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김남조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
꼭 눈을 뽑힌 것처럼 불쌍한
사람과 가축과 신작로와 정든 장독까지
누구 가랑잎 아닌 사람이 없고
누구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고
불붙은 서울에서
금방 오무려 연꽃처럼 죽어갈 지구를 붙잡고
살면서 배운 가장 욕심없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반만년 유구한 세월에
가슴 틀어박고 매아미처럼 목태우다 태우다
끝내 헛되이 숨져간 이건
그 모두 하늘이 낸 선천(先天)의 벌족(罰族)이더라도
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
그래도 죽지만 않는
그러한 목숨을 갖고 싶었습니다.
-<목숨>(1953)-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기구적, 직설적
◆ 표현
* 언어 감각에 있어 이미지보다 의미가 우세함.
* 경어체 표현을 통해 절박한 심정을 효과적으로 표현
◆ 중요 시어 및 시구
*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 → 신뢰할 수 없는 목숨(생명)의 허망성
* 1연의 상황 → 언제 죽을지 모르는 백척간두의 위태로움에서, 목숨이 부대끼는
존재들의 위기감 표현
6. 25 전쟁과 관련지으면, 살기 위해 떠나는 피난 행렬의 처참함을 나타냄.
* 가랑잎 아닌 사람 없고 → 목숨의 허망함, 위기감, 절망감
*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고 → 목숨의 본능적 욕구
* 불 붙은 서울 → 6.25전쟁으로 인한 급박한 상황
* 가장 욕심없는 기도
→ 죽지만은 않는 목숨 부지에 대한 내용으로,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외경감이 표출.
* 하늘이 낸 선천의 벌족 → 목숨이 위기의 상황에 처한 이유가 제시됨(민족과 조상의 원죄)
비록 천벌일지언정 목숨만은 부지되기를 소망함.
* 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 → 고난과 역경속을 헤맬지언정,
목숨만은 잃고 싶지 않다는 심정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 주제 ⇒ 목숨의 허망함과 강인한 생명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인간 존재(목숨)의 허망함
◆ 2연 : 절박한 상황에서의 삶에 대한 의지
◆ 3연 : 허망한 목숨의 당위성
◆ 4연 : 생명에 대한 강렬한 소망과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전쟁의 비극적 상황에서 느낀 절박한 위기의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먼저, 제1연은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와 같이 신뢰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허망성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연의 착상은 목숨을 ' 산 ', ' 가축 ' , ' 장독 ' 등과 일체화시킴으로써 목숨의 비속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비속한 이미지는 ' 눈을 뽑힌 것처럼 불쌍한 '이라는 직설적 표현에 의하여 그 가련성이 심화되고 있다.
제2연은 1연의 목숨에 대한 허망감이 절망감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것은 불붙은 서울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초래된 것이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반응은 ' 가장 욕심없는 기도 '를 올리는 방법 뿐이라고 하여 종교적인 갈망 속에 인생의 욕망과 고뇌를 여과시킴으로써 전후 서정의 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제3연은 그처럼 목숨이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은 민족이 저지른 원죄의식에서 비롯된다는 해명을 해주고 있다. 결국, 현실적 위기의식과 절망감이 역사와 민족에 대한 좌절과 체념으로 귀결되고 있다.
제4연은 이 시의 종결부이면서 지금까지 전개된 이 시인의 세계인식의 태도가 의지적 색채 위에 다담하게 정리되고 완결되는 부분이다. 곧 돌멩이처럼 갖은 고난과 역경 속을 헤맬지어정 목숨만은 부지하고 싶다는, 목숨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의지가 표백되어 있다. 4연에서는 이러한 생명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나타내 보인 것으로 그저 막연하고 추상적인 생명의식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난 생명 확인에의 의지라 하겠다.
[참고] : 김남조의 시세계
시인 김남조의 첫시집 <목숨>에서는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완성한 생명력을 통한 정열의 구현, 특히 카톨릭 계율의 경건성과 뜨거운 인간적 목소리가 완전하게 조화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제 2시집 <나아드의 향유>로 이어지면서 종교적 신념이 한층 더 강조되고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전면에 드러내게 된다. 이후의 시 대부분이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정조를 짙게 깔고 있으며 후기로 갈수록 더욱 심화된 신앙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김남조 시인의 시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 종교적인 사랑(아가페)와 인간적인 사랑(에로스)이 조화된 사랑의 갈구와 호소
● 생명의 존귀함과 인간적 삶의 예찬
● 카톨릭 기원과 영가적인 가락으로 이루어진 종교시의 세계
이런 성향은 위에서 살펴본 사랑이나 카톨릭적인 요소와도 상호 연결되면서 원숙한 시 미학의 구현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처녀시집인 <목숨>에서부터 다소 열띠고 항변적으로 드러냈던 생명 의식은 이제 정중히 가라앉고, 보다 밝고 경건한 삶의 예찬으로 심화되고 있다.
[작가소개]
김남조[ 金南祚 ]
<요약> 김남조의 작품은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정조를 짙게 깔고 있으며 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류시인의 계보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생 1927. 9. 26.
