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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며 정기용/건축가 “기자회견 하겠다” 간청하자 “참아라” 지붕 낮은 집을 원한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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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토요일 하루 종일 찌푸린 하늘아래 가랑비가 흩뿌린다. 비극적 소식을 접하고 하루 종일 가슴이 애린다. 끊임없이 눈물이 고인다. 통곡할 수밖에 없는 이 큰 슬픔과 놀라움 속에서 하루가 지난 오늘새벽까지도 부엉이바위는 내 눈앞에 나타나 나의 시야를 흐리게 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하고, 지금 떠나서는 안 되는 분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심경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오늘 나는 고백해야만 한다. 그동안 가슴속에 꾹꾹 참아왔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아야만 하겠다. 지난 2년 반 동안 나는 노무현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를 설계하고, 봉하마을 계획들을 옆에서 거들어 오면서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노무현대통령은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훌륭한 건축주이셨다. 집짓기를 위한 회합을 거듭할수록 계획안은 점점 나아졌고, 서로 간에는 드디어 신뢰와 공감이 생겨났고, 퇴임 후 사저로 입주한 후에도 이런저런 일로 찾아뵙고 또다시 봉하마을 생활 속에서 피어난 꿈의 계획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두 가지를 마지막 가시는 길을 위해 밝혀야만 한다. 한 가지는 세상 사람들이 TV카메라에 비친 모습만 바라보는,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저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귀향한 한 농촌인으로서 농부 노무현이 꿈꾸던 소박한 세계를 알리는 것이다. 오늘의 이 비통함과 가슴 저리는 심경 속에서 우리가 갖춰야 되는 최소한의 예의는 고인에 대해서 끈질기게 널리 퍼뜨렸던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봉하마을의 사저는 내가 설계했기 때문에 건축가인 내가 제일 잘안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봉화아방궁이라는 말로 날조해서 사저를 비하하는 정도가 아니라 악의마저 엿보이게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나는 대통령에게 내가 나서서 기자회견을 해야겠다고 간청했다. 그러나 그래봐야 아무소용이 없으니 참으라고 하셨다. 나중에 다 밝혀질 일이지만 내가 설계한 대통령의 사저는 재료로 말하자면 흙과 나무로 만든 집이다. 그리고 아방궁이 아니라 불편한 집이다. 처음 만남에서 농촌으로 귀향하는 이유를 대통령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농사도 짓고 마을에 자원봉사도 하고, 자연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도심아파트 같이 편하게 살아서는 안 되고, 옛날 우리조상들이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어 살았듯이, 한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할 때는 신을 신고 밖으로 나와서 이동하는 방식의 채 나눔을 권유하였다.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이 편리하게 배치되어 있는 도시의 집과 달리 식사를 하거나 집무실로 이동할 때마다 봉화산을 바라보거나 공기 내음을 맡으면서 농촌에 살고 있음을 환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대통령은 흔쾌히 동의 하셨다. 흙집에다가, 도시 사람으로는 살기에 불편한 집. 그러나 품위가 있고 자연과 조화로운 집, 그런 집을 결과적으로 원하신 셈이다. 그리고 경호원들과 비서진들의 공간은 너무 떨어뜨리지 말고 한 식구처럼 생활하도록 주문하였다. 집이 다소 커져 보이는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경호동을 안채와 붙여서 비서진들과 경호원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나는 중정형의 집으로 화답한 셈이다.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확장한 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건축가는 안다. 건축주가 누구이며 집을 통해 무엇을 실현하려는지.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지붕 낮은 집”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봉하마을 주민들의 농촌소득 증대사업을 유기농법으로 전환시키고, 봉화산과 화포천 일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치유하며, 궁극적으로는 청소년을 위한 생태교육의 장을 만들고자 하셨다. 재임시절 풀지 못한 숙제 중 하나인 농촌의 문제를 스스로 몸을 던져 부닥치려는 대통령의 의지는 퇴임 후 일 년 내내 쉴 새 없이 지속되었다. 앞으로 마을뒷산 기슭에 ‘장군차’도 심을 예정이었고, 마을 마당 앞뜰에는 마을특산물매장도 꾸리고 노무현표 브랜드 쌀도 팔 계획도 세웠다. 특히 장터 지하 쪽에 작은 기념도서관 건립도 꿈꾸고 계셨다. 민주화운동시절 당신이 가까이했을 수밖에 없었던 민주주의에 관한 책들, 당시의 젊은이들의 양식이 되었던 모든 책들을 모아 작지만 전문적인 민주주의 전문도서관을 구상하고 계셨다. 농사도 짓고, 자연과 생태를 살리고, 나아가서는 작은 동물농장을 봉화산자락 부엉이 바위 밑에 만들어 청소년들과 함께 하려는 생각들이 바로 인간 노무현대통령이 꿈꾸던 소박한 꿈들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폭넓은 독서에 빠져 통치시절을 정리하며 집필 작업에 임하셨다. 독서와 토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즐기던 값진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대통령은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것은 내 탓이다. ‘산은 멀리 바라보고 가까운 산은 등져야한다’는 조상들의 말을 거역하고 집을 앉힌 내 탓이다. 봉화산 사자바위와 대통령이 그토록 사랑하던 부엉이 바위 가까이에 지붕 낮은 집을 설계한 내 탓이다.
