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l)
최용현(수필가)
영화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l)’은 열아홉 살의 까미유 끌로델이 당대 최고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을 만나 질풍노도와 같은 애증(愛憎)의 삶을 살다가 정신병원에 수감될 때까지의 30년을 화면에 담은 것이다. 프랑스의 여류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편년체(編年體) 형식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864년, 프랑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1남 2녀의 장녀로 태어난 까미유 끌로델은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감성과 영감, 풍부한 상상력으로 조각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까미유는 여동생 루이스보다 남동생 폴과 더 친밀하게 지내는데, 폴은 나중에 외교관이 되고 시인과 극작가로도 활동한다.
1879년, 까미유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가 조각가 부셰에게 보내 조각의 기초를 배우게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까미유가 어릴 때부터 흙 반죽을 하며 노는데다 고집이 세고 자의식이 강해서 평생 동안 미워한다.
1881년, 까미유는 부셰의 도움으로 콜라로시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조각수업을 받게 된다. 까미유는 가끔 한밤중에 혼자 기숙사에서 손전등을 들고 나가 좋은 진흙을 찾아내어 20kg이나 가방에 담아 끙끙거리며 들고 오기도 했는데, 까미유의 조각에 대한 열정은 남다른 바가 있었다.
1883년, 19세가 된 까미유(이자벨 아자니 扮)는 조각가 로댕(제라르 드파르디외 扮)의 제자로 입문하는데 곧 그의 모델이 되고 연인이 된다. 43세의 로댕은 빼어난 미모에다 예술적인 재능까지 갖춘 까미유를 남달리 사랑하여 두 사람은 24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정염을 불태운다.
이 시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작품에 담으며 동반자 예술의 꽃을 피운다. 로댕은 까미유의 흉상(胸像)을 다수 제작하였고 까미유 또한 로댕과의 사랑을 작품으로 형상화한다. 까미유는 정식으로 로댕의 조수로 일하면서 로댕의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 ‘입맞춤’ 등의 작품 제작에도 참여한다.
1888년, 24세가 된 까미유는 힌두교의 전설에서 영감을 얻은 ‘사쿤달라’를 살롱에 출품하여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전도유망한 조각가로 첫발을 내딛는다. 까미유가 두각을 나타내자 로댕과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까미유는 조각 작업을 조수들에게 맡겨놓고 사교모임에 드나드는 로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사회적 지위나 명예를 중시하는 로댕은 까미유가 계속 자신만의 뮤즈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1892년, 로댕의 아이를 임신한 까미유는 로즈와 자신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요구하지만 로댕은 묵묵부답이다. 로즈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을 뿐 사실상 로댕의 아내였던 것이다. 아이를 유산시킨 까미유는 ‘당신의 두상을 만들 거예요. 당신의 사랑이 식으면 언제든지 깨버릴 거예요!’ 하는 메모를 남겨놓고 로댕의 작업실을 뛰쳐나온다.
1893년, 작품에 매진(邁進)한 까미유는 ‘성숙’을 살롱에 출품하여 극찬을 받았고, 다시 ‘로댕의 흉상’을 출품하여 세인들의 주목을 받는다. 이때까지는 작품에 관련된 서신을 로댕과 주고받았다. 까미유의 조각 중에서 가장 유명한 ‘왈츠’ 청동상도 이때 제작되었는데, 로댕과 이별한 까미유가 잠깐 사귀다가 헤어진 음악가 드뷔시에게 선물로 준 작품이다.
1899년, 까미유는 대리석 작품을 살롱에 출품하였는데 도난을 당한다. 까미유는 로댕이 자신을 시샘하여 훔쳐갔다고 비난하는데, 이로써 15년간 이어진 로댕과의 동행에 완전히 마침표를 찍는다. 로댕과의 결별은 까미유가 조각가로서 성공하는데 필요한 조력자를 잃는 결과가 된다. 까미유는 거처까지 옮기고 혼자 살다가 우울증을 앓는다.
1900년, 까미유는 이별의 아픔을 조각으로 이겨내려 하지만 돈이 없어서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못하고 추위에 떨며 싸구려 와인으로 연명하다가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이제 까미유는 예술계에서 완전히 잊힌 사람이 된다.
1906년, 까미유의 가족들은 외교관인 남동생 폴의 근무지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한다. 혼자 남은 까미유는 정신착란증이 생기고, 어느 날 발작을 일으켜 수년 동안 애써 만든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부숴버린다.
1909년, 귀국한 폴에 의해 까미유의 비참한 생활상이 가족들에게 알려지고, 아버지와 폴의 도움으로 연명을 해나간다.
1913년, 혼자 14년을 살아온 까미유는 정신적 지주인 아버지가 사망하자, ‘로댕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로댕이 내 작품을 훔쳐갔다.’고 소리 지르며 로댕의 집에 돌을 던지는 등 극도의 피해망상 증세를 보인다. 결국 폴과 가족들이 49세가 된 까미유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면서 영화가 끝난다.
그 후 까미유는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서 살아간다. 까미유는 조각을 하고 싶다고 호소하지만 보호자인 폴은 까미유의 정신분열증 때문에 묵살한다.
1943년, 까미유는 정신이상자 수용소인 몽드베르그에서 향년 79세로 삶을 마감한다. 장례 때는 폴조차도 오지 않아 무연고자로 처리된다. 그래서 묘지도 없고 시신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
1984년, 까미유의 남동생 폴의 손녀인 렌마리 파리가 ‘까미유 끌로델의 전기’라는 책을 내면서 비운의 여류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의 삶과 작품들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1988년, 브루노 누이땅 감독이 이 전기(傳記)를 바탕으로 영화 ‘까미유 끌로델’을 만든다. 뛰어난 재능과 광기를 지닌 미모의 조각가 까미유 역을 맡아 온몸으로 열연한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 덕분에 2시간 38분 동안 화면에 몰입할 수 있었다.
2013년, 브루노 뒤몽 감독에 의해 다시 영화 ‘까미유 끌로델’이 만들어졌는데, 정신병원에 갇힌 지 2년이 지나 51세가 된 까미유의 유난히 쓸쓸했던 1915년의 겨울 3일간의 이야기이다. 명우 줄리엣 비노슈가 까미유 역을 맡았다.
까미유 끌로델은 예술가로서는 절정의 나이인 50대에 정신병원에 갇혔는데,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조각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던 천재 조각가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