구에 번트 성공하면 100만원씩 줘 보든지. 희수야, 까딱하단 ‘김영덕 재취임, 종신계약’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알아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