출생지 : 대구광역시
데뷔 : 1950.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 「잔상(殘像)」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27년 9월 25일 경북 대구 출생. 일본 규슈(九州)에서 여학교를 마쳤고,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마산고교, 이화여고에서 교편을 잡은 후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5년부터 1993년까지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1950년 대학 재학시절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 「잔상(殘像)」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들어갔는데, 이후의 시 「황혼」, 「낙일」, 「만가」 등과 더불어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을 통한 정열의 구현을 소화해 내고 있다. 특히 『목숨』은 가톨릭 계율의 경건성과 뜨거운 인간적 목소리가 완전하게 조화된 시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제2시집 『나아드의 향유』로 이어지면서 종교적 신념이 한층 더 강조되고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전면에 드러내게 된다. 이후의 시들 대부분이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정조를 짙게 깔고 있으며 후기로 갈수록 더욱 심화된 신앙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열의 표출보다는 한껏 내면화된 기독교적 심연 가운데에서 절제와 인고를 배우며 자아를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집 『정념의 기』(1960), 『풍림의 음악』(1963), 『잠시, 그리고 영원히』(1965), 『김남조 시집』(1967) 등을 발간하면서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었다. 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성 시인의 계보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에도 『평안을 위하여』(1995), 『외롭거든 나의 사랑이소서』(1997), 『희망학습』(시와시학사, 1998), 『사랑 후에 남은 사랑』(1999), 『영혼과 가슴』(2004), 『가난한 이름에게』(2005), 『귀중한 오늘』(2007) 등의 시집을 간행한 김남조는 비교적 다작(多作)하는 시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목숨』(1953), 『나아드의 향유』(1955), 『나무와 바람』(1958), 『정념의 기』(1960), 『풍림의 음악』(1963), 『겨울 바다』(1967), 『설일』(1971), 『영혼과 빵』(1973), 『사랑초서』(1974), 『동행』(1976), 『빛과 고요』(1982), 『시로 쓴 김대건 신부』(1983), 『마음의 마음』(1983), 『눈물과 땀과 향유』(1984), 『너를 위하여』(1985), 『저무는 날에』(1985), 『말하지 않은 말』(1986), 『문 앞에 계신 손님』(1986), 『둘의 마음에 산울림이』(1986), 『고독보다 깊은 사랑』(1986), 『겨울나무』(1987), 『새벽보다 먼저』(1988), 『바람세례』(1988), 『깨어나소서 주여』(1988), 『겨울꽃』(1990), 『가슴을 적시는 비』(1991), 『겨울사랑』(1993), 『평안을 위하여』(1995), 『외롭거든 나의 사랑이소서』(1997), 『희망학습』(1998), 『사랑초서와 촛불』(2003), 『영혼과 가슴』(2004), 『가난한 이름에게』(2005), 『귀중한 오늘』(2007) 등이 있다.
시선집 『김남조시집』(1967), 『김남조 육필시선』(1975), 『김남조 시선』(1984), 『가난한 이름에게』(1991), 『김남조 시 99선』 등이 있다. 2005년 국학자료원에서 『김남조 시전집』를 발간했다. 이밖에도 산문집으로 『잠시 그리고 영원히』(1964), 『은은한 환희』(1965), 『그래도 못다한 말』(1966), 『달과 해 사이』(1967), 『시간의 은모래』(1968), 『여럿이서 혼자서』(1972), 『그대들 눈부신 설목같이』(1975), 『이브의 천형』(1976), 『만남을 위하여』(1977), 『그대 사랑 앞에』(1978), 『기억하라 아침의 약속을』(1979), 『그 이름에게』(1980), 『바람에게 주는 말』(1981), 『그가 네 영혼을 부르거든』(1985), 『먼데서 오는 새벽』(1986), 『사랑을 어찌 말로 다하랴』(1986), 『가슴 안의 그 하나』(1987), 『끝나는 고통 끝이 없는 사랑』(1990), 『마지막 편지』(1996), 『사랑 후에 남은 사랑』(1999) 등이 있다.
1992년 제33회 3·1문화상, 1996년 제41회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부문 예술원상, 2007년 제11회 만해대상 문학부문상 등을 받았고,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과 1998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학력사항>
~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 국어교육과 학사(졸업)
<경력사항>
마산고등학교 교사,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 성균관대학교 강사, 서울대학교 강사
1954년 ~ 1993년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수상내역>
1963년 오월문예상, 1992년 제33회 3·1문화상,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6년 제41회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부문 예술원상, 1998년 은관문화훈장
2007년 제11회 만해대상 문학부문상
<작품목록>
겨울꽃, 겨울나무, 고독보다 깊은 사랑, 그리움처럼 빛처럼, 김남조 시선
김남조 시전집, 김남조 시집, 김남조 시집, 깨어나소서 주여, 나무와 바람
나아드의 향유,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동행, 둘의 마음에 산울림이
마음 안의 마음, 말하지 않은 말, 목숨, 문 앞에 계신 손님, 믿음을 위하여
바람세례, 빛과 고요, 사랑을 위한 낭송시집 1~2, 설일, 수정과 장미
시로 쓴 김대건 신부, 영혼과 빵, 외롭거든 나의 사랑이소서, 요람의 노래
우리들 시대의 여류시인 신작시 45, 잠시, 그리고 영원히, 저무는 날에, 정념의 기
정념의 기, 평안을 위하여, 풍림의 음악, 희망학습, 겨울바다, 생명, 정념의 기
[네이버 지식백과] 김남조 [金南祚]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