정기용/건축가 |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51227
부엉이 바위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사저 전경(출처-오마이뉴스)
당신이 떠난 후 연일 언론에 등장하는 '두 곳'이 있습니다.
당신이 몸을 던진 부엉이 바위와 또 하나는 ‘사저’입니다.
저도 지난 2월 부산 출장 갔다가 오는 길에 봉하마을에 들러서 사저를 봤습니다.
사저 뒤로는 산이 있고, 앞에는 김해시로 나가는 도로가 나 있더군요.
시골마을의 집 치고는 큰 편이었지만,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 봉하마을 현지를 방문한 분들은 당신의 사저를 보고서
아마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분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한나라당에서 그간 뭐라고 했습니까?
아방궁, 노무현 타운, 심지어 노방궁(노무현+아방궁)이라고 떠들어 댔죠?
이것 하나만 봐도 조-동은 나쁜 언론, 한나라당은 나쁜 정당입니다.
<조선일보>는 당신이 퇴임하기 반년 전인 2007년 9월 10일자 사설('노무현 타운')에서 이리 썼습니다.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서울에 사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비교해 신선한 느낌을 받은 국민이 적지 않았는데 지방에서 소탈하게 사는 전직 대통령 모습을 떠올렸던 국민들은 1만평이나 되는 ´노무현 타운´이 등장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동아일보>는 한 달여 뒤인 2007년 10월 15일자 <이재호 칼럼>(‘盧대통령, 解官을 아시나요’)에서 이렇게 썼더군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타운’도 그렇다. 역대 대통령 사저(私邸) 중 가장 큰 사저가 수백 평이 넘는 터에 세워지고 있다. 다산이 말한 ‘고향으로 가는 낡은 수레와 야윈 말’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언제나 사회적 약자의 편임을 자임해 온 정권에서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봉하마을 사저 주변 배치도(출처-동아일보, 07.10.11)
공사중인 봉하마을 사저 전경
서울 흑석동 소재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대저택. 길가에서부터 정면으로 보이는 산 전체가 이 집 땅이다.
위성사진으로 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대저택. 가운데 숲으로 둘러싸인 부분이 방 사장 저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저 앞에서 방문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출처-노무현 공식홈페이지, 2008. 3.11)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51541
봉하사저 설계한 분이 우리 학교 교수님이세요
(커뮤니티 '성대사랑' / 연 / 2009-05-28)
오늘 수업 듣고 왔는데요.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를 짓기 위해 2년 반동안 매주 일요일마다 청와대에서 담소를 나누셨대요.
건축가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주택을 짓는거예요. 그 사람의 삶을 다루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구요. 주택을 짓고 나면 건축주와 친구가 되거나, 적이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되는데...,
저희 교수님은 어느 쪽이셨을까요? 그래서 먼저 왜 농촌에 짓느냐 물었더니
당신이 농촌으로 간 이유가 뭐 농촌에서 한가롭게 있겠다 이런게 아니라요.
1. 5년 임기동안 풀지 못한 문제가 농촌 문제라고 말씀하셨대요.
농촌 문제를 풀고 싶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2. 숲을 개량해야겠다.
봉화산을 생명친화적으로 만들겠다.
습지를 깨끗하게 만들겠다.
이런 의도를 가지고 계셨대요. 그래서 당신께서 스스로 숲이나 습지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셨구요. 그래서 교수님께서 '농촌에 사는 것은 농촌의 숨을 쉬는 것이다. 밥 먹고 신을 신으시라. 불편한 집에서 사시라'고 건의했대요. 대신 비는 안 맞게 해드리겠다.
그래서 지어진 집이 봉하마을 사저예요. 마치 우리의 전통건축의 전통가옥처럼
식당으로 갈때 신을 신고 걷고 식사 후에 집무실로 갈때도 신을 신고 걷고 이렇게 만들어진 불편한 흙집이예요. 농촌과 숨을 쉴 수 있는 흙집이요. 거기에 외관은 나무를 쓴거구요. 규모요? 생활하시는 곳은 스물다섯평이 될까말까 한 곳이구요. 중정이라고 해봤자 정말 손바닥만한 마당이구요
티비에 잡히는 것은 경호원과 비서관이 머무는 곳이예요. 처음에 교수님은 이들이 머무는 곳은 다른 곳에 지으려고 하셨대요. 아무래도 대통령님의 사생활도 있고 하니까요. 그런데 당신께서 평생 경호원과 비서관과 함께 지내야 하는데 왜 떨어져서 짓게 하느냐. 행랑채처럼 따로 살게 하지 말라고 해서 중정처럼 앞쪽에 그들이 사는 집을 지었대요. 가족이라고 하셨대요. 그래서 비서관과 경호원과도 몹시 친밀하게 지내셨구요..
교수님께서, 조중동에서 아방궁이라고 말도 안되는 비난을 할때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대요.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하지 마시라, 그들이 제대로 써주겠느냐.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도 그럼으로써 정 선생이 다친다.' 고 말씀하셨대요. 그래서 교수님이 그럼 책을 쓰겠다고 하셨더니 '그거야 괜찮다. 다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오늘 이 말씀을 하시면서 교수님이 계속 눈물을 보이시고 북받치셔서 저희도 다 따라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교수님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그러셨어요.
어제 봉하마을에 다녀오셨는데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권 여사님께서 교수님을 맞으셨다고 불편하신데 왜 나오냐고 그랬더니 2년 반동안 집을 설계한 사람으로서 가장 가까이에서 기분좋게 이야기를 나눈 몇 안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당신과 이야기하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셨다고... 그러셨어요.
그런 분이셨다고... 정 교수님이 봉하마을을 찾아가시면 오실 때마다 거기 찾은 관광객분들한테 "아, 이분 덕분에 제가 여기 있다"면서 박수 한 번 쳐달라고 한번씩 꼭 이야기 하셨다고. 그러지 말라고 그랬는데도 꼭 그러셨다면서. 다만 교수님은 정치 뭐 그런 것에는 모르고 건축가로서 오직 그 사실에 그리고 본인이 설계한 이 사저에 대해 조중동이 어떻게 말하는 지 보고 진실을 안다고 했어요.
그 분은 순교하신거라고.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고.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미안해하지도 말라면서 우셨어요.
연배가 비슷하세요. 노 대통령이랑... 아마도 그래서 더더욱 친구의 죽음으로 느껴졌을지도 몰라요.
*출처 : [성대사랑 커뮤니티] http://www.skkulove.com/bbs/zboard.php?id=fb2009&category=2&no=118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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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좆중동이 만들어낸 가상현실에 영혼과 양심을 팔아먹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어리석게도 속아넘어갔다.
첫댓글 가진놈들은 자기 떡이 몇배가 커도 다른 사람이 가진 떡에 대해서만 비난할줄아는 녀석들이죠.
홍준표 주동이를 찢어버리고 싶네요
저딴거에 낚이는 국민들이 오히려 대단해요... ㅉㅉ
한나라당과 그 일당인 수구꼴통들은 자기 눈에 든 들보도 못 보면서 남의 티눈까지 살펴보는 참 편리한 뇌구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참 대단한 반면교사들이죠. 올바르게 살려면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오늘도 참 많이 배우고 갑니다. 너희 수구꼴통처럼 살면 안 된다는 교훈을 또 배웠으니까요. 더러운 쓰레기들. 그것들을 쓸어버려야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희망이 늘어납니